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Shura RAW novel - Chapter (35)
제35화 꼬마 괴물(2013.05.13.)
사람이란 종종 생각지도 못한 힘을 발휘할 때가 있다. 지금이 그랬다.
조기천은 자신에게 어떻게 이런 힘이 나왔을까 스스로 의아해할 만큼 필사적으로 내달렸다. 정말 죽을 만큼 달리고, 또 걸어서 정말 힘들게, 힘들게 흑치골에 도착했다.
곧 죽을 사람처럼 헐떡대며 잠시 진법 앞에 멈춰 선 조기천은 그 와중에도 생각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간절하게 빌었다.
‘부디 내가 너무 늦지 않았기를…….’눈앞에 펼쳐진 이 진법. 확실히 무언가 이상했다.
진법 안에 생명체가 있다는 것도 괴상했고, 그 생명체라는 것이 용이라는 점도 괴이했다. 온통 이해가 안 되는 것투성이였다.
‘하지만…….’너무도 이상했기 때문에 보이는 것도 있었다. 조기천은 아직도 펄떡거리는 심장을 천천히 달래며 진법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이제 시간이 없었다.
그가 생각했던 단 한 가지 가능성. 그 가능성이 들어맞는다면 이 진법을 파훼할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 조기천이 바라는 게 하나 있다면 제자가 그 괴물과 맞닥뜨리지 않았으면 하는 것 정도였다. 조기천은 이를 악물고 진법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 * *
세상은 숫자로 이루어져 있다. 그것이 진리다.
월인삼라산법술해.
그 책을 보고 제갈량을 만나고, 산법으로 세상의 진실과 마주했을 때부터 초류향의 인생은 변했다. 지나치게 평탄했던, 한 소년의 인생이 그날을 기점으로 송두리째 바뀐 것이다. 지금도 그랬다.
‘만약 그때 그 책을 보지 않았으면 어땠을까?’분명 지금과는 다른 현재가 있었을 것이다. 초류향은 갑자기 떠오른 생각들을 고개를 저으며 떨쳐낸 후 천천히 심호흡을 했다. 정관법을 사용한 것이다. 지금 초류향의 눈에는 이 세상이 완벽한 숫자의 나열로 보였다. 숫자로 온통 이 세상이 뒤덮여 있는 것이다.
‘여기서부터가 중요하다.’착환법.
그것을 발휘하기 위해 초류향은 숨을 멈췄다. 호흡을 완전히 끊은 것이다. 때문에 이 상태로 버틸 수 있는 시간은 그다지 길지 않았다.
초류향은 재빨리 앞으로 손을 뻗었다. 그러자 붉게 달아오른 이무기의 역린이 손에 만져졌다. 단단하고 딱딱한, 쇠붙이의 감촉. 하지만 초류향의 물빛으로 빛나는 손은 그것을 두부처럼 쉽게 통과했다.
뿌드득-
이무기의 몸이 작게 경련하듯 떨리는 게 느껴졌다.
분명 말로 표현하기 힘든 고통이 전해졌을 터. 초류향은 그것을 애써 외면하며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보았다. 그 역린 안에 있는 감춰진 진실된 모습을.
‘이건…….’초류향은 자신도 모르게 눈을 부릅떴다. 지금 초류향의 눈에 보이는 것은 역린이 아니었다. 복잡하게 엉켜 있는 숫자들의 덩어리. 그것이었기 때문이다.
‘젠장.’초류향은 입술을 깨물었다. 이제야 비로소 이것이 여의주의 재료라 불리는 이유를 깨닫게 된 것이다.
숫자들이 너무 복잡하게 뒤엉켜 있었다. 여태까지 단 한 번도 본 적 없었던 혼돈이 거기에 있었던 것이다. 단순히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답답해질 정도였으니까.
도대체 어디부터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 모를 정도로 실타래처럼 엉켜 있는 그것들 사이에서 진짜를 찾아내야만 했다.
