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Shura RAW novel - Chapter (300)
제300화 새 시대가 열리다
그날 하늘은 무척이나 맑았다.
백무량은 조용하게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아주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지금 교주의 귀에는 세상이 바뀌는 소리가 들리나?”“…….”“난 처음에 교주를 보았을 때, 참 어린놈이 분수도 모르고 설친다고 생각했었네.”툴툴거리는 웃음.
하나 백무량의 음성에서는 차츰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천하통일이라…….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였지. 그게 어디 가당키나 한 소리인가?”역대 강호의 수많은 천재, 수많은 초인들이 천하통일이라는 위대한 업적에 무수히 도전했다.
하지만 그들 중 단 한 명도 성공하지 못했다.
그들이 천하통일을 이루지 못한 데에는 분명 여러 가지 이유들이 있었을 것이다.
하나 지금 와서 그것은 결국 패배자의 변명에 불과했다.
‘이놈은 그들과 무엇이 달랐던가?’초류향을 바라보는 백무량의 얼굴에는 여러 가지 복잡한 감정이 떠올랐다.
그렇게 사람들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백무량의 입과 코에서 기어코 검붉은 핏물이 흘러나왔다.
“……이 늙은이가 가기 전에 충고 하나 하지. 교주는 너무 말도 안 되는 것을 이루었어. 본인이 이룬 것이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 알아야 하네. 그래야 그대가 가지고 있는 것을 유지할 수 있을 게야.”백무량은 초류향의 일격을 팔로 막았지만 그것은 애초에 무의미한 저항이었다.
뇌력환이 백무량의 팔을 두부처럼 부수고 그대로 심장을 관통한 것이다.
‘참으로 허망하군.’백무량은 가물거리는 시선을 들어 초류향을 응시했다.
부러웠다.
저놈은 지금 저 자리에 서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이제 세상의 모든 것이 저 녀석에게 무릎을 꿇게 될 것이다.
“……천하가 손 안에 들어온 지금 기분이 어떤가, 교주?”백무량이 힘들게 웃으며 물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초류향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심장이 뚫린 백무량을 고요하게 응시했을 뿐이다.
백무량은 무너지려는 몸뚱이를 어떻게든 바로잡으려고 애썼다.
대답을 듣고 싶었던 것이다.
하나 균형을 잡으려고 해도 쉽지가 않았다.
그래도 억지로 두 다리에 힘을 주고 버텨 섰다.
초류향은 그런 백무량을 바라보다 조용히 입을 열었다.
“편히 쉬십시오. 검황.”“……!”백무량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가 원하던 대답은 이런 것이 아니었다.
이따위 동정이나 연민 같은 것이 아니다.
‘이 바보 같은…….’백무량은 결국 입 안에 가득한 말을 내뱉지 못하고 그렇게 서서히 무너져 갔다.
한때 천하제일인이라 불렸던 거인의 죽음치곤 상당히 허망한 것이었다.
털썩-
바닥에 쓰러진 검황을 내려다보던 초류향은 가만히 주변을 둘러보았다.
모두가 겁에 질린 얼굴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새로운 세상의 지배자.
‘마도천하…….’초류향은 그 단어를 곱씹으며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두려움으로 가득 찬 시선을 하나하나 마주쳤다.
그러다 제일 구석진 곳에서 멍청한 얼굴로 서 있는 팽가호가 눈에 들어왔다.
‘왔구나.’초류향은 녀석과 눈이 마주치자마자 아무렇지도 않게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팽가호와 친분이 있다는 사실은 숨겨야 했다.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때.
초류향의 뒤쪽에 서 있던 냉하영이 불쑥 앞으로 나와 그의 옆에 나란히 섰다.
그리고 말했다.
“축하드려요, 교주님. 드디어 완벽한 천하의 주인이 되셨습니다.”“…….”“이 하북팽가에서 마도천하의 첫 번째 역사가 시작된 겁니다. 참으로 의미 깊은 장소가 되었군요.”초류향은 냉하영의 속셈을 알아챘다.
재빠르게 이곳의 일을 마무리 짓고자 하는 것이다.
‘소문은 달리는 말보다 빠르다.’천하에 곧 검황의 죽음이 알려지게 될 것이다.
이제부터가 시작인 것이다.
그러니 빨리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하는 것도 당연했다.
손에 묻은 피를 허공에 털어 낸 후 초류향이 하북팽가의 사람들을 보며 입을 열었다.
“검황은 죽었습니다.”“…….”“차후에 따로 하북팽가에 서신을 보내겠습니다. 그때까지 다들 보중하십시오.”최대한 예의를 차린 음성.
하나 그 속에 담겨 있는 위압감은 하북팽가의 모두를 무겁게 짓눌렀다.
초류향이 그렇게 말하고 고개를 돌릴 무렵.
팽가의 무인들 중 누군가가 떨면서 입을 열었다.
