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Shura RAW novel - Chapter (58)
제58화 여의주의 권능 2013.08.01.
초류향은 오늘도 정자 난간에 걸터앉아 인공호수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이곳 천마신교에 온 지도 벌써 열흘이 다 되어간다.
십만대산에 도착하자마자 엄승도에게 부탁하여 집으로 기별을 넣긴 했지만 아직까지 그 답신을 받지 못했다.
덕분에 초류향은 지금도 그 일에 상당히 신경을 쓰고 있는 중이었다. 사실 아버지가 어떠한 반응을 보이실지 어느 정도 예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괴롭다.’초류향은 안경을 벗고 그것을 닦아내며 씁쓸한 얼굴을 해 보였다.
아버지는 초류향 앞에서는 천마신교나 사파에 대해 겉으로 애써 관대한 척하려고 하셨지만 사실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그들을 받아들이지 않고 계셨다.
조금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같이 어울리고 싶어 하지도 않으셨던 것이다.
어쩌다 하는 수 없이 표물 호송 건 때문에 그들과 엮이게 되더라도 최대한 거리를 두려고 애쓰시는 것이 어린 초류향의 눈에도 보일 정도였으니까.
‘그런데 아들이 뜬금없이 천마신교의 소교주가 될 줄이야…….’아버지의 입장에서 보면 날벼락도 이런 날벼락이 없을 것이다. 쓴웃음이 입가에 절로 그려졌다. 초류향은 아버지와는 달리 사파나 마교에 대한 선입견이 거의 없었다.
어찌 보면 아버지 초무령의 편견을 없애려는 열성적인 교육이 빛을 발한 것일 수도 있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거짓된 교육이 불러일으킨 참사 중 하나일 수도 있었다.
어찌 되었건 이미 되돌릴 수 없었다.
‘나중에 잘 말씀드려야겠다.’일생을 결정짓는 중요한 선택이었기에 부모님의 의견을 구해야 함이 마땅했지만 당시에는 그럴 경황이 없었다.
자신의 선택을 이해해주실 것이라 믿어보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러기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그저 씁쓸하게 웃을 뿐이었다.
초류향은 고개를 휘휘 저어 머릿속의 상념을 털어낸 후 난간에 걸터앉아 품 안에 있는 월인도법을 만지작거렸다.
‘련이라…….’월인도법은 총 서른 자의 구결로 이루어져 있었고, 각 구결마다 그것을 연마하는 방법이 쓰여 있었다.
제일 처음의 시작인 련. 그곳에서부터 초류향은 꽤 오랫동안 막혀 있었다. 어찌해야 될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온몸을 무기로 만든다.’말은 제법 그럴싸하게 들린다. 세상 그 무엇에도 부러지지 않고, 깨지지 않는 단단한 육신. 그것을 만드는 게 월인도법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이건 초류향의 입장에서는 너무도 막연했다.
‘내부의 삼라만상을 끌어 올려 신체를 강건하게 만든다. 그리하면 천하를 부술 수 있는 힘을 얻게 될 것이다.’첫 구결에 대한 부연 설명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부의 삼라만상이었다. 대체 이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짐작도 가지 않았던 것이다.
―때로는 모든 것을 쉽게 바라볼 필요가 있지. 진리라는 것은 의외로 단순한 놈이거든.공손천기 스승님이 해주셨던 조언이 머릿속에 어지럽게 떠다녔다. 쉽게 바라보라니? 대체 어디를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 것일까? 초류향의 입장에서는 더욱더 아리송해졌을 뿐이다.
‘이 하나만 풀면 나머지도 어렵지 않을 텐데…….’뭐든지 처음이 어려운 법이다. 이것만 넘어가면 다음부턴 무난할 것 같았는데 해결 방법이 보이질 않았다.
초류향이 그렇게 이마를 짚으며 혼자서 끙끙 앓고 있을 때였다. 누군가의 웃음소리가 머릿속에서 들려왔다.
[애송이, 여전히 어리석은 것에 집착하고 있구나.]초류향은 눈을 반짝였다. 이 오만하고도 고고한 말투.‘어르신!’제갈량. 그가 갑자기 말을 걸어온 것이다. 그동안 대체 어디 갔었기에 말이 없었던 것일까? 아무리 불러도 대답조차 없었지 않은가?
정작 필요할 때는 도움도 주지 않고서 대체 무얼 하고 있었던 것일까? 초류향이 머릿속으로 그런 갖가지 서운함을 폭풍처럼 떠올리자 제갈량이 쓰게 웃으며 말했다.