‘분명히 규칙은 있다.’숫자들이 이렇게 어지럽게 엉켜 있었지만 분명한 형태를 띠고 있었다. 그렇다는 말은 무언가 규칙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지금 초류향은 그 규칙부터 파악해야 했다. 정확하고 확실한 규칙. 그것을 파악하고 완전한 형태로 끼워 맞춰놓아야 여의주라는 것이 완성될 것이다.
‘하지만…….’초류향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벌써부터 호흡이 가빠오는 것이다. 어렸을 적부터 무공이나 단련과는 거리가 먼 육체였다. 당연히 호흡을 끊고 움직일 수 있는 시간은 적었다. 그것이 지금 초류향을 힘들게 했다.
‘일단 물러선다.’초류향은 어금니를 꽉 깨물며 역린 속에 집어넣었던 손을 쑤욱 빼내었다. 그러자 이무기의 그 커다란 몸 전체가 다시금 가늘게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그 모습이 너무도 고통스러워 보였다.
잠시 초류향은 입을 열어 무언가를 말하려 했다. 하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단지 이를 악물고 머릿속으로 필사적으로 계산을 할 뿐이었다.
‘젠장! 젠장!’조금 전에 분명히 보았던 엄청난 숫자들의 집합체. 도저히 그 자리에서 해답을 낼 수 없었다. 그랬기에 일단 그것들을 통째로 머릿속에 다 구겨 넣은 상태였다.
하지만 제아무리 머리가 좋은 초류향이라 하더라도 이 정도로 규칙성도 내용도 없는 숫자를 몽땅 외우는 것은 사실상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이건 분명 허용량을 크게 초과하는 짓이었다. 그래도 억지로, 거의 우격다짐 식으로 해내었다.
때문에 지금 초류향은 그 어떤 잡념도 잡생각도 떠올리기 어려운 상태였다. 방금도 집중이 조금 흩어지는 것만으로도 숫자들의 일부를 흘려버릴 뻔하지 않았던가? 가까스로 그런 최악의 상황은 면했지만 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졌다.
‘사과는 끝나고 나서 하자.’초류향은 머릿속으로 조금 전에 보았던 거대한 숫자의 집합체를 조그마한 덩어리로 나누기 시작했다. 동시에 완전한 형태의 숫자를 또렷하게 기억해내는 작업도 병행했다.
계산의 정답을 찾는 것. 그리고 본래의 완전한 형태의 숫자를 기억하는 것.
지금 이 두 가지 일을 동시에 해내야 하는 것이다.
이를 악물고 초류향은 두 손을 펴 들었다. 그리고 양손의 집게손가락을 들어 무언가를 빈 허공에 써 내려갔다. 마치 종이에 글을 써서 남기는 것처럼…….
아무것도 없는 빈 허공에 머릿속에 있는 것을 빠르게 적어 내려가는 것이다. 놀라운 것은 오른손과 왼손, 두 손이 써 내려가고 있는 숫자가 각기 완전히 다르다는 점이었다. 한쪽 손으로는 복잡한 계산을, 다른 한쪽 손으로는 기억하고 있는 것을 써 내려가고 있던 것이다. 남들이 보면 기겁해할 만한 짓을 초류향은 당연하다는 듯이 하고 있었다.
‘우선은…….’제일 먼저 실타래의 끝부분을 찾아야 했다. 그것을 위해 머리를 필사적으로 굴리는 초류향의 표정이 점점 다채롭게 변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계산의 복잡함과 허용량을 초과한 기억 때문에 찌푸린 안색이었는데 차츰 시간이 지날수록 얼굴이 무덤덤해지기 시작했다. 한계까지 쥐어짜지고 있는 머릿속과는 반대로 초류향의 표정은 점점 평안해지고 있었던 것이다.
