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Shura RAW novel - Chapter (79)
제79화 방심의 결과(2013.10.14.)
“호오? 이거 재미있는 구경거리구나.”초류향은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웃고 있는 얼굴의 공손천기가 눈에 들어왔다.
그 웃음을 보며 초류향은 담담하게 말했다.
“오셨습니까?”“그래. 조금 한가해져서 널 만나러 왔지. 에구구, 이거 원, 사람을 너무 부려 먹네.”초류향은 애매하게 웃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역시……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월인도법의 일부를 깨달으면서 전신의 감각이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눈을 감아도 주변의 변화가 생생하게 느껴졌던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스승님, 공손천기 앞에서는 말짱 헛수고였다.
모든 것을 초월한 사람.
천마신교의 만인이 경외하는 유일한 대상.
그가 바로 현재 천하제일이라 불리는 교주 공손천기이자 그의 스승이었다.
“그래, 네가 보기엔 누가 이길 것 같으냐?”어느새 편한 자세로 옆에 앉으며 스승님이 묻자 초류향은 신중한 얼굴을 해 보였다.
아직 무공을 잘 모르는 초류향이 보아도 둘의 차이는 거의 없었다.
‘단지…….’초류향은 고민하다가 운휘 쪽을 바라보았다.
정관법.
그것을 사용하여 본 능력치로는 운휘가 확실히 윗줄이었기 때문이다.
초류향의 시선을 따라가 본 공손천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네 신안(神眼)으로 본 게냐?”“예.”“아주 제대로 보았다. 쓸모가 많구나, 그거.”공손천기는 소매에서 과일 하나를 꺼내어 초류향에게 건네주며 웃었다.
“그래도 말이다, 운휘 녀석이 그리 쉽게 이기지는 못할 거다.”아삭―
초류향이 과일을 한입 베어 물며 고개를 끄덕일 때 공손천기가 말했다.
“저 정도 근소한 차이면 잔재주를 부리는 쪽이 진다. 두 녀석 다 그 정도는 알고 있겠지. 그러면 진짜를 보여야 한다는 말인데…… 그건 아무래도 노진녕 녀석이 조금 더 낫지.”
노진녕이 쇄도해나간 것은 공손천기의 말이 끝난 직후였다.
폭발적인 움직임.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그가 대지를 강하게 내딛으며 한쪽 발을 위로 올려 찼다.
“으라차!”콰앙―!
바닥을 내딛은 발.
진각.
거기에 담겨 있는 힘이 어마어마했는지 바닥이 한순간에 빠그라지며 박살났다.
어떤 초식도, 속임수도 없는 단순한 동작이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거기에는 터무니없이 막강한 노진녕의 힘이 온전히 담겨 있었다.
운휘는 그것을 끝까지 바라보다 최후의 순간 옆으로 가볍게 흘려내며 재빠르게 노진녕에게 다가갔다.
머리카락 한 올 차이로 돌파해 오는 모습.
어지간히 배짱이 두둑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움직임이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노진녕의 눈동자에 순간 득의의 웃음이 떠올랐다.
‘내가 이겼다!’노진녕의 주특기는 근접 박투다.
즉, 무기를 사용하지 않는 단순한 주먹질과 발길질이 그의 주 종목이라는 것이다.
무기가 없기 때문에 거리가 좁혀지면 좁혀질수록 노진녕이 보여줄 수 있는 기술은 훨씬 다양하고 깊어진다.
지금도 그랬다.
‘뒈져 봐라.’운휘가 뭘 믿고 이렇게 가까이 접근해 오는지는 잘 모른다.
아니, 솔직히 관심도 없었다.
무엇을 준비했던 근접전에 있어서는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으니까.
그것이면 된 것 아닌가?
노진녕은 앞으로 크게 내뻗었던 발을 회수하지 않고, 그 발을 축으로 삼아 그대로 허공에서 한 번 크게 회전했다.
