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Shura RAW novel - Chapter (66)
제66화 공손천기의 선물(2013.08.29.)
초혜정으로 돌아온 초류향은 사흘 동안 바쁜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즉위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소교주로 정식으로 인정받는 즉위식. 그것은 교의 호법들이 솔선수범해서 그 어느 때보다도 가장 완벽하고 성대하게 준비되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즉위식이 있는 그날.
초류향은 흑룡포(黑龍布)를 몸에 걸치고 황금 무늬가 그려진 고급스러운 적장화(赤長靴)를 신었으며 머리에는 소교주의 신분을 상징하는 황금색 작은 관을 둘러썼다.
몸에 걸치고 있는 요대와 장신구 등등, 모든 것들이 값비싼 최상급품들뿐이었고, 그것들은 오로지 오늘 하루, 소교주가 되는 초류향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차려입으니 제법 그럴싸하구나.”공손천기는 즉위식 직전 대기하고 있는 초류향에게 찾아와 웃음 지었다. 오랜만에 보는 것이다. 그동안 공손천기 역시 여러 가지로 바빴기 때문에 초류향을 찾지 못했었다.
이제야 겨우 그 일들이 마무리되어서 시간이 난 것이다. 초류향은 공손천기를 바라보며 한숨 섞인 말을 내뱉었다.
“걸치고 있는 것들이 너무 고급이라 마음대로 움직이지도 못하겠습니다. 솔직히 이런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습니다.”“아아, 처음에는 다들 그렇게 생각하지. 이제부터라도 고급스러운 것에 익숙해지는 편이 좋을 게다. 지겨울 정도로 그런 것만 써야 하거든.”초류향은 고개를 저었다. 이건 도무지 적응될 것 같지 않았다. 너무 비효율적인 것이다. 공손천기는 그런 초류향을 살펴보다 눈을 빛내었다.
“그나저나 얻은 것이 있구나. 눈빛이 달라졌다.”초류향은 공손천기를 바라보았다. 이걸 무어라 설명해주어야 할까? 잠시 생각하던 초류향은 그저 씨익 한 번 웃어주었다.
백 번의 말보다 그 자신만만한 미소 한 방에 공손천기는 초류향이 얻은 것이 결코 작지 않음을 알았다.
“오호라. 어찌어찌 련은 돌파한 모양이구만. 제법이네.”“기연이 있었습니다.”“기연이라…….”공손천기는 알 듯 모를 듯한 미소를 그려 보였다. 과연 제갈량이라는 영감탱이가 한 짓이 그래도 꽤 효과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게 기연이라면 확실히 기연일 것이다.
‘그런데…….’그의 제자는 자신이 제갈량이라는 존재를 아직도 모르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공손천기는 속으로 음흉하게 웃었다. 아직은 그 비밀을 밝힐 생각이 없었다. 녀석이 천천히 말하길 기다려보는 것도 제법 즐거운 일이 아닌가?
‘원래 맛있는 건 제일 나중에 먹는 법이지.’공손천기는 그렇게 만족스러운 웃음을 한 번 지어 보이곤 초류향에게 불쑥 말했다.
“그럼 이제 수라환경도 배워보도록 하자.”초류향은 눈을 깜빡거렸다. 이건 너무 빨랐다. 아직 월인도법도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는데 다른 것을 배워도 되는 것일까? 그런 의문들을 알고 있는 것인지 공손천기가 말했다.
“지금이 제일 좋은 시기다. 네 몸이 어느 정도 완성되었으니 이때보다 좋을 수가 없지.”공손천기는 집게손가락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초류향의 머리부터 다리까지 한 번 스윽 훑어 내리며 말했다.
“수라환경은 월인도법처럼 차분한 놈이 아니다. 지나치게 흉폭하고 야만스럽지. 본래도 그랬던 녀석을 내가 더더욱 야성적으로 바꿔놓았다. 그걸 익히면 아주 재미있을 게다.”초류향은 공손천기의 입가에 그려져 있는 장난스러운 미소를 보며 불안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다툼을 싫어하고 피를 좋아하지 않는 그의 스승은 상대적으로 남을 괴롭히면서 즐거움을 찾는 부류였다. 그리고 항상 그것은 당하는 입장에서 끔찍한 괴로움이 되었다.
