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Shura RAW novel - Chapter (50)
제50화 새벽의 불청객(2013.07.04.)
창천표국의 국주 초무령은 망연자실한 얼굴로 마당에 나와 있었다. 방금 전 냉하영에게 그녀가 원하는 것을 다 말해주고 반쯤은 넋이 나간 채로 쉬고 있었던 것이다.
“무슨 일이에요, 여보?”“부인…….”초무령은 일그러진 얼굴로 아내를 응시했다. 아내 역시 남편의 심각한 표정에서 알 수 없는 불안감을 읽었기에 조용히 다가와 손을 잡아주었다.
“힘든 일 있어요?”“류향이가…….”초무령의 아내 유송령은 순간 얼굴을 굳혔다. 학업을 위해 유기산법무혜학당으로 떠났던 아이였다. 그 아이에게 설마 무슨 일이 생긴 걸까?
유송령이 긴장한 얼굴을 해 보이자 초무령이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사실 얼마 전에 장 노인에게 기별이 왔었소. 학당에 있는 선생을 따라 어딘가로 여행을 간다는 것이었는데…… 뜻이 너무 완강해서 도저히 말릴 수가 없었다고, 당시에는 생각이 깊은 아이니 별일 없을 거라 여겼는데 설마 기련산에 갔었을 줄은…….”유송령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기련산에서 일어났던 일은 그녀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정마대전이 벌어졌고, 엄청난 숫자의 무인들이 죽어나갔다.
그곳에서 있었던 정도맹의 참담한 패배는 아직까지도 화젯거리였으니까. 문제는 그곳에 그녀의 아들이 있었다는 점이다.
“류향이는요? 우리 류향이는 무사하겠지요?”초무령은 자신의 손을 강하게 부여잡으며 물어오는 부인에게 아무 말도 해줄 수가 없었다. 그도 아직 정확하게 모르는 것이다.
냉하영이 하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심상치 않은 느낌 때문에 여러 군데에 수소문하고 있었다.
“조금만 기다려보시오. 곧 연락이 올 것이니…….”“연락이 오다니 그게 무슨 말이에요?”초무령은 불안하게 흔들리는 유송령의 눈동자를 바라보다가 한숨을 내쉬며 냉하영과 나누었던 대화의 내용을 다 들려주었다.
냉하영은 그의 아들이 천마신교와 연관이 있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추측은 놀랍도록 예리한 구석이 있었기 때문에 불안한 마음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만약 그의 아들이 천마신교와 모종의 관계가 있다면 이것은 정말 곤란한 문제가 될 것이다.
‘내 잘못이다.’과거에 그의 아들이 무림에 대해 물었을 때 너무도 쉽게 대답했던 것이 아무래도 마음에 걸렸다. 표국은 그 특성상 무림과 가까이 지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값어치가 큰 물건을 운반하게 될 때에 무림문파의 도움을 종종 받기도 했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초류향은 무림 문파에 대한 질문을 했고, 초무령은 지극히 표국에 이득이 되는 입장에서 설명해주었던 것이다.
―쥐를 잘 잡는 고양이는 털이 흰색이건 검은색이건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초무령은 누군가가 했던 저 말을 그대로 그의 아들에게 해주었다.
표국의 입장에서는 도적들을 잘 처리해주는 무인이면 그 소속이 정도맹이든, 흑월회든, 심지어 마교라도 관계가 없었으니까.
실력을 최우선으로 보라는 뜻으로 이야기한 것이었지만 저렇게 말한 것이 지금은 조금 후회가 되었다.
현재 이곳 사천성에서는 정도맹의 힘이 절대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표국을 운영하는 입장에서는 어느 한 곳으로 치우친 관계를 맺는 것은 최대한 피해야 했다.
게다가 그것이 천마신교라면 두말할 나위 없이 더더욱 멀리해야 하는 것이다.
“걱정 마시오. 부인. 생각이 깊은 아이니 해가 될 일은 하지 않았을 것이오.”천마신교가 비록 지금 잘나간다고는 하지만 앞으로도 계속 그럴 것이라는 보장은 그 어디에도 없었다. 단기적인 모습만 보고 움직이는 상인은 크게 될 수 없다.
