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Shura RAW novel - Chapter (286)
제286화 행방
초류향은 공손아리와 헤어져서 집무실로 돌아왔지만 곧장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채 머뭇거렸다.
어느새 천마신교의 팔대 호법들이 전부 집무실에 모여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초류향이 들어오자마자 모두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예의를 갖췄다.
“……다들 여기서 뭐 하시는 겁니까?”초류향이 어정쩡하게 입구에 멈춰 선 채 묻자 우 호법이 음흉하게 웃으며 물었다.
“크흐흐, 모두가 모여서 좋은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교주님.”“……?”좋은 소식?
그게 뭘까?
잠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은 초류향이었지만 곧 짐작 가는 게 있어서 의심스러운 시선으로 호법들을 둘러보았다.
이제 보니 모두가 우 호법과 비슷한 표정을 한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떻게 알았을까?’초류향은 시선을 돌리다가 문득 전박과 눈이 마주쳤다.
그러자 그가 슬그머니 고개를 옆으로 돌리는 것이 아닌가?
그제야 지금 이 사태의 범인을 알아챈 초류향은 본인도 모르게 입가에 바람 빠진 웃음을 그렸다.
“……전 호법님은 눈치도 참 빠르십니다.”아마 전박은 공손아리를 만나러 간다고 했을 때부터 미리 결과를 예상했던 모양이다.
그랬기에 이곳에 모두를 불러놓고 기다린 것일 터.
“오오! 그럼 정말로 소군주님과 혼인을 하시는 겁니까?”“예.”초류향이 긍정하자 우 호법이 두 팔을 번쩍 들어 올리며 큰 소리로 말했다.
“푸하하핫! 경축 드립니다, 교주님! 이거야말로 경사 중의 경사가 아닙니까? 우하하하!”우 호법이 진정으로 기뻐할 때.
그의 곁에 있던 주 호법 역시 만면에 웃음을 그리며 입을 열었다.
“험험, 그럼 서둘러 날짜를 잡아야겠군요. 본 교에 계신 아버님께도 연락을 해 놓겠습니다.”“예.”사실 초류향은 직접 부모님께 이 소식을 전해드리고 싶었다.
하나 지금 사정이 아무래도 여의치가 않았다.
이곳을 쉽게 비울 수가 없는 것이다.
‘아무리 그렇다지만…….’마음이 불편했다.
일생을 좌우할 중요한 결정을 이번에도 또 혼자서 하게 되었음을 알게 되면 많이 서운해하실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때.
“제가 직접 본 교에 다녀오겠습니다.”그 마음을 알았는지 선뜻 나서는 주 호법이 초류향은 너무 고마웠다.
“부탁드리겠습니다, 주 호법님.”“걱정 마십시오, 교주님. 제가 두 분을 이곳까지 안전하게 모셔 오도록 하겠습니다.”주 호법이 그렇게 말하자 맞은편에 앉아 있던 전박이 불쑥 입을 열었다.
“그럼 전 주 호법이 도착하기 전까지 본 교의 예법에 따라 교주님이 불편 없이 혼례를 치를 수 있도록 사전에 모든 준비를 끝내 놓겠습니다.”초류향은 그런 전박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미소 지었다.
“그렇게 말씀하시지만 사실은 벌써부터 준비하고 계신 것 아닙니까?”초류향의 농담에 전박이 희미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안 그래도 오늘 교주님을 통해 본 교에 새로 입교한 뛰어난 인재를 바로 써먹을 일이 생겨서 다행이라 여기고 있습니다.”“……새로 입교한 인재라면 설마?”오늘 초류향을 통해서 입교한 사람은 딱 한 명이다.
주호유.
초류향이 잠시 멍청한 얼굴을 해 보이자 전박이 의미심장한 얼굴로 웃었다.