[몰입했군.]제갈량은 작게 중얼거렸다.정말 완전한 몰입이었다. 지금 초류향은 눈앞에 있는 거대한 이무기의 존재도 잊어버렸고, 지금 스스로가 진법 안에 있는 것 자체도 잊어버렸다. 그런 자질구레한 것을 기억하기에는 지금 머릿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 전쟁과 같은 계산이 그렇게 만만하지 않았던 것이다.
지금이라면 정말 코앞에 천둥벼락이 떨어진다고 해도 초류향은 인식하지 못할 것이다. 그 정도로 완전히 계산 속으로 빠져 들어간 것이다.
[너와 같은 종류의 인간은 처음 본다.]이무기가 말하자 제갈량은 피식 웃었다. [천노, 나를 이런 꼬마 괴물과 비교하지 마라.][괴물이라…….][그래. 이놈이야말로 괴물이다. 지금 눈으로 보면서도 믿기지가 않는군.]제갈량이 혀를 내두르고 있는 와중에도 초류향의 계산은 멈추지 않았다.작게 중얼거리며 줄곧 무언가를 써 내려가던 초류향은 종국에는 양손을 들고 멍한 표정을 한 채 손가락 끝만 까딱거리고 있었다. 그 손가락 까딱거림 한 번에 조금 전까지 했던 수없이 많은 계산식들을 풀어내고 있었던 것이다. 불필요한 동작들을 최대한 줄이고 줄이는 것이다.
그것을 바로 옆에서 생생하게 지켜보고 있던 제갈량과 이무기는 한층 더 흥미진진한 표정이 되었다.
초류향의 재능 중에 최고로 무서운 것은 바로 이 집중력이었다. 탁월한 두뇌도, 또래답지 않은 풍부한 지식도 이 아이의 장점이긴 했지만 이토록 무서운 집중력은 그 모든 다른 장점들을 다 합친 것만큼이나 대단한 것이었다.
몰입도가 좋으니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계산 속도가 빨라지고 있었다. 원래도 빨랐던 그것이 점점 더 빨라지고 있었던 것이다.
[호오?]제갈량은 섭선을 매만지며 초류향의 계산하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았다.이 아이는 단번에 여러 단계를 뛰어넘고 있었다. 기존에 알던 지식에 지식을 더해서 새로운 지식을 만들고, 그 새로운 지식을 바탕으로 또 다른 새로운 지식을 끊임없이 낳고 있었던 것이다. 복잡한 계산식과 숫자들도 그런 초류향 앞에서 점차 빠르게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것은 제갈량으로서도 굉장히 신선한 경험이었다.
‘보인다.’저 멀리, 아주 희미하게 실마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자 초류향은 호흡하는 것 외에 외부의 모든 정보를 차단한 채 더욱 깊은 내면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심지어 두 눈을 멀쩡히 뜨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통해 받아들이는 시각적인 정보조차도 초류향의 뇌리에 기억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손가락의 까딱거림도 결국엔 완전히 멎어버린 채 초류향은 멍한 시선으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때, 복잡한 숫자들 사이에서 미묘하게 종류가 다른 숫자들이 보였다.
‘찾았다!’ 잔뜩 긴장하고 있던 초류향은 그것을 결코 놓치지 않았다. 도망치듯 계속해서 자취를 숨기는 그것을 살쾡이처럼 쫓고 또 쫓아서 결국 그 꼬리를 잡아챘다.
멍하게 풀려 있던 초류향의 눈가에 생기가 감돈 것은 그때쯤이었다. 해답이 보이자 차츰 주변의 환경도 눈에 들어왔다.
그러자 이상한 것이 보였다. 이무기의 고개가 초류향을 향하고 있는 게 아니라 초류향이 들어왔던 입구를 향해 있었던 것이다.
‘뭐지?’대체 시간이 얼마나 지난 것일까? 그 동안 무슨 일이 있었지?
해답이 보이고 여유를 갖자 비로소 주변 광경이 눈에 들어오고 그동안 미뤄놓았던 정보들이 폭포수처럼 머릿속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진동? 그러고 보니 진동이 있었다.’그랬다. 갑자기 바닥을 떨어 울리던 그 묘한 떨림. 그것을 깨닫고 이무기의 시선을 따라가던 초류향은 놀라서 눈을 부릅떴다.
