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Shura RAW novel - Chapter (307)
307화 외전 : 고백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재산이 많거나 적거나, 무공이 높거나 낮거나 죽음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찾아온다. 그리고 오늘, 천마신교의 고수 하나가 죽음과 정면으로 마주하고 있었다. * * * 노진녕은 눈물 콧물을 질질 짜며 얼굴을 일그러뜨리고 있었다. 그는 자신 앞에서 서서히 꺼져 가는 생명을 억지로 부여잡았다.
“죽으면 안 돼, 영감님! 죽지 마!”
“…….”
그의 앞에는 주상산. 주 호법이 눈을 감고 누워 있다가 쓴웃음을 그렸다.
“끌끌, 이놈아. 다른 놈들도 다 죽었는데 나라고 별수 있겠느냐?”
갈라지는 목소리. 그의 얼굴에는 아무리 숨기려 해도 숨길 수 없는 짙은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화경의 고수라곤 하지만 죽음을 피할 방법 따윈 없었던 것이다.
“영감님!”
“……클클, 우규호 그놈이 죽고 나서…… 벌써 이 년이나 지났다. 이 정도면 그래도 오래 산 것 아니냐?”
“아니야, 전혀 그렇지 않아. 영감님, 적어도 나랑 이화궁주의 아이가 태어나는 모습은 보고 죽어야 하지 않겠어? 응?”
주 호법은 죽어 가는 와중에도 어처구니없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놈아, 일단 먼저 이화궁주와 혼약이나 하고나서 말하거라.”
“조만간이야! 그 여자 나한테 이제 거의 다 넘어왔다고!”
그가 그렇게 소리칠 때. 밖에서 진득한 살기가 풍겨 오며 문이 벌컥 열렸다.
“개소리하고 앉았네. 미쳤냐?”
“히익!”
노진녕은 너무나도 익숙한 목소리에 귀신이라도 본 것 같은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냉기를 풀풀 날리고 있는 선우초린 앞에서 노진녕은 벌벌 떨며 어색하게 말했다.
“이, 이화궁주, 이게 사실은 말이지…….”
퍼억-
“끄억!”
쿠당탕탕-! 아무것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다. 그저 선우초린은 번개처럼 발을 움직여 노진녕의 아래턱을 날려 버릴 뿐이었다. 볼썽사납게 날아가 벽에 처박힌 노진녕을 보며 선우초린은 입을 열었다.
“고인 앞에서 망발을 해도 유분수지. 네가 아주 죽으려고 환장했구나.”
“……나 아직 안 죽었다, 이화궁주.”
선우초린은 주 호법의 작은 음성에 움찔하더니 미안한 얼굴을 해 보였다.
“실례했습니다, 주 호법님. 미친개가 짖어서 벌을 내리다 보니 소란을 피우게 되었습니다.”
주 호법은 선우초린의 말을 들으며 힘들게 웃어 보였다.
‘이건 글렀다, 이놈아…….’
노진녕 저 어리석은 놈이 우직하게 들이대고 있었지만 선우초린은 단 한 번도 흔들리는 법이 없었다. 애초에 그녀는 노진녕을 사람으로도 보지 않았던 것이다.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마지막으로 인사를 드릴 수 있게 되어 다행입니다.”
선우초린의 말에 주호법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예전의 그 망나니 같던 과거를 버리고 많이 차분해져 있었다. 화경의 경지를 넘어선 뒤로는 뾰족했던 부분이 많이 둥글어 진 것이다. 물론 그것도 노진녕에게만은 예외였다.
“한데 이화궁주도…… 이제 슬슬 배필을 찾아야 하지 않겠나?”
“…….”
주 호법은 넌지시 입을 열었다. 선우초린은 그 말에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찾을 때 찾더라도 뒤에 있는 저놈은 아닙니다.”
“……흐흠.”
어색한 헛기침을 하며 주호법이 눈을 감을 때. 벽에 처박혀 있던 노진녕이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퍽이나 서운한 얼굴로 선우초린을 바라보았다.
