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Shura RAW novel - Chapter (33)
제33화 남만야수문(2013.05.06 )
조기천은 침상에서 몸을 일으키다 얼굴을 찌푸렸다.
오른팔에 감각이 없었다. 어깨부터 손가락 끝까지. 마치 팔 모양을 한 고깃덩어리를 붙여놓은 듯한 이질감이 느껴졌다.
그런 오른팔을 주물럭거리며 조기천은 기억을 곱씹어보았다.
‘이무기라…….’진법 안에 생명체가 존재한다는 것은 그의 지식에 비추어 생각해볼 때 절대 불가능했다.
인간이 인위적으로 비틀어 만든 공간. 그것이 진법이다.
신이 만든 것이 아니라 인간이 만들었기에 그 공간은 지극히 부자연스럽고, 불안정했다. 생명체가 장기간 살 수 없는 공간인 것이다.
하지만…….
단 하나 예외가 있었다.
‘그것을 확인해봐야 한다.’다시 한 번 진법 안에 들어가 꼭 알아봐야 할 게 생겼다.
놈에게 생으로 뜯겨 나간 오른팔. 그것은 조기천에게 어떠한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만약 지금 그가 생각하고 있는 가설이 맞다면 오른팔을 다시 되찾아올 수도 있을 것이다.
조기천은 비틀거리는 몸을 억지로 일으켜 침상에 걸터앉았다. 그러다 문득 뭔가 이해가 안 되는지 의아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너무 조용하구먼.’본래도 그다지 시끄럽진 않았던 곳이지만 이건 지나치게 조용하지 않은가?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가자 이상하게도 사람이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이건 무언가 수상했다. 조기천은 서둘러 걸어 취의청으로 갔다. 다행히 그곳에는 사람이 있었다.
“뭐 좀 물어봐도 되겠소이까?”정신없이 서류를 들여다보고 있던 빼빼 마른 중년 문사가 조기천을 보고 눈을 몇 번 깜빡였다. 그러다 이내 그의 눈가에 짙은 의심이 떠올랐다.
“그쪽은 누구신데 이곳에 계십니까?”곧장 사람을 부를 듯한 그의 얼굴을 보며 조기천이 난감한 표정을 해 보였다.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잠시 고민하고 있는데 문득 공손천기가 주었던 목걸이가 떠올랐다. 불꽃이 넘실거리는 모양의 목걸이. 천마신교의 힘이 필요할 때 그것을 꺼내 보이면 된다고 하며 주었던 것이다.
“혹시 이것을 알아보겠소?”과연 그 목걸이를 꺼내어 보여주자마자 중년문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중년문사는 한동안 무언가를 생각하다가 곧 공손한 태도로 자리에서 일어나 조기천을 향해 허리를 숙였다.
“무슨 일로 이곳까지 오셨습니까?”다행히 먹힌 모양이다. 조기천은 목걸이를 다시 품 안에 잘 챙겨 넣으며 입을 열었다.
“물어볼 게 있소.”“제가 아는 것이라면 성심을 다해 답해드리겠습니다.”“여기까지 오는 동안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던데 무슨 일이라도 난 것이오?”중년문사는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
“교주님께서는 오늘 반야평에 나가셨습니다.”“반야평!”조기천은 그제야 왜 이곳에 사람들이 없었는지 알 수 있었다.
천마신교와 정도맹이 목숨을 건 전투를 벌일 장소. 그곳이 바로 반야평인 것이다.
‘오늘이었구나.’그 생각을 떠올림과 동시에 뒷머리에 선뜻한 느낌이 스쳐 지나갔다. 어떤 불길한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기 때문이다.
“류, 류향이는 어찌 되었소?”중년문사가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금세 표정 관리를 하며 입을 열었다.
“혹시 초류향 소공자님을 말씀하시는 것입니까?”“그렇소.”“공자님께서는 아침 일찍 흑치골에 오르셨습니다.”흑치골. 거기에는 악중패의 무덤이 있었다.
그 사실을 떠올리기가 무섭게 조기천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아까부터 뒷머리를 잡아채는 듯한 불길한 느낌. 그것의 정체가 바로 이것이었던 모양이다.
“그 아이가 산에 오른 지 얼마나 되었소?”중년문사는 다급한 얼굴로 물어보는 조기천을 보며 같이 당황한 표정을 해 보였다.
“아, 아침 식사를 하고 오르셨으니 아마 반나절쯤 지난 것 같습니다만…… 한데 무슨 문제라도 있는 것입니까?”조기천은 더 이상 이야기를 듣고 있지 않았다. 늙고 지친 몸을 채찍질해가며 서둘러 흑치골을 향해 움직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 * *
[나는 용이 되고 싶다.]예상했던 소원. 초류향을 내려다보는 이무기의 눈 깊은 곳에서 말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어떤 간절함이 엿보였다. [그것을 이루어줄 수 있겠는가? 작은 인간이여.]두근-아까부터 귓가에 천둥처럼 울리고 있는 심장박동 소리.
