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Shura RAW novel - Chapter (305)
305화 외전 : 제갈량 초류향은 일을 하고 있다가 문득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당혹스러운 얼굴을 해 보였다. [무슨 일이 있으십니까?] 근처에 은신하고 있던 운휘가 초류향의 변화를 눈치채고 질문했지만 그는 대답 없이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 그러다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잠시 다녀와야 할 곳이 생겼습니다.”
[준비하겠습니다.]“아닙니다. 저 혼자 금방 다녀오겠습니다.”
초류향은 그렇게 말을 마치고 그 자리에서 연기처럼 사라졌다. 운휘는 몸을 드러내고 주변을 둘러보다가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의 주군은 이성적이고 냉철한 사람이었다. 모든 일을 단계적으로 준비해 놓고 계획적으로 움직이는 사람. 한데 이렇게 급작스럽게 움직이다니?
‘대체 무슨 일이십니까?’
초류향이 사라진 업무실에서 운휘는 그렇게 난처한 고민에 빠져들었다. * * * 탁- 초류향이 모습을 드러낸 곳은 어떤 인적이 드문 야산이었다. 그곳에서 초류향은 어딘가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승상.”
초류향과 마주하고 있는 사람은 백발의 노인이었다. 그는 오만한 얼굴로 섭선을 든 채 초류향을 바라보았다.
“제법 놀랐다는 표정이구나.”
놀라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제갈량은 초류향의 머릿속에만 존재할 뿐. 그 실체가 없었다. 물론 과거에도 머릿속 밖으로 나온 적이 있었지만 그때는 반투명한 모습이었다. 한데 지금은 너무도 뚜렷한 형체를 가지고 그를 기다리고 있지 않은가?
“……육신이 있으셨습니까? 예전과 다른 모습이십니다.”
제갈량. 그는 초류향의 질문에 알 듯 모를 듯한 미소를 그렸다. 그리고 말했다.
“때가 되었기 때문에 이 모습으로 세상에 나온 것뿐이다.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때가 되었다? 그게 무슨 뜻일까? 초류향이 궁금한 얼굴을 해 보이자 제갈량이 말했다.
“초류향.”
제갈량의 부름에 초류향은 순간 마른침을 삼켰다. 처음으로 그가 자신의 이름을 똑바로 불러 준 것이다. 그것에는 묘한 울림이 있었다.
“예, 승상.”
알 수 없는 긴장감이 전신에 가득해졌다. 초류향이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하자 제갈량이 그에게 물었다.
“너는 산법이 무엇이라 생각하느냐?”
“……!”
산법이 무엇이냐. 제갈량이 고요한 음성으로 던진 이 질문이 초류향에게는 천둥처럼 크게 다가왔다. 가장 원초적이고 난폭한 질문. 초류향은 조용히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다. 이 시대의 학자들은 모두 산법은 너무나도 보잘 것 없고 형편없는 학문이라고 정의하고 있었다.
‘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산법이라는 것은 그 어떤 학문보다도 위대하고, 인간의 삶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줄 수 있었다. 아니, 단순히 삶에만 영향을 끼치는가? 그것도 아니었다. 우주의 비밀을 풀 수 있는 천문학 역시 산법을 통해 접근할 수 있었다.
“세상의 잣대로 판단하지 마라. 오로지 너의 것으로 내 질문에 답해라. 적어도 지금의 너라면 내 질문에 대한 답은 보일 것이니…….”
초류향은 멍한 시선으로 제갈량을 바라보았다. 제갈량은 조용하게 그를 마주 보며 기다려 주었고,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초류향은 입을 열었다.
“산법은…… 끊임없이 진리를 추구하는 학문입니다.”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흘러나온 대답에 제갈량은 미소 지었다.
“그래. 그것이 정답이다. 그거면 되었다.”
초류향은 심각한 얼굴로 제갈량을 바라보면서 물었다.
