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Shura RAW novel - Chapter (291)
제291화 막수의 선물
초류향은 회의실로 향하던 도중에 기다리고 있던 부모님이 드디어 도착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서둘러 그곳으로 가자 초류향의 아버지 초무령과 어머니 유송령이 반가운 얼굴로 마차에서 내리고 있었다.
“아버지…….”초류향이 가까이 다가가 입을 열자 초무령이 아무 말도 없이 그를 두 팔로 껴안았다.
그 품에서 초류향은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아버지…… 저, 혼인을 하게 되었습니다.”“그래. 얘기는 오는 동안 주 호법님에게 들었다. 공손천기 교주님의 따님이라고?”“예. 공손아리 님입니다.”마차 옆에 서 있던 주 호법은 가볍게 목례를 취한 후 자리를 비켜 주었다.
초류향은 주 호법에게 고맙다는 전음을 날린 후 아버지 품에서 빠져나와 곧장 어머니를 껴안았다.
“죄송해요. 미리 의논드리지 못해서…….”“아니다. 네가 고른 사람이라면 우리도 믿는단다. 그런데 그분은 어디 계시니…….”공손아리를 찾으며 유송령이 조심스럽게 말하자 초류향은 고개를 저으며 입을 열었다.
“오늘은 일단 쉬시고 내일 소개해 드릴게요. 그 사람도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테니까요.”초류향의 말에 유송령은 그의 머리에 가볍게 꿀밤을 때리며 말했다.
“벌써부터 엄마보다 자기 여자를 챙기는 것을 보니 네 앞날도 훤히 보이는구나.”초류향은 어머니의 핀잔에 멋쩍게 웃어 보였다.
그래도 가능한 한 배려해 주고 싶었다.
현재 공손아리에게는 가족이 단 한 명도 없었다.
새로운 가족이 생기게 된다는 것.
그 사실은 분명 그녀의 삶을 여러모로 크게 바꿔 버릴 게 분명했다.
그렇게 중요한 일을 경솔하게 진행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나에겐 모두 소중한 사람들이다.’공손아리도 그러했고, 부모님도 그랬다.
초류향은 어느 한쪽에게도 처음부터 좋지 않은 감정을 심어 주고 싶지 않았다.
“한데 이곳이 정말 얼마 전까지 정도맹의 총본타였던 파운성이 맞는 거냐?”아버지 초무령.
그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질문하자 초류향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정도맹의 수뇌부들이 이곳에 모여서 회의를 했습니다.”“허허…….”이제 와서 새삼스러운 이야기지만 그의 아들이 정말 천마신교의 교주가 맞긴 맞는 모양이었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이곳은 아무나 함부로 들어올 수 없는 일종의 성역과도 같았다.
그런 곳에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서 있을 수 있다는 것이 묘한 기분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초류향은 그런 아버지를 이해했다.
‘나도 별로 실감이 나지 않았으니까…….’천하 제패.
마도천하라는 것은 막상 이룩한 뒤에도 그다지 실감이 나지 않는 일이었다.
직접적으로 피부에 와 닿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차츰차츰 새로운 규칙을 세우며 적응을 하다 보니 비로소 변화가 느껴지고 있었다.
“들어가요, 아버지.”초류향은 부모님을 모시고 파운성의 내부 깊숙한 곳으로 들어갔다.
그곳에 따로 마련된 귀빈들을 위한 숙소에 부모님을 안내한 초류향은 뒷머리를 긁적이며 입을 열었다.
“먼 길 오셨는데 죄송합니다만…… 잠시 다녀올 데가 있어요.”“그러려무나. 바쁠 텐데 우리는 걱정하지 말고.”유송령이 말하자 초류향은 고개를 끄덕인 후 재빨리 몸을 날렸다.
처리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처럼 많았던 것이다.
눈앞에서 유령처럼 사라진 초류향을 지켜보던 초무령은 작게 중얼거렸다.