‘견딜 수밖에 없겠군.’애초에 초류향이 결정한 길이다. 거기에 어떤 변명이나 핑계를 댈 순 없었다.
“아직도 강해지고 싶은 마음에는 변함이 없느냐?”“예. 강해지고 싶습니다.”지금보다 더.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강함을 얻고 싶었다. 그런 열망이 하루하루 커지고 있는 것이다.
“강해져서 무얼 하고 싶으냐? 단순히 복수? 허면 복수를 끝내놓고서는 무얼 하고 싶은 게냐?”공손천기의 질문에 초류향은 생각했다. 강해지고 나서 무얼 하고 싶은 것일까? 복수라는 목적을 이루고 나면 그 뒤에는 뭐가 있지?
초류향의 머릿속에 온갖 생각들이 가득해졌다. 그런 제자를 바라보며 공손천기가 웃었다.
“네가 보는 나는 어떠하냐?”어떠하냐라니? 무슨 질문일까? 초류향은 고요한 눈으로 그의 스승을 바라보았다. 근래에 들어 스승의 대단함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천마신교라는 작은 나라. 그 나라를 아무런 불협화음 없이 완벽하게 이끌고 있는 가장 완벽한 지도자였다. 게다가 그에게는 항상 여유가 있었다.
아무리 힘든 상황이 닥쳐도, 그 누구보다도 현명하게 전체를 이끌고 나가는 것이다. 이것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공손천기의 위대함이었다.
“제가 닮고 싶은 사람입니다.”초류향의 대답에 공손천기는 웃었다. 가식이 조금도 섞여 있지 않은 진정으로 행복한 웃음이다.
“나는 말이다, 제자야. 근래에 몹시 행복하다.”“…….”의외의 대답. 항상 귀찮다고, 번거롭다고 투덜거리던 그에게서 이런 말을 듣게 될 줄이야. 초류향이 가만히 말을 경청할 때 공손천기가 초류향의 어깨를 가볍게 털어주며 입을 열었다.
“무언가를 선택하고자 할 때, 남들에게서 그 기준을 찾지 마라. 남들의 눈치도 보지 마라. 모든 일을 행함에 있어서 그저 네가 행복할 수 있을까, 그것만을 생각해라. 지독하게 이기적인 놈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나처럼 될 수 있다.”오만하고 지독할 정도로 독선적인 말이었다.
하지만 제자에게 이런 말을 해주는 사람이, 그것도 가르침으로서 해주는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있을까?
이것은 천하에 오직 공손천기만이 할 수 있고, 해줄 수 있는 말이었다. 그는 진짜 그러했으니까.
“곧 있으면 천하에서 가장 위대한 사람의 정식 제자가 되는 거다.”초류향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돌렸다.
“……스승님이 대단한 사람인 것은 분명 맞지만 본인의 입으로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게 민망하지도 않으십니까?”공손천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사실을 말하는데 민망해할 필요가 있느냐?”“…….”초류향은 생각했다. 다른 것은 몰라도 적어도 이런 부분만큼은 닮고 싶지가 않았다.
‘아니, 애초에 닮으려 해도 할 수 없는 것이겠지만.’그가 이런 말을 한다면 어색한 분위기가 될 것이다. 하지만 공손천기는 지나치게 자연스러웠다. 공기가 당연히 이곳에 존재하는 것처럼 어색함이 없는 것이다.
“이제 시작이다. 가보자.”초류향은 고개를 끄덕였다. 드디어 시작된 것이다. 앞으로 초류향이 걸어가야 할 분명한 길. 그것이 오늘 하루에 가장 확실하게 결정되는 것이다.
“너를 위해 내가 직접 특별한 선물도 준비해놓았다.”특별한 선물? 원래가 엉뚱한 스승님이니 덜컥 불안한 마음부터 들었다. 초류향이 궁금함이 가득한 얼굴로 그의 스승을 바라보았지만 되돌아오는 것은 음흉한 웃음뿐이다.
