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Shura RAW novel - Chapter (285)
제285화 고백
정도맹과 천마신교의 전쟁.
그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그리고 그 결과.
하나의 세계가 완벽하게 바뀌어 가고 있었다.
마도천하.
세상 사람들은 새로운 시대를 그렇게 불렀다.
남궁옥빈은 어두운 얼굴로 가문에 돌아왔다.
그리고 그의 아버지이자 남궁세가의 가주 남궁세옥을 만났다.
“무사해서 다행이구나. 걱정했다.”남궁옥빈은 씁쓸한 표정으로 그의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입을 열었다.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고 들었습니다.”“그래. 그렇게 되었다.”남궁옥빈의 할아버지.
창천검군 남궁윤호는 이번 정마대전에서 목숨을 잃었다.
벽력마군 우규호.
그의 앞을 막다가 죽은 것이다.
잠시 복잡한 얼굴로 서 있던 남궁옥빈이 다시금 입을 열었다.
“……그럼 정도맹은 정말로 무너진 것이 맞습니까?”남궁세옥은 그의 아들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사실이다.”“하면 이제 우리 가문은 어떻게 되는 건지 알 수 있겠습니까?”“……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천하는 지금 엄청난 변화의 바람을 정면으로 맞고 있었다.
천마신교의 압도적인 힘에 저항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했고, 이제는 그들이 정할 새로운 규칙을 숨죽인 채 기다려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남궁옥빈은 답답한 얼굴로 창밖을 내다보았다.
‘초류향…….’그와 함께했던 유기산법무예학당에서의 기억이 아직도 선명했다.
말수가 적고, 서재에 박혀 책 읽기를 좋아하던 작은 아이가 이제는 강호의 천하제일인이 되었지 않은가?
그 생각을 하면 참으로 복잡미묘한 감정이 들었다.
“아직 기회는 있다.”“……?”남궁옥빈은 아버지가 불쑥 내뱉은 말에 의아한 얼굴을 했다.
남궁세옥이 말했다.
“검황. 그는 아직 죽지 않고 살아 있다.”“검황…….”남궁옥빈은 그의 이름을 입 안으로 되뇌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그는 정말로 정파의 유일한 희망이었다.
‘그가 과연 무엇을 보여 줄까?’삼황 중에서 현재 유일하게 살아남은 사람이 바로 검황이었다.
새로운 시대를 열어 가는 교주 초류향을 그가 저지할 수 있을까?
남궁옥빈은 불안한 마음으로 유달리 맑은 그 날의 하늘을 바라보았다.
* * *
초류향은 정신없이 바빴다.
정도맹이 무너지면서 그와 연관된 모든 업무들이 하루아침에 망가져 버렸던 것이다.
그것들을 전부 새롭게 체계를 잡아서 만들려고 하니 힘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보람은 있다.’상권을 비롯해서 유통에 관한 모든 업무들을 단일화하는 작업.
앞으로의 일까지 고려하며 판을 짜야 할 필요가 있다 보니 필요 이상으로 계산이 복잡했다.
그래도 다행인 건 변수라고 할 수 있는 무림 문파들이 없어져 하나의 뜻을 가지고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점이었다.
물론 이것도 전박과 냉하영의 도움이 없었다면 매 단계마다 결단을 내리는 데에 무척이나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새로운 세상을 만든다.’엄청난 양의 금전이 전국에 혈관을 만들고 그 혈관 사이를 수많은 사람들이 바쁘게 움직인다.
하나의 흐름이 생긴 것이다.
그렇게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법칙들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와중에 초류향은 의외의 든든한 지원군을 얻게 되었다.
“도착하셨습니까?”“예. 교주님.”정중한 태도.
초류향은 자신에게 공손한 태도를 취하는 주호유를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주호유가 입을 열었다.
“천마신교에 정식으로 입교하고 싶습니다, 교주님.”“……예?”“천마신교의 교도가 되고 싶습니다.”어째서?
조금 뜬금없지 않은가?
초류향이 순간 혼란스러운 얼굴을 할 때.
주호유가 입을 열었다.
“오래전부터 무림에 관심이 있었는데 이번 기회에 아예 정식으로 무림 문파에 몸을 담고 싶습니다. 부디 받아 주시길 부탁드리겠습니다.”하나 주호유는 말을 하는 내내 초류향의 옆에 있는 바구니.
정확하게는 바구니 안에서 곤히 자고 있는 막수를 힐끔거리고 있었다.
“……본 교에 정식으로 입교하고 싶으시다구요?”“예? 옙! 교주님.”주호유.
그가 공손하게 이야기하는 것을 보며 초류향은 헛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꾸욱 참고 입을 열었다.
