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Shura RAW novel - Chapter (71)
제71화 초류향, 화경의 고수와 겨루다.(2013.09.16.)
운휘는 어둠속에 몸을 숨긴 채 날카로운 눈으로 그의 꼬마 주인을 응시하고 있었다. 온몸의 감각을 총동원하여 초류향을 살펴보며 운휘는 지난 며칠째 곤혹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뭘까?’그의 어린 주인은 얼마 전에 갑자기 쓰러졌다가 일어난 이후로 미묘하게 변해 있었다.
그게 무어라고 딱 꼬집어 말할 수가 없었지만, 운휘는 그 변화의 조짐들을 확실하게 느꼈다.
‘무언가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이 있다는 건가?’화경의 고수는 그 감각이 일반인들과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예민하다. 그런 감각을 총동원했는데도 확답을 내릴 수가 없었다. 그게 더욱 수상했다.
운휘는 한층 신중한 얼굴로 그의 작은 주인을 살펴보았다. 이 변화의 정체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었지만 분명 대단히 중요한 것이라고 여긴 것이다.
그리고 그의 그런 예감은 정확했다.
* * *
‘신기하다.’초류향은 자신의 몸을 한번 슬쩍 내려다보며 작게 미소 지었다.
월인도법의 련.
그것을 얻고 나자 신체가 완벽하게 통제되는 게 느껴졌다. 또한 작은 움직임에도 온몸의 신경세포가 하나하나 살아있는 것처럼 격렬하게 반응해왔다.
걸음마를 막 배운 아이처럼 처음에는 이 감각들이 익숙하지 않았지만, 그런 어색함은 금방 사라졌다. 지금은 아주 능숙하게 몸의 생생한 반응들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가장 큰 변화는 이런 신체의 변화 같은 것이 아니었다. 초류향은 천천히 눈을 감고 걸었다. 시야가 완벽하게 차단되어 있었지만 초류향의 발걸음은 망설임이 없었다.
‘이건 정말 신기하다.’주변의 모습이 머릿속에 아주 생생하게 그려졌다. 길가에 놓여 있는 작은 조약돌이나 잡초들까지 머릿속에 하나하나 완벽하게 그려졌던 것이다. 때문에 눈을 감고 있어도 걸음을 옮기는 데 아무런 제약이 없었다.
월인도법 중 가장 큰 난관이었던 ‘련’. 그 관문을 넘어서자 부수적으로 너무도 색다른 것을 얻어 버렸다. 그것이 바로 이 ‘영역’이었다.
‘대략 스무 걸음 정도…….’초류향의 작은 보폭으로 겨우 스무 걸음. 아직은 그 정도에 불과했다. 허나 그 스무 걸음 안에 있는 모든 것은 굳이 눈으로 보지 않아도 뚜렷하게 느낄 수 있었다.
초류향은 스승님과 헤어져 숙소로 돌아가다가 멈칫하며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눈을 뜨고 정면을 보았다.
‘무언가가 있다.’그의 영역의 제일 끄트머리. 그곳에 무언가 있었다. 자동으로 정관법이 발휘되고 초류향의 눈에 조금 묘한 감정이 떠올랐다.
‘사람?’멀찍이 뒤에서 은신한 채 따라오고 있던 운휘 역시 정면에 있는 수상한 물체를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갑자기 정면으로 빠르게 움직이는 것이 감각에 잡혔다. 그 순간 초류향의 머릿속을 스쳐가는 스승님의 음성.
[숙소에 돌아가면 제법 재미있는 선물이 기다리고 있을 게다.]그 장난기 가득한 음성이 떠오르자마자 초류향은 재빨리 손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괜찮습니다. 제 손님입니다.”초류향은 확신했다. 지금 그의 숙소 앞에 웅크리고 있는 저 수상한 사람이 스승님이 말했던 그 선물일 것이다.
그리고 그 예상은 정확했다. 초류향의 제지에 운휘는 그림자 속에 은신한 채로 잠시 복잡한 얼굴을 했다.
‘또인가?’매번 느끼는 것이지만 눈앞에 있는 그의 작은 주인은 자신의 은신을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간파했다. 이건 적잖이 자존심에 상처가 되는 일인 것이다.
운휘의 그런 복잡한 심경을 아는지 모르는지 초류향은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숙소 앞에 쪼그리고 앉아서 그를 지켜보고 있는 사내를 바라보았다.
‘칠십…….’정관법으로 살펴보자 사내의 잠재력은 칠십이라는 수치를 나타내고 있었다. 이건 생각보다 대단히 높은 수치였다.
‘근래에 천마신교에서 보는 사람들은 전부 다 대단한 사람들뿐이군.’곰곰이 생각해보니 근래에 만났던 사람들은 죄다 칠십 이상이었던 듯하다.