“미리 알면 재미없지 않겠느냐? 참을 줄도 알아야지.”“……아까 먹은 게 얹힐 것 같습니다.”초류향이 거북스러운 얼굴을 해 보이자 공손천기는 결국 입술 끝을 실룩이며 웃어버렸다. 제자가 정말로 불안해하는 게 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실 그의 선물은 제자가 불안해하기에 충분했다. 잠시 후, 즉위식에서 그 실체를 마주하고 초류향은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이거였구나.’
많은 사람들의 환호와 축하 속에서 즉위식은 성대하게 진행되었다.
하지만 초류향은 주변의 그런 것들은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오로지 한 사람. 그 한 사람만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아버지…….’상석에 놓여 있는 귀빈들의 자리. 그곳에 앉아 있는 익숙한 사람. 초류향의 아버지 초무령이었다. 그가 초류향을 만감이 교차하는 복잡한 표정으로 응시하고 있었다.
[선물은 마음에 드느냐?]초류향은 갑작스럽게 들려온 전음에 그의 스승님을 바라보았다. 제자의 그 사나운 시선에 공손천기는 헤벌쭉 웃어 보였다.‘역시 반응이 재미있단 말이야.’싫어하는 걸 알면서도 재미 때문에 멈출 수가 없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이런 쪽으로 철이 덜 든 모양이었다.
‘뭐, 이런 것도 나쁘지 않지.’철이 덜 들어서 좋은 점도 있는 법이다. 공손천기는 그렇게 뻔뻔하게 생각하며 시선을 돌려 저 먼 곳을 응시했다.
즉위식이 벌어지고 있는 일월대전(日月大殿). 그 입구 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부러움이 가득한 표정으로 이곳을 바라보고 있는 노진녕이 보였다.
‘저놈도 제법 재미있는 놈이지.’세상에는 정말 별별 재미있는 놈들이 많은 것 같았다. 사실 공손천기는 초류향을 만나기 직전 노진녕을 만났었다. 사형인 권광민의 부탁도 있고, 그도 사실 호기심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노진녕을 처음으로 대면하는 순간. 공손천기는 눈을 깜빡이며 몇 번이고 그를 살펴보아야만 했다.
“네 수준으로 어떻게 화경의 경지에 올라간 거지?”그게 공손천기의 첫 질문이었다.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적어도 그가 보는 기준에서 노진녕은 결코 화경에 오를 수 있는 자질이 없었기 때문이다.
초류향과는 다르지만 공손천기 역시 사람의 근본을 꿰뚫어 보는 눈을 가지고 있었다.
본래부터 그런 재능이 있었는데 수행에 수행을 거듭하면서 그것을 더더욱 날카롭고 예리하게 갈고닦은 것이다.
그런 그의 기준에서 노진녕은 결코 화경의 고수가 될 수 없었다. 자질이 부족한 것이다.
그런데 믿을 수 없게도 노진녕은 화경의 고수였다. 이 말도 안 되는 괴리감에 처음에 공손천기는 몇 번이고 눈을 깜빡이며 확인을 한 것이다.
“내 부족한 제자일세.”“…….”공손천기는 사형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노진녕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의 기준을 벗어나는 것은 정말이지 오랜만에 보는 것이다.
신기함도 있었지만 이것은 그에게 있어서 신선한 충격이었다. 무언가가 근본부터 잘못되지 않은 이상 결코 빗나가는 적이 없었는데 이번 것은 정말 의외의 일이지 않은가?
“어떻게 화경이 된 거지…….”공손천기는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다. 사람은 본래 태어날 때부터 고유의 자질을 타고나며 그것에는 사람마다 서로 다른 한계가 있다.
그 자질은 대개 어떤 한 분야에 국한되지 않고 고르게 퍼지기 때문에 상당 부분 유실되거나 쓸모없이 낭비되곤 한다.