“예. 아마 지금쯤 그 녀석은 교주님의 혼인식 준비로 발 빠르게 돌아다니고 있을 겝니다.”“……주호유 님께서 본 교에 입교하시자마자 고생하시는군요.”그에게도 차후에 고맙다는 인사를 해야겠다고 초류향이 마음먹고 있을 때.
그때까지 구석에서 조용하게 지켜보고만 있던 엄승도가 천천히 다가와 초류향에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교주님.”“예, 말씀하세요.”“곧…… 흑월회 군사와 약속했던 상관중달을 만날 시간입니다.”초류향은 그제야 퍼뜩 정신을 차리고 엄승도를 바라보았다.
너무 기쁘고 좋아서, 반드시 해야 할 중요한 일정을 잊을 뻔했다.
“그러고 보니 그를 만날 시간이군요.”“예. 아마 흑월회의 군사가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그렇겠군요.”서둘러야 했다.
초류향은 고개를 끄덕인 후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럼 저는 잠시 흑월회에 다녀오겠습니다.”“예. 교주님.”팔대 호법들이 저마다 기쁜 얼굴로 해산하는 것을 보며 초류향은 움직였다.
‘상관중달…….’상관중달은 정마대전 때 인질로 잡힌 후 흑월회에서 그 신병을 책임지고 있었다.
정마대전이 끝난 지금까지도 그를 죽이지 않은 이유.
그것은 크게 두 가지 때문이었다.
‘첫 번째 이유는 정도맹의 남은 잔당들에 관해 알아내기 위해서, 두 번째 이유는…….’가장 중요한 것.
바로 백무량의 행방을 찾는 것이었다.
한데 아직도 거기에 대해 별다른 연락이 없는 것을 보면 흑월회에서도 알아내지 못한 모양이었다.
분명 상관중달에게 상당한 고문을 했을 텐데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다는 것은 제법 놀라운 일.
‘그는 분명 무공을 배우지 않았다고 했다.’그렇다면 단련되지 않은 맨몸뚱이로 흑월회의 엄청난 고문들을 견뎌 냈다는 말이 된다.
‘제법 강단 있는 자였던가.’초류향이 이런저런 생각들을 하며 마차가 있는 곳에 도착하니 그곳에는 이미 노진녕과 운휘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소식 들었습니다, 교주님. 축하드립니다. 헤헤.”노진녕이 헤픈 웃음을 그리며 말하자 초류향은 희미하게 미소 지어 보였다.
“감사합니다. 한데 몸은 괜찮으십니까?”막수에게 두들겨 맞았다고 들었는데 벌써 괜찮아진 건가?
초류향이 의아한 얼굴을 할 때.
노진녕이 자신의 팔뚝을 들어 알통을 보이며 웃었다.
“히히. 이 정도면 교주님을 호위하는 데 전혀 지장이 없습니다.”노진녕이 그렇게 스스로의 건재함을 과시할 때.
옆에 있던 운휘가 조용한 태도로 고개를 숙인 후 입을 열었다.
“교주님께서 뜻하신 바가 이루어져서 정말 다행입니다.”운휘의 말이 초류향의 가슴에 굉장히 진한 여운을 남겼다.
그가 진심으로 자신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예. 고맙습니다, 운휘 님.”운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마차 입구를 열었다.
초류향이 올라타자 노진녕은 자연스럽게 그 뒤를 따랐고, 운휘 역시 그림자에 몸을 숨긴 채 그 뒤를 따랐다.
그렇게 그들을 태운 사두마차가 빠르게 이동했다.
두두두두-
그들이 타고 있는 마차는 과거 정도맹의 본거지였지만 현재는 천마신교의 중원 거점이 되어 있는 파운성을 순식간에 벗어났다.
그리고 불과 일다경(대략 15분 정도) 만에 흑월회의 임시 거점에 도착했다.
파운성과 흑월회의 임시 거처가 그다지 멀지 않았던 덕분이다.
탁-
흑월회가 점거하고 있는 장원에 도착한 초류향은 마차에서 내리다가 입가에 쓴웃음을 그렸다.