“그럼 승상께서는 진리를 보셨습니까? 아니, 진리의 완성된 형태를 보셨습니까?”
이것은 매우 중요한 질문이었다. 그랬기에 초류향의 표정에서는 그 어떤 간절함마저 엿보였다.
“보았다.”
“……!”
초류향의 얼굴에 놀라움이 떠올랐다. 진리란 무엇인가. 산법이 궁극적으로 완성된 형태를 말했다. 숨을 쉬고, 밥을 먹고, 걷고, 말하고. 삶의 모든 것이 산법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충격으로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는 초류향을 바라보며 제갈량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특유의 오만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나는 너를 통해 그것을 보았다. 덕분에 내 오랜 숙원을 이루었지.”
초류향. 그 단 한 사람의 의지가 천하를 완벽하게 바꾸어 놓았다. 그것은 제갈량에게 있어서는 완성된 무언가를 보여 주는 큰 변화였다. 제갈량은 거기까지 생각하다가 잠시 말을 끊고 어두워진 밤하늘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이제 약속된 시간이 다 되었다, 초류향. 이별이구나.”
초류향의 동공이 불안하게 흔들렸다. 이것은 너무도 급작스러운 이별이 아닌가?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 그랬기에 초류향은 급하게 뛰어가 제갈량의 소매를 잡으며 말했다.
“아직, 아직…… 가지 마세요, 승상. 저는 당신에게 배울 것이 많습니다.”
제갈량은 평소의 그답지 않게 따뜻한 시선으로 초류향을 바라보았다. 사실 제갈량도 초류향을 각별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초류향은 세상이 모르는, 그의 유일한 산법 제자였으니까.
“초류향. 너는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다. 단지 그것을 인지하지 못했을 뿐.”
“아닙니다. 저는 아직 한참 모자랍니다, 승상. 부디…… 가까이에서 가르침을 주세요.”
떨리는 음성으로 말해 보았지만 닿지 않았다. 바로 지척에 있는 제갈량이었지만, 지금은 그 어떤 순간보다도 멀리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대로는 어르신을 보내드릴 수 없습니다.’
제갈량은 초류향에게 처음으로 새로운 세상을 보여 준 사람이다. 그리고 늘 함께 있었기에 더더욱 각별한 사람이기도 했다. 초류향이 다시 한 번 제갈량을 붙잡으려 할 때. 하늘을 바라보고 있던 제갈량이 입을 열었다.
“마중 나올 녀석이 저기서 오고 있다. 별로 내키지 않는 녀석이지만 안면이 있는 놈이니 때로는 이런 것도 나쁘지 않겠지.”
초류향은 제갈량이 바라보는 곳을 응시했다. 그리고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밤하늘을 가르며 새하얀 유성이 떨어져 내리고 있었던 것이다.
‘스승님?’
공손천기. 그가 불타는 유성이 되어 그들의 앞에 떨어져 내렸다.
“잘 지냈느냐? 오랜만이다.”
공손천기는 멍한 얼굴로 자신을 쳐다보는 초류향을 바라보며 히죽 웃었다. 여전히 소년의 몸을 하고 있는 공손천기에게 초류향이 물었다.
“어르신을 데려가러 오신 겁니까, 스승님?”
“응. 위에 꼭 필요한 사람이거든. 이 영감탱이가 갑자기 여러 단계를 한꺼번에 뛰어넘어 버려서 인간 세상에 내버려 둘 순 없게 되어 버렸지. 더 이상 이 영감이 이곳에 존재하게 되면 그것만으로도 균형이 심각하게 깨지게 되거든.”
공손천기는 설명을 하다 말고 멈칫하더니 미안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너에게 매번 못된 짓을 하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하구나, 제자야.”