후우웅―!
그러자 반대쪽 발이 크게 휘어지며 운휘의 머리를 비스듬히 내려찍어왔다.
공중회전차기.
즉, 선풍각(旋風脚)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초류향의 눈동자에 작게 감탄의 기색이 떠올랐다.
‘자연스럽다.’처음 공격은 누가 봐도 실패한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뒤이어지는 동작의 흐름에 전혀 어색함이 없었다.
마치 맨 처음부터 이런 상황을 만들기 위해 공격한 것처럼 보이지 않은가?
그때 옆에서 그 모습을 보고 있던 공손천기가 낮게 혀를 찼다.
“성급한 놈이군.”누구를 향하는 말일까?
초류향이 의문을 채 떠올리기도 전에 운휘가 움직였다.
‘나는 녀석의 움직임을 분명히 보았다.’운휘는 특유의 침착한 눈길로 노진녕을 바라보다 상체를 버들가지처럼 가볍게 흔들었다.
푸웅―!
귓가를 스쳐가는 바람 소리가 매섭다.
하지만 운휘는 이미 한 번의 움직임으로 노진녕의 공격 범위를 벗어나 있었다.
‘단 한 번.’초류향을 걷어찰 때 노진녕의 각법을 한 번 보았을 뿐이지만 그것으로 이미 충분했다.
저 떠들기 좋아하는 녀석이 어떤 방식의 공격을 선호하고 어떤 형태로 움직이려는지, 그것만으로도 거의 전부 읽어낼 수 있었으니까.
운휘.
그는 화경의 고수이자 무공의 천재인 것이다.
운휘의 소매에서 순간 작은 빛이 반짝이더니 단검 하나가 꺼내져 나왔다.
그의 애검.
단홍소검(丹紅小劍)이었다.
파악―!
허공에 짧게 그어진 단검에서 희미한 붉은빛이 번뜩였다.
그리고 노진녕은 얼굴을 잔뜩 찡그리며 뒤로 훌쩍 물러섰다.
“이 녀석…….”깨금발로 서서 한쪽 발을 쩔뚝거리며 노진녕이 이를 갈았다.
발목부터 발끝까지 아주 피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근육은 상하지 않은 상태로 피부만 깨끗하게 난도질한 것이다.
운휘는 그 모습을 보며 더 공격해 들어가지 않고 입을 열었다.
“발목을 잘라 버릴 수도 있었다.”이쯤에서 그만하자는 뜻.
이 이상 해 보아야 의미가 없다.
노진녕은 이를 갈았다.
놈의 말을 부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허나 고작 이거 하나로 승복하기엔 너무도 억울하지 않은가?
‘방심했어.’저놈의 무기가 무엇인지 고려하지 않았었다.
가까이 접근하는 것을 보았을 때 단검이라는 걸 예상했어야 했는데 실책이었다.
‘아무리 그렇다고는 해도, 내 천마신공을 뚫고 들어와?’아무래도 저 단검은 보통 보검이 아닌 모양이었다.
한계까지 근육을 단련해서 그냥 육체적인 힘만으로도 강철을 으깨 버릴 수 있는 튼튼한 다리다.
그런 다리를 두부처럼 쉽게 베고 지나간 것을 보면 저 단검은 얕볼 수 있는 무기가 아니었다.
노진녕은 이를 악물었다.
“네가 이것도 받아 낸다면 인정할게.”마지막 남은 자존심이었다.
운휘는 눈살을 찌푸렸다.
“내일 우리는 사천으로 출발해야 된다. 잊었나?”“알아, 알고 있어!”알고 있었다.
그래서 서로 어느 정도 적당한 선으로 수위를 조절해 가며 싸운 것이니까.
하지만 그것도 조금 전까지의 일이다.
쿠그그극―!
노진녕의 몸에서 폭발하듯 막강한 기세가 풍겨져 나왔다.
전력을 다하려 하는 것이다.