“저야 주 학사님께서 저와 함께해 주신다면 그것보다 좋은 일은 없겠습니다만…… 이렇게 갑작스럽게 마음을 정하게 되신 이유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그것은…….”주호유는 말끝을 흐리면서도 막수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무료한 얼굴로 자고 있는 막수의 모습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것이다.
가만히 그 시선을 따라간 초류향이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말했다.
“말씀하시는 데 막수가 신경 쓰이시는 겁니까? 장소를 옮길까요?”“아, 아니요. 저는 이 장소가 매우 좋습니다, 지금 이대로가 딱!”초류향이 그의 태도에 어리둥절한 얼굴을 해 보였다.
그때 문이 열리고 선우초린이 들어섰다.
그녀는 부상을 당해 절뚝거리는 걸음걸이였지만 옆에서 부축을 하려는 노진녕의 호의를 한사코 사양하며 혼자서 걸어왔다.
“이화궁주 선우초린. 교주님을 뵙습니다.”초류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선우초린보다 더욱 부상이 심각해 보이는 노진녕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한데 노진녕 호위 무사님은 어쩌다가 그렇게 다치신 겁니까?”“영광의 상처입니다, 교주님. 헤헤.”노진녕은 선우초린을 바라보며 연신 헤픈 웃음을 날렸고, 선우초린은 그런 노진녕을 바라보며 혐오스럽다는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너무나도 상반된 둘의 눈빛에 쓴웃음을 짓던 초류향은 저 옆에서 서류 더미에 파묻혀 있는 전박을 보며 입을 열었다.
“주호유 님의 입교를 위한 절차를 밟아 주시겠습니까, 전 호법님?”“여부가 있겠습니까?”전박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답지 않게 만면에 웃음을 그리며 주호유를 맞이해 갔다.
“이리 오시게나.”“예. 전 호법님.”주호유가 어떤 능력을 지녔는지 잘 알고 있는 전박이었다.
그는 든든한 지원군이 될 주호유의 입교를 환영했고, 내심 자신의 뒤를 이을 재목이라고까지 생각하고 있었다.
그때 초류향이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그가 찾고 있던 사람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씁쓸하게 웃었다.
“소군주님을 찾고 계십니까?”선우초린이 그 초조한 기색을 눈치채고 곧장 물어오자 초류향은 잠시 멈칫했다가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녀는 어디 있습니까? 다친 곳은 없습니까?”“다친 곳은 없으십니다. 저희와 함께 왔지만 먼저 숙소에 가서 쉬고 계십니다.”“그렇습니까?”다행이었다.
적어도 무사히 돌아왔다는 말 아닌가?
그렇게 안도하고 다시 일을 하려는데 도무지 손에 일이 잡히지 않았다.
‘왜?’초류향은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다가 곧 결심한 듯 주변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잠시 어디 좀 다녀와야겠습니다.”전박을 비롯한 모두의 눈빛에 의미심장함이 떠올랐다.
그들도 알았던 것이다.
지금 초류향이 어디를 가려고 하는지.
“이곳의 일은 걱정 말고 다녀오시지요, 교주님.”“……그럼 전 호법님만 믿고 다녀오겠습니다.”운휘도 이번만큼은 초류향의 뒤를 쫓아가지 않았다.
그는 자리에 멈춰 서서 눈치 없이 초류향의 뒤를 쫓아가려는 노진녕의 뒷덜미를 강하게 잡아챘다.
“응? 왜?”운휘가 잠시 진지한 얼굴로 노진녕을 바라보았다.
정말 모르겠냐는 눈빛.
하지만 지금 사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리가 없는 노진녕은 진심으로 궁금하다는 듯이 물었다.
“뭔데 그래? 우리 교주님한테 무슨 일이 있으신가?”“……우리가 낄 수 없는 일이다.”“그러니까 그게 뭔데? 우리한테까지 숨겨야 하는 일이야?”운휘한테 되묻던 노진녕은 옆에 있던 선우초린이 한심하다는 눈초리를 보내자 우물쭈물 말을 흐리더니 조용히 구석에 가서 쪼그려 앉았다.
그녀 앞에서는 왠지 스스로가 너무 초라해졌던 것이다.
그렇게 그들은 초류향을 혼자 보내 주었다.
멀리 사라져 가는 초류향의 뒷모습을 보며 선우초린은 복잡한 얼굴을 해 보였다.
‘공손아리…….’초류향은 회의실을 뒤로하고 움직였다.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미칠 듯이 달려가는 지금 이 순간.
머릿속을 가득 메우고 있던 여러 가지 안건들은 저 멀리 미뤄 두고, 단 한 사람만을 생각했다.
아니, 그러고 싶지 않아도 저절로 그렇게 되었다.
그녀가 가까이 있다고 생각하니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진정하자.’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이며 빠르게 도착한 귀빈실에는 공손아리가 차를 마시고 있었다.