초류향은 공손천기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씁쓸하게 웃었다. 공손천기도 원해서 이러는 것이 아닐 것이다. 스승님에게는 그 나름의 사정이 있을 것이고, 그의 미안한 얼굴을 보니 새삼 제갈량이 떠난다는 게 실감이 나 버렸다. 초류향은 머리를 뒤로 쓸어 넘기며 웃음 지은 후 공손천기에게 물었다.
“위쪽은 좋은 곳입니까?”
“뭐, 그럭저럭 쓸 만한 곳이긴 하지.”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초류향이 제갈량의 소매를 놓으며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 후 읍을 해 보이며 말했다.
“저에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 주신 두 분에게 이렇게 감사를 드릴 수 있게 되어 무척이나 기쁩니다.”
제갈량은 그때까지 섭선을 부치며 미소 짓고 있다가 입을 열었다.
“나 역시 너에게 얻은 것이 적지 않다. 그러니 마지막으로 좋은 일을 하나 해 주마.”
제갈량이 섭선을 가볍게 움직이자 초류향의 뒤편에서 무언가가 딸려 나왔다. 붉은색 구슬. 그것을 유심히 바라보던 초류향이 눈을 부릅떴다. 동시에 제갈량이 입을 열었다.
“화령이라고 했던가, 이 아이?”
“…….”
“내가 데려가마. 더 이상 이곳에 머무는 것은 너에게도, 이 아이에게도 좋지 않겠지. 미련을 두지 말거라.”
초류향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붉은 구슬을 바라보았다. 오랜 기간 있는 듯 없는 듯 곁을 지킨 화령이다. 그런데 결국 아무것도 해 주지 못하고 그녀를 이렇게 떠나보내야 하는 것이다. 여러 가지 상념이 머릿속을 복잡하게 어지럽혔다.
“이 아이는 내가 데려가 윤회의 고리를 끊고 선인으로 다시 태어나게 할 것이다. 모든 기억을 지우고 새로운 존재로 만들 테니 더 이상 이 아이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정말입니까?”
“그래. 네 녀석 마음에 남아 있는 마음의 짐을 내가 가져가겠다. 그것이면 어느 정도 너에게 얻은 것에 대한 보상이 될 터.”
초류향은 입을 열어 무언가를 대답하려 했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복잡한 심정이었지만, 그래도 제갈량을 따라간다면 우선 안심이 되긴 했다. 그는 위대한 사람이니 분명 화령을 지금보다 나은 상황으로 만들어 줄 수 있을 것이다.
‘잘된 일이다.’
그랬다. 잘된 일이었다. 선인이 된다니? 그것이면 되었지 않은가? 초류향이 거기까지 생각하고 나름대로 납득하려 할 때. [저는…… 괜찮습니다. 그냥 이곳에 더 남아 있고 싶습니다.] 화령이 다급하게 말했지만 이번에는 곁에 있던 공손천기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쯧, 더 이상은 안 될 말이다. 윤회를 미루면서 내 제자 곁에 있는 것도 여기까지다. 이만큼 눈감아 줬으면 만족해야겠지. 더 이상은 숨겨 줄 순 없거든. 나도 한계니까.”
공손천기의 말에 화령이 화석처럼 굳어 있다가 제갈량을 간절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하나 제갈량 역시 표정 변화 없이 그녀를 응시하며 말했다.
“모두를 위한 일이다. 더 이상은 안 되겠지.”
[…….] 화령은 절망적인 얼굴을 해 보였다. 그러다 결심한 듯 제갈량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저에게 잠시만 더 시간을 주세요.] 제갈량은 그녀의 얼굴에 떠올라 있는 어떤 결의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별을 각오한 결심을 읽은 것이다.“너무 오래는 기다려 줄 수 없다.”
[오래 걸리지 않을 거예요.] 제갈량이 섭선을 다시 한 번 휘두르자 붉은 구슬 형태였던 화령이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그녀는 혼란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는 초류향 앞에 마주 섰다. 그리고 특유의 무덤덤한 표정으로 그에게 말했다. [저는 주인님과 함께 있어서 참으로 행복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여기까지인가 봅니다.] 초류향은 화령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화령 역시 그런 초류향을 가만히 응시하고 있었다. 둘 사이에서 먼저 입을 연 것은 초류향이었다.“마땅한 보상을 해 드렸어야 하는데…… 결국은 이렇게 되어 버려 미안할 따름입니다.”
