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Shura RAW novel - Chapter (73)
제73화 초류향은 반칙왕(?)(2013.09.23.)
공손천기는 턱을 괴고 앉아서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했다. 그러다 불쑥 입을 열었다.
“제갈량이라는 영감을 혹시 알아?”“제갈량……이요?”“그래.”“촉한의 제갈공명을 말하는 거라면 알고 있지요.”전박이 쉴 새 없이 주판알을 튕기며 문서에 무언가를 적다 건성으로 대답하자 공손천기가 다시 중얼거렸다.
“그 영감이랑 내가 붙으면 누가 이길까?”어이없는 질문. 하지만 감히 누구의 질문인데 무시하겠는가?
“당연히 교주님이 이기죠. 그런 책만 읽은 서생 정도야 한주먹감이나 되겠습니까? 교주님께서 그 앞에 가서 하품만 해도 가루가 될 겁니다.”별 시덥지도 않은 걸 물어본다는 말투. 전박이 기입하던 문서에서 눈도 떼지 않은 채 가볍게 대답했다.
공손천기는 그런 전박을 복잡한 눈으로 바라보다가 결국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렇겠지? 일반적인 생각으로는?”“예.”상대가 될 리 있겠는가?
현재 교주의 무공은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지만, 이미 신의 경지라 불리는 신입에 올라서 있었다. 팔대 호법을 비롯하여 역대 그 누구도 올라서지 못했던 절대의 경지다.
“젠장, 다시 한 번 그 영감이랑 확 붙어 봐?”“예?”전박이 교주 공손천기의 중얼거림에 결국 고개를 돌리자 공손천기가 황급하게 시선을 돌리며 말했다.
“아니야. 지금은 아직 나도 준비가 덜 됐지. 조금 더 정비가 필요하겠지.”“대체 무슨 소리신지…….”전박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아까부터 교주가 알 수 없는 말만 중얼거린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나한테 신경 쓰지 말고 하던 거나 마저 견적 내 줘. 이제 정말로 사천에 나갈 준비를 해야 되니까.”“예.”전박이 다시 고개를 돌리자 공손천기는 생각했다. 얼마 전 월인도법을 보고 약간이지만 얻은 게 있었다.
선우조덕에게 말했던 것처럼 깨달음의 부스러기와 같은 작은 것이었지만, 단지 그것만으로도 지금의 공손천기에게는 어마어마한 효능이 있었던 것이다.
“다시 붙으면 그때는 쉽지 않을 거야.”이건 말년에 생긴 소소한 즐거움이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자신에게 패배감과 비슷한 감정을 알려준 인간이 아닌가?
결코 대충 넘어가거나 쉽게 끝낼 생각이 없는 공손천기였다. 그런 생각들을 하자 복잡하던 공손천기의 얼굴에 점차 흐뭇한 미소가 떠올랐다.
* * *
운휘는 잠시 멍청한 얼굴로 정면을 응시했다. 눈을 몇 번 끔뻑거리다 주변을 빠르게 살펴본 뒤, 운휘는 혼란스러운 얼굴을 해보였다.
‘기척이 완전히 사라졌다?’눈앞에 멀쩡하게 있던 사람이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그것도 흔적 하나 남기지 않고 아주 완벽하게.
이쪽 방면으로 전문가인 운휘조차도 방금 전까지 눈앞에 있던 노진녕의 기척이나 호흡, 이런 것들을 전혀 잡아낼 수가 없었다. 대체 어떻게 이런 마법 같은 일이 가능한 걸까?
‘주술인가?’운휘는 잠시 거기까지 생각했다가 곧 고개를 저었다. 기본적으로 정신력이 강한 화경의 고수에게는 주술도 쉽게 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 대체 뭐란 말인가?’눈앞에서 사람 하나가 통째로 사라져 버렸다. 단지 돌멩이 하나를 바닥에 던져 놨을 뿐인데. 운휘가 당혹스러운 얼굴로 초류향을 바라보고 있을 때.
그때까지 바닥에 앉아서 무언가를 열심히 그리고 있던 초류향이 입에서 다시금 선명한 붉은 핏물을 토해 내며 두 손으로 땅을 짚었다.
‘이거였다.’고통 뒤에 찾아오던 낯선 감각. 그것은 바로 아주 일시적이었지만 세상과 하나가 되는 듯한 느낌이었다.
순간적으로 전신의 감각들이 몸 바깥으로까지 크게 확장되는 그런 색다른 기분.
‘세상이라는 커다란 존재에 비한다면 나는 아주 작은 존재다.’그렇기 때문에 세상과 하나 되는 순간. 육체의 고통이 자연스레 지나가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신체 내부에 있는 삼라만상을 다루는 월인도법의 근본적인 힘이었다.
초류향은 땅을 짚고 있는 두 손을 움켜쥐었다. 아직도 전신이 덜덜 떨렸다.