“너 정말 너무한 거 아니야? 이 정도 했으면 받아 주는 척이라도 해 줘야 하는 거잖아!”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하는 걸 보니 별반 타격이 없었던 모양이지?”
“젠장! 내가 그동안 힘이 없어서 너한테 두들겨 맞은 줄 알아?”
쿠드드득-! 노진녕의 몸에서 시커먼 기운이 줄기줄기 뿜어져 나왔다. 천마신공을 끌어 올린 것이다. 하나 선우초린의 표정은 담담했다. 그저 주 호법의 앞을 막아 기세를 차단하며 냉정하게 말했을 뿐이다.
“그래서? 그걸로 날 치게?”
“……으으…….”
노진녕은 주먹을 불끈 쥐고 부르르 떨었다. 지독하게 아름다운 얼굴이었다. 처음 만난 이후로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선우초린의 미모는 조금도 시들지 않았다. 오히려 예전보다 더더욱 화사하게 피어올라서 저 얼굴을 보면 아무리 화가 나도 감히 손을 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노진녕이 그렇게 한참 동안 복잡한 얼굴로 고민하다가 거의 울듯이 말했다.
“너 정말 내 마음을 그렇게 받아 주기 어려운 거냐?”
선우초린은 조용히 노진녕을 바라보았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한껏 진지한 얼굴로 그녀를 응시하는 노진녕. 그를 가만히 지켜보던 선우초린이 말했다.
“어렵진 않지.”
“……어?”
노진녕의 눈동자에 놀람과 함께 희망이 떠오를 때. 선우초린은 입술 끝을 말아 올리며 차갑게 말했다.
“어렵지는 않지만 단지 싫을 뿐이다. 네가.”
“……!”
“넌 나에게 조금의 매력도 없는 사람이다. 그러니 이제 그만 귀찮게 해. 지긋지긋하니까.”
“…….”
노진녕은 큰 충격을 받았는지 입을 쩌억 벌린 채로 한동안 제자리에서 굳어 있었다. 그러다 결국 입을 꽉 다물고 눈물을 글썽거리다가 몸을 돌려서 바깥으로 뛰쳐나갔다.
‘장난이 아니야, 저건…….’
지금까지 노진녕은 선우초린에게 두들겨 맞으면서도 한 가닥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가 자신을 그렇게까지 싫어하지는 않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
‘그녀가 나를 정말로 싫어했다면 진즉에 죽였을 거야.’
그녀는 매번 노진녕에게 가차 없이 폭력을 휘두르기는 했지만 죽이지는 않았다. 물론 죽을 정도로 고통스럽긴 했다. 그렇지만 죽지 않았다. 노진녕은 그거면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방금 들은 매정한 말로 확실하게 알았다. 지금까지 선우초린은 장난이 아니었다. 진심으로 그를 미워하고, 귀찮아하고 있었다. 노진녕은 마음이 찢어지는 듯 괴로웠다.
“으헝!”
눈물 콧물 질질 흘리며 노진녕이 미친 듯이 질주하고 있을 때. 저 멀리 복면을 하고 있는 운휘가 마차에서 내리는 것이 보였다. 노진녕은 그곳으로 방향을 틀며 운휘를 목 놓아 불렀다.
“우뉘이이이―!”
“……!”
운휘는 멀리서부터 괴상한 소리를 지르며 뛰어오는 노진녕을 보고 기겁한 눈빛을 해 보였다. 놈이 두 팔을 벌려서 안을 듯한 자세로 뛰어왔던 것이다. 운휘는 지체 없이 몸을 날렸다. 노진녕은 그런 운휘를 보며 서운한 표정을 짓더니 다시금 안으려고 뛰어들었다. 턱- 운휘는 다가오는 노진녕의 이마를 손바닥으로 강하게 밀어내며 차가운 음성으로 말했다.