화령은 초류향의 말에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갑자기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 [저는 주인님을 연모했습니다.]
“……?”
화령의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말에 초류향이 눈만 끔뻑거릴 때 그녀가 말했다. [주인님은 이런 감정에 둔감하셔서 그동안 참으로 다행이라 생각했습니다만……. 지금은 조금 아쉽습니다.] 화령은 말을 하며 초류향에게 한 걸음 다가갔다. 그리고 그와 가까이에서 눈을 마주치며 말했다. [주인님은 아무것도 없는 이런 저도 연모하는 마음을 품게 될 만큼 아주 훌륭한 분이셨습니다. 그리고…….] 화령의 입가에 그려져 있던 웃음이 차츰 가늘게 떨리기 시작했다. [……단 한 순간도, 제가 주인님을 연모하게 되었음을 후회한 적이 없습니다. 그동안 곁에서 모실 수 있게 해 주셔서 정말로 행복했습니다.] 화령은 말을 마치고 곧장 고개를 숙이며 초류향에게 읍을 해 보였다. 어떠한 결심이 느껴지는 그 동작에 초류향은 한동안 화석처럼 굳어 있었다. 그러다 고개를 숙이고 있는 화령을 보며 겨우 입을 열었다.
“……이것은…… 이것은 정말 대단히 좋지 않은 일입니다.”
초류향의 얼굴에는 진한 미안함과 함께 숨길 수 없는 슬픔이 떠올라 있었다. 그동안 화령의 마음을 몰라주었다는 슬픔과, 그것을 알게 되고 나서도 받아 줄 수 없는 현실에 대한 미안함인 것이다. 초류향은 공손아리의 얼굴을 떠올리며 화령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주저하며 말했다.
“화령님과 이런 식으로 이별하게 될 줄은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습니다만…… 오히려 이런 이별이 서로에게는 더 잘된 일인 것 같습니다.”
[…….] 고개를 숙이고 있는 화령의 얼굴에 짙은 아픔이 스쳐갔다. 그녀의 시선이 불안정하게 떨렸다. 하나 그것은 금방 사라지고 다시 고개를 들어 올린 화령의 얼굴에는 가느다란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저 역시 그렇게 생각합니다, 주인님.] 그런 화령을 잠시 안타깝게 바라보던 초류향은 두 손을 가슴 어림에 모아 읍을 해 보이며 말했다.“부디 행복하시길 빌겠습니다.”
초류향은 진심이었다. 그랬기에 화령이 행복하기를 누구보다도 간절하게 빌었다. 그때 뒤에서 물끄러미 그 광경을 지켜보던 공손천기가 머리를 벅벅 긁으며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왔다.
“으이구! 답답해서 못 봐 주겠네.”
그는 초류향의 허리춤을 잡아당기는 동시에 화령의 손을 확 잡아챘다. 그러자 압도적인 힘 앞에 화령의 몸이 휘청거리며 초류향의 품에 안기고 얼떨결에 둘은 그렇게 서로를 안게 되었다.
“아리에게는 미안하지만 이 정도는 용서해 주겠지. 원망하려거든 나를 원망하라고 해.”
공손천기는 당황한 얼굴의 초류향을 보며 입을 열었다.
“끌끌, 참으로 죄 많은 놈이다, 너도. 그렇게 미안한 얼굴을 하고 있으면 떠나야 하는 저 아이 마음이 편하겠느냐? 적어도 이 정도는 해 줘야 그동안 목숨 걸고 너를 보필한 것에 대한 작은 보답이 되겠지.”
“…….”