그것은 초류향의 것이 아니었다. 눈앞에 있는 거대한 이무기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심장 소리가 귓가에 이명이 되어 울리고 있었던 것이다.
[겁먹지 마라 애송이.]겁을 먹지 말라고? 저 거대하고 위압감 넘치는 몸체를 보고도 어떻게 멀쩡할 수 있단 말인가? 저 앞에서 멀쩡한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일 것이다. [진짜 용은 이 녀석보다 훨씬 크다. 이놈은 진짜에 비한다면 귀여운 수준이지.]제갈량의 말을 들은 초류향의 입가에 설핏 옅은 웃음이 스쳐 갔다. 재미없는 농담이었다.하지만 제갈량의 이 어울리지 않는 농담 덕분에 초류향은 긴장이 조금 풀리는 것을 느꼈다. 천천히 가슴을 움켜쥔 손을 내린 초류향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제가 무엇을 어떻게 해드리면 되겠습니까?”천 년 전. 제갈량이 했다는 약속. 초류향에게는 그것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
따지고 보면 초류향의 첫 번째 스승은 조기천이 아니라 제갈량이었다. 제갈량에게 정관법을 배웠고, 산법에 관한 막대한 지식들을 전해 받았다. 그래서 이렇게나마 보답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는 것에 초류향은 오히려 감사했다. 이번 일은 초류향의 입장에서 마다할 이유가 전혀 없는 일이었다.
진지한 얼굴을 하고 있는 초류향을 바라보던 이무기가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용이 되어 승천하기 위해서는 여의주가 꼭 필요하다.]초류향은 이무기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그랬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가끔 들었던 용에 대한 이야기들 중에 여의주에 관한 것은 항상 빠짐없이 있었다.
그렇다면 일은 단순했다. 이무기의 역린을 재료로 여의주라는 것을 만들면 되는 것이다.
초류향에게는 착환법(捉換法)이 있지 않은가? 제갈량에게서 정관법 다음으로 배운 이 착환법은 세상 만물의 숫자를 임의로 바꿀 수 있는 무시무시한 비술이었다.
‘제한 사항이 좀 많은 게 흠이긴 하지만…….’다행히도 지금 상황에서는 크게 문제 될 것은 없어 보였다. 눈앞에 붉은빛을 사방으로 내뿜고 있는 비늘이 보였다. 이무기의 턱밑에 놓여 있는 저 역린. 착환법을 통해 저것을 여의주로 바꾸면 되는 일이었다. 별로 어렵지도 않은 일.
그렇게 간단히 생각하고 천천히 호흡을 고르는데 제갈량이 진지한 말투로 경고해왔다.
[이번 일을 너무 쉽게 생각하지 마라, 애송이. 너는 역린이라는 것이 어떠한 물건인지 아느냐?]초류향은 잠시 멈칫했다.무슨 말을 하려는 것일까? 역린이라는 것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초류향은 모르고 있었다.
아니, 알 리가 없었다. 오늘 이무기라는 것을 난생 처음 보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안다는 말인가?
[용에게만 있는 게 역린이다. 그리고 용의 유일한 약점이 바로 그곳이지. 한마디로 말하자면 섣부르게 잘못 건드렸다간 저놈이 죽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초류향은 저도 모르게 얼굴을 일그러뜨렸다.왜? 왜 갑자기 이제 와서, 준비를 다한 이 상황에서 이런 이야기를 해주는 걸까? 초류향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복잡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때 제갈량이 나직하게 말했다.
[저 녀석도 각오를 다졌으니 너도 각오를 하라는 말이다. 애송아.]각오라…….초류향은 무의식적으로 힐끗 고개를 들어 이무기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황급히 시선을 돌렸다. 이무기의 눈과 정면으로 마주쳤기 때문이다.
‘이건…….’순간 뭔가 무겁고 거북스러운 것이 가슴속에 덜컥 내려앉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너를 믿는다, 인간. 만에 하나 일이 잘못되더라도 그것은 내 운명이니 네가 신경 쓸 필요는 없겠지.]초류향은 속으로 침음을 삼켰다.각오를 다진다. 그것이 의미하는 게 무엇인지 이제야 분명히 느껴졌다.
눈앞에 있는 이무기는 승천에 앞서 이미 죽음까지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결의가 느껴지는 눈과 마주쳐 버렸으니 이제는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용도 이무기도 아닌 어중간한 상태로 무려 천 년을 버텨왔다. 이제는 끝을 보고 싶다.]초류향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눈을 감고 잠시 동안 천천히 심호흡을 했다.‘역시 세상에 공짜는 없다.’그랬다. 세상에 공짜는 없었다.
그동안 제갈량에게 받은 것이 있으니 돌려준다. 등가교환(等價交換). 그것일 뿐이다.