‘스승님?’스승님이었다.
조기천 스승님이 지친 안색으로 입구 쪽에 서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이곳에?’초류향조차 진법을 뚫고 들어오는 것이 가능했으니 진법의 달인인 조기천도 돌파할 수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정관법은 없었지만 조기천은 진법에 있어서 천하제일을 다투는 사람이다. 그만의 계산 방법으로 그다지 어렵지 않게 진법을 통과했을 터.
하지만 이곳은 오면 안 되는 곳이었다. 초류향은 위험한 생각이 들었기에 조기천을 향해 움직이려는 이무기의 앞을 필사적으로 가로막았다.
“스승님!”이무기는 입을 벌려 조기천을 통째로 삼키려다가 초류향의 외마디 말에 바로 코앞에서 움찔하며 멈춰 섰다.
[아는 인간이더냐?]“제 스승님입니다.”[스승이라…….]그러고 보니 인간들의 관계에 그런 애매모호한 것이 있다는 것이 생각났다. 낳아준 부모도 아니면서도 부모와도 같은 존재라 했던가? 이무기는 조기천을 잠시 내려다보다 이내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슈르륵-
흑색의 윤기 가득한 비늘이 물결처럼 출렁였다.
그런 이무기의 행동을 지켜보던 조기천은 어리둥절해하는 표정이 되었다. 그러다 곧 무언가가 떠올랐는지 놀란 눈을 한 채 입을 열었다.
“선택한 것인가? 그 아이를?”이무기는 조기천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선택했다.]조기천은 잠시 멍한 눈을 해 보였다. 그러다 곧 너털웃음을 터트리곤 소매에서 무언가를 꺼내들며 말했다.“그럼 굳이 이걸 가져올 필요가 없었던 거로구먼.”쩔그럭―
돌멩이들이 부딪치는 소리. 조기천은 천마신교에게 받았던 수많은 보석들을 가지고 왔던 것이다. 그것을 보던 이무기가 눈에 이채를 띄며 말했다.
[알아챈 것인가? 그것을?]조기천은 희미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렇다네. 파훼법도 알아냈지.”다행히 조기천이 생각하고 있던 진법의 또 하나의 가능성. 그것이 들어맞았었다.
이무기는 잠시 말을 하지 않고 조기천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그리고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가치가 있는 인간이구나.]진법의 비밀. 그것을 이렇게 단기간에 파훼하는 녀석이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못했다.대단한 인간이 아닌가? 이무기는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더니 숨을 크게 들이켰다.
왠지 모르게 위험한 모습. 초류향이 그 모습을 의아한 얼굴로 보고 있을 때 이무기는 크게 들이켠 숨을 곧장 조기천을 향해 토해냈다.
“스승님!”초류향의 다급한 비명이 동굴 안을 크게 울렸다. 다급성을 토해내며 초류향이 조기천을 향해 달려갈 때 이무기가 말했다.
[두려워하지 마라. 저 인간에게서 빼앗았던 것을 돌려주었을 따름이니…….]그 말을 듣고 초류향이 무언가 떠오르는 것이 있어서 기대감을 가지고 입을 열었다.“오른팔을 움직일 수 있으시겠습니까?”조기천 역시 같은 생각을 한 것인지 조심스럽게 오른팔을 들어 올려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움직일 수 있구나.”“다행입니다. 정말 다행입니다, 스승님.”일이 잘 풀린 것에 초류향이 안도의 웃음을 지을 때 조기천이 말했다.
“나야말로 다행이구나. 네가 무사하니 마음이 크게 놓인다.”“스승님…….”조기천은 무슨 말을 더 하려다가 긴장이 탁 풀렸는지 바닥에 힘없이 주저앉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다행이다. 나는 네가 어찌 되는 줄 알고…….”뒷말은 더 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걱정했던 것이다.