천마신교가 대단한 것인지 아니면 보는 사람들마다 그런 것인지 알 수는 없었지만, 어찌되었건 이토록 높은 수치를 가진 사람들이 부지기수로 모여 있는 천마신교는 과연 천하제일이 될 만했다.
교주인 공손천기의 수치가 월등히 높아서일까? 그를 중심으로 대단히 뛰어난 인재들이 즐비한 것만 같았다.
초류향이 그런 생각들을 하고 있을 때 숙소 앞에서 쪼그리고 앉아 있던 젊은 사내가 엉덩이를 툭툭 털며 일어섰다.
“널 기다리고 있었어.”초류향은 눈앞의 젊은 사내를 의아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누구지?’소교주인 그에게 이렇게 보자마자 냅다 반말을 하는 사내의 신분이 궁금했기 때문이다. 막 입을 열어 그의 정체를 물어보려는데 상대방이 먼저 입을 열었다.
“교주님과 내기를 했어. 교주님께서는 널 제압한다면 날 제자로 삼아주기로 하셨지. 대신 내가 지면 네 부하가 되라고 했어.”“…….”초류향은 자신도 모르게 입술 끝을 씰룩거렸다. 이제야 공손천기의 의도가 짐작이 되었기 때문이다. 가만히 젊은 사내를 살펴보던 초류향은 잠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건…….’심상치 않았다.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던 초류향은 뒤에 있던 운휘를 돌아보고 다시 젊은 사내를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화경의 고수?”젊은 사내. 그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초류향은 안경을 매만졌다. 그리고 속으로 즐겁게 웃고 있을 그의 스승님의 얼굴을 떠올리며 작게 투덜거렸다.
‘이번 건 꽤 재미있는 장난입니다.’상대방의 신분은 아직까지도 아리송했지만 적어도 한 가지만은 확실했다.
화경의 고수. 즉, 초인(超人)이라 불리는 사람을 제압해야 된다는 것이다. 인간이 지닌 육체적인 한계를 벗어던진 존재.
그런 존재를 대체 어떻게 제압해야 될까? 초류향이 궁리하고 있을 때 젊은 사내가 입을 열었다.
“시작해도 돼?”초류향은 안경을 매만지며 입을 열었다.
“그전에 하나만 물어도 되겠습니까?”“응.”“이름이 어떻게 되십니까?”“내 이름? 노진녕이라고 해.”노진녕? 그게 누군데?
입 밖으로 튀어 나가려는 질문을 가까스로 억누르고 초류향은 혼란스러운 얼굴을 해보였다.
‘대체 뭐지?’스승님과 내기를 했다는 것을 보면 분명 그 나름의 확실한 지위가 있는 모양인데 그게 뭔지 도통 짐작이 되지 않았다. 그때 노진녕이 두 주먹을 가슴 앞에서 팡팡 부딪치며 입을 열었다.
“난 교주가 되고 싶어. 그러니 반드시 널 제압할 거야.”“…….”초류향은 언뜻 머릿속이 차갑게 식어가는 것을 느꼈다. 노진녕의 말속에서 진심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건 농담이 아니군.’약간 장난스럽게 지금 상황을 바라보고 있던 초류향은 속으로 깊게 반성했다. 눈앞에 있는 이런 부류의 사람에게는 장난이 통하지 않는다.
그것을 깨닫자마자 초류향은 무력으로 상대방을 제압하는 것을 빠르게 포기했다. 아직 그의 월인도법은 미숙하다.
그것을 사람에게, 그것도 감히 화경의 고수에게 사용할 정도의 무모함은 없었던 것이다.
대신 초류향은 자신만의 비밀 무기를 꺼내기로 했다. 그리고 초류향은 이쪽이 더 자신이 있었다.
차분하게 주변을 둘러보며 지형지물을 완벽하게 파악한 초류향은 이윽고 입가에 희미한 미소를 그리며 말했다.
“준비가 되었습니다.”“그럼 가도 돼?”초류향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노진녕이 바닥을 강하게 박차며 앞으로 빠르게 쏘아져 나갔다.
* * *
진법이라는 것은 참으로 신기하다.
주변에 있는 지형지물에 인위적으로 일정한 규칙을 적용시켜놓으면 아주 적은 재료로도 세상과 격리된 인공적인 공간을 만들 수가 있다.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숙달된 사람에 한해서다.
‘온다.’사실 초류향은 노진녕이 움직이기도 전에 먼저 몸을 움직였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화경의 고수의 신체 반응을 따라잡을 수 없다고 여긴 것이다.
하지만 막 목표 지점을 향해 움직인 후 초류향은 모든 계획을 전면 수정해야만 했다.
‘위험!’팡―!
초류향은 노진녕의 일격을 간신히 피하고 바닥을 뒹굴다가 벌떡 일어서며 매우 복잡한 얼굴을 해보였다.
“어? 피했어?”“…….”그가 예상했던 것보다 화경의 고수는 더욱 대단한 존재였던 모양이다.
