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Shura RAW novel - Chapter (42)
제42화 전설의 월인도법(2013.06.06.)
천마신교는 정마대전 직후 중원에서 철수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당초의 목적이었던 월인도법의 회수에 성공했고, 정도맹의 공격을 압도적인 힘으로 격퇴했으며 진정한 천하제일이 누구인지 세상에 확실하게 보여주었다.
그러니 더 이상 이곳에 볼일이 없던 것이다. 공손천기는 자신의 친위대를 제외한 모든 병력을 십만대산으로 신속하게 철수시켰다.
그리고 십만대산에서 그를 찾아온 노인을 보며 오랜만에 입가에 가느다란 미소를 지었다.
“약쟁이 할아범이 이 먼 곳까지 무슨 일이야?”“그야 교주님이 걱정돼서 찾아왔지요.”선우조덕. 전형적인 선풍도골(仙風道骨:선인의 풍채와 도사의 골격)의 용모인 노인이었다. 그는 교주를 만나자마자 그 몸의 이곳저곳을 살펴보더니 크게 안도의 한숨부터 내쉬었다.
“이 상태로 용케 참으셨습니다. 훌륭하십니다.”“내가 원래부터 인내심이 대단하잖아. 사부한테 죽어라 맞았을 때도 버텼는데, 뭐.”“어련하시겠습니까? 팔부터 일단 줘보세요.”공손천기는 순순히 오른손을 내밀었다. 약제당주 마의(魔醫) 선우조덕. 그는 팔대호법들 중에서 유일하게 공손천기와 뜻이 같은 온건파였다.
다른 이들은 이제나 저제나 중원에 쳐들어가자고 난리법석인 데 반해 선우조덕은 공손천기처럼 다툼을 싫어하고 조용하게 살아가는 것을 선택하는 쪽이었다.
게다가 그는 남들에게 말하지 못하는 공손천기의 치명적인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정말 다행입니다. 아직 기주대법(記呪大法:주문을 기록해놓은 물건. 일종의 봉인술)이 완전히 풀리지는 않았어요. 부서지기 직전이긴 하지만.”“억지로 뺐다가 다시 끼워 넣어서 그런가봐.”공손천기의 팔목을 감싸고 있는 검은색 팔찌. 그것은 공손천기의 넘치는 힘을 억제하기 위해 만들어놓은 봉인 장치였다.
백무량을 박살내기 위해 그것을 막무가내로 개방했었기 때문에 사실 지금 당장 부서져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상태였다.
“대법이 풀린 걸 억지로 다시 끼워 넣으니 이 모양이죠. 다행히 예비용으로 하나 더 만들어놨으니 망정이지 큰일 날 뻔했습니다.”“그래도 이거 채우는 요령을 어설프게나마 배워놔서 다행이었지.”“다시 한 번 보여드릴 테니 이번에는 완전히 기억하세요.”“그러지.”선우조덕은 소매에서 똑같은 모양의 묵색 팔찌를 꺼내 들어 공손천기의 팔목에 다시 채웠다. 그리고 무어라 작게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우웅-
작은 울림과 함께 근육이 쪼그라드는 듯한 통증이 느껴지자 공손천기는 얼굴을 작게 찡그렸다. 몇 번을 경험해보아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전신의 근육이 강제로 조여지는 이 더러운 기분은.
“또 영감의 신세를 지는구만.”“어릴 때부터 그랬으면서, 새삼스럽습니다.”“그건 그렇지.”공손천기는 피식 웃었다. 역대 천마신교의 교주들 모두가 공손천기와 비슷한 증상을 앓고 있었다.
광혈증. 이것은 수라환경의 부작용으로서 그 경지가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더 심각해지는 증상이었다. 당연히 역대 최강이라 알려진 공손천기는 광혈증이 유달리 심했다.
증상이 너무 심해서 기주대법을 새겨놓은 도구를 사용하지 않고서는 억제하기 힘들 정도였으니까.
“힘이 넘치시는 건 좋은데. 억누르지 않으시면 폭주하실 겁니다. 그럼 뒷감당이 안 돼요.”“알고 있어.”천하제일 공손천기. 그가 미쳐 날뛰면 세상에 지옥도가 펼쳐질 것이다. 이제 그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천하에 없었으니까.
“그나저나 어디 계십니까?”“누구?”“후계자를 정하셨다면서요. 저에게도 보여주셔야죠.”“하여간 늙은이들의 관심사는 그것뿐이지.”공손천기는 힘이 빠진 오른팔을 주물럭거리며 투덜댔다.