그 진심이 느껴지자 초류향은 민망한 듯 뒷머리를 긁적였다. 자신 역시 방금 전에 그런 기분이 아니었던가? 스승님인 조기천이 이무기에게 어떻게 되는 줄 알고 심장이 벌렁거렸던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했다.
“저는 무사합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스승님.”“그래.”조기천은 자리에서 힘겹게 일어섰다.
그의 제자는 이제 안전했다. 그것을 확인했으면 된 것이 아닌가?
초류향은 이 와중에 갑자기 호기심이 고개를 쳐드는 것을 느끼며 속으로 슬그머니 웃었다. 그러다 어쩔 수 없다는 것을 느끼며 입을 열었다.
“진법의 파훼법을 알아내셨습니까?”초류향은 여차하면 착환법을 써서 진법의 핵을 부숴버릴 생각만 하고 들어온 것이지 파훼법까지는 모르고 있었다. 진법 안에 들어온 지금도 파훼법을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조기천은 희미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이 진법은 여태껏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특이한 종류의 진법이더구나.”초류향은 눈을 반짝였다. 천하에 있는 진법에 대한 것은 거의 다 알고 있는 스승님이다. 그런 그가 여태껏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던 진법이라 말하니 호기심이 일어난 것이다.
“어떤 종류의…….”조기천은 잠시 생각을 정리하고는 이무기를 똑바로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잘 보거라. 지금 이 동굴 안과 바깥 사이에는 뚜렷한 경계가 있지 않느냐?”경계? 초류향은 조기천의 말에 이끌려 동굴 입구를 바라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다. 확실히 이 동굴 안에 들어오는 곳과 바깥은 그 경계선이 뚜렷했다.
“무언가 떠오르는 것이 없느냐?”조기천의 말에 초류향은 생각에 잠겼다. 스승님이 이렇게 말했다는 것은 이것으로 충분히 그 정답을 짐작할 수 있을 거라는 뜻. 그게 뭘까?
‘경계가 뚜렷하다?’진법에서 경계라는 것은 매우 중요했다. 안쪽 세상과 바깥쪽 세상을 확실하게 나누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진법 내부에 이 정도로 뚜렷한 경계가 있다?
초류향은 거기까지 생각하다가 낮게 감탄성을 토해냈다.
“아!”“생각이 났느냐?”고개를 끄덕이던 초류향이 급하게 말했다.
“확인을 하고 와도 되겠습니까?”“직접 눈으로 봐두는 것이 좋겠지.”비틀거리는 걸음으로 초류향은 동굴 입구까지 걸어갔다.
‘그게 가능할까?’가능하다면 이건 정말 대단한 것이었다. 입구를 한참 들여다보던 초류향은 잠시 바깥에 나갔다가 다시 들어왔다. 그리고 멍청하게 굳어버렸다.
“이제 알겠느냐?”“예. 정말 이 진법은…… 천하제일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것 같습니다.”초류향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이무기를 바라보며 낮게 중얼거렸다.
“하나의 진법을 감싸는 진법…… 즉, 진법 안의 진법을 만들어내다니…… 이건 대체.”이 정도로 높은 사실감을 보이는 진법은 단 하나를 만들어내는 데에도 엄청나게 복잡한 계산식이 필요했다.
그런데 그런 것이 두 개. 따로 진법을 두 개 만드는 것쯤은 초류향도 지금 당장 가능했다.
문제는 진법 안에 전혀 다른 형태의 진법을 하나 더 넣었다는 점이다. 이것은 고려해야 될 대상이 무한정 늘어났다는 소리가 아닌가? 인간의 머리로는 도저히 불가능한 계산의 영역이다. 그것을 해낸 것은 분명 저 이무기일 터.
‘한 번에 끝낸다.’아까 같은 고통을 되풀이할 순 없었다. 이번에 끝낼 생각을 하며 초류향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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