‘이건 무리다.’평소 운휘의 움직임을 바탕으로 상대방의 속도를 계산했었다. 헌데 이건 예상을 훨씬 넘어서는 몸놀림이 아닌가? 평소의 운휘는 이렇게 빠르게 움직이지 않았다.
‘전력을 보여주지 않았다는 말이군.’운휘 역시 화경의 고수였다. 수치상으로 보았을 때 그가 노진녕보다 나으면 나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그렇다는 것은 그가 평소에 전력을 펼쳐 보인 적이 없다는 뜻이 된다.
초류향은 이 의외의 변수에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운휘와는 다르게 지금의 노진녕은 정말이지 전력을 다하고 있었다.
당연히 압도적인 속도의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첫 일격을 피한 것도 기적에 가까웠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될까? 초류향은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리다가 서서히 움직이려는 상대방을 보며 결단을 내렸다.
‘월인도법을 쓴다.’과연 화경의 고수에게 통할까? 그가 생각해도 아직 미숙하기 그지없는데……. 초류향은 머릿속에 떠오르는 갖가지 불안감들을 애써 떨쳐내며 심호흡을 했다.
그 순간 노진녕이 다시 움직였다. 초류향은 자신의 예민한 감각을 극도로 끌어올리며 최대한 빠르게 좌측으로 몸을 날렸다.
‘아래에서 위로 걷어차 올리는 발차기…….’신기하게도 상대방의 움직임이 손에 잡힐 듯 뚜렷하게 보였다. 하지만 초류향의 몸은 거기에 대응할 만한 움직임을 만들어낼 수가 없었다.
미숙한 그의 월인도법으로는 공격을 볼 수는 있어도 피할 수가 없는 것이다. 초류향은 복부를 향해 꽂히는 발차기를 두 눈을 부릅뜬 채로 지켜보았다.
퍼엉―!
폭음과 함께 초류향의 몸이 마치 폭탄이라도 맞은 듯 뒤로 튕겨져나갔다.
투카칵―!
뒤쪽에 있던 나뭇가지와 바윗덩이들이 초류향의 몸에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조금 떨어진 곳에 숨어 있던 운휘는 일순간 멍한 얼굴을 했다.
그조차도 어떻게 반응할 수 없을 정도로 조금 전 노진녕의 일격은 빠르고 강력했던 것이다.
“이놈…….”운휘는 은신을 풀고 몸을 드러내며 낮게 이를 갈았다. 아무리 내기라지만 그의 주인이었다. 그의 주인이 지금 발에 걷어차여서 죽어가고 있었다.
아니, 죽었다고 생각했다. 조금 전의 그 일격은 화경의 고수가 작정하고 내지른 것. 웬만한 고수들도 저렇게 제대로 맞으면 죽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소교주는 아직 어린아이가 아닌가? 살아 있을 리가 없었다. 거기까지 생각하던 운휘의 전신에서 진득하며 지독하게도 음습한 살기가 뭉클거리며 뿜어져 나왔다.
“어? 어어?”노진녕이 갑작스럽게 등장한 운휘를 보며 눈을 휘둥그레 뜨고 있을 때,
“전…… 괜……찮습니다.”초류향의 가느다란 음성이 뒤에서 들리자 운휘의 신형이 순간 엿가락처럼 길게 늘어나며 곧장 초류향의 곁에 나타났다.
“정말 괜찮으십니까?”초류향은 고개를 끄덕이다가 갑자기 자신도 모르게 히죽 웃어버렸다.
“멀쩡합니다.”“…….”멀쩡하다고? 그럴 리가? 그럼 방금 그 엄청난 소리는 대체 뭔데? 운휘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질문들을 결국 입 밖으로 내뱉지 못했다.
흙먼지를 뒤집어쓴 채로 뭐가 그리도 좋은지 초류향은 지금 실실 쪼개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멀쩡한 거지?’운휘가 의아한 눈으로 그의 어린 주인님을 바라볼 때 초류향은 바닥에 손을 짚고 일어섰다.
“끙차.”그리고 자리에서 일어선 초류향은 옷과 머리카락의 흙먼지를 대충 털어내며 노진녕을 바라보았다. 초류향의 얼굴에는 조금 전까지 없던 자신감이 충만해져 있었다.
“다시 시작하죠.”노진녕은 운휘의 눈치를 한 번 살펴본 후 곧 고개를 끄덕였다. 숨어 있는지도 몰랐던 운휘의 존재가 잠깐 그의 신경을 건드렸지만 태도를 보아하니 끼어들 것 같지는 않았다.
그보다는 초류향이 더 신경 쓰였다. 분명히 그의 일격을 맞고 날아갔는데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으니까.
‘빗맞은 거겠지.’자신도 모르게 죽이기 싫어서 힘 조절을 한 모양이었다. 노진녕은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하며 다시금 다리에 힘을 모았다.
그런 노진녕을 보며 초류향은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