King Shura RAW novel - Chapter (283)
제283화 십단금
냉하영은 정도맹 총본타에 도착한 뒤로 지금까지 줄곧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누군가의 흔적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비로소 그녀가 원하던 사람이 눈에 들어오자 야릇하게 미소 지었다.
“찾았다, 상관중달…….”실제로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동안 이름만 줄기차게 들어 보았지, 이렇게 얼굴을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서 본 적은 없었던 것이다.
‘절대 도망 못 쳐.’신승 공야 대사가 있던 곳.
그 뒤쪽에서 유심히 전황을 살피고 있는 상관중달은 이 전장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이었다.
상관중달은 정도맹의 실질적인 머리.
저자를 최대한 빨리 사로잡아야 이 싸움이 쉽게 끝이 날 것이다.
‘호위 전력이 어느 정도일까.’가만히 상관중달 주변에 있는 호위 병력들의 전력을 가늠해 보던 냉하영의 입가에 차가운 미소가 걸렸다.
저 정도면 노려 볼 만했다.
“주상산 호법님.”냉하영이 빗속에서 주 호법의 이름을 부르자 그녀의 근처에 서 있던 주 호법이 가까이 다가왔다.
“무슨 일이시오?”“저쪽에 상관중달이 있어요.”주 호법은 고개를 들어 냉하영이 가리키는 방향을 확인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오호라? 저 쥐새끼 같은 놈이 저기 있었구만. 내가 가서 놈을 죽이고 오면 되겠소?”“아니, 반드시 사로잡아 주셔야 해요.”죽이는 것보다 살리는 것이 몇 배나 더 어려운 법이다.
특히 지금처럼 쌍방이 뒤얽힌 전장 한복판에서는 살려서 잡아 오는 게 평상시보다 더더욱 힘이 드는 법.
하지만 주상산은 아무런 불평도 토하지 않았다.
심지어 이유도 묻지 않았다.
교주 초류향.
그가 이번 전투가 벌어지기에 앞서 해 놓은 명령은 바로 냉하영의 의견을 전적으로 믿고 따라 주라는 것이었으니까.
‘그럼 가 볼까나.’주상산의 몸이 밤의 빗속을 뚫고 흐릿하게 변해 갔다.
그리고 그가 적 진영에 가까이 도달했을 즈음.
등 뒤에서 어마어마한 폭발음이 울려 퍼졌다.
쿠콰콰쾅-!
주상산이 움찔한 기색으로 뒤를 돌아보고 나서 자신도 모르게 입을 크게 벌렸다.
‘백보신권?’주상산은 무심코 입 밖으로 소리 내어 말할 뻔한 것을 깨닫고 황급하게 기운을 숨겼다.
소림사가 천하에 자랑하는 칠십이종절예(七十二種絶藝, 72가지의 초상승 무공).
그중에서도 가장 상위에 올라 있는 것이 백보신권이다.
그것을 너무도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신승 공야 대사를 바라보던 주상산은 입꼬리를 씰룩거렸다.
‘금강부동신법에 백보신권이라……. 우리 예상보다 더 고수였다 이거지?’하지만 그것뿐이다.
애초에 상대가 좋지 않았다.
그를 상대하는 것은 천마신교 역사상 최강의 고수라 불리던 공손천기의 유일한 제자이자, 최연소 나이로 교주 자리에 올라선 초류향이었으니까.
주상산은 가볍게 몸을 움직여서 사람들의 시선 사이를 교묘하게 파고들었다.
‘지금 내가 할 일은 교주님의 싸움을 구경하는 게 아니다.’착각하면 곤란했다.
지금 그에게는 너무도 분명한 목적이 있지 않은가?
게다가 이렇게 사람들의 이목이 교주님과 신승의 싸움에 집중되어 있을 때가 기회였다.
‘지금이다.’모두가 엄청난 전투에 넋이 빠져 있는 사이에 최소한의 피해로 승부를 봐야 했다.