“정말 우리 아들이 천마신교의 교주가 맞긴 맞나 보오.”“그러게요……. 예전에는 천마신교라는 이름만 들어도 무서웠는데…….”초무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과거 천마신교에서 엄승도가 찾아왔던 그 날의 기억이 불현듯 떠오른 것이다.
‘그때는 그의 말을 듣고도 믿지 못했는데…….’지금은 단순히 천마신교의 주인이 아니라, 천하통일을 이룩한 최초의 교주가 그의 아들이 아닌가?
아직까지도 실감이 잘 나지 않는 초무령과 유송령이었다.
그때.
쪽문이 열리고 하녀들이 다가와 그들의 수발을 들기 시작하자 퍼뜩 정신이 들었다.
그들도 그런 식으로 차츰 현실을 체감하고 있는 중이었다.
* * *
“잠깐 들러야 할 곳이 있습니다.”회의장으로 가는 도중에 초류향이 미묘하게 방향을 꺾자 운휘는 그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소군주님을 만나러 가시는 거군.’어떻게 해야 할까?
소군주님을 만나는 자리에 굳이 자신이 동행할 필요가 없었다.
그랬기에 운휘는 소군주.
즉, 공손아리가 묵고 있는 숙소에 도착하고 나서는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바깥에서 대기했다.
잠깐의 시간이 지나자 조심스럽게 안에서 빠져나오는 린과 령이 보였다.
‘제법 눈치가 있군.’그녀들도 운휘와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초류향과 공손아리가 단둘이 있게 해 주고 싶었던 것이다.
바깥으로 나온 린과 령은 자신들끼리 무어라 작게 속닥거리며 붉어진 얼굴로 숙소를 힐끔거렸다.
“그러니까…… 아마 지금쯤일 거야.”“역시 그렇겠죠?”그녀들은 바로 옆에 운휘가 있다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그랬기에 자신들끼리 수군수군거리며 행복한 얼굴을 해 보이는 모습이 무척이나 귀엽게 보였다.
운휘는 그런 린과 령을 보다 모르는 척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 무렵, 공손아리와 단둘이 마주하게 된 초류향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부모님께서 도착하셨습니다.”“어? 그래요? 어디 계세요?”“귀빈실에서 쉬고 계십니다. 오늘은 일단 여독을 풀기 위해 쉬시게 해 두었습니다만…… 내일은 당신을 우리 부모님께 소개할 생각입니다.”행여나 그녀가 부담스러워하거나 어려워할까 봐 초류향은 걱정했다.
하나 다행히 공손아리는 크게 꺼리는 기색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배시시 웃어 주었다.
“저에게 새로운 가족이 생기는 거네요? 전 정말 진심으로 너무 좋아요. 그러니 염려하지 마세요.”초류향은 공손아리의 가식 없는 미소에 마주 웃어 주며 그녀의 두 손을 잡아 갔다.
공손아리가 초류향을 바라보았다.
그 맑고 투명한 시선을 바라보며 초류향은 지금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을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저는 요새 당신 덕분에 무척이나 행복합니다. 지금 그대로도 모든 것이 다 좋지만 딱 하나 당신에게 바라는 게 있습니다.”“그게 뭔가요?”“부디 그대도 지금 나와 같은 마음이면 좋겠다는 겁니다.”“…….”공손아리는 초류향의 진지한 눈빛을 피하지 않았다.
그리고 초류향의 손을 꽉 쥐며 미소 지었다.
“교주님은 모르시겠지만 우리 아빠는 항상 저에게 행복해지라고 주문처럼 말하곤 했어요. 떠나기 전까지도 제 행복을 누구보다 걱정하셨지요.”초류향은 공손아리를 끔찍하게 아꼈던 스승님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나 여유가 넘치고 자신감으로 가득했던 스승님이지만 공손아리를 대할 때만은 평범한 아버지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저는 지금 무척 행복해요. 만약 아빠가 말했던 행복이라는 게 구체적인 형태가 있다면 바로 지금, 교주님과 함께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일 거예요.”그런 말을 하고 있는 공손아리의 눈가는 어느새 촉촉해져 있었고, 초류향은 사랑스럽다는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공손아리의 눈가를 손으로 닦아 주던 초류향은 자석에 끌리듯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갔다.
