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Shura RAW novel - Chapter (60)
제60화 초류향의 동면(?)(2013.08.08.)
사람이 호흡을 하는 것은 특별히 머리로 의식하지 않아도 가능한 일이다. 팔다리를 움직이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딱히 그것에 대한 노력이나 집중 없이도 가능하지 않은가? 허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런 일이 대체 어떻게 가능한 건지 의문이 든다.
걷고, 말하고, 숨 쉬는 것.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이 모든 것. 그것은 사실 몸 안에 있는 어떤 힘의 작용에 의해서 가능했던 게 아닐까?
실제로 그렇다고 가정했을 때, 만약 그 ‘힘’이 어느 한 순간 모두 사라져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그리되었을 때의 예시를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 지금의 초류향이었다.
‘어둡다.’까만 어둠이 사방에 가득했다. 이것은 단순히 빛이 없어서 보이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
‘시력이 완전히 없어졌다.’물론 초류향이 이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은 한참 시간이 지난 뒤였다. 손을 뻗어 앞을 더듬어보려 했지만 그것도 지금은 불가능했다. 일단 팔다리의 느낌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 조금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것은 아예 몸뚱이 전체가 없어진 듯한 느낌이었다. 세상에서 그의 육체가 완전히 사라진 것 같은 느낌.
‘이게 대체…….’어떻게 된 것일까? 허나 초류향은 이런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기다렸다. 과연 잠시 후에 누군가가 초류향의 ‘의식’으로 말을 걸어왔다.
[애송이, 어떠하냐? 견딜 만하더냐?]은근하면서도 오만한 말투. 이 말투의 주인공은 제갈량이었다. 일단 초류향은 지금 상태를 솔직하게 대답했다.‘답답한 것만 빼면 그럭저럭 견딜 만합니다.’그랬다. 그럭저럭 견딜 만했다. 이것이 지금 상황에 딱 좋은 표현인 것 같았다.
[견딜 만하다?]‘예.’이것은 제갈량에게 있어서 예상 밖의 대답이었다. 보통의 경우 이런 기묘한 상황과 마주하게 되면 크게 혼란스러워하지 않던가?그런데 이 꼬맹이는 근래에 이런저런 일들을 많이 겪어서인지 의외로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에 덤덤한 편이었다. 제갈량은 섭선을 만지작거리다 입을 열었다.
[지금 이 상태를 네 스스로 극복하면 네가 알고 싶어 하던 것은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을 게다.]초류향이 알고 싶어 하던 것. 그것은 몸 안에 있는 삼라만상에 대한 것이었다. 저절로 눈이 반짝였다. 문제에 대한 해답이 가깝게 다가온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그것과 지금의 이 몸 상태가 관련이 있습니까?’초류향이 진지하게 묻자 제갈량은 선선히 긍정했다. 제갈량이 생각하기에 이 꼬마 녀석의 가장 큰 장점은 집중력이 뛰어나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치명적인 단점이기도 하지.’제갈량은 섭선 끝을 만지작거렸다. 이 꼬마 녀석은 무언가 하나를 생각하기 시작하면 그것을 깊게 파고 들어가 끝을 봐야만 직성이 풀리는 녀석이었다.
그것은 무언가의 성취도를 높이는 데 탁월한 효과가 있겠지만, 다른 관점으로 보면 주변에 있는 다른 것들을 못 보고 지나칠 수도 있다는 게 아니겠는가?
지금도 그랬다. 삼라만상이라는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겠다, 라는 생각이 들자 정작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지 않은가? 제갈량은 그 부분에 대해서 짚어주기로 했다.
[간단하게 말해주자면 네 녀석은 지금 정신과 육체를 인위적으로 분리시켜놓은 상태다. 그리고 이건 아주 위험한 시도지.]위험하다? 왜? 초류향이 선뜻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얼굴을 해 보였다. 그러다 곧 무언가가 떠오르자 깜짝 놀라버렸다.‘그, 그건 곤란하지 않습니까?’[곤란하지.]‘제가 지금 호흡은 제대로 하고 있습니까?’정신과 육체가 분리되었다면 호흡은 대체 어떻게 하고 있는 것일까? 초류향의 궁금증에 제갈량은 희미하게 웃었다.
[완벽하게 정신을 분리시켰으면 네 녀석은 이미 죽었겠지.]그 말은 즉, 완전하게 분리시켜놓지는 않았다는 뜻이다. 초류향이 그 점에 안도하고 있을 때 제갈량이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하지만 그것도 얼마나 오래 갈지는 알 수 없겠지. 빨리 본래대로 돌아가지 못한다면 호흡은 끊기게 될 게다. 그럼 끝이지.]제갈량이 지나치게 무덤덤하게 말하자 초류향은 얼굴을 찡그렸다. 이리도 무책임하다니?초류향이 섭섭하게 생각하거나 말거나 제갈량은 섭선으로 입을 가리며 나직하게 말했다.