주상산 역시 암살자 출신이었고, 그의 은신술은 이미 달인의 경지에 이르러 있었다.
콰악-
“이거 반갑구만. 정도맹의 군사.”상관중달은 갑작스럽게 그의 앞에 등장한 키 작은 노인을 보며 숨이 멎을 만큼 놀랐다.
‘대체 언제?’눈앞에 등장한 노인이 혈음마군 주상산이라는 사실을 깨닫자마자 상관중달이 재빨리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절망했다.
그의 곁을 지키던 백팔나한들 역시 깜짝 놀라는 얼굴만 해 보일 뿐.
순간적으로 굳어 버렸던 것이다.
‘이런 멍청이들!’그런 표정을 짓고 있을 게 아니라 주먹질이라도 한번 해 봤어야 옳았다.
상관중달이 씁쓸한 표정을 지을 때.
그의 멱살을 한 손으로 붙잡고 무 뽑듯이 허공으로 들어 올린 주상산의 반대쪽 손에서 붉은빛이 번뜩였다.
촤촤촤-!
방심한 사이 십여 명에 가까운 사람들의 몸이 순식간에 조각조각 나며 절단되었다.
백팔나한을 제외한 나머지 정도맹 측 고수들 사이에서 첫 번째 피해가 나온 것이다.
“아미타불…….”그리고 그제야 정신을 차린 백팔나한이 서둘러 대응하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탁-
“클클, 따라올 테면 한번 따라와 보거라.”“……!”애초에 싸울 생각 따위는 조금도 없었던 주상산이다.
그는 단 한 번의 도약으로 벌써 전장의 삼분지 일을 가로지른 후 정도맹 측의 고수들을 비웃었다.
너무 어이없을 정도로 쉽게 상관중달을 빼앗겨 버린 정도맹 무인들 사이에 순간적으로 동요가 퍼져 나갈 때쯤.
주상산은 순식간에 냉하영의 앞까지 도착했다.
“잡아 왔소.”주상산은 냉하영 앞에 상관중달을 짐짝처럼 내려놓으며 피식 웃어 버렸다.
“이거 너무 쉬워서 어이가 없을 정도군.”이게 바로 강력한 초고수가 있어야 하는 이유였다.
제아무리 화경의 고수인 주상산이라고 하더라도 소림사가 자랑하는 백팔나한진에 갇히게 된다면 꼼짝도 못 하고 죽을 수밖에 없었다.
하나 이렇게 순간적인 기동력 면에서는 아무래도 강력한 고수 한 명이 절대적으로 유리한 법이다.
“우리 처음 보네요? 상관중달 님. 이야기는 많이 들었어요.”냉하영이 미소 지으며 말하자 상관중달은 쓴웃음을 지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사실 두뇌 싸움이나 심리적인 대결에서는 둘 중 누가 더 뛰어나다고 말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냉하영은 상황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만드는 법을 알고 있었고, 그것을 위해 움직이는 데 조금도 주저함이 없었다.
그게 설령 불명예스러운 일이더라도 그녀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다.
“처음 얼굴을 보는데 미안한 말이지만 그냥 죽여 주면 고맙겠소.”상관중달의 부탁에 냉하영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리고 정면에서 이제 막 서로를 향해 달려들기 직전인 초류향과 신승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냥 죽이기엔 그쪽의 목숨값은 굉장히 비싼 편이라서요. 철저하게 뜯어먹을 생각이에요.”상관중달은 분명 냉무기의 죽음에 어떤 식으로든 관련이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절대로 쉽게 죽여 줄 마음이 없었다.
그때 냉하영 곁으로 돌아와 전장을 살피던 주상산이 크게 눈을 떴다.
마침 신승이 칠십이종절예 중의 하나인 천수여래장을 펼치고 있었던 것이다.
“저, 저건…….”그간 소림사 내에서도 익힌 자가 드물다고 알려진 무공이다.