세상과 하나가 되는 일체감(一體感)을 느끼기 직전까지의 고통은 고스란히 감당해야 되는데, 그게 정말 힘들었다.
월인도법의 갑(鉀).
그것을 사용했지만 조금 전의 일격은 그의 작은 육신으로는 감당이 되지 않았다. 정말로 죽을 뻔한 것이다.
“괜찮으십니까? 이것을 드시면 조금 편안해지실 겁니다.”걱정스러운 얼굴로 운휘가 품에서 운기요상단(내부를 다스리는 약)을 꺼내어 내밀자 초류향은 사양하지 않고 그것을 받아먹었다.
먹는 순간 초류향은 눈을 반짝이며 놀란 얼굴을 해보였다. 혀에 약이 닿는 순간, 그것이 바로 물처럼 변하더니 식도를 타고 내려가 곧장 내부 전체를 빠르게 진정시켰기 때문이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온몸에서 이상하게 활력이 솟아났다. 단번에 호흡이 편안해지고 각혈이 멈추었다.
이렇게 즉각적이고 엄청난 효능이라니?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은 보통 약이 아니지 않은가? 그 의문을 읽었음일까?
운휘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약제당주께서 특별하게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단약입니다. 혹시나 소교주님께서 쓰러지시면 드리라고 했습니다.”운휘의 설명에 그제야 초류향은 이해가 갔다. 약제당주인 선우조덕이라면 충분히 이런 단약을 만들 수 있을 거라 여긴 것이다.
사실 초류향은 거기까지 생각했지만 지금 먹은 운기요상단은 굉장히 특별한 종류의 단약이었다.
선우조덕조차도 일 년 동안 각고의 노력을 들여 불과 열 알 남짓밖에 만들지 못하는 기사회생의 묘약이었던 것이다.
평소 약에 대해서 그다지 신용하지 않는 저 공손천기조차도 ‘이건 약발이 잘 듣네?’라며 칭찬했던 게 바로 이것이었으니까.
불사호심단(不死護心丹).
이 거창한 이름이 다름 아닌 공손천기가 직접 붙여 준 운기요상단의 정식 이름이었다.
“잠시 떨어져 주시겠습니까?”소매로 입가에 묻은 피를 대충 닦아내며 초류향이 말하자 운휘는 선뜻 멀찍이 물러섰다. 이 꼬마 주인이 하는 행동은 하나하나가 모두 범상치 않았다.
이번에는 대체 또 어떤 신묘한 재주를 보여줄 생각일까? 어떤 방법을 써서 화경의 고수를 이 세상에서 사라지게 만들었는지도 궁금했다.
이제는 소교주가 무엇을 보여줄지 막연한 마음으로 기대하게 되어 버린 운휘였다.
‘시간이 없다.’오래전 초류향은 조기천 스승님과 함께 고안했던 것이 있었다.
진법의 가장 큰 단점은 바로 그것을 온전히 발동시키기까지의 과정에 있었다. 너무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몸놀림이 빠른 무림인들과 부대끼면서 조기천과 초류향은 그 부분에 대해 보완해야 할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
최악의 경우 어느 정도 저항할 수 있는 방법은 있어야 했으니까. 무림인들의 틈바구니에서 스스로의 몸을 지킬 수단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래서 진법과 산법에 미친 두 명의 노소(老少:노인과 아이)가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고민해서 만든 것이 바로 극도로 간소화된 진법이었다.
지정된 특정한 범위 안에서만, 혹은 어떤 특별한 조건이나 환경에서만 발동되는 진법을 만들게 되었던 것이다.
조건들이 무척이나 까다롭고 진법의 유지 시간도 매우 짧지만, 대신 기존의 진법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완성시킬 수 있는 진법.
‘규진법(規陳法).’초류향은 안경을 매만지며 잠시 아련한 얼굴을 해보였다.
규진법.
이것은 이제 고인이 되어 버린 조기천 스승님과 함께 만든 최초의 진법 이름이었다. 그것을 정말로 사람에게 써먹게 되는 상황이 오게 될 줄은 당시의 초류향도, 조기천도 몰랐다.
‘서둘러야 해.’규진법의 유지 시간은 지극히 짧다. 게다가 그 위력도 상대적으로 약했다. 속도가 빠른 대신에 그 한계가 있는 것이다.
지금 노진녕에게 펼쳐 놓은 진법은 총 다섯 개의 돌을 핵으로 삼는 오성(五星:동,서,남,북,중앙) 방위진.
‘이것을 파괴하는 데 얼마나 걸릴까?’상대방은 화경의 고수였다. 그 지닌 바 능력이나 육체적인 한계에 대해 선뜻 짐작이 가지 않았다.
사실 맨 처음 규진법이 발동되는 순간 초류향은 적잖이 안심했었다. 규진법이 비록 그 위력이 약하다고는 하지만 초류향에게는 정관법이 있다.
