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Shura RAW novel - Chapter (293)
제293화 무천의 정체
초류향과 공손아리의 혼례식은 무척이나 성대하게 치러졌다.
마도천하의 주인.
천마신교의 신이자 장차 천하의 미래를 바꿀 초류향이었기에 그의 혼례식은 당연하게도 호화롭기 그지없었다.
전박은 이 모든 준비를 말끔하게 끝낸 주호유를 극찬했으며, 그의 능력을 인정했다.
그리고 이어서 자연스럽게 자신의 업무 절반을 주호유에게 떠넘겼다.
하지만 주호유는 아무런 불평불만도 말하지 않았다.
‘나는 행복하다.’주호유가 산더미같이 쌓인 일들을 처리하면서도 조금도 불평하지 않은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일을 하면서 짬짬이 막수와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가 찾아오거나 말거나 막수는 항상 시큰둥하게 대했지만 주호유는 개의치 않았다.
매일같이 낮에는 따스한 볕이 드는 곳으로 바구니를 옮겨 놓고, 해가 지면 따뜻한 방에 들여놓으며 막수의 편안한 잠자리를 위해 불철주야 노력한 것이다.
주호유는 정말 기꺼운 마음으로 막수의 뒷수발을 들어 왔다.
이쯤 되자 막수도 이놈이 슬슬 꺼림칙해졌다.
[대체 나에게 원하는 게 뭐냐, 인간?]무조건적인 선의는 없다.이 세상에 아무런 이득 없이 남을 위한 행동을 하는 사람은 부모님 외에 있을 리 없다.
그러니 막수는 주호유가 자신을 위해 온갖 봉사를 마다하지 않는 것이 무척이나 거북스러워졌다.
‘그렇다고…….’이놈이 베푸는 무조건적인 호의를 단지 기분 나쁘다는 이유로 거절하기도 조금 애매했다.
누가 봐도 좋은 의도에서 나온 행동인 것이 빤히 보였으니까.
주호유는 막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헤벌쭉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냥 제가 좋아서 하는 일입니다. 어르신은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너는 좋겠지만 내가 거북스러워서 그래. 나에게 원하는 게 있으면 말해라. 터무니없는 헛소리만 아니면 들어주마.]주호유는 잠시 고민했다.
자신의 행동을 편하게 받아들이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어떻게 해야 불편하지 않을까?’뭔가 적당한 보답을 요구해야 납득할까?
여러 가지 보상을 떠올려보던 주호유는 자신도 모르게 입술 끝을 말아 올렸다.
막수를 품 안에 곱게 안아 들고서 그의 부드러운 털을 쓰다듬으며 조용히 저물어 가는 해를 보는 것.
그것이 현재 주호유의 소원이었기 때문이다.
‘근데 이걸 말하면 당장이라도 날 찢어 죽이려 드시겠지.’막수에게 푹 빠져 있는 주호유지만 이미 성격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객관적으로 판단이 끝난 상태였다.
그러니 어쩔 수 없이 적당한 보답을 떠올려야만 했다.
한참을 고민하던 주호유는 마침 그럴싸한 게 생각나서 입을 열었다.
“제 이름은 주호유입니다, 막수 님.”[……?]“앞으로는 인간이라고 부르지 마시고 주호유라고 불러 주세요. 저는 그것이면 족합니다.”막수의 얼굴이 묘하게 바뀌었다.
그것은 마치 대단히 괴상한 별종을 바라보는 시선이었기에 주호유도 머쓱하게 뒷머리를 긁적였다.
“역시 어렵습니까?”주호유가 포기하고 다른 것을 생각하려 할 때.
막수가 입을 열었다.
[네놈, 나 같이 위대한 존재에게 이름이 불린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알고서 말하는 거냐? 내가 보았을 때 너는 그런 쪽으로는 완전히 둔감한 편인데?]사실 완벽한 우연이었다.인간에게는 이름이라는 것이 그다지 큰 의미가 아닐 수 있겠지만 막수와 같은 존재들에게는 달랐다.
그 존재에 대한 ‘각인’을 새롭게 하는 절차가 바로 이름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좋다, 인간. 아니, 주호유. 네놈은 별 볼 일 없고 하찮은 존재들 중 하나지만 앞으로는 내가 특별하게 이름으로 불러 주도록 하지.]막수가 거만한 얼굴로 말하자 주호유는 황공하다는 얼굴을 해 보였다.그리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
“이제 곧 막수 님이 기대하고 있던 최고의 진법이 펼쳐질 겁니다.”[호오라?]초류향과 공손아리의 혼례식이 성대하게 치러지고 있는 와중이었다.