그 모습을 보던 운휘의 얼굴이 서서히 굳어졌다.
이 정도의 사나운 기세라면 이기든 지든 둘 다 무사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운휘가 슬쩍 초류향을 바라보았다.
초류향 역시 고민이 가득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말려야 했다.
둘 중에 한 명이라도, 혹은 두 명 다 여기에서 부상을 입으면 앞으로의 일에 차질이 생길 것이 분명했으니까.
그러나 노진녕의 지금 태도를 봤을 때, 이렇게 도중에 흐름을 끊어버리면 나중에 앙금이 남을 가능성이 높았다.
‘어떻게 해야 할까?’어떤 것이 가장 좋은 결정일까?
어느 것이 제일 효율적이지?
초류향이 그러한 것들을 생각하고 있을 때.
공손천기가 그의 머리에 손을 올려놓고 머리카락을 헝클며 속삭였다.
“모든 일을 할 때 제일 처음 해야 할 것은 기준을 정하는 거다. 그리고 그 기준에 맞게 일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이 둘째겠지. 그 다음에는 네가 정한 일을 과감하게 밀어붙이는 배짱만 있으면 된다. 네가 망설이면 너를 바라보는 모든 이들이 망설인다는 것을 늘 명심해라.”초류향은 안경을 매만지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었다. 그는 이제 책임감 있게 행동해야 했다.
앞으로 그가 결정을 내리고 판단을 하는 것에 따라 수십, 아니 많게는 수만 명의 목숨이 왔다 갔다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초류향은 머릿속으로 지금의 상황을 파악했다.
그리고 결단을 내렸다.
“거기까지입니다.”노진녕은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초류향이 갑자기 앞으로 걸어 나오며 둘 사이에 멈춰 섰기 때문이다.
그리고 불만으로 가득한 얼굴을 하고 있는 노진녕을 똑바로 응시했다.
노진녕 역시 그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분통이 터지는 것이다.
초류향은 활화산과 같은 그 뜨거운 눈빛을 담담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당신이 졌습니다.”“하지만…….”“방심했다는 변명은 통하지 않습니다. 실전이었다면 발목이 잘려나갔겠지요.”“…….”“이 이상 가겠다고 우기는 것은 실전이 아니라는 걸 핑계 삼아 스스로의 패배를 덮으려는 비겁함입니다.”노진녕은 눈가를 파르르 떨었다.
방심했다.
그래, 인정한다. 조급한 마음에 공격을 서두르는 바람에 확실히 빈틈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렇게 쉽사리 승부가 갈릴 수준은 아니었다.
너무도 어이없고 빠른 승부에 납득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승패를 받아들이는 것도 분명 성장에 도움이 될 겁니다. 그리고 지금의 결과를 만회할 수 있는 기회는 앞으로도 많지 않습니까?”“만회요?”“예, 앞으로 저와 함께하면 얼마든지 기회가 있을 겁니다.”초류향은 서서히 기세를 죽이는 노진녕을 바라보며 미소 지었다.
“전 앞으로 생명의 위협을 많이 받게 될 겁니다. 위기 상황에서 스스로의 가치를 저에게 증명해 보이세요. 두 분 사이의 서열은 그것으로 결정이 될 겁니다. 지금의 서열은 일시적일 뿐이겠지요.”“일시적…….”노진녕의 굳었던 얼굴에 희색이 떠올랐다.
그 모습을 본 초류향이 고개를 돌려 운휘를 보았다.
“운이 좋았습니다.”“예.”운휘는 선선히 긍정했다.
운이 좋았다.
맞았다.
그 말이 지금 상황에 가장 어울리는 말이다.
일단 노진녕의 무공을 한번 본 적이 있었다는 게 가장 큰 도움이 됐다.
그가 어떤 무공을 사용하고, 또 어떤 주특기를 가지고 있는지 미리 알고 싸운 것.
이것의 차이는 확실히 컸던 것이다.