한데 신승의 손에서 그것이 도도하고 장엄하게 풀어져 나오고 있었다.
냉하영 역시 감탄한 얼굴로 바라볼 때.
허공에 떠 있던 초류향의 발끝에 도끼날처럼 예리하면서도 파괴적인 붉은 기운이 맺혔다.
그에게도 천년 마교의 자랑.
수라환경이 있었던 것이다
‘화룡수라각.’발끝에 맺혀 있던 붉은 기운이 새빨간 적룡으로 변해 아래에서 덮쳐오는 천수여래장.
즉, 부처님의 손길을 사납게 찢어발기기 시작했다.
쿠콰콰콱-!
어마어마하게 유형화된 강기들이 허공에서 충돌하고 사그라들었다.
한데 미묘하게 공야 대사가 밀리기 시작했다.
‘아미타불…….’공야 대사는 속으로 불호를 외며 신중한 얼굴로 손을 거두었다.
그러자 붉은 용이 곧장 공야 대사를 세로로 쪼개기 위해 달려들었다.
둘의 거리가 순간적으로 가까워지고, 동시에 초류향은 무언가 불편한 기운을 느꼈다.
‘뭐지?’무언가 콕 집어서 말할 수는 없지만 대단히 꺼림칙한 기분이었다.
그 순간 공야 대사가 한 팔밖에 남지 않은 손을 조용히 단전 앞에 합장하듯이 모았다.
언뜻 보기에는 초류향의 공격을 막을 생각이 전혀 없어 보이는 움직임.
하지만 초류향의 본능은 지금 분명히 강하게 경고하고 있었다.
‘무언가 준비하고 있다?’거기까지 생각하며 바짝 긴장한 초류향은 몸을 뒤로 빼기 위해 온몸으로 기운을 돌렸다.
그리고 그 순간.
발밑에서 폭발적으로 터져 나오는 기운에 초류향은 깜짝 놀란 얼굴로 황급하게 몸을 뒤집었다.
공야 대사의 몸에서 순간 연녹색 기운이 뿜어져 나오더니 팔을 뻗어 초류향의 발목을 잡아 으스러뜨리려 했던 것이다.
‘위험했다.’맹수와 같은 움직임.
더불어 그 안에 숨겨져 있는 현묘함에 초류향은 간담을 쓸어내렸다.
잠시 놀란 얼굴로 뒤로 훌쩍 물러서서 상황 파악을 완료한 초류향의 얼굴에 황당함이 떠올랐다.
“……십단금?”“아미타불…….”저것은 분명 무당파의 무공이었다.
그것도 무당파에서도 아무나 배울 수 없다는 최상위의 금나수(擒拿手, 손으로 상대방의 관절을 꺾거나 부숴서 제압하는 무예).
소림사의 고수가 어떻게 무당파의 최상승 무공을 익히고 있다는 말인가?
“……황당하군.”초류향이 어이없는 얼굴을 하고 있을 때.
공야 대사는 하나 남은 손의 끝을 짐승의 발톱처럼 구부렸다.
그러자 조금 전까지 연녹색이 가득하던 그의 전신에 다시금 찬란한 황금빛이 떠올랐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초류향은 자신도 모르게 헛웃음을 흘려버렸다.
“십단금에 이어서 이번에는 용조수라 이건가…….”신승 공야 대사.
그의 몸에는 과연 얼마나 많은 종류의 기예가 집약되어 있는 것일까?
소림사의 것만이 아니라 무당파의 무학마저 익히고 있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방금 전 조금만 늦었더라면 발목이 꺾여 버릴 뻔했다.’무당파의 금나수는 천하제일이라는 말이 있다.
그것을 대비하지 않은 상태에서 힘으로 때려 부수기에는 어려운 점이 많았다.
조금 전에 물러선 것은 정말 현명한 판단인 것이다.