주호유는 단순히 혼례식만 준비한 것이 아니라 이곳 파운성 전체에 거대한 진법을 펼쳐 놓았던 것이다.
“그럼 슬슬…….”혼례식이 정점에 이를 무렵.
주호유는 들고 있던 보석을 바닥에 박아 넣었다.
그러자 주변의 공간이 가볍게 울렁거리더니 곧장 새로운 세상으로 바뀌었다.
“오오! 이것은…….”우 호법이 감탄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주변은 꽃밭이 되어 있었다.
초류향과 공손아리를 중심으로 형형색색의 꽃이 피어 있었고, 꽃밭에 바람이 불자 아름다운 꽃잎들이 사방으로 흩날렸다.
“와아!”이화궁의 여자 무인들 입가에서 감탄이 터져 나왔다.
곧 하늘에서 꽃비가 내리며 사방에 꽃향기가 가득 찼다.
그것은 너무도 아름다우면서 황홀한 광경이었다.
주호유는 수천, 수만 가지 꽃들의 화려한 공연을 보여 준 것이다.
초류향조차도 이곳에 진법이 있다는 것만 알았지, 어떠한 진법인지까지는 몰랐기에 순수하게 감탄을 터트렸다.
‘엄청난 계산식이 들어간 진법이다. 게다가 대단히 독특한 방식의 운용법이 아닌가.’발상의 전환.
이것이 누구의 작품인지 알았기에 초류향은 주호유를 바라보며 감사의 눈짓을 해 보였다.
주호유는 그런 초류향을 바라보며 흡족한 얼굴을 했다.
“이것으로 끝이라고 생각하면 섭섭하죠.”막수는 사방에서 흩날리는 꽃잎들을 멍청하게 바라보았다.
그러다 깡총거리며 뛰어 흩날리는 꽃잎을 잡으려 했다.
그 귀여운 모습을 행복한 얼굴로 지켜보던 주호유는 손에 꽃잎을 들고 아방한 표정을 짓고 있는 막수에게 한쪽 눈을 찡긋해 보였다.
“아직 하나가 더 남았습니다, 막수 님.”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갑자기 사방이 어두워졌다.
순식간에 밤이 찾아온 것이다.
모두가 놀란 기색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릴 때.
갑자기 밤하늘에 무수한 별들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허어…….”주 호법조차도 하늘을 올려다보며 진법의 오묘함에 감탄했다.
이건 평범한 인간들이 생각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다.
‘실로 신묘한 조화가 아닌가?’나이 든 호법들조차도 넋을 놓고 진법의 변화에 감탄하고 있을 때.
사방으로 작은 빛 무리들이 떠다니기 시작했다.
반딧불이었다.
그것은 마치 하늘의 별을 지상으로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신비감이 있었다.
[……주호유. 네놈은 나에게 충분히 이름으로 불릴 만한 자격이 있다.]이런 것에 특별한 감흥을 못 느끼는 막수조차도 주호유를 인정했다.꽃들의 공연에 이어진 별들의 공연.
그것은 누구에게나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놀라운 점은 이 공연이 파운성이라는 거대한 성채 전체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전박은 주호유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혼례식을 준비하는 데 예상보다 훨씬 많은 돈이 들어가길래 우선 지켜보고는 있었지만 내심 의아해했다.
‘한데 설마 이런 엄청난 것을 준비하고 있었을 줄이야…….’주호유는 엄청난 보석들을 투자해서 아무도 모르게 지금의 ‘공연’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랬기에 전박은 여기에 쏟아부은 자금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규모에서도 화려함에서도 주호유의 이번 기획은 아주 완벽했던 것이다.
별들의 축제 공연이 끝나고 나서 주변이 다시 환해졌다.
공연은 짧았지만 긴 여운을 남겨 놓았다.
모두가 멍한 눈을 하고 있을 때.
초류향이 공손아리와 함께 주호유에게 다가와 말했다.