자신을 맞으러 나온 냉하영의 초췌한 얼굴을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더 일이 안 풀리는 듯했기 때문이다.
“굉장히 피곤해 보이는군.”“말도 마……. 아오, 그 영감탱이 아주 쇠심줄이야.”냉하영은 어깨를 주물럭거리며 짜증스러운 얼굴을 해 보였다.
흑월회는 본래부터 납치, 고문, 협박에는 일가견이 있는 집단이다.
그들의 뿌리 자체가 본래 그런 쪽이기 때문이다.
한데 그런 그들도 상관중달의 무거운 입은 열 수가 없었다.
이것은 분명 대단히 자존심이 상하는 일일 터.
오죽하면 초류향에게 도움을 요청했겠는가?
평소 냉하영의 높은 자존심을 고려해 볼 때.
이번 일은 대단히 예외적인 경우였다.
‘육체적인 고문은 견뎠겠지만…….’정신적인 고문도 과연 견딜 수 있을까?
초류향은 그런 생각을 하며 냉하영의 안내를 받아 어떤 거대한 철문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얼굴을 찡그렸다.
“……엄청나군.”처참한 몰골이었다.
손톱과 발톱은 이미 다 뽑혀 나가 없었고, 이빨도 없었다.
게다가 드러나 있는 전신에는 상처가 없는 곳이 없었다.
그렇게 삐쩍 마른 몸에 반쯤 송장이 되어 있는 노인.
그가 바로 상관중달이었다.
‘이렇게까지 해서 숨겨야 할 만한 비밀이었던가…….’상관중달은 얼마 전까지 천하를 좌지우지하던 최고의 지략가가 아닌가?
그가 이런 몰골이 되면서까지 지키려는 비밀.
검황의 신변에 관한 정보는 지금 시점에서 그만큼 대단히 중요했다.
“그런데 정말로 알아낼 수 있겠어?”냉하영이 반쯤 불신하는 얼굴로 묻자 초류향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도…… 가능할 거다.”“반드시 알아내야 해. 다른 놈들은 버린다 쳐도 백무량에 대해서만큼은 반드시!”지금 냉하영은 초류향 모르게 부상당한 백무량을 암습할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한데 상관중달이 끝까지 고문을 견뎌 내는 바람에 시간이 지체되었고, 결국 초류향이 움직였다.
‘그래도 어떻게든 해야 해.’가급적이면 정면 대결은 피해야 했다.
냉하영은 백무량이 있는 위치를 알게 되면 무슨 짓을 해서든지 백무량을 죽여 없애 버릴 생각이었다.
그와 초류향이 정면으로 맞붙게 되었을 때의 위험부담이 너무나 컸던 것이다.
‘한데 그게 가능할까?’사실 초류향은 냉하영의 그런 꿍꿍이를 짐작했다.
그럼에도 그녀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은 암습에 대해서 대단히 회의적이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치명적인 부상을 당했다 하더라도 호랑이는 호랑이다.’초류향은 백무량과 직접 붙어 보았기 때문에 그 정도의 고수가 고작 암습 따위에 당할 것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가 없었다.
초류향이 백무량의 행방을 찾고 싶은 이유는 그와 단둘이 만나 직접 붙어서 결말을 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일단 상관중달에게 직접 물어보지.”초류향은 상관중달에게 다가갔다.
마른 숨을 겨우겨우 쉬고 있는 그에게 다가가 그와 눈을 마주쳤다.
풀려 있는 동공.
하나 그 밑바탕에는 강철같이 견고하고 단단한 집념이 깊게 깔려 있었다.
‘굽히지 않겠다는 건가?’뭐, 그것도 상관없었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든, 어떤 심정으로 입을 다물고 있든,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으니까.
‘심연술.’초류향은 심연술을 발동했다.