“난 너와 놀아 줄 시간 없다. 지금 교주님의 명령을 수행 중이다.”
“크윽! 크으윽! 크읍! 우뉘이이―.”
“……내 이름을 그딴 식으로 부르지 마라.”
노진녕은 운휘의 단호한 말투에 상처받은 얼굴을 해 보였다. 그러다 마차에서 내리는 단리후를 보며 멈칫거렸다. 낯선 사람과 동행하고 있는 걸 보니 정말로 교주님의 명령을 수행 중인 듯했던 것이다.
“우으윽, 우윽!”
노진녕이 서러운 듯 우는 시늉을 해 보았지만 운휘는 그에게 일말의 관심도 두지 않고 단리후를 초류향이 있는 곳으로 데려갔다.
‘나에게는 이제 아무도 없어.’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 누구도 노진녕을 위로해 주지 않았다. 호법 영감님들은 대부분 이미 죽어 버렸고, 주 호법도 곧 이 세상을 떠나 버릴 것이다. 이제 노진녕이 의지하며 기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너무 춥다.’
바닥에 쪼그려 앉아서 서럽게 훌쩍이던 노진녕은 곧 머릿속에 누군가를 떠올리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왜 잊고 있었을까? 아직 그에게는 기댈 만한 사람이 한 사람 남아 있었다.
‘교주님!’
운휘 녀석도 분명 그곳에 있겠지만 상관없었다. 노진녕은 소매로 콧물을 대충 훔치며 전속력으로 초류향의 집무실을 향해 몸을 날렸다. * * * 초류향은 단리후를 데려온 운휘를 보며 미소 지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운휘 님.”
역시 믿을 만한 사람이었다. 일을 맡기면 빈틈이 없고, 언제나 만족스럽지 않은가? 그에 비해……. 초류향은 갑자기 고개를 돌려 집무실의 열린 문을 바라보았다. 운휘가 의아한 얼굴을 할 때. 저 멀리서 누군가가 미칠 듯이 뛰어오는 게 보였다.
‘저놈이?’
노진녕이 해괴한 몰골을 한 채 집무실로 뛰어오자 운휘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때.
“교주니이이임!”
코가 막혔는지 코맹맹이 목소리를 하며 노진녕이 집무실에 뛰어 들어왔다. 그러곤 곧장 초류향 앞에 무릎을 꿇으며 다짜고짜 선우초린과 맺어지게 해 달라고 빌기 시작했다. 그동안의 경과를 두서없이 떠들어 대던 노진녕은 결국 바닥에 이마를 찧으며 말했다. 쿵쿵쿵-!
“제발 부탁합니다, 교주님. 제발…….”
“…….”
초류향은 난감한 얼굴을 해 보였다. 언제나 그랬지만 이 사람은 너무도 감정적이었다. 지금 그의 처지나 기분이 어떠한지는 잘 알았지만, 초류향이 나서서 직접적으로 도와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본인들의 문제였으니까. 그때 거북이처럼 바닥을 엉금엉금 기어서 초류향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은 노진녕이 말했다.
“교주니이임. 살려주세요! 으어어헝! 저 그 여자 아니면 죽어요. 크흐흐흑!”
“…….”
결국 노진녕이 땡깡을 부리며 서럽게 울기 시작하자 초류향은 이마를 짚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운휘는 이 기가 막힌 상황에 크게 분노한 얼굴을 해 보였다. 그리고 노진녕을 떼어 놓기 위해 그의 뒷목을 힘 있게 잡아챘지만 허사였다.
“시, 싫어!”
“……그만하고 떨어져라.”
“…….”
하나 노진녕은 입을 꾹 다물고 고집스러운 표정을 한 채 전력을 다해서 초류향의 바짓가랑이를 물고 늘어졌다. 여기서 힘을 더 줘서 끌어낼 수도 있지만 그렇게 되면 분명 초류향의 의복이 상하게 될 터. 운휘가 난감해하고 있을 때. 초류향이 말했다.