“감사합니다. 이번에 주호유 님이 저에게 준 이 선물은 평생 잊지 못할 겁니다.”“말씀 낮추시지요, 교주님. 모두가 보고 있습니다.”주호유가 황망하다는 얼굴로 이야기하자 초류향은 미소 지었다.
우연하게 얻은 이 사람은 정말 대단한 인재였다.
그런데도 욕심이 없었다.
정말 고마운 일이 아닌가?
초류향은 고개를 돌려 주변을 바라보았다.
모두가 숨을 죽인 채 초류향이 무슨 말을 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이런 시선이 새롭지가 않군.’처음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고 갈팡질팡했었다.
한데 지금은 조금 익숙해진 모양이다.
초류향은 입가에 가느다란 미소를 그리며 공손아리의 한 손을 잡은 채 앞으로 나섰다.
“혼례식을 축하해 주시는 분들께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이번 혼례식은 두 가지의 의미가 있습니다. 저와 제 반려자의 행복, 그리고…….”초류향은 말을 잠시 끊고 바닥을 가볍게 찍었다.
그러자 이미 소멸되어 버린 진법에 새 생명이 불어넣어지며 주변에 푸른 녹지가 생겨났다.
주호유는 이 광경에 입을 쩍하고 벌렸다.
‘완전히 소멸된 진법을 되살렸다?’이게 말이나 되는 일인가?
게다가 초류향은 보석이나 그 어떤 독특한 매개체도 이용하지 않았다.
주호유가 경악에 차 있든 말든 초류향은 광활한 녹지 위에 서서 입을 열었다.
그의 음성은 작았지만 이곳 파운성 전체를 부드럽게 감싸 안으며 넓게 퍼져 나갔다.
“이 중원은 본 교가 천 년 만에 갖게 된 풍요로운 땅입니다. 마도천하. 그것은 저 혼자만의 힘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니 부디 모두가 즐겁게 즐겼으면 좋겠습니다.”초류향이 말을 끝내자마자 밤이 되어 버리더니 곧장 사방에서 폭죽이 터져 나갔다.
밤하늘을 수놓는 그 화려한 볼거리에 밖에서부터 함성이 들려왔다.
주호유가 멍청한 얼굴로 그 광경을 바라볼 때.
막수가 다가와서 주호유의 발뒤꿈치를 앞발로 툭툭 쳤다.
[놀라지 마라, 주호유. 저놈은 원래 괴물 같은 놈이니 너의 기준에서 판단하지 마라.]주호유는 막수의 위로에 퍼뜩 정신을 차리며 고개를 끄덕였다.초류향이 펼치는 계산식과 진법은 자신과 비슷했지만, 그 깊이가 남달랐다.
훨씬 더 깊고 복잡했으며 실용적이기도 했다.
[놈과 비교하며 실망하지 마라, 주호유.]실망?지금 이것을 보고 실망했다고?
전혀 아니었다.
주호유는 고개를 저으며 기쁨에 찬 얼굴로 입을 열었다.
“제가 가야 할 목표가 눈앞에 생겨서 저는 지금 기분이 참으로 좋습니다, 막수 님. 하하하!”[…….]막수는 주호유를 바라보다가 피식 웃어 버렸다.
눈앞에 있는 주호유라는 인간도 초류향 못지않게 굉장히 특이한 녀석이었음을 잊고 있었다.
‘인간들이란 재미있군.’초류향이라는 아이도 흥미로웠지만 이놈 역시 만만치 않았다.
앞으로 조금 더 인간들의 세상에서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했다.
‘그런데…….’막수는 불현듯 떠오르는 생각에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한동안 잊고 있었는데 무천이라는 거북이 놈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놈은 어디 있지?’신경 쓰지 않으려 했지만 이렇게까지 조용하니 찜찜했다.
막수가 감각을 세워서 놈의 기척을 따라가자 눈앞에 작은 인공 호수가 나타났다.
그리고 그 안에 무천이 느긋한 얼굴로 둥둥 떠 있었다.
[우리 형님께서는 팔자도 좋네.]막수의 투덜거림에 무천은 고개를 돌려 그를 응시했다.무천의 눈에서는 어떤 강렬한 힘이 느껴졌다.
그 힘은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종류의 거대함이었다.
[호오…….]막수가 재미있다는 얼굴을 해 보일 때.무천이 입을 열었다.
