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Shura RAW novel - Chapter (64)
제64화 수박만한 엉덩이 만드는 비법(2013.08.22.)
양손에 산더미처럼 많은 붕대와 고약을 챙겨서 뒤뚱거리며 이동하던 공손아리 앞.
그곳에 착 달라붙는 붉은 궁장을 입어 몸의 굴곡을 그대로 드러낸 긴 흑발의 미녀가 불쑥 나타났다.
“어머, 소군주님? 어딜 그렇게 급하게 가세요?”“어……? 링링이네.”“네, 링링이에요. 근데 들고 계신 건 뭐예요?”“으응, 이거? 붕대랑 고약이야.”공손아리. 그녀는 흑발의 미녀 앞에서 조금 우물쭈물거렸다. 왠지 모르게 위축된 듯한 모습.
“그건 저도 알죠. 그런데 이걸 다 어디에 쓰시려구 이렇게 많이 챙겨 가세요?”“으응, 지금 린이랑 령이 많이 아프거든.”“예?”흑발의 미녀. 그녀는 약제당주인 선우조덕의 손녀딸이자 천마신교의 ‘공식’ 최고의 미녀로 추앙받는 선우초린(鮮于貂潾)이었다.
공손아리의 말이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그녀의 얼굴에 잠시간 의아해하는 기색이 어렸다.
“그 아이들이 아프다구요?”끄덕끄덕. 공손아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러자 선우초린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래서 그 수발을 들어주려고 지금 이렇게 물건들을 챙겨 간다 이거군요?”“응…….”“소군주님이 직접이요?”“으응…….”“……따라오세요.”공손아리는 어어? 하면서 반항도 하지 못한 채 선우초린의 손에 이끌려 그녀의 숙소로 향했다.
탁-
방문을 열고 들어서자 하얀 엉덩이를 훌러덩 까 내놓고 나란히 엎드려 있는 두 명의 처자가 눈에 들어왔다. 린과 령이었다.
그녀들의 울퉁불퉁해진 둔부(臀部:엉덩이)를 바라보던 선우초린의 눈가에 차츰 스산한 기운이 서렸다. 최초로 사태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고 느낀 것은 린이었다.
그녀는 그저 소군주님이 왔겠거니 하고 마음 놓고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가 호랑이를 마주한 것처럼 놀라서 자리에서 튕기듯 일어섰다. 그리고 하의를 재빨리 챙겨 올리며 예의를 갖췄다.
“리, 린이 부궁주님을 뵙니다.”그때까지도 엎드려 있던 령 역시 얼굴이 새하얗게 질리면서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령이 부궁주님을 뵙니다.”령 역시 순식간에 하의를 고쳐 올리며 읍을 해 보였다. 그 모습을 싸늘한 눈빛으로 보고 있던 선우초린이 작게 입을 열었다.
“……내가 잠깐 외유 중일 때 너희들이 아주 별 지랄들을 다 하고 있구나.”“그, 그것이…….”“그것이? 뭐 변명할 말이라도 있어? 할 거면 지금 해. 죽으면 하고 싶어도 못 하니까.”린은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 지금 이 상황에서 딱히 마땅하게 둘러댈 말이 생각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망했다.’린은 선우초린의 뒤에서 미안해하는 얼굴을 하고 있는 공손아리를 보며 사태 파악이 순식간에 완료되었다.
‘내가 아무래도 전생에 지은 죄가 많은 모양이다.’린은 속으로 그렇게 푸념을 했다. 잠깐, 아주 잠깐 공손아리에게 장난을 친다고 하다가 뒷감당도 되지 않을 ‘도깨비’를 만나버렸다.
‘하필 나찰마녀(羅刹魔女)에게 걸리다니…….’극상이라고 평가받는 아름다운 외모와 상반되는 포악한 성정을 지닌 것이 바로 선우초린이었다.
약제당의 미친개, 이화궁의 광년 등등 평소에 그녀를 부르는 화려한 수식어만큼이나 무시무시한 전적들이 그녀의 성정을 잘 말해주고 있었다.
잘못 걸리면 정말 뼈도 못 추리는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오늘 린은 잘못 걸려도 한참 잘못 걸린 것 같았다.
선우초린은 허리에 요대처럼 두르고 있던 채찍을 풀어내고 허공에 한 번 튕기며 말했다.
쫘악-!
“유언은 있겠지?”뱀의 혓바닥처럼 나긋나긋 휘어지는 채찍을 보자 벌써부터 오금이 저려왔다. 린과 령은 서로를 바라보다가 곧장 바닥에 납작 엎드리며 말했다.
“죄, 죄송합니다. 부궁주님.”“요, 용서해주십시오. 부궁주님.”“개소리하고 앉아 있네. 너희들은 좀 맞아야 정신을 차려.”쫘악-! 쫘아아아악-!