“……가서 이화궁주를 불러와 주시겠습니까, 운휘 님?”
“……알겠습니다.”
운휘가 노진녕의 뒷목을 내려놓으며 분노한 눈으로 그를 한 번 노려보았다. 그리고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화궁주를 찾으러 간 것이다. 잠시 후 운휘는 이화궁주와 함께 초류향의 집무실에 들어섰다.
“데려왔습니다.”
“이화궁주가 교주님을 뵙니다.”
선우초린이 예의를 갖추자 초류향은 고개만 끄덕인 뒤 곧장 본론을 꺼내었다.
“상황을 보면 대충 짐작은 하실 겁니다, 이화궁주. 단도직입적으로 묻겠습니다만, 정말 노진녕 님이 싫으신 겁니까?”
“예.”
“…….”
일말의 망설임도 없는 대답. 초류향은 예상했던 대답이 나오자 짧게 한숨을 내쉰 후 물었다.
“누구 다른 사람을 마음에 품고 계신 겁니까? 그런 것이 아니라면 한 번쯤은 노진녕 님을 고려해 봐도 되지 않겠습니까?”
“실례지만 저는 이미 마음에 품은 사람이 있습니다.”
“……!”
노진녕을 비롯해서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얼굴에 놀람이 떠올랐다. 초류향이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자신의 바짓가랑이를 잡고 있던 노진녕을 가볍게 털어냈다. 그러자 노진녕의 몸이 붕 떠올라 저 멀리 의자에 떨어졌다. 동시에 초류향이 입을 열었다.
“정말입니까, 이화궁주?”
“예.”
이화궁주 선우초린. 그녀의 표정은 진지했고, 거기에는 단 한 점의 거짓도 보이지 않았다. 그랬기에 초류향은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축하할 일이군요. 그대에게 그런 사람이 있는 줄 알았다면 이렇게 실수를 하진 않았을 텐데……. 실례가 많았습니다. 노진녕 님은 제가 알아서 수습하겠습니다.”
그때 저 멀리 날아가 기둥에 처박힌 노진녕이 얼빠진 얼굴로 입을 열었다.
“거짓말이지! 교주님, 저건 거짓말이 분명합니다! 진짜면 네가 좋아하는 그 사람이 누군지 말해 봐!”
초류향은 바락바락 소리치는 노진녕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 선우초린을 응시했다.
“굳이 이 자리에서 말씀하실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여기부터는 지극히 개인적인 영역이라 본 것이다. 초류향은 이런 사생활을 억지로 캐내듯이 알아내고 싶지 않았다. 그때 선우초린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닙니다. 이 자리에서 말할 수도 있습니다.”
초류향의 눈에 의아함이 떠오를 때. 선우초린은 갑자기 옆에 있던 운휘의 복면을 벗겨 내더니 그에게 짧은 입맞춤을 하며 말했다.
“바로 이 사람입니다. 교주님.”
“……!”
노진녕, 아니 심지어 초류향의 얼굴에도 경악이라는 감정이 떠올랐다. 그건 이 상황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단리후 역시 마찬가지였다. 모두가 충격과 공포에 빠져 있을 때. 초류향의 얼굴에 묘한 감정들이 일순간 복합적으로 떠올랐다. 변화를 거듭한 끝에 초류향의 얼굴에는 최종적으로 어떤 배신감에 가까운 감정만이 남았다.
“……전, 전혀 몰랐던 일입니다, 교주님.”
운휘 역시 그답지 않게 말을 더듬으며 당황한 얼굴로 선우초린을 바라보았다. 그때 선우초린이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좋아합니다, 운휘 님.”
“……!”
“저와 혼약해 주세요.”
“끄, 끄어억!”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노진녕이 결국 삿대질을 하다가 게거품을 물며 뒤로 쓰러졌다. 하나 지금 그에게 관심을 보이는 사람은 이곳에 아무도 없었다. 그만큼 너무도 엄청난 사건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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