“우, 우리가 왜 너의 말을 들어야 하는 것이냐?”제법 용기를 낸 음성이었지만 거기에 스며 있는 공포까지는 숨길 수가 없었다.
초류향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아직 젊은 사내.
젊기 때문일까?
사태 파악을 하지 못하고 일단 내지르고 보는 용기가 있는 모양이었다.
그를 가만히 바라보던 초류향은 입가에 희미한 웃음을 그렸다.
“제 말을 듣지 않아도 좋습니다. 단지 그것에 대한 책임을 지면 그뿐이니.”그 말이 끝나는 순간.
콰아악-!
섬뜩한 소리와 함께 팽가의 젊은 무인 발 바로 앞에 끝이 보이지 않을 만큼의 깊은 구멍이 생겨났다.
“히, 히이익!”아무런 동작도 취하지 않고, 어떤 기운도 뿜어내지 않은 최상승의 무공.
‘심의권.’초류향은 그렇게 강력한 경고를 해 놓고 몸을 돌렸다.
이제부터가 새로운 세상을 만들 시간인 것이다.
진정한 마도천하의 시작이었다.
* * *
“역시 교주는 괴물이었어.”숨어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여인.
서문현아.
그녀는 검황과 교주의 싸움을 단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지켜보았다.
그리고 그들이 펼친 심검과 심의권을 보면서 혀를 내둘렀다.
“분하지만…… 할배 말이 맞았어. 아마 그때 저놈과 붙었으면 뼈도 못 추렸을 거야.”[공손천기라는 괴물이 형태만 다른 괴물을 세상에 낳아 놓은 셈이다.]풍혈마군 전윤수의 말을 들으며 서문현아는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멍청하게 굳어 있는 팽가호를 발견했다.
초류향이 하북팽가를 벗어나 바깥으로 갈 때까지도 팽가호는 인형처럼 굳어 있었다.
그러다 초류향이 마차에 올라타기 직전, 퍼뜩 정신을 차린 팽가호가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앞으로 튀어나갔다.
“바보, 멍청이! 내가 저럴 줄 알았어!”서문현아가 바람처럼 움직인 것은 그 순간이었다.
막 마차에 오르려고 하는 초류향에게 접근한 팽가호.
그의 옆에 유령처럼 불쑥 등장한 서문현아는 팽가호가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그의 복부를 주먹으로 올려 쳤다.
뻐어어억-!
“컥!”팽가호의 커다란 몸체가 활처럼 휘어지며 고통스러운 신음이 새어 나왔다.
서문현아는 한 방에 기절해 버린 팽가호를 가볍게 어깨에 걸치며 아무렇지도 않게 입을 열었다.
“그럼 바쁘신데 실례 많았습니다, 교주님.”“…….”초류향은 팽가호가 가까이 다가왔을 때 어떻게 대응해야 좋을지 잠시 망설였다.
이렇게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팽가호를 아는 척할 순 없었다.
그랬다가는 녀석이 어떤 해를 입을지 알 수 없었으니까.
한데 다행히도 서문현아가 적절하게 등장해서 고민을 해결해 주니 고마웠다.
“그쪽은…… 서문현아?”초류향의 옆쪽에 있던 마차.
그곳에 올라타려던 냉하영이 깜짝 놀라서 입을 열자 서문현아가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아, 안녕? 자주 보네, 우리?”“너…….”냉하영이 무슨 말을 하려고 했으나 초류향이 한발 더 빨랐다.
“내 앞을 막을 생각이 없다면 비켜라.”“그럼요, 물론이죠. 비켜 드려야죠.”서문현아는 그 말을 듣자마자 냉큼 뒤로 물러섰다.
초류향은 그 모습을 보고 고개를 끄덕인 후 마차에 올라타며 입을 열었다.
“하북팽가에 있을 생각인가?”서문현아는 무언가를 고민했다.
그러다 등에서 느껴지는 팽가호의 온기를 깨닫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당분간은……요.”“너에게도 따로 연락을 하겠다.”서문현아는 불만스러운 얼굴을 하려다가 초류향이 검황을 어떻게 상대했는지 떠올리고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저야 교주님이 시키시는 대로 하겠습니다.”초류향은 희미하게 웃었다.
강한 것은 언제나 옳다고 했던 공손천기 스승님의 말이 기억난 것이다.
마차에 올라탄 초류향은 문득 시선을 돌려 저 먼 곳.
어떤 건물을 응시하다 움찔했다.
장난스러운 미소를 입가에 그리고 있는 소년이 지붕 위에서 손을 흔들고 있었던 것이다.
‘스승님?’초류향은 출발하려는 마차를 멈춰 세웠다.
그리고 고개를 내밀고 지붕을 다시 바라보았다.
하나 그땐 이미 소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잘못 본 것일까?’초류향이 실망한 얼굴로 마차를 출발시킬 때.
막수가 투덜거리며 말했다.