“꺄악!”“읍!”“이 축생 같은 년들. 죽어라! 죽엇!”머리가 새하얘지는 고통! 령과 린은 엉덩이에서 느껴지는 엄청난 통증에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질러댔다. 그 모습을 공손아리는 안절부절못하며 지켜보고 있었다.
* * *
“소군주님.”“으응.”공손아리가 살짝 겁먹은 얼굴로 선우초린을 바라보았다. 선우초린은 채찍 끝에 묻어 있는 피와 살점 부스러기들을 조금씩 떼어내며 말했다.
“아랫것들은 이렇게 사흘에 한 번씩은 패줘야 말을 들어요. 건방지게 자기보다 윗사람을 부려먹을 생각을 하다니…… 얼굴도 못생긴 것들이.”선우초린은 낮게 이를 부득부득 갈다가 공손아리와 눈이 마주치자 돌연 환한 웃음을 입가에 머금었다. 그녀는 감정 변화가 정말 놀랍도록 빨랐다.
“앞으로는 필요하실 때마다 저를 찾으세요. 제가 아랫것들을 따끔하게 교정 봐드릴게요. 아셨죠?”“으응…….”핏방울이 얼굴에 튀어 있는 선우초린을 보자 차마 아니라고 말을 할 수가 없는 공손아리였다.
링링, 그러니까 선우초린은 예전부터 이상하게도 공손아리에게 무한정 애정을 베풀어주었다.
남들과는 다른 그녀의 특이한 용모를 보면서도 조금도 이상하다 생각하지 않고 굉장히 호감을 보이며 다가왔던 것이다.
어느 날 자기한테 왜 그렇게 잘해주냐고 물어보았더니 선우초린이 환하게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소군주님은 예쁘잖아요.단지 그 이유였다. 아부나 가식이라고는 조금도 섞여 있지 않은 그 솔직담백한 대답에 공손아리는 그녀를 도무지 싫어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무섭긴 무서워…….’싫지는 않았지만 무서운 건 무서운 거였다. 특히 이렇게 가끔씩 눈이 뒤집히는 장면을 볼 때마다 오싹오싹 겁이 났던 것이다.
공손아리는 선우초린을 무서워했지만 선우초린은 공손아리를 정말 무척이나 좋아했다.
‘예뻐 죽겠다.’대답을 하며 고개를 연신 끄덕거리는 공손아리를 흐뭇해하는 얼굴로 바라보던 선우초린이 불쑥 입을 열었다.
“그런데 소교주님이 정해졌다는 소식은 들었어요?”“응…….”소식만 들은 것이 아니라 직접 보기까지 했다. 허나 그것을 모르는 선우초린은 채찍을 깔끔하게 정리한 후 자신의 허리춤에 감으며 물었다.
“어떤 사람일까요? “눈이 예쁜 사람이야.”공손아리가 불쑥 말하자 선우초린은 순간 멈칫했다.
‘눈이 예쁘다고?’그걸 대체 어떻게 알았지? 마치 직접 본 것처럼 이야기하지 않았는가?
“직접 보셨어요?”공손아리는 머뭇거렸다. 그 모습에 선우초린은 가까이 다가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그녀의 보드라운 두 손을 꼭 붙잡으며 말했다.
“소군주님.”“응. 링링.”“제가 전에 말한 적 있죠? 남자새끼들은 전부다 늑대라고. 항상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한다고 이야기했었던 거 기억해요?”“응…….”똑똑히 기억했다. 선우초린 말고도 사방에서 항상 당부하던 말이니까.
“방심하면 끝장이에요. 아셨죠?”끄덕끄덕.
선우초린은 긴장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공손아리를 마냥 사랑스럽다는 눈길로 바라보다가 무언가 마음이 놓이지 않았는지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급히 가봐야 될 곳이 있어서 먼저 가볼게요.”“응. 고생해, 링링.”“네. 소군주님도요.”선우초린이 서둘러 어딘가로 사라지자 공손아리는 허둥거리며 아까 챙겨두었던 붕대와 고약을 들고 숙소로 들어갔다.
그리고 피투성이가 된 숙소를 잠시 울상을 짓고 바라보았다. 그리고 침상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마, 많이 아프지?”“…….”린과 령은 둘 다 대답하지 않고 그저 침상에 엎드린 채 얼굴을 베개에 파묻고 있었다. 공손아리는 조심스럽게 침상으로 가서 고약을 찍어서 그녀들의 둔부에 발라주었다.
한참 만에 좀 진정이 된 것인지 린이 고개를 베개에서 빠끔하게 꺼내들고 웅얼거렸다.