그녀는 갑자기 나타난 초류향을 놀란 얼굴로 바라보았다.
“교주님……?”“오랜만입니다.”초류향은 질풍처럼 달려온 기색을 급급하게 숨기며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린과 령은 공손아리에게 다과를 가져다 준 뒤 조용히 뒤로 빠졌다.
그녀들도 느낀 것이다.
지금 이 순간은 그들이 개입해선 안 된다는 것을.
“건강하셨어요?”공손아리가 묻자 초류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서둘러 입을 열었다.
“건강하셨습니까?”같은 질문.
공손아리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단순히 서로의 안부를 확인했을 뿐이지만 초류향은 자신도 모르게 긴장되는 것을 느꼈다.
‘이번에는 내가 먼저…….’초류향은 공손아리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과거에 공손아리가 자신을 위해 용기를 내서 먼저 말을 걸었던 때를 떠올린 것이다.
‘지금은 내가 솔직해야 할 때다.’그동안 그는 너무도 솔직하지 못했다.
진심을 억지로 숨기고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면서 공손아리를 멀리하고 차갑게 대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으로 바보 같은 일이었다.
“보고 싶었습니다.”“…….”보고 싶었다.
그랬다.
지금 이 말이, 이 단어가 초류향의 가장 솔직한 마음이었다.
한데 너무도 갑작스러운 고백이었던 걸까?
공손아리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초류향답지 않은 직설적인 표현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존대를 한 게 이상했나?’본래 초류향은 공손아리에게는 편하게 하대를 했다.
한데 진심을 말하려고 하니 그게 쉽지 않았다.
그래서 존대를 했는데 그게 공손아리에게는 낯설게 들린 걸까?
공손아리의 반응을 엉뚱하게 착각한 초류향은 잠시 갈팡질팡했으나, 이내 가볍게 심호흡을 한 뒤 그녀에게 한 걸음 다가가며 입을 열었다.
“항상 건강한지, 아프지는 않을지 걱정했습니다.”공손아리가 작게 입을 벌렸다가 다시 다물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정신이 없었던 것이다.
문득 초류향이 공손아리의 바로 앞까지 다가와 그녀의 손을 잡았다.
따스한 온기가 손끝으로 전해져 왔다.
긴장했는지 초류향의 손은 가볍게 떨리고 있었다.
“돌아와 줘서 고맙습니다.”“아빠에 대한 도리로 저의 안위를 걱정하시는 것이라면, 그런 거라면 이렇게 사람 헷갈리게 하시면 안 돼요…… 교주님.”초류향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진지하게 입을 열었다.
“이것은 당신이 스승님의 혈육이라 내뱉는 말이 아닙니다.”초류향은 공손아리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공손아리 역시 초류향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둘의 시선이 그렇게 한참 동안 허공에서 엉켜들어 갔다.
그러던 어느 순간 초류향이 입가에 천천히 미소를 그렸다.
“더 이상은 돌려 말하지 않겠습니다. 그렇게 망설이다 당신을 놓칠 뻔했으니까요.”초류향은 공손아리의 손을 마주 잡은 그 상태로 입을 열었다.
“당신이 앞으로도 계속 나와 함께해 주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습니다.”“…….”“나와 혼인해 주시겠습니까, 공손아리 님?”공손아리의 얼굴이 순간 울 것 같은 표정이 되었다.
숨어서 지켜보고 있던 린과 령 역시 입 밖으로 새어 나오려는 환성을 겨우겨우 참고 있었다.
‘우리가 지금 이 엄청난 순간을 이렇게 보고 있어도 되는 거야? 응?’린과 령이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소리 없는 비명을 질러대고 있을 때.
공손아리가 초류향의 손을 가볍게 풀어내며 입을 열었다.
“교주님은 내가 좋아요?”공손아리.
그녀에게 가장 중요한 사실은 이거였다.
그리고 초류향은 그녀의 물음에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좋았다.
표현하지 않았을 때도 좋았지만 이렇게 말로 표현하게 되자 그녀가 더욱 좋아졌다.
진즉에 이렇게 하지 못한 것이 후회스러울 정도로…….
“순서가 조금 반대가 된 듯하지만…… 나는 당신이 무척 좋습니다.”“…….”공손아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초류향의 눈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녀의 바다와 같이 깊은 심연의 눈, 진안은 이 세상의 모든 진실을 바라볼 수 있는 눈이었다.
‘진심이야.’지금 이 순간.
초류향이 그녀에게 보내고 있는 눈빛은 진심이었다.
그랬기에 공손아리는 초류향을 바라보며 울 듯 말 듯 아슬아슬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도…… 나도 교주님이 좋아요.”공손아리는 결국 그 말을 하고 울음을 터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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