“제가 죽기 전에 후계자를 볼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못 보고 가나 했습니다.”“어련하시겠어?”선우조덕은 툴툴거리는 공손천기를 바라보며 흐뭇하게 웃었다. 어릴 때부터 모셔왔던 공손천기다. 그의 타고난 천재성과 남다른 재능은 오래전부터 질리게 보아왔다.
하지만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그것을 제대로 이을 만한 후계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그냥 이대로 공손천기의 강대한 무공이 끊어지나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게 웬걸?
드디어 교주가 후계자를 정한 것이다. 그 말뜻은 공손천기의 무공을 받아들일 만한 재능이 있는 아이를 찾았다는 뜻이 아닌가?
천마신교를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이것이 얼마나 기쁜 일인지 말로는 다 설명할 수가 없었다.
“그 아이를 보여주기 전에 영감한테 물어볼 게 있어.”“하명하시지요.”“이번에 받은 내 제자에게 수라환경 말고 다른 걸 가르쳐볼까 하는데 영감 생각은 어때?”선우조덕은 공손천기의 질문에 눈을 몇 번 끔뻑거렸다. 그러다 교주의 물음에 숨겨져 있는 속뜻을 짐작하고 심각한 얼굴로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입을 열었다.
“쉽지 않을 겁니다.”“나도 알아.”천마신교는 종교적인 색채가 강한 집단이었다. 그곳에서 교주는 신의 대리자였고, 교도들에게 항상 그것을 증명해보일 수 있어야 했다. 압도적인 힘과 절대적인 경지의 무력.
단시간 내에 도저히 인간이 어떻게 해볼 수 없을 것 같은 강함을 보여줘야만 하는 것이다. 그것이 신의 대리자이자 선택받은 인간이 짊어져야 할 의무였다.
“부작용을 해결하지 않고서는 전해주기가 싫어. 그런 건 내 대에서 끝내야지.”“뒷방 늙은이들은 납득하지 않을 겁니다.”천마신교의 오랜 전통과 관례. 그것은 지극히 중요했다. 후계자가 익힐 무공이 수라환경이 아니라면 일단 무조건 거부감부터 생기는 것이다.
“괜찮아. 영감들이 만족할 만한 성과를 보이면 되니까.”선우조덕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수라환경 외에 천마신교에 그만큼의 강력함을 보여줄 수 있는 무공이 있었던가? 없었다.
수라환경에는 그 부작용을 사소하다고 취급할 수 있을 만큼 절대적인 힘이 있었기에 역대 교주가 그것을 망설이지 않고 배워온 것이다.
거기까지 생각하던 선우조덕은 문득 어떤 가능성을 떠올리며 입을 열었다.
“설마 월인도법입니까?”“……눈치 빠른 영감 같으니라고. 맞아, 그거야.”“그게 그렇게 대단한 겁니까?”“아아…… 꽤나 재미있더라고, 그거.”공손천기는 히죽 웃었다. 자신만만한 미소. 선우조덕은 그런 공손천기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딱히 반대하지 않겠습니다. 교주님의 안목을 믿으니까요.”“영감이라면 이해해줄 줄 알았어. 그리고 걱정 마. 수라환경을 전해주지 않겠다는 게 아니니까. 파괴력은 확실히 그게 최고거든.”공손천기는 말을 하다 초류향의 얼굴을 떠올리며 갑자기 씁쓸한 얼굴을 해 보였다.
“근데 내 제자 녀석 말이야. 무당파에 원한이 좀 있어.”“무당파 말입니까?”정도맹의 주축이자 소림사와 쌍벽을 이루는 곳이 바로 무당파다. 그 세력의 방대함이나 영향력만큼은 당금의 소림사보다 더하다는 소리가 있을 정도였다.
한마디로 적으로 상대하기 껄끄러운 곳이다. 공손천기 역시 그것을 떠올렸는지 볼을 긁적이며 입을 열었다.
“이미 제자의 복수를 도와주기로 결정했어. 이래저래 제자 녀석의 마음이 이해가 되어버렸거든. 본인 손으로 복수를 하고 싶어 해서 직접적으론 도와주지 못하겠지만 간접적으로 해줄 수 있는 건 다 해주고 싶더라고. 아무래도 그런 부분에서 내가 철이 좀 덜 들었나봐.”공손천기는 그렇게 말을 하며 임학겸을 시켜서 초류향을 데려오게 했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
“그러니 그 아이를 만나면 무당파에 관한 것은 되도록 묻지 마. 괴로운 기억이 있으니까.”“알겠습니다.”
잠시 후 초류향이 불려왔다. 지난 며칠 동안 가까스로 마음을 추슬렀는지 많이 차분해진 모습이었다. 그러나 아직도 어딘가 많이 불안해 보였다.