[네놈이 대책 없는 짓을 하는 바람에 그동안 나 역시 바빴었다.]대책 없는 짓? 그리고 바빴다니? 그게 무슨 뜻일까? 지금 제갈량은 육체는 없고 정신만 남아 있는 것이 아니었던가? [천노(天怒) 그 녀석이 승천하기 전에 제법 재미있는 장난을 치고 갔더구나. 덕분에 예정에도 없던 고생을 해버렸다.]제갈량의 음성에는 약간의 분노가 묻어나 있었다. 무엇에 화가 난 것일까?게다가 천노라면 얼마 전에 승천했던 이무기의 이름이 아닌가? 초류향이 의문을 떠올리자 제갈량은 섭선을 부치며 조용하게 말했다.
[묵룡(墨龍)의 여의주를 아무런 준비도 없는 이런 애송이에게 덥석 심어버릴 줄이야…… 그것을 해결하느라 시간이 좀 걸렸지.]초류향이 용에게 받았던 두 가지 보답. 하나는 월인도법이었으며 다른 하나는 자색의 구슬이었다. 그 자색의 구슬. 그것의 정체는 바로 묵룡의 여의주였던 것이다. [조금 깨어지긴 했었지만 여의주라는 것은 본래 인간이 다룰 수가 없는 종류의 물건이다. 네놈은 그것도 모르고 덥석 그것을 만졌지.]초류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죽을 뻔하지 않았던가? 엄청난 전류가 전신을 관통한 이후에 의식을 잃어버렸었다. 다행히 살아났지만 그때 느꼈던 공포는 아직도 생생했다. [네놈은 그때 죽어도 전혀 이상할 게 없었다.]아니, 본래라면 죽었어야 했다. 여의주가 가진 힘은 인간의 육체로는 감히 버틸 수가 없으니까. 그 사실을 천노도 잘 알고 있었다.그래도 여의주를 넘겨준 것은 초류향의 몸 안에 있는 제갈량을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있다면 여의주의 힘을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거라 예상한 것이다.
‘이 꼬맹이 녀석은 분명 자기가 죽을 뻔했던 것도 몰랐겠지.’제갈량은 섭선을 부치며 입술 끝을 실룩거렸다. 그때 이 꼬마 녀석을 살리려고 얼마나 고생했는지, 그 수고를 생각하니 다시금 울컥 화가 치밀어 오른 것이다.
제아무리 절대의 완벽함을 자랑하는 제갈량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육체를 온전히 가지고 있을 때의 이야기였다. 사실 지금의 그에게는 별다른 능력이 없는 것이다.
때문에 이번의 위기는 정말 소화하기 힘들었다. 하마터면 정신으로만 존재했던 그조차 여의주의 막대한 힘에 휩쓸려 소멸할 뻔했으니까.
‘정말로 죽을 뻔했지.’제갈량은 슬쩍 하늘 위를 응시하며 그곳에서 웃으면서 이곳을 지켜보고 있을 천노를 욕했다.
허나 천노의 이 못된 장난질 덕분에 절체절명의 위기도 분명 있었지만 제갈량이 얻은 것도 있었다.
[애송아.]‘예. 어르신.’[내부의 삼라만상이 무엇인지 궁금하더냐?]은근한 말투. 초류향은 눈을 반짝였다. 제갈량. 과연 이 굉장한 사람은 내부의 삼라만상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가르침을 받고 싶습니다, 어르신.’[좋다. 그럼 조금 도움을 주도록 하지.]제갈량은 선뜻 말하며 섭선으로 입을 가린 채 음흉하게 웃었다. 그동안 폭주하던 여의주의 힘을 억제하느라 고생했던 기억들이 빠르게 제갈량의 머릿속에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초류향이 기대 어린 눈을 하고 있을 때. 갑자기 시야가 불이 꺼진 것처럼 확 어두워졌다.
‘어?’동시에 두 다리에 힘이 쫙 풀리고 주변에 가득했던 소리가 완전히 사라졌다.
그렇게 초류향이 비틀거리며 앞으로 쓰러질 때, 갑자기 운휘가 옆에서 나타나 바닥과 충돌하기 직전인 그를 안전하게 받아 들었다.
“소교주님?”“…….”시야에 초점이 없었다. 운휘가 얼굴을 굳히고 가볍게 초류향의 몸을 흔들어보았지만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운휘의 얼굴이 점차 딱딱하게 굳어졌다. 급하게 맥을 짚어보았지만 맥박도 미약했다.
‘이게 대체…….’본능이 위험을 경고하고 있었다. 소교주의 지금 상태는 아주 심각했던 것이다. 호흡도 점차 가늘어지고 있었고, 몸은 시체처럼 축 늘어져 있었다.
거기에 더해 항상 연한 복숭앗빛이 돌고 있던 건강한 혈색은 어느새 창백하게 변해 있었다. 운휘의 머릿속에 위기감이 몰려왔다.
“소교주님! 소교주님!”아무리 애타게 불러 봐도 초류향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점차 시퍼렇게 변하는 안색을 바라보던 운휘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번개처럼 몸을 날렸다. 초류향을 안아 들고 약제당으로 향한 것이다.
* * *
쾅-!