그렇게 긴장으로 위축되려는 마음을 억지로 부여잡고 초류향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서서히 들려 올라가는 초류향의 양손에 물빛이 맺히기 시작했다. 본격적으로 착환법을 펼치기 시작한 것이다.
* * *
“제법 장관입니다. 형님.”“그렇군.”“과연 월인도법입니다. 중원 놈들 전체가 이렇게 들썩거릴 줄이야…… 중원의 실력을 눈으로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입니다.”구릿빛 피부를 가진 두 명의 사내. 그들 중 형으로 보이는 오만한 표정의 사내가 저 멀리 언덕 아래를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운이 좋았다. 생각지도 않은 거물들이 미끼를 물었지. 덕분에 좋은 그림이 되었다.”“거물이라면 암흑마황과 태극검황을 말씀하시는 겁니까?”“그래.”“형님께서도 놈들이 소문만큼 대단할 것이라 여기십니까?”두 명의 사내. 그들은 중원인이 아니었다. 중원보다는 훨씬 남쪽. 남만에 위치했다는 것만 알려져 있고 모든 것이 숨겨져 있는 신비의 문파.
남만야수문(南蠻野獸門). 그곳에서 나온 사람들인 것이다.
“나는 소문 따위 믿지 않는다. 직접 내 눈으로 본 것만을 믿지.”오만한 눈길의 사내. 현 야수문의 후계자이자 역대 최고의 재능을 타고났다는 남자.
구휘(嶇輝).
그는 입가에 가느다란 웃음을 그리며 말했다.
“다른 놈들은 몰라도 저 두 놈은 진짜다. 아버님도 쉽게 승부를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설마 그 정도나…….”“그 정도다. 지금의 내 눈으로는 도저히 가늠이 되지 않을 정도지. 일이 제법 재미있어졌다.”구휘의 동생. 구문하(嶇紊夏)는 입을 다물었다.
그에게 있어서 아버지는 살아 있는 신이었다. 남만의 살아 있는 전설이자 신으로까지 추앙받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와 동격으로 취급되는 것이 바로 형이다.
구휘.
다음 세대에 천하제일이 예정된 남자.
그런 그가 저렇게 말을 하니 믿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직접…… 눈으로 보겠습니다.”“그게 가장 좋겠지.”구휘는 저 멀리 떨어져 있는 천마신교와 정도맹을 보면서 속으로 웃었다. 월인도법을 제일 처음 발견한 것은 천마신교도 정도맹도 아니었다.
남만야수문의 구휘. 중원인도 아닌 그가, 제일 처음 월인도법의 흔적을 발견했었다.
그리고 직접 위험 부담을 감수하고 그 진법 안에도 들어가 보았다.
‘덕분에 말도 안 되는 것을 보고 말았지만…….’어렵사리 진법을 헤치고 안에 들어갔다. 진법에 대해 공부해놓았던 것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겨우겨우 들어가 그 안에서 본 것은 현실과는 너무나도 동떨어진 존재였다.
‘용이라 해야 되나?’인간이 아닌 것과의 만남은 구휘에게 익숙한 일이었다. 덕분에 두려워하지도 겁먹지도 않고 집채만 한 그것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었다.
그러자 보였다. 놈은 용이라는 신령스러운 존재가 아니었다. 정해진 때에 승천하지 못한 이무기였던 것이다. 그때 놈과 나눈 대화는 아직도 똑똑히 기억한다.
[아깝다. 재능이 조금 부족하군…….]놈은 구휘를 보며 진정으로 안타까워했다.그런데 재능이 부족하다고? 구휘는 눈살을 찌푸렸다.
[너는 선택받지 못했다. 그러니 이곳에 있는 것을 볼 자격이 없지. 돌아가라.]구휘는 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말했다.“내 재능이 부족하다 했나?”[그래. 조금 부족하다.]“너는 나보다 뛰어난 인간이 있다고 보는가?”놈은 웃었다. 재미있다는 웃음이다.
[물론이다. 오만한 인간.]태어날 때부터 제왕이 될 운명이었다. 그런 그가 부족하다니?이런 적은 처음이라 구휘는 잠시 석상처럼 우두커니 서서 이무기를 바라보았다. 그러다 피식 웃었다.
“아쉽군.”힘을 써서 죽일까 했지만 그건 그의 방식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때 더 재미있는 그림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부디 네가 생각하는 놈을 만났으면 좋겠다.”[곧 그리될 것이다.]용과 작별하고 진법 밖으로 나온 구휘는 자신의 머릿속에 떠올랐던 일을 진행했다. 그리고 그 결과가 바로 이것이다.
정마대전.
이 모든 일의 뒤에는 처음부터 남만야수문이 있었다. 어둠 속에 가려져 있던 그들이 서서히 세상을 향해 그 사나운 이빨을 드러내려 하고 있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