그런데 이번에 들고 나온 것은 소림의 자랑인 조법(爪法, 손가락 끝을 세워서 할퀴거나 살점을 쥐어뜯는 무공).
용조수였다.
‘여태껏 보여 준 무공들 중 하나만 익히는 데에도 평생이 걸린다고 하던데…….’공야 대사는 소문을 듣고 예상했던 것보다 더더욱 대단한 고수였다.
여러 가지 강력한 무공들을 한 몸에 다 익히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초류향은 차분하게 웃었다.
‘신승. 당신은 졌다.’여러 가지를 잡다하게 익히는 것보다 한 가지만 순도 있게 파고든 것이 더욱 나은 법이다.
초류향은 가볍게 어깨를 돌리며 공야 대사에게 다가갔다.
방금 전의 일격은 신승 공야 대사가 초류향을 이길 수 있었던 단 한 번의 기회였다.
뚜벅뚜벅-
공야 대사는 여유로운 얼굴로 다가오는 초류향의 모습을 바라보며 낮게 침음을 삼켰다.
‘비장의 한 수였다.’사실 십단금은 그가 가지고 있던 최후의 무기였다.
세상에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십단금은 본래 소림사의 무공이었다.
무당파의 장삼풍 진인이라는 절대 고수가 소림사의 십단금을 한 번 보고 그것을 그대로 가져가서 더욱더 발전시켜 사용했기에 세상에는 무당파의 무공처럼 알려져 있었을 뿐이다.
‘한데 그것마저도 실패했다는 말인가…….’과거 눈앞에서 뻔히 무공을 도둑맞고도 내색하지 못했던 소림사였다.
오랜 기간 그것을 갈고 닦아서 무당파의 그것만큼 강력하게 만들었지만 세상에는 꺼내어 보일 수 없었다.
세상은 이미 십단금을 무당파의 무공으로 알고 있었고, 소림사에서 그것을 사용한다면 오히려 무공 도둑으로 몰릴 판이었으니까.
한데 공야 대사는 그 점을 감수하면서까지 최적의 기회를 노려 십단금을 사용했다.
‘업보로다…….’비장의 한 수도 실패해 버렸으니……. 겉으로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공야 대사는 지금 상당히 참담한 기분이었다.
그때 초류향의 몸에서 청강빛의 기운이 이글거리며 타올랐다.
그것은 조금 전처럼 파괴적이지도 않고, 악마적인 느낌도 없었지만 여태껏 보였던 그 무엇보다도 단단하고 치밀해 보이는 기운이었다.
‘내 몸 안의 삼라만상을 제대로 다룰 수 있다면 이 세상에 다루지 못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월인도법.
그것의 힘은 수라환경 못지않다.
그 사실을 이제 증명해 보일 참이다.
초류향은 양손을 가슴 어림에 모았다가 천천히 떼 내었다.
카르륵-
청강빛 강기의 사슬이 그곳에 맺히며 초류향의 손끝에 감겨들어 갔다.
그 상태로 초류향은 손을 하늘 위로 들어 올렸다.
그러자 강기의 사슬이 하늘을 향해 일직선으로 쭉쭉 뻗어 나갔다.
‘유형화된 강기인가…….’저렇게 강기가 확실하게 어떤 형상을 갖추고 있다면 그것은 일반적인 강기를 활용한 무공으로는 막을 수가 없다.
막으려면 그에 상응할 만큼 강기를 집중해서 사용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때문에 공야 대사가 잔뜩 긴장한 얼굴로 지켜보고 있을 때.
초류향은 희미하게 웃으며 손을 그대로 내려쳤다.
후웅-
그러자 하늘로 쭉쭉 뻗어 간 얄팍한 강기의 사슬이 순간적으로 송아지 몸통만큼 굵어지며 공야 대사의 정수리를 찍어 눌러 왔다.
지켜보고 있던 공야 대사의 동공이 크게 확장되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