그때 두 사람의 대결을 지켜보고 있던 공손천기가 앞으로 나섰다.
“제법 재미있게들 노는구나.”운휘와 노진녕은 공손천기에게 예를 취했다.
그것을 가볍게 받아준 다음 공손천기는 입을 열었다.
“모르고 있었는데 사천에 제법 거친 아이들이 돌아다니고 있는 모양이다.”거친 아이들?
초류향이 의아한 눈빛을 할 때 공손천기가 웃으며 말했다.
“남만야수문, 그리고 북해빙궁이다.”이건 초류향에게 무척 생소한 이름이었다.
그것은 노진녕도 마찬가지인 듯, 그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운휘를 바라보았다.
그가 바라봤을 때, 운휘의 표정은 이미 심각해져 있었다.
“……설마 세외(世外)의 힘이 움직인 것입니까?”“그래, 녀석들이 우리 쪽의 일에 대해서 관심이 많더구만. 이건 제법 성가신 일이지.”단순히 성가시다는 한 마디로 끝낼 일이 아니다.
운휘는 그들의 힘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기에 벌써부터 걱정이 가득해졌다.
“알아서 대비해 보거라. 정도맹 녀석들은 몰라도 그놈들은 진짜배기니까 조심해야 될 게야.”“명심하겠습니다.”초류향은 딱딱하게 굳어 있는 운휘의 얼굴을 보며 생각보다 상대방의 힘이 거대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자세한 사정을 모르는 이상 어디까지나 막연한 느낌일 뿐이다.
그때 공손천기가 초류향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사천에 도착해서 두 달. 그 정도만 네 힘으로 버텨 보거라. 할 수 있겠느냐?”초류향은 피식 웃었다.
이미 정도맹과 천마신교 내부의 적만으로도 머리가 터질 듯이 복잡했다.
헌데 거기에 더해 북해빙궁과 남만야수문이라니?
자신도 모르게 피식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러고 보니 참으로 비싼 몸뚱이가 되었다.’그랬다.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새 쉽게 죽어 줄 수도 없는 비싼 몸이 된 것이다.
지금 스스로의 가치는 어느 정도나 될까?
초류향은 그런 생각을 하며 자신의 작은 몸을 한 번 스윽 내려다보고 안경을 고쳐 썼다.
항상 그랬지만 그의 스승은 자신에게 많은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할 수 없어도 해야겠지요.”약간 체념 섞인 대답.
하지만 해내겠다는 자신감이 은근히 섞인 목소리였다.
그 대답을 들은 공손천기는 히죽 웃으며 말했다.
“죽지만 마라. 그러면 네가 이기는 거다.”“예, 아주 악착같이 살아보겠습니다.”“크크, 그건 아주 좋은 태도다.”공손천기는 실실 웃으며 초류향의 볼을 가볍게 꼬집었다.
“예전에 네가 있던 중원과, 지금 네가 가야 될 중원은 그 느낌이 완전히 다를 거다. 들뜨지 말고 똑바로 보아라. 그럼 별 문제 없을 테니까.”무엇이 다르다는 것인지, 또 무엇에 들뜬다는 것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초류향은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한 가지만은 약속하마.”“무엇을 말입니까?”“굉장히 재미있을 거다, 지금의 사천은. 흐흐흐…….”공손천기는 새하얀 치아를 드러낼 정도로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 웃음을 보며 초류향은 자신도 모르게 불안해졌다.
지금까지 항상 스승님이 저런 웃음을 보이고 나면 엄청나게 힘든 일들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착각이겠지…….’지금은 제발 그러기를 바랄 뿐이었다.
작가의 말
둘의 승부가 조금 미적지근하죠? 걱정 마세요. 나중에 기회가 있으니까 ^^ 개인적으로 운휘보다는 노진녕에게 정이 더 갑니다. 이 녀석 인간적이잖아요? [아,,, 저만 그런건가요;;]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