‘나는 지금 행복하다.’초류향은 점점 공손아리의 아름다운 얼굴이 가까이 다가옴을 느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공손아리의 가느다란 숨결이 느껴질 만큼 지척까지 갔을 때.
공손아리가 눈을 감는 것이 보였다.
파르르-
눈꼬리가 가볍게 떨리고 있었다.
초류향은 자신도 모르게 그런 공손아리를 가볍게 잡아당겨 품에 안았다.
막 입술이 닿을 듯 말 듯한 그 순간.
시야 한쪽에 불쑥 등장한 무언가 때문에 화들짝 놀란 초류향이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주 놀구들 있네.]음흉한 미소를 얼굴 가득히 그리고 있는 토끼.막수는 자신의 잠자리인 바구니를 두 손으로 꼭 받쳐 든 채로 초류향을 응시하며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그려 보였다.
그러더니 이번에는 바구니를 바닥에 내려놓은 뒤 팔짱을 끼고 ‘어디 계속 해 보시지’라는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뭉툭한 손으로 약 올리듯 손짓하기 시작했다.
“나, 날씨가 참 덥네요! 그렇죠, 막수 님?”[크크, 덥기는 무슨. 조만간 눈이라도 내릴 날씨인데 이게 더워?]“그, 그런가요?”공손아리가 어색한 표정으로 얼굴을 붉혔고, 그건 초류향도 마찬가지였다.
‘숨 막힐 듯 어색하다.’애꿎은 천장만 하염없이 바라보며 초류향이 뒷목을 긁적이고 있을 때.
막수가 슬금슬금 다가와 탁자에 엉덩이를 툭 걸치고 앉으며 히죽 웃었다.
[왜? 계속 더 해 보지. 오랜만에 좋은 구경 하나 했더니.]“……!”공손아리가 당장이라도 터져 나갈 듯 붉어진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 후다닥 바깥으로 뛰쳐나갔고, 초류향은 애써 표정 관리를 하며 막수를 노려보았다.하나 막수가 고작 이 정도에 흔들리겠는가?
오히려 그는 자신의 토실토실한 배를 앞으로 내밀며 말했다.
[왜? 그렇게 억울하면 한번 쳐 보시든가? 푸헤헤헤.]초류향은 순간적으로 정말 주먹이 나갈 뻔한 것을 가까스로 참으며 입을 열었다.“무슨 용건이지?”[뭐 별거 아니다. 그래도 제법 재미있는 구경을 했구만. 항상 침착한 척 가증스럽게 굴던 네놈이 이런 평범한 인간인 척할 때가 있을 줄이야. 신선했다.]“…….”바깥으로 뛰쳐나간 공손아리가 걱정되었지만 밖에는 린과 령도 있고, 운휘도 있을 테니 괜찮을 거라 여기며 초류향이 입을 열었다.
“용건은?”[크크, 네놈 방금 그 아이와 혼약을 하는 거겠지?]초류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의아한 시선으로 막수를 바라보았다.
인간의 일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는 막수다.
한데 웬일로 이렇게 관심을 가지는 것일까.
[네놈은 별로 마뜩지 않지만 저 아이는 인간치곤 제법 마음에 든다. 그래서 선물을 주도록 하지.]선물?초류향은 눈을 반짝였다.
막수는 인간 기준에서 보자면 신에 가까운 존재였다.
불로불사에 불멸의 존재가 바로 막수 아닌가?
그런 그가 자기 입으로 직접 선물을 준다고 하니 기대가 되는 것이다.
[부부는 어차피 일심동체이니 네놈에게 줘도 무방할 터. 자, 받아라. 건방진 애송이.]초류향은 막수가 바구니에서 꺼내는 무언가를 조심스럽게 받았다.그리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게 뭐지?”[응? 뭐긴? 보면 모르겠느냐, 무식한 인간.]아니, 초류향 역시 보는 순간 알았다.