‘설마…….’무공이라는 한 분야에 모든 능력이 집중되어버린 것일까? 그런 게 가능한 건가? 의문이 들었지만 노진녕을 보는 순간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가능한 모양이다.’다른 곳으로 능력이 하나도 유실되지 않고 오로지 무공에만 집중되어 있다면 가능한 모양이다.
허나 그렇다는 말은 무공을 제외한 다른 모든 것에 무능력하다는 말과 다름이 없지 않은가?
‘이거 정말 재미있군.’해답이 내려지자 공손천기의 입가에는 웃음기가 맴돌았다. 눈앞에 있는 놈은 진짜 재미있는 놈이었다. 신기하다는 얼굴로 살펴보고 있는데 그 재미있는 놈이 불쑥 입을 열었다.
“교주가 되고 싶습니다.”“응?”“교주가 되려고 화경의 고수가 되었습니다.”이게 무슨 소리지? 공손천기가 의문을 가득 담아 그의 사형을 바라보았을 때 사형 권광민은 민망해하는 얼굴로 공손천기의 눈을 피했다.
그제야 모든 상황이 이해가 된 공손천기였다. 슬그머니 입가에 웃음기를 머금으며 공손천기가 말했다.
“지금 교주가 되고 싶다고 했느냐?”“예. 교주님.”“그럼 교주가 되면 뭘 하고 싶으냐?”교주가 되면 뭘 하지? 순간 노진녕은 얼빠진 얼굴을 해 보였다. 그저 막연하게 교주가 되고 싶다고 생각만 해왔었다. 단순하게 교주가 되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정말 뭐가 하고 싶었던 것일까? 공손천기의 질문은 가장 근본적인 질문이었고, 노진녕은 대답하지 못했다. 거기까지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교주가 되면 뭐든 할 수 있지. 너는 단순히 그것 때문에 교주가 되고 싶었던 것이냐?”“……예.”그랬다. 뭐든지 할 수 있으니까 교주인 거다. 모든 권력의 정점. 화려함의 상징이 아닌가? 공손천기는 그런 노진녕의 생각을 읽었음인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너는 교주가 될 수 없다. 교주라는 것은 뭐든 할 수 있지만 반대로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거든.”“…….”“교주라는 게 혼자서 할 수 있는 게 아니지 않느냐? 너는 수만 명의 사람들을 이끌어 나갈 자신이 있느냐? 그들의 배를 곯지 않게 해주고,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줄 자신이 있느냔 말이다.”“…….”노진녕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저 화려하고 멋있어 보인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에 교주가 되고 싶었고, 아무 생각 없이 그것을 목표로 삼았다.
교주라는 직위에 따르는 여러 가지 책임들까지 고려하면서 교주가 되고 싶어 했던 게 아닌 것이다. 어디까지나 단순한 바람이었을 뿐.
그런 마음을 읽었기에 공손천기는 속으로 웃었다.
‘어린아이 같은 놈이구만.’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이 있다. 그런데 이 녀석만은 예외인 듯했다. 처음 보는 것인데도 녀석이 생각하고 있는 것이 그대로 생생하게 전해져왔다.
그야말로 단순함의 극치인 것이다. 이 녀석을 보고 있으니 계속 웃음이 나왔다.
그러다 문득 제자인 초류향의 얼굴이 머릿속에 떠오르고 이놈을 그 옆에 세워두니 제법 재미있는 그림이 눈앞에 그려졌다.
“교주가 되면 내가 말했던 모든 것들을 책임져야만 한다. 너는 할 수 있겠느냐?”노진녕은 한참을 생각하다가 곧 풀 죽은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불가능했다. 그런 복잡한 일을 할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그때 공손천기가 입을 열었다.
“교주가 되진 못하더라도 어지간한 건 마음먹은 대로 하면서 살 수 있는 방법이 있긴 있다. 한번 해보겠느냐?”노진녕은 눈을 반짝이며 공손천기를 바라보았다. 그 순간 공손천기는 속으로 미소 지었다. 그의 생각대로 그림이 그려지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것은 꽤나 즐거운 일이었다. 차후 천마신교의 미래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공손천기의 그림이 여기에서부터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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