“……제 엉덩이 수박만 해졌죠?”“응…… 수박이 두 개가 붙어 있는 거 같애.”린은 공손아리의 안쓰러운 어조에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좋네요. 이제 남자들에게 인기 많아지겠어요. 남자들은 엉덩이 큰 여자가 좋다던데…….”“진짜? 그럼 린은 이제부터 인기 최고겠다. 엉덩이가 호박만 해졌어.”“……네, 그럼 이제부터 인기 최고겠네요.”린과 령은 서로의 상태를 보며 피식 웃어버렸다. 오늘 있었던 일은 그저 미친개에게 물린 것이라 생각하기로 한 것이다.
* * *
‘약제당에 있다고 했지?’수하들을 시켜서 소교주의 행방에 대해 알아본 선우초린은 망설이지 않고 약제당으로 향했다.
약제당은 그녀의 할아버지가 당주로 있는 곳이기 때문에, 사전에 연락도 없이 찾아왔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아무런 제지도 받지 않고 가장 깊은 곳까지 단숨에 들어갈 수 있었다.
그러다 그녀는 움찔하며 걸음을 멈추었다.
“네가 여긴 어쩐 일이냐?”정면에 서 있는 노인. 그는 바로 약제당주 선우조덕이 아닌가?
“소교주님을 뵈려고 왔어요, 할아버지. 이곳에 계신다고 들었는데 어디 계세요?”“네가 소교주님을 왜 뵈려고 하는 게냐?”“그냥 차후에 본 교를 이끌어나갈 분이신데 미리 얼굴이라도 익혀두면 서로 실수도 안 하고 좋잖아요?”선우조덕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언뜻 들어보면 맞는 말인 것 같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온통 허점투성이가 아닌가? 선우조덕의 눈매가 뱁새처럼 가늘어졌다.
“초린아.”“네. 할아버지.”“너 무슨 꿍꿍이로 소교주님을 만나려고 하는 게냐? 솔직히 말해보거라.”선우초린은 곧장 말하지 않고 잠시 뜸을 들였다. 그리고 말했다.
“진심이에요, 할아버지.”선우조덕 역시 손녀딸이 얼마만큼 또라이인지 잘 알고 있었기에 지금 이 말이 여러모로 미심쩍었지만 더 이상 생각하기를 포기했다.
지금은 이런 것에 신경을 쓸 정도로 한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차피 지금은 만나 뵙지도 못할 테니까 그냥 돌아가거라.”선우초린의 입술 끝이 씰룩거렸다.
“왜 만나 뵙지 못해요? 저도 안 되는 거예요? 할아버지 손녀인데두요?”“누군 되고 누군 안 되는 게 아니야. 지금 소교주님의 상태가 많이 안 좋으시다. 조속히 기력부터 회복하셔야 한다. 그러니 일단은 휴식부터 해야 하지 않겠느냐?”선우조덕의 말에 선우초린은 의외로 선선히 수긍했다.
“그렇겠네요. 알겠어요.”쉽게 수긍하고 뒤돌아서서 가는 모습이 영 불안하게 만들었다.
‘별일 없겠지.’선우조덕은 내심 찜찜함이 남았지만 급한 일이 많았기에 서둘러 그 자리를 벗어났다.
* * *
‘꼭 확인해야 할 게 있어.’역시 선우초린은 포기한 게 아니었다. 그녀는 약제당 출신이었기 때문에 이곳의 비밀통로라든가 샛길들에 대해서 빠삭했다.
그 덕에 선우조덕이 있던 곳을 피해서 다시 한 번 초류향을 만나러 가는 게 가능했다.
초류향이 있는 곳은 보나마나 최고의 시설이 있는 곳일 터. 그렇다면 찾아가는 데에 어려움 같은 것은 없었다.
선우초린은 숨소리조차 흘리지 않고 재빨리 초류향이 잠들어 있는 방 안으로 숨어 들어갔다. 과연 제대로 찾아온 것인지 침상에는 덩그러니 풋내 나는 소년이 누워 있었다.
‘이 녀석인가?’가까이 다가가 좀 더 자세히 초류향을 들여다보려는데 갑자기 섬뜩한 느낌과 함께 목 언저리에 길고 얄팍한 검이 닿는 게 느껴졌다.
“움직이면 죽인다.”“…….”초린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대체 어떻게? 언제 이렇게 가까이까지 접근한 것일까? 그녀가 수치심에 얼굴이 붉게 달아오를 때.
갑자기 앞에 놓인 침상 전체가 소교주를 중심으로 물결치듯이 크게 출렁거렸다. 그 순간 검끝이 미묘하게 흔들렸다.
‘빠져나갈까?’잠시 그런 갈등을 했지만 초린은 고개를 저었다. 상대방의 실력을 정확하게 모르는 이상 무리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녀의 그 판단은 실로 현명했다. 상대방은 운휘. 화경의 고수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그녀가 생각을 정리하고 있을 때.
침상 위에 누워 있던 파리한 안색의 소년이 상체를 일으켰다. 소년은 지극히 신비로운 눈빛으로 초린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쪽은 누구십니까?”이것이 나찰마녀 초린과 수라왕 초류향의 첫 만남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