[저놈 저러다 한번 영감탱이들에게 걸려 봐야 정신을 차리지.]“……너에게도 스승님이 보였나?”막수는 피식 웃었다. [저놈은 진즉부터 내려 와서 보고 있었다. 둔한 네놈만 몰랐을 뿐이지.]한데 무언가 마음에 안 드는지 막수는 불퉁한 표정으로 바구니에 앉아 있었다.그러다 불쑥 입을 열었다.
[그럼 땅따먹기는 끝난 게냐? 네놈은 이제부터 뭘 할 작정이지?]뭘 해야 할까?본래 목표는 천하통일이었다.
한 가지 색으로 천하를 물들이는 것.
아무런 다툼도, 싸움도 없는 세상을 만들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것들이 필요하지.’제일 먼저 규칙을 정해야 했다.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법칙은 필수였으니까.
머릿속에 여러 가지 상념들이 가득해졌지만 곧이어 떠오르는 강력한 흐름에 휩쓸려 모든 것이 지워졌다.
그러자 당장 단 하나의 생각만이 떠올랐다.
“이제부터 뭘 할 생각이냐고 물었던가?”[그래.]초류향은 막수를 바라보며 그답지 않게 장난스러운 미소를 입가에 그렸다.
“나는 이제부터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러 갈 생각이다.”[…….]막수가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짓든 말든 초류향은 행복한 미소를 입가에 그려 보였다.
* * *
공손아리는 초조했다.
검황과의 승부는 쉽게 예측할 수가 없었다.
그랬기에 막수를 어떻게든 함께 보냈지만 그러고도 안심이 되지 않았다.
‘언제 오시는 걸까?’그가 떠난 이후부터 매일매일이 조마조마했다.
공손아리는 그럴 때마다 초류향의 어머니인 유송령을 찾아가 함께 고민을 이야기하곤 했다.
오늘도 유송령을 만났다가 돌아오는 길이었다.
공손아리는 숙소 바로 앞에 있는 인공 호수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무사하시겠지?”그녀의 초조한 물음에 곧장 대답이 들려왔다.
“그럼요. 교주님은 그깟 검황 정도는 한 주먹에 때려눕히고 오실 거예요.”린이 대답하자 공손아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러실 거야 분명.”초류향은 강했다.
공손아리가 본 사람들 중에서 아버지를 제외하고는 제일 강한 사람이었다.
단순히 무공의 강함을 떠나서 그에게는 그 어떤 시련이라도 극복할 수 있는 견고하고 단단한 의지가 있었다.
“지금쯤이면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까?”“그렇겠죠?”“왜 이렇게 연락이 늦는 거지?”“제가 비마대주를 만나 뵙고 올까요?”공손아리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내가 직접 가 볼게.”그동안 비마대주 엄승도가 바빠 보였기에 일부러 찾아가지 않았던 공손아리였다.
한데 그것도 이제는 한계였다.
공손아리는 그 길로 엄승도를 찾아가 대뜸 초류향의 안부를 물었다.
엄승도는 난감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아직 소식이 들어온 게 없습니다. 마후님.”“그런가요…….”공손아리가 시무룩한 얼굴이 되었을 때 엄승도가 뒷머리를 긁적였다.
사실 엄승도도 슬슬 소식이 올 때가 되었다고 여기던 차였다.
“소식이 들어오는 대로 곧장 알려 드리겠습니다.”“예. 꼭 부탁드릴게요.”그 말을 남기고 공손아리는 힘없이 방을 나왔다.
공손아리가 되돌아가던 바로 그 때, 공교롭게도 엄승도는 밑에서 올라온 서찰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서찰을 읽자마자 바깥으로 곧장 뛰어나갔다.
공손아리에게 기쁜 소식을 전해 주기 위함이다.
“마후님! 교주님이 이기셨답니다! 다치신 곳 없이 무사히 지금 복귀하고 계신 중이라고 연락이 들어왔습니다!”엄승도가 뛰어가면서 외치자 저 멀리 떨어져 있던 공손아리의 다 죽어 가던 얼굴에 혈색이 돌았다.
“정말이지요?”“예! 제가 몇 번이고 확인했습니다!”“만세!”공손아리는 행복한 얼굴로 두 팔을 들어 보이며 린과 령을 껴안았다.
그러다 말고 문득 무언가가 생각났는지 곧장 숙소로 부리나케 뛰어갔다.
그녀는 숨도 쉬지 않고 말을 매어 두던 마구간으로 직행하더니 곧장 말 위에 올라탔다.
“어? 어딜 가시게요?”공손아리는 의아한 표정의 린과 령을 보며 환하게 웃는 얼굴로 말했다.
“어딜 가긴? 내 낭군님을 뵈러 가야지!”린과 령이 당황하건 말건 공손아리는 말을 타고 내달렸다.
한시라도 빨리 초류향이 보고 싶었다.
지금은 단지 그 마음뿐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