[시간은 이제 대략 한 시진 정도가 남았다. 그 이상 육체가 의식이 없는 것에 익숙해지면 끝이다.]‘어떻게 끝이라는 말입니까?’초류향이 불쑥 질문하자 제갈량은 곧장 대답하지 않았다. 한동안 침묵을 지키던 그는 초류향의 의식이 있음직한 곳을 똑바로 응시하며 담담하게 말했다. [육체라는 감옥에 갇히게 되겠지. 평생.]‘…….’초류향의 생각보다 사태는 훨씬 심각했다.* * *
‘미치겠군.’선우조덕은 굵은 땀방울을 닦아내며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공이나 다른 분야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의술이라는 분야에 있어서만큼은 선우조덕은 스스로가 가진 재능이 공손천기 못지않다고 생각해왔다.
즉, 하늘 아래 그만큼 의술이 뛰어난 사람이 없다고 자부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도 그랬다. 그런 명의가 지금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초류향을 치료하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맥은 정상인데.’초류향의 맥박은 약하긴 했지만 분명히 정상이었다. 호흡도 마찬가지로 약했지만 특별하게 문제가 될 만한 구석은 없다. 병으로 진단할 만한 요인이 전혀 없는 것이다.
‘중독된 것도 아니고…….’맨 처음 중독 증상을 강하게 의심하고 여러 가지를 검사해보았지만 이상은 없었다.
거기에 과거 진맥을 해본 적이 있는 소교주님이기 때문에 평소 건강 상태를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선우조덕은 지금 미칠 지경이었다. 진맥을 하면 할수록 점점 수명이 단축되는 기분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런 이상이 없다니 이게 말이 되나?’입안에서 침이 바짝바짝 말라갔다. 동태눈깔을 가진 놈이 보기에도 소교주는 아파 보였다. 그것도 정말 심각하게 상태가 안 좋은 듯 보이지 않은가?
그런데도 치료는커녕 아픈 이유조차도 밝혀내지 못하고 있으니 미칠 노릇인 것이다. 그때 문이 열리고 누군가가 바람처럼 들이닥쳤다.
“애가 아프다고?”“교주님, 오셨습니까?”공손천기는 약제당에 들어오자마자 아는 척하는 선우조덕을 가볍게 일별하고 초류향의 이곳저곳을 살펴보며 물었다.
“그래. 이 녀석이 깨어나려면 얼마나 걸릴 것 같아?”“……잘 모르겠습니다.”“응? 잘 모르겠다니?”“아픈 원인을 찾지 못했습니다.”선우조덕이 고통스러워하는 얼굴로 대답하자 공손천기의 눈빛이 신중하게 변했다.
“진맥을 했는데 원인을 찾지 못했다? 마의 선우조덕이?”“……예.”“은퇴할 때가 됐군. 영감.”“…….”“비켜봐.”선우조덕은 평소라면 다른 사람에게 절대로 환자를 양보하지 않았지만 이번만은 예외였다.
그가 순순히 자리를 비켜주자 공손천기는 손을 뻗어 초류향의 맥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곧장 얼굴을 찡그렸다.
“뭐야? 이거 대체 어디가 안 좋은 거야?”호흡이 끊어질 듯 약했다. 심장 박동 역시 지금 당장 멈춰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약하지 않은가?
그렇다면 분명히 어딘가 잘못된 구석이 발견되어야 하는데 그런 것이 없었다. 이건 마치…….
“동면을 하는 것 같은데?”공손천기가 무의식적으로 말하자 선우조덕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 역시 같은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주님도 아시다시피 인간은 동면을 하지 않습니다.”“그렇지.”그렇다면 이건 뭐라는 말인가? 공손천기가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선우조덕이 땅이 꺼져라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진짜 은퇴해야 하나 봅니다. 아무래도 늙어서 손끝에 감이 떨어진 모양입니다.”그가 쭈글쭈글한 손바닥을 내려다보며 서글프게 말하자 공손천기가 피식 웃으며 대꾸했다.
“영감이 감 떨어졌으면 나도 감 떨어진 거겠네? 괜한 자책 하지 말고 저쪽으로 가 있어봐.”“어쩌시려고 그러십니까?”“어쩌면 이 녀석이 정말로 동면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야.”“예?”그게 지금 말이 됩니까? 선우조덕은 그렇게 대꾸하고 싶은 것을 가까스로 억제했다. 이 상황에서도 농담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역시 공손천기의 그릇이 남다르긴 한 모양이었다.