약제당은 천마신교에서도 가장 중요한 거점 중 하나였다. 때문에 경비도 삼엄했고, 그곳에 있는 무인들의 수준도 전반적으로 높았다.
하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일반적인 경우에나 통용되는 것일 뿐. 눈이 뒤집힌 화경의 고수가 작정하고 달려들면 그들로서도 대책이 없는 것이다.
“비켜라!”“멈추시오!”저 멀리에서부터 약제당의 외문(外門)을 부수며 엄청난 기세로 쏘아져오는 사람을 발견하고 스무 명에 가까운 무인들이 그 앞을 막아섰다. 그 모습에 운휘의 눈가에 차가운 살기가 떠올랐다.
“막으면 죽는다.”“……!”운휘는 지금 마음이 급했다. 품 안에 있는 소교주의 호흡이 점차 미약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시간이 없다.’초조함 때문일까? 운휘의 몸에서 점차 살인적인 기운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그 기세가 어찌나 사나운지 그 앞을 막아선 절정고수들조차 오금이 저려올 정도였다.
‘화경의 고수다!’약제당을 지키고 있던 고수들이 이를 악물고 대응할 준비를 했다. 제아무리 상대가 화경에 들어선 자라 해도 물러설 수 없었다. 이곳은 그들이 목숨을 걸고 사수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그들에게 주어진 임무.
‘온다.’운휘의 앞을 막아서던 고수들의 얼굴에 점차 절망감이 떠오를 때. 내문(內門)이 열리며 누군가의 음성이 들려왔다.
“그 녀석 앞을 막지 말거라. 내가 잘 아는 녀석이다.”“당주님!”“쯧, 소란 떨 거 없다. 헌데 여기까지 대체 무슨 일로 온 거냐? 이 아침부터.”약제당주 선우조덕. 그는 다행히 몇 번 본 적 있었던 운휘를 기억하고 있었다. 운휘 특유의 기운을 알고 있었기에 늦지 않게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선우조덕은 아무런 설명도 인사도 없이 빠르게 자신에게 다가오는 운휘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운휘의 눈가에 떠올라 있는 다급함을 읽은 것이다.
“욘석아, 침착하거라. 이유를 알아야 내가 너를 도와줄 것이 아니냐?”허나 아무런 설명도 없이 불쑥 앞으로 내밀어지는 운휘의 두 팔. 그 위에 죽은 듯이 늘어져 있는 소년.
“소교주님입니다.”운휘의 말에 여유롭던 선우조덕의 얼굴에서 점차 미소가 사라져갔다.
“뭐?”“소교주님입니다.”선우조덕은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것인지 눈을 크게 뜨고 초류향을 받아 들었다. 그리고 재빨리 초류향의 맥문을 움켜쥐고 안색을 굳혔다. 맥박이 거의 뛰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소교주님께서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네놈은 어디서 무얼 하고 있었느냐?”“…….”운휘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런 운휘의 모습에 선우조덕은 분노로 전신이 덜덜 떨려왔다. 잠시 동안 운휘를 잡아먹을 듯한 기세로 노려보던 선우조덕이 낮게 말했다.
“만약 소교주님께 무슨 일이 생긴다면 네놈의 뼛조각까지 씹어 먹어버릴 것이다.”운휘는 복잡한 눈빛으로 고개를 숙였다. 그도 사실 대체 왜 이렇게 된 것인지 몰랐다.
하지만 운휘는 감히 그런 변명을 할 수가 없었다. 분명 소교주님의 곁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조취도 취하지 못했고, 아무런 위험도 알아채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심하다.’운휘의 눈동자가 탁한 회색으로 풀려갈 때 선우조덕은 소매에서 대침을 꺼내었다. 그가 평소에 그렇게 애지중지하며 아끼는 생사금침(生死金針)을 꺼내 든 것이다.
선우조덕은 재빨리 초류향의 오른쪽 새끼손가락 끝에 금침을 꽂아 넣었다.
푸욱-!
깊게 박은 그 침을 다시 뽑아내자 검게 죽은 피가 손가락 끝에서 뭉클거리며 흘러나왔다. 선우조덕은 그 모습을 살피며 이마에 흐르는 식은땀을 소매로 닦아냈다.
“……아무나 빨리 가서 교주님을 모셔오너라.”“아, 알겠습니다.”문 앞을 지키고 있던 무인들 중 몇 명이 사라지고 선우조덕은 초류향을 안아 든 채 재빨리 약제당 안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초류향을 침상에 눕힌 다음에 수하들에게 지시해서 갖가지 영약들을 챙겨오게 했다.
‘반드시 살려내야 한다.’귀하디귀한 천마신교의 후계자였다. 이렇게 허무하게 잃을 순 없는 것이다.
선우조덕은 이를 악물고 자신의 양쪽 소매를 걷어낸 후 생사금침을 들어 올렸다. 평생 쌓아놓은 의술을 모두 한꺼번에 쏟아 부을 각오를 한 것이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