장기적인 안목으로 판세를 읽어야 하는 것이다. 때문에 초무령은 현재 천마신교의 득세가 그다지 길게 가지 못할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저 한여름 밤의 꿈처럼 금세 끝날 것이라 여겼을 뿐이다. 적어도 그날 밤에 초대하지 않은 손님이 찾아오기 전까지는 그랬다.
* * *
초무령이 변화를 깨닫게 된 것은 새벽 무렵이었다.
얼음 덩어리가 등골을 타고 스치는 듯한 소름 끼치는 감각에 소스라치게 놀라 자리에서 일어나 보니 방 안 어둠 속에 누군가가 스며들어 와 있었다.
‘자객?’본능적으로 침상 머리에 두었던 검을 꺼내 들고 일어나 자세를 잡았다.
“누구냐!”초무령이 크게 호통 치자 상대방은 팔짱을 끼고 있다가 풀며 정중하게 말했다.
“사정이 여의치 않아서 이런 야심한 밤에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부디 이해해주시기를…….”초무령은 상대방의 침착한 태도에서 깊이를 짐작할 수 없을 만큼의 여유를 읽을 수 있었다. 그것은 스스로의 무력에 절대적인 자신이 없다면 풍길 수 없는 기세였다.
그러다 문득 초무령은 불안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사방이 너무 조용했던 것이다. 그 불안감을 읽은 것일까? 상대방이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웃어 보였다.
“국주님을 제외한 모든 분들은 중요한 이야기에 방해가 되기 때문에 재워두었습니다. 소리치셔도 오실 분은 없습니다. 물론 옆에 계신 부인도 마찬가지입니다.”“…….”대체 언제? 초무령은 검을 쥐고 있는 손아귀에 힘을 꽉 주었다. 예상했던 일이지만 상대방은 그가 감히 짐작도 하지 못할 만큼의 고수였던 것이다.
그렇지만 곱게 죽어줄 순 없는 노릇. 빈틈을 엿보고 있을 때 갑자기 상대방이 공손하게 읍을 하며 말했다.
“제 소개가 늦었습니다. 저는 천마신교에서 나온 사람입니다. 이름은 엄승도라 합니다.”“처, 천마신교!?”천마신교라면 그 유명한 마교가 아닌가? 그들이 왜? 초무령이 불안한 얼굴을 해 보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마교라는 이름은 단지 그것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두려움을 자아내기에 충분했으니까. 그들은 항상 절대적인 강자였다.
정도맹의 일격을 완벽하게 박살내버린 지금은 더더욱 그랬다. 하지만 지금 초무령이 두려워하는 것은 그런 것보다 조금 더 현실적인 이유에서였다.
낮에 있었던 냉하영과의 대화가 계속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시기가 너무 공교롭지 않은가?
냉하영은 분명 그의 아들인 초류향이 천마신교와 모종의 연관이 있을 것이라고 했었다.
‘설마…….’불길함이 온몸의 혈관을 타고 전신을 다 돌았을 즈음. 상대가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낮에 냉하영이 찾아왔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과연 똑똑한 소녀더군요.”정말 우연히도 그 자리에서 냉하영과 초무령의 대화를 엿들을 수 있었던 엄승도는 사실 그때 엄청난 갈등을 했었다.
그 자리에서 이 영악한 꼬마 계집을 죽일 것인지 살릴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했던 것이다.
그녀는 아직 짐작하지 못하고 있었지만 지금 너무나도 위험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천마신교와 초류향의 연결점을 찾는 것.
그것은 언뜻 보기에 별거 아닌 것 같았지만 그 연결점을 찾을 수 있다면 실로 어마어마한 결론에 도달하게 될 것이 아닌가?
‘천마신교의 후계자.’후계자는 결코 외부에 드러나서는 안 된다. 절대적인 안전이 보장되는 곳에서 무럭무럭 자라나 미래에 천마신교를 버티고 설 단단한 기둥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 후계자의 정체가 외부에 이렇게 쉽게 드러나는 것은 그 자체로 엄청난 위험 요소가 될 가능성이 있었다.
게다가 지금의 후계자는 너무도 약하지 않은가? 위험이 찾아온다면 그것이 실로 작은 것이라 하더라도 미연에 방지해야 옳았다.
‘죽이자.’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움직이려 했지만 엄승도는 제자리에서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몸을 움직이려고 마음먹은 그 순간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전신을 죄여오는 살기가 있었던 것이다. 절정고수인 엄승도조차도 바짝 얼려버릴 정도의 냉엄한 살기.