그의 눈가에 붉은 기운이 맴돌다가 서서히 주변으로 뻗어 나갔다.
그리고 그것은 차츰 상관중달의 전신을 휘감기 시작했다.
얼마 후, 상관중달의 동공을 통해 초류향의 붉은 눈이 스며들어 갔다.
부르르-
상관중달의 전신이 가늘게 떨렸다.
육체적인 고통은 초인적인 의지로 어찌어찌 참아 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나 이런 식으로 영혼에 직접 간섭하는 심연술에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초류향은 그렇게 차츰, 굳게 닫혀 있던 상관중달의 의지를 허물어 가기 시작했다.
* * *
“……항상 그렇지만 상관중달, 그 친구는 의욕이 과해.”태극검황 백무량.
얼마 만에 정신을 차린 것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는 눈을 뜨자마자 자신을 애타게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을 보며 힘없이 웃어 보였다.
그리고 그들이 기껏 짜 놓았다는 계획을 듣자 그나마 겨우겨우 회복됐던 기력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정말…… 쓸데없는 계획이다.”“아미타불…… 모두가 검황 어르신의 복귀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습니다.”소림사의 제자이자, 공야 대사가 직접 기른 비밀 병기.
무호 대사는 슬픈 눈으로 검황 백무량을 바라보았다.
이제 이 모든 상황을 역전시켜 줄 만한 사람은 침상에 저렇게 무기력하게 누워 있는 외팔이 노인.
검황뿐이었던 것이다.
“……참으로 바보 같은 놈들이다……. 너희들은 정말 지금 이 상황이 나 하나로 어찌 될 거라 여기는 겐가?”무호 대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군사의 말에 따르면, 교주만 죽으면 모든 것이 예전으로 돌아갈 것이라 했습니다. 천마신교가 십만대산으로 물러간다면 분명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그렇게 말한 건 상관중달이겠지?”“……그렇습니다, 검황 어르신.”“크흐흐, 그놈은…… 참으로 속도 편한 놈이다.”검황은 툴툴 웃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상관중달이 천마신교에 잡혀갔다고 했나?”“예…….”“하면 죽지도 못했겠구먼.”백무량은 상관중달의 얼굴을 떠올리다 고개를 저었다.
그놈이 어떤 생각으로 이런 무모한 계획을 짰는지 이해했다.
상관중달은 어떻게든 희망을 발견하고 싶었을 거다.
최악의,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회생의 길을 마련하는 것이 상관중달의 역할이었고, 그랬기에 이런 터무니없는 계획을 짰을 터.
하나 백무량은 이 계획에 대단히 회의적이었다.
‘어차피 이런 계획을 짤 것이었다면 나 혼자만 있어도 충분했거늘…….’그러고 보니 이상했다.
공야 대사도 그러하고 상관중달도 분명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백무량을 제외하고 살아남은 자들은 천마신교와의 싸움에서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그런데도 죽을 자와 살아남을 자를 분간해 놓았다? 어째서?’거기까지 생각하던 백무량은 눈을 들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속으로 크게 감탄했다.
‘미래를 생각하는 거였나…….’살아남은 삼십 명의 고수들은 모두 대단히 젊었다.
전부 다 정파에서도 가장 젊고 유능한 고수들뿐.
공야 대사와 상관중달은 처음부터 어떻게든 이들을 살려서 정파의 명맥을 이어 갈 생각이었던 것이다.
‘나쁜 친구들이로군.’공야 대사와 상관중달이 짜 놓은 미래를 위한 안배.
그것은 이제 백무량에게 강제로 떠넘겨졌다.
백무량은 한숨을 내쉬며 몸을 회복하기 위해 애썼다.
앞으로의 일이야 어찌 되었건 일단 지금은 최상의 몸 상태를 만들어 놓는 게 급선무였다.
최악의 경우 혼자서 천마신교를 상대해야 했으니까.
눈을 감은 뒤 백무량은 전력을 다해 내력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