[용왕님의 병세가 심각해졌다고 하네. 그래서 마침 이곳을 떠날까 했는데 잘 찾아와 주었네, 아우님. 어느 정도 힘을 회복했으니 이제 나는 가 볼까 하네.][용궁으로 가게?][당연한 것 아니겠는가?]용궁.뭍에 사는 막수에게는 너무도 거리감이 느껴지는 장소였다.
막수는 한동안 무천을 지그시 바라보다 히죽 웃으며 입을 열었다.
[인간 세상 구경은 어땠어?]무천은 막수의 질문에 흐릿하게 웃어 보였다.사실 그는 용궁으로 진즉에 돌아갈 수 있었다.
하나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그것을 뒤로 미룬 것은 오랜만에 인간 세상에 나온 ‘유희’를 즐기기 위함일 터.
막수도 처음에는 깜빡 속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알타이르의 힘을 흡수하고 나서야 무천의 정체가 똑바로 보였던 것이다.
[제법 즐거웠네, 인간 세상은. 아우님 덕분에 더더욱 재미있는 여행이 되었네.]무천의 대답에 막수는 피식 웃었다.그리고 그를 의미심장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근데 말이야, 나도 그렇지만 우리 형님께서는 왜 그런 모습으로 웅크리고 있지? 그렇게 쪼그려 있으면 움직이는 것이 불편하지 않아? 용궁에서도 그러고 있더만.]무천은 막수의 질문에 빙그레 웃었다.자신의 모습을 제대로 본 막수가 기특했던 것이다.
[각자 사정이 있는 것 아니겠는가, 아우님? 그대가 그 모습으로 인간 세상에 있는 것처럼, 나 역시 이 모습으로 용왕님 곁에 머무는 이유가 있다네. 게다가 오랫동안 이러고 있다 보니 이젠 나름대로 적응도 되었고…….][그런가?]각자의 사정이라는 말에 일리가 있다고 느낀 막수가 고개를 끄덕일 때.무천이 아쉬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래도 용궁까지 가려면 어느 정도 본신의 힘을 빌려 와야겠지.][크크, 어떨지 기대되는데? 흐릿하게 보이는 모습만으로도 덩치가 꽤나 큰데, 과연 실체는 어떨까?]막수가 감상하듯이 지켜볼 때.무천이 천천히 힘을 개방하기 시작했다.
[아우님을 실망시킬까 봐 겁이 나는구먼.]드드득-하나 겁난다는 말과는 달리 그의 주변에서는 막대한 힘의 파동이 뿜어져 나왔다.
주변의 공간들마저 일그러질 정도의 엄청난 힘!
[갈 거면 지금 인간들이 하고 있는 혼례식에 민폐 끼치지 말고 후딱 떠나. 시간 끌지 말고.]막수의 잔소리에 무천은 고개를 끄덕이며 단번에 힘을 개방했다.우웅-
천지를 감싸 버리는 엄청난 존재감.
사방이 쥐 죽은 듯 고요해지며 무거운 적막감이 주변을 완전히 잠식해 버렸다.
막수는 천천히 시선을 위로 향하며 히죽 웃었다.
[사신수(四神獸, 네 마리의 신령스러운 동물) 중 하나인 현무(玄武). 오래전에 자취를 감췄다고 해서 어디 있나 궁금했는데 이렇게 실제로 눈으로 보게 될 줄은 몰랐어.]본체로 돌아간 현무는 인간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불투명한 형체였다.하나 막수의 눈에는 분명하게 보였다.
거북이의 머리와 길고 유연한 뱀의 머리.
거기에 더해 몸체를 뒤덮고 있는 단단한 등껍질.
신화 속의 모습 그대로인 것이다.
뱀과 거북이.
두 개의 머리가 서로 엉켜 있다가 곧 막수를 내려다보았다.
[그럼 가 보겠네, 아우님. 조만간 또 보세.][별로 다시 보고 싶지는 않아.]무천은 너털 웃었다.그것으로 끝.
후우웅-
엄청난 바람 소리와 함께 천지 사방을 짓누르던 거대한 존재감이 갑자기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막수는 저 먼 어딘가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우리 제발 다시는 보지 말자.]무천은 이것을 농담으로 받아들였겠지만 막수의 말은 진심이었다.그렇게 둘은 이별했지만, 막수의 바람과는 다르게 그들은 생각보다 빨리 다시 만나게 될 운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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