누군가가 냉하영 곁에 몸을 숨기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 그 상대방에게 느꼈던 전율을 엄승도는 지금까지도 잊을 수가 없었다.
‘놈은 분명히 화경의 고수였다.’그 정도의 무형지기(無形之氣:고수가 뿜어내는 무형의 기운)는 화경의 고수만이 가능할 것이다. 문제는 그 상대방에 대해 짐작 가는 것이 전혀 없다는 데 있었다.
흑월회에 있는 화경의 고수는 단 두 명. 삼황의 한 명인 흑월야황 냉무기와 추혈군 상동하 장로가 전부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 둘은 냉하영의 호위 따위를 하고 있을 여유가 없는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분명히 다른 사람이라는 이야기인데 거기에서부터 엄승도는 완전히 혼란에 빠져버렸다.
“냉하영을 보았소?”엄승도는 초무령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우리가 했던 이야기도 들었던 거요?”“본의 아니게 그렇게 되었습니다.”초무령의 질문에 거짓을 말할 수도 있었지만 엄승도는 순순히 시인했다. 엄승도가 생각하기에 초무령과 그는 적대적인 관계가 아니었다.
물론 초무령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것도 시간문제일 뿐이다.
“내 아들에 대한 이야기도 들었소?”여기서부터가 중요하다. 엄승도는 신중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말해주시오. 정말 내 아들이 그쪽과 연관돼 있는 것이오?”주변에 아무도 없음을 알지만 엄승도는 한 번 더 감각을 열어 꼼꼼하게 확인한 후 입을 열었다.
“그렇습니다.”초무령의 표정이 다채롭게 변해갔다. 설마 했던 것이 들어맞았던 것이다.
‘류향이를 대체 왜?’이게 의문이었다. 그런 어린아이를 데려다가 대체 무엇하려고? 그런 의문을 품고 있을 때 엄승도가 처음보다 더욱 정중하고 예의를 갖춘 태도로 읍을 하며 말했다.
“초류향 공자님께서는 현재 본 교의 소교주님이 되셨습니다. 천마신교의 단 한 명뿐인 정식 후계자가 되신 겁니다. 저는 이곳에 그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 왔습니다.”“……!”뭐? 기쁜 소식? 초무령은 입을 벌린 채 화석처럼 굳어버렸다. 지금 눈앞에 있는 이 사람이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는 것이다.
엄승도는 애초에 이런 반응을 예상했기에 한 번 더 친절하게 설명해주기로 마음먹었다. 상대방은 그런 수고를 감수할 만큼 가치가 있는 사람이었으니까.
“조금 더 정확하게 말씀드리자면 초류향 공자님은 교주님의 정식 제자가 되셨습니다. 초류향 공자님은 현재 수련을 위해 본 교에 머물고 계십니다.”댕그랑-
초무령의 손에 들고 있던 검이 바닥에 힘없이 떨어져 내렸다. 몽둥이로 손을 두들겨 맞아도 떨어뜨리지 않은 검을 지금 바닥에 떨군 것이다.
“교, 교주? 지금 교주라고 그랬소?”“그렇습니다. 국주님.”초무령은 멍한 얼굴을 해보였다. 교주가 누구인가? 불과 얼마 전에 있었던 정마대전을 압도적인 승리로 이끈 장본인이 아닌가?
당금의 모든 사람들이 인정하는 천하제일인.
‘천하제일마(天下第一魔).’그것이 현재 공손천기를 두려움을 섞어 부르는 말이었다. 그런 사람의 제자가 되다니, 이것은 도저히 감당 못 할 일이 아닌가?
엄승도는 그런 초무령의 속마음을 짐작한 것인지 오히려 짓궂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축하드립니다, 국주님. 본 교가 외부에서 인재를 구한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입니다. 곧 교에서 어마어마한 보상이 있을 것입니다.”초무령은 지금 귓가에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평소에 심지가 굳고 공명정대하다고 이름 높은 그였지만 사안이 사안인지라 이미 그가 판단할 수 있는 영역을 벗어나 있었기 때문이다.
‘마교라니…… 마교라니. 대체 이게 무슨…….’어디부터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다. 초무령은 결국 바닥에 주저 앉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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