초류향은 붉어진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 공손천기의 방식은 우악스럽고 투박했지만 맞는 말이었다. 화령이 그를 연모하든 그렇지 않든 생명의 은인인 것은 분명했다. 이렇게 떨쳐내듯 밀어내면 안 되는 상대인 것이다.
“그 동안의 보답이라고 생각하거라. 너를 연모하고 하지 않고는 그 다음의 문제니까. 이 어리석은 제자 녀석아.”
“……!”
초류향은 공손천기의 말에 굳어 있던 팔을 조금씩 움직여 천천히 품 안에 안겨 있는 화령의 어깨를 토닥였다. 화령은 그렇게 잠시 동안 초류향에게 안겨 있었다. 그러다 그곳에서 빠져나온 뒤 공손천기에게 읍을 해 보이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교주님.]
“아니다. 내가 너에게는 참으로 미안할 따름이다. 눈치 없는 제자 녀석 때문에 네가 여러모로 고생이 많았다.”
“…….”
초류향이 어색한 얼굴로 볼을 긁적일 때. 제갈량이 말했다.
“시간이 되었다. 가자.”
저 멀리 여명이 밝아오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제갈량은 들고 있던 섭선을 허공에 던졌다. 그러자 그것이 마치 살아 있는 듯 한 차례 펄떡이더니 곧장 검은 학으로 변하여 제갈량을 그 위에 태웠다.
“가 보겠다. 잘 지내거라.”
화령이 제갈량의 뒤에 올라타자 학은 그 큰 날개를 퍼덕이며 허공에 떠오르기 시작했다. 초류향은 멍하니 그 광경을 바라보다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다시 볼 수 있는 것입니까?”
제갈량은 아래를 힐긋 내려다보며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너와 나의 인연은 여기에서 끝이다. 건강하거라.”
화령은 학 위에 올라탄 채로 언뜻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그 시선에 담겨 있는 것은 아까와 같은 불안정함이 아니었다. [보중하세요, 주인님.] 작은 중얼거림에 초류향은 고개를 끄덕였다. 공손천기는 그런 초류향을 바라보다 뒤통수에 꿀밤을 때린 후 허공으로 몸을 날렸다.
“네 아들 녀석은 막수 녀석이랑 멀리 여행을 가게 되었다. 그래도 너무 걱정하지 말아라. 모든 것은 잘 해결될 테니까.”
초류향의 눈이 동그랗게 뜨여졌다. 그리고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운비의 행방을 아십니까? 지금 어디 있습니까?”
벌써 몇 달 동안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막수의 행방조차 찾을 수가 없지 않던가? 별일 없을 거라고는 믿고 있지만 은근히 초조한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그 아이의 행방은 알고 있지만 말해 줄 수는 없다. 하지만 한 가지는 말해 주마. 당장은 만나지 못할 테지만 걱정은 하지 말거라.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으니까.”
공손천기는 장난스럽게 웃어 보인 후 손을 흔들며 말했다.
“이것으로 너와의 만남도 정말 끝일 게다. 건강하거라, 제자야. 아리를 잘 부탁한다.”
그것으로 공손천기마저 봄 햇살에 눈 녹듯이 허공에서 사라져 버렸다. 무어라 말하기도 전에 사라진 것이다. 검은 학도 이미 오래전에 날아가 버렸고, 야산에 홀로 덩그러니 남아 있는 초류향에게는 이 모든 것이 꿈결처럼만 느껴졌다.
‘하지만 꿈이 아니지.’
바닥에 떨어져 있는 깃털 하나. 그것은 제갈량이 들고 있던 섭선의 깃털과 같은 것이었다. 초류향은 그것을 집어 들며 툴툴 웃었다.
“돌아가야지.”
그에게는 돌아가야 할 집이 있었다. 그리고 평생을 함께해야 할 사람이 있었다. 그렇게 떠난 사람들을 뒤로하며 초류향은 몸을 날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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