선우조덕이 그렇게 여러 가지 감정이 담긴 복잡한 시선을 공손천기에게 보내고 있을 때, 공손천기는 일단 자리에 편하게 앉아 손을 초류향의 이마에 올려놓았다.
“의술(醫術)이 소용이 없다면 그다음에 기댈 곳은 역시 주술(呪術)이겠지. 그리고 거긴 내 나름대로 자신 있는 분야라고. 일단 비켜 있어.”선우조덕은 아쉬운 얼굴로 무어라 이야기하고 싶어 했지만 결국 관두었다. 병의 원인조차도 파악하지 못한 스스로의 무력함에 입이 열 개여도 할 말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도 인간이 동면을 하고 있을 리가 없잖은가?’지금이라도 나서서 말려볼까? 혼자서 그런 갈등을 하고 있는 선우조덕을 공손천기는 흐릿하게 웃으며 바라보다 차츰 의식을 집중했다. 그러다 고개를 갸웃거렸다.
‘의식이 안으로 깊게 잠겨 있다.’단순히 잠을 자고 있다면 이렇게까지 방어가 단단할 리 없었다. 마치 다른 누군가가 개입하는 것을 막고 있는 듯하지 않은가? 공손천기는 거기까지 생각하다가 피식 웃었다.
‘제자야, 네 녀석 진짜 동면이라도 하고 싶은 거냐?’
여기에서 공손천기는 잠시 고민했다. 이대로 강제로 깨우는 것은 그에게 있어서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별로 내키지 않는 것도 사실이었다. 제자가 무슨 의도로 이런 상태가 되었는지 잘 모르기 때문이다.
잠시 생각하던 공손천기는 곁에서 뚫어져라 바라보는 선우조덕을 일별하곤 마음을 굳혔다.
‘시기적으로 좋지 않구먼.’그러고 보니 곧 있으면 이 녀석의 소교주 즉위식이 있다. 그 준비가 지금도 한창인데, 정작 주인공이 이렇게 한가하게 여기에 누워 있을 시간 따위는 없는 것이다.
‘미안하지만 일단 일어나줘야겠다. 제자야.’마음을 정하자 공손천기는 곧장 스스로의 의식을 뽑아내서 억지로 초류향을 깨울 생각을 했다.
그렇게 마음먹자 차츰 공손천기의 눈동자에 희미한 붉은 기가 어리기 시작했다. 특유의 심안술(心眼術)을 발동한 것이다.
‘그러고 보니 예전에도 이 비슷한 일이 있었군.’과거에도 기절해버린 이 녀석을 강제로 깨웠던 적이 있지 않은가? 아직 제자가 된다고 하기 전의 일이었기에 녀석이 꿈속에서 자신을 보며 당황하던 표정이 머릿속에 생생하게 떠올랐다.
‘이번에도 놀래줘 볼까나…….’공손천기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의식을 집중했다. 본래 타인의 꿈속으로 들어가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허나 공손천기는 이쪽 방면으로도 재주가 아주 뛰어났다. 그래서 그는 안심하고 제자의 꿈속으로 뛰어 들어갔다. 하지만…….
‘어?’제일 처음 공손천기의 시야에 들어온 것은 깜깜한 어둠이었다. 공손천기는 얼굴을 찡그리며 손을 휘저었다. 제자의 꿈속에 이런 어두운 것이 있으니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그의 손짓에 어둠이 걷히며 그곳의 정경이 드러났다. 이번에는 아무것도 없는 새하얀 백색의 공간. 그곳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공손천기의 눈썹이 일순간 꿈틀거렸다.
“어디서 개수작이냐? 나와라.”이 아무것도 없는 공간 속에 누군가 있었다. 공손천기는 그것을 뚜렷하게 느꼈다.
허나 상대방은 모습을 드러낼 마음이 없는 모양이었다. 새하얀 그림자 속에 숨어서 가만히 공손천기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쯧, 악취미를 가진 놈이구만. 숨어 있으면 내가 못 찾을 것 같나?”공손천기는 혀를 낮게 차며 양손바닥을 붙였다가 어깨 너비로 벌렸다. 그러자 그 벌려진 공간 사이에서 피처럼 새빨간 날개를 지닌 작은 나비들이 무수히 꺼내어져 나왔다.
“놈을 찾아라.”공손천기가 말하자 나비들은 일제히 한 장소로 날갯짓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혈접(血蝶:피로 만든 나비)이 대충 사람의 형상으로 짐작되는 공간을 완전히 둘러싸버렸을 때.
[저번에도 느꼈던 것이지만 제법 재주가 있는 녀석이구나.]파앙―무언가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혈접들이 산산이 흩어졌다. 그리고 나타난 것은 새하얀 섭선을 들고 있는 노인.
제갈량.
그가 숨어 있던 공간에서 결국 모습을 드러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