단지 기대하던 것과는 너무나도 다른 선물에 적잖이 당황했을 뿐.
“내 눈이 이상한 게 아니라면 이건 떡일 텐데?”[정확하게 보았다, 애송이. 이 어르신이 오랜만에 직접 절굿공이를 손에 잡고 만든 물건이지.]거만한 표정.
막수는 한껏 어깨를 피며 어서 칭송해 달라는 얼굴로 초류향을 바라보았다.
초류향은 복잡미묘한 표정으로 손바닥에 놓여 있는 작은 떡을 바라보았다.
막수의 손바닥만큼 작은 떡 조각.
동글동글한 노란색의 떡은 맛있어 보이긴 했지만 그 외에는 별다르게 특별해 보이진 않았다.
‘장난치는 게 아니었나?’초류향은 노골적으로 실망스러운 표정을 한 채 막수를 응시했다.
그러자 막수는 초류향의 표정을 읽고 어처구니없는 얼굴을 해 보였다.
[……이런 무식한 놈을 보았나? 그것이 얼마나 진귀한 것인지 모르느냐?]진귀하다고?고작해야 이런 떡 조각이?
초류향이 떡 조각을 이리 뒤집고 저리 뒤집으며 살펴보고 있을 때.
막수가 탄식하듯이 입을 열었다.
[이래서 인간은 좋은 물건을 줘 봐야 쓸모가 없군.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가 아닌가?]“…….”초류향은 조금 진지한 시선으로 떡 조각을 살펴보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았다.‘혹시……?’한참 동안 떡을 들여다보던 초류향이 고민하다가 정관법으로 집중해서 떡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깜짝 놀라는 얼굴을 해 보였다.
그냥 보기에는 평범한 떡에 불과했지만 정관법을 사용하니 떡 안에 담겨 있는 무궁무진한 숫자들의 조합이 보여 화들짝 놀란 것이다.
“……이건 영약과 비슷한 건가?”초류향은 자신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제아무리 뛰어난 영약이라도 이 정도의 환상적인 조합을 보여 줄 순 없었다.
고작 떡 조각에 불과한데 그 안에는 너무도 복잡하고 말도 안 되는 계산식이 완전한 형태를 이루고 있지 않은가?
[크크, 제법이군. 과연 네놈은 그것을 먹을 자격이 있다.]“이것의 효능은 뭐지?”초류향이 그제야 진지하게 묻자 막수는 야릇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쯧. 한낱 인간에게는 과분한 물건이지. 효능은 직접 먹어 봐야 알 수 있다.]“……대체 무슨 효능이 있길래 그렇게 자신만만한 것인지 궁금하군.”[먹기 싫으면 내놔.]막수는 초류향의 손에 들려 있던 떡을 빼앗으며 입을 열었다. [나와 같은 월묘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떡에는 신비로운 힘이 깃드는 법이지. 특히나 나처럼 월묘들 중에서도 가장 위대한 존재가 만든 떡은 평범한 인간 따위는 본래 만질 수도 없는 법. 네놈처럼 반쯤은 인간이 아닌 수준이 돼야 이것을 만지거나 볼 수라도 있는 거다.]그러고 보니 신기했다.초류향은 조금 전까지 떡이 놓여 있던 손바닥에 아직도 남아 있는 따스한 온기를 느끼며 호기심 가득한 얼굴을 해 보였다.
“그래서 거기에 무슨 효능이 있다는 거냐?”이게 가장 중요했다.
겉치레는 사실상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막수는 자신의 손에 들린 떡 조각의 효능에 대해서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그 이야기를 끝까지 다 들은 순간 초류향은 눈을 빛내며 막수의 손에서 떡 조각을 빼앗아 입에 털어 넣었다.
그리고 차후에 이 행동이 초류향의 인생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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