세상의 진실된 실체를 볼 수 있게 해주는 정관법. 그것 때문에 초류향은 조기천이나 일반적인 진법가들이 펼치는 오성 방위진보다 몇 배나 강한 위력의 오성 방위진을 펼칠 수가 있었다.
‘하지만 그것뿐이다.’그랬다. 단지 그것뿐이다. 생각해보니 화경의 고수에게 진법이라는 것이 어디까지나 통할지 미지수인 것이다.
미지수는 무언가를 대입해 놓아야 그 해답이 나왔다. 그럼 누가 좋을까? 잠시 여러 사람들을 대입하던 초류향은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유설빈.’초류향은 일단 노진녕을 유설빈이라고 생각하며 진법을 구성하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유설빈이라는 이름을 머릿속에 떠올리고 진법을 펼치려 하자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격렬하게 꿈틀거렸다.
으드득?!
초류향은 자신도 모르게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정면을 응시했다. 순간적으로 규진법 안에 갇혀 있던 노진녕을 죽이기 위해 머릿속으로 온갖 진법 계산들을 했던 것이다.
수십, 수백 가지의 진법들이 머릿속에 가득해졌다. 순수한 분노가 전신에 들끓었던 것이다. 단지 그 이름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피가 거꾸로 치솟는 느낌.
‘침착하자.’노진녕은 유설빈이 아니다. 죽이면 안 되는 것이다. 단지 상대의 능력을 그 정도라 예상하고 진법을 구성해야 했다.
불안하게 울렁거리는 마음을 가까스로 추스른 후 초류향은 움직였다. 주변의 지형지물은 이미 완벽하게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었다.
이제 남은 것은 ‘경계’로 삼을 물건을 확실하게 표시해 두는 것뿐. 눈으로 규진법이 펼쳐진 정사각형의 경계선을 확실하게 살피며 앞으로 달렸다.
‘우선은 여덟 개.’초류향은 현재 노진녕이 갇혀 있는 규진법을 중심으로 해서 일단 일곱 개의 조약돌을 포위하듯이 가져다 놓았다.
각각 팔각형의 꼭짓점에 놓은 조약돌들. 제일 마지막으로 진법을 완성할 돌멩이는 손에 쥐고 있었다.
손에 쥔 돌멩이를 만지작거리며 초류향은 씁쓸하게 웃었다. 이것은 예전에 초류향이 몸으로 경험해 보았던 진법이었다.
‘팔문금쇄진(八門禁鎖陳).’조기천 스승님이 그에게 제일 처음 보여주었던 진법. 그것을 펼쳐 놓은 것이다. 잠시 하늘을 보며 초류향은 몸으로 시간의 흐름을 재 보았다.
‘내 예상이 맞다면…….’초류향이 펼친 규진법은 대략 반 각 정도 유지가 될 것이다. 그 안에 노진녕은 규진법을 파괴하고 나올 게 분명했다.
그럼 과연 어느 정도 시간이 남은 걸까? 초류향은 일단 돌멩이들을 기점으로 삼아 발끝으로 경계선을 확실하게 그었다.
그것으로 끝. 모든 준비는 끝이 났다. 초류향은 약간 나른해진 얼굴로 바닥에 털썩 앉았다.
운휘는 뒤에서 그 모습을 처음부터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무언가 짐작 가는 것이 있어서 눈을 빛냈다.
‘진법이었구나.’소교주가 하고 있는 게 무엇인지 이제야 어느 정도 이해가 된 것이다. 그동안 소교주의 행동들은 이해가 되지 않는 것투성이였는데 겨우 그 이유가 짐작이 되었다.
소교주는 진법의 대가였던 것이다. 그래도 아직까지 한 가지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운휘가 알기로 진법은 이렇게 대충대충 만들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많은 조건을 따지고, 또 그만큼 여러 가지 준비가 필요한 게 진법이었다. 그런데 소교주는 그런 행동들 없이 너무도 쉽게 진법을 그렸다.
‘저런 진법이 과연 발동될까?’저렇게 쉽게 진법이 만들어질 수 있는 걸까?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데 갑자기 눈앞에서 생소한 감각이 느껴졌다.
‘뭔가 있다?’운휘가 신경을 막 그곳으로 집중하려고 할 때였다.
퍼석?!
껍질이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눈앞에서 유리 조각이 깨어지듯 배경이 박살나며 노진녕이 나타났다.
“우하하하핫! 내가 이겼다!”노진녕이 마치 목욕이라도 한 것처럼 전신에서 땀을 흘리며 지친 얼굴로 환호성을 내지를 때.
초류향이 씁쓸한 얼굴로 돌멩이를 꺼내 들고 앞으로 가볍게 던졌다. 노진녕이 그 모습을 눈을 부릅뜨고 바라볼 때.
툭?
돌멩이가 다시금 바닥에 떨어졌다.
“이번에는 부족함이 없을 겁니다.”“야, 이건 반칙…….”팟?!
지친 얼굴의 노진녕이 채 무어라 하기도 전에 그의 모습이 다시금 세상에서 사라졌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