“왔느냐? 인사해라. 본 교의 약제당을 맡고 있는 마의 선우조덕이다. 앞으로 네가 신세질 일이 많을 거야.”초류향은 공손한 태도로 읍을 하며 선우조덕에게 입을 열었다.
“초류향입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선우조덕입니다. 공자님. 저야말로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선우조덕은 흐뭇한 얼굴로 초류향의 이곳저곳을 살펴보았다. 의원 특유의 본능이 발휘된 것이다. 잠시 후 선우조덕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허어? 저 없는 동안 벌써 소공자님께 벌모세수(伐毛洗髓:골수를 씻어내고 털을 깎는다. 즉 다시 태어난다는 뜻)라도 한 겁니까?”“아니. 처음부터 저랬어. 나도 놀랐지.”“그럴 리가요?”“정말이라니까?”막대한 내력을 가진 고수가 제자의 신체를 인위적으로 무공을 익히기에 적합하도록 만들어주는 것이 벌모세수다. 굉장히 번거롭고, 진력 소모가 상당하기 때문에 함부로 시전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모든 부담감을 감수할 만큼 효과는 정말 엄청났다. 단번에 환골탈태를 하는 것과 비슷한 효능을 보이기 때문이다.
“제가 진맥을 해봐도 되겠습니까?”“얼마든지.”공손천기가 허락하자마자 선우조덕은 초류향에게 눈짓으로 양해를 구하고 그의 손목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내력을 흘려 넣다가 움찔했다.
‘이것은?’선우조덕은 묘한 눈으로 초류향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공손천기를 응시하며 말했다.
“……알고 계셨습니까?”“물론, 내 눈은 장식용이 아니야.”공손천기는 빙글거리며 웃었다. 정작 당사자인 초류향만 지금 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잘 모르는 눈치였다.
“……환골탈태입니까?”“비슷해. 하지만 아닐 거야. 잘 알잖아, 영감도. 그게 불가능하다는 걸.”화경의 경지에 들어서야만 이뤄낼 수 있는 것이 바로 환골탈태다. 때문에 이렇게 어린 나이에 환골탈태라는 것을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 화경이라는 지고한 경지는 인생 전체를 꿰뚫는 깊은 깨달음이 동반되어야 이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 이것은…….”대체 무어라 해야 한다는 말인가? 몸은 이미 무공을 익히기에 최상의 상태가 되어 있었다. 관절과 관절 사이가 부드러웠고, 내공이 움직여야 하는 경맥들도 막힘이 없이 매끄러웠다.
‘게다가…….’가장 큰 것은 단전에 있었다. 뭔가 요상한 것이 자리 잡고 있지 않은가? 구슬같이 둥글면서도 작은, 그러면서도 단단한 무언가가 단전에 떡하니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곳에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막대한 힘이 느껴졌다.
“저 녀석 무공이랑 뭔가 종류가 다른 걸 하나 배우고 있거든. 아마 그거 때문이겠지. 그렇지 않느냐?”“…….”초류향은 볼을 긁적였다. 어떻게 대답해야 좋을까? 제갈량의 존재를 말해야 하는 걸까? 그래도 되는 걸까?
“널 탓하려는 게 아니다. 나는 오히려 좋게 생각하고 있거든.”초류향이 산법 외에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는 것은 오래전부터 공손천기도 눈치 채고 있었다. 그의 눈은 그런 것을 다 알아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르는 척 눈감아주었다. 누구에게나 말하고 싶지 않은 비밀이라는 게 있는 법이니까.
제자가 아직 어리다 하나 그런 비밀을 일일이 다그치면서까지 알아낼 정도로 공손천기는 속이 좁지 않았다. 그저 때가 되면 자연히 말해줄 것이라 믿을 뿐이다.
“월인도법에 대한 검토는 끝이 났다. 이 영감도 소개해주고, 그것에 대한 결론도 말해줄 겸 해서 너를 불렀지.”공손천기의 말을 듣던 초류향의 눈빛이 한층 깊어졌다. 드디어 무공을 배울 수 있게 된 것이다. 하루라도 빨리 무공을 완성해서 스승님의 복수를 해야 했다.
그것만이 지금의 이 괴로운 마음을 해소해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받거라.”공손천기는 소매에서 무언가를 꺼내어 초류향에게 날려 보냈다. 허공에서 천천히 날아간 그것은 초류향의 두 손에 얌전히 떨어져 내렸다.
『월인도법(月刃刀法)』
그것을 들고 어정쩡하게 서 있던 초류향에게 공손천기가 입을 열었다.
“그것이 앞으로 네가 배우게 될 무공이다.”초류향은 손에 들고 있는 비급서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이것이 초류향과 과거 천하제일인이었던 악중패. 백 년이라는 시간을 건너뛴 그들의 정식 첫 만남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