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Shura RAW novel - Chapter (80)
제80화 중원진출(2013.10.17.)
사천성(四川省).
이곳은 그 이름 그대로 네 개의 큰 강이 흐르고 있는 지역이다.
그 단순한 이유 때문에 사천성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고, 삼국지에서 그 유명한 ‘유비’가 세운 촉나라의 근본이 되는 땅이었다.
촉 이후로 여러 왕조가 지나가고 시대가 바뀌었다.
그 무수히 많은 변화의 흐름 속에서 무림에 속한 사천성도 서서히 바뀌어 가려 하고 있었다.
정도맹.
그리고 천마신교에 있어서 지금 세대의 사천성은 아주 큰 의미를 지닌 무대이자 장차 미래를 바꿀 시발점(始發點)이 될 것이다.
“천마신교 측에서 의뢰한 물자는 우마차(牛馬車) 오십 대에 삼두마차 서른 대로 총 팔십 대 분량이며, 이를 운송하기 위해 본 표국에서는 삼등 표사 이백 명, 이등 표사 백 명, 일등 표사 삼십 명에 특급 표사 두 명을 데려왔습니다. 표행에 방해가 될 쟁자수는 이번에는 아예 넣지 않았습니다.”보고를 받고 있는 소년.
소년은 흑색의 헐렁한 무복을 걸치고 있었다.
허나 소년이 입고 있는 옷에는 오직 황제만 그릴 수 있다는 금빛용이 생동감 넘치게 수놓아져 있었다.
소년.
초류향은 거대하고 위압감이 넘치는 육두마차의 상석에 홀로 앉아서 안경을 매만지며 보고서를 읽다 말했다.
“전 표사님.”“예, 소공자. 말씀하시지요.”전위(電位).
창천표국에 단 두 명밖에 없는 특급 표사 중 한 명이며 이번 표행의 총책임자인 그는 아까부터 초류향을 감탄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과연 대단하다.’
천마신교를 떠나온 지 벌써 보름째다.
그동안 초류향은 매일 보고서를 받아보며 변동 사항을 확인했으며, 이상하거나 애매하게 명기된 부분은 하나도 놓치지 않고 꼬박꼬박 수정을 요구했다.
또 약간이라도 계산이 맞지 않으면 곧장 그것에 대해 물어왔다.
밑에서 일하는 입장에서는 대단히 피곤한 요구들이었지만, 그것은 그만큼 초류향이 이쪽 방면에 전문가라는 소리인 동시에 빈틈이 없다는 뜻이기 때문에 조금도 방심할 수가 없었다.
이것은 대단히 긍정적인 모습이었다.
‘표국에 있을 때도 국주의 아들이 똑똑하고 재능이 있다는 것은 이미 들었지만…….’소공자를 가리켜 낭중지추(囊中之錐:주머니 속의 송곳. 즉, 아무리 숨기려고 해 봐도 뛰어남은 숨길 수가 없다는 뜻)라는 말이 떠도는 것도 알고 있었다.
허나 아무리 그래도 그것은 표국 내, 잘해 봐야 그 지역에서만 알아주는 수준이라 생각했다.
동네에서 천재 소리 듣는 정도의 수준이라 여긴 것이다.
그런데 저 대단한 천마신교의 소교주가 될 줄이야…….
이건 입이 저절로 벌어질 만한 대사건이 아닌가?
그랬기에 초류향을 바라보는 전위의 시선에는 무한한 감탄과 놀라움이 담겨져 있었다.
“저희 측 인원은 어차피 호위가 따로 필요 없습니다. 그러니 호위로 후방에 빠져 있는 인원들은 전부 불러서 전방에 세워주시면 되겠습니다.”“예, 그렇게 하겠습니다.”전위는 자신에게 지적을 하고 이래저래 요구 사항을 말하는 초류향을 시종일관 흐뭇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전 표사님께서도 이미 짐작하고 계시겠지만, 이번에 본교에서 나온 인원들은 어중이떠중이들이 아닙니다. 그러니 만에 하나 위험이 닥치더라도 인원 보호보다 물자 호송에 전념해 주셨으면 합니다.”“알겠습니다.”전위도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이들이 단순한 ‘선발대’에 불과하지만 그 지닌 바 무력이 정말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천마신교가 자랑하는 십 대 무력 단체 중의 하나라…….’이화궁.
천마신교의 십 대 무력 단체 중 하나가 강호를 향해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십 대 무력 단체 중 하나가 움직인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놀라운데, 더욱 전위를 놀라게 한 것은 이화궁에 소속된 무인들이 전부 다 ‘여자’라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전위는 여자라고 상대방을 결코 우습게 볼 수 없었다.
‘선우초린이라고 했던가?’엄청난 미모의 여인이었다.
헌데 전위는 그녀를 마주하는 순간 맹수를 마주한 것처럼 오금이 저려오는 압박감을 받아야만 했다.
‘분명 절정고수였다.’외모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같은 절정고수였지만 전위와 선우초린은 그 차이가 심하게 났다.
분한 일이었지만 이미 쉰 살이 넘은 전위보다 고작 스무 살 정도밖에 되지 않은 선우초린이 압도적으로 강했던 것이다.
‘과연 천마신교.’선우초린은 화경에 거의 근접한 절정고수였다.
그리고 그녀를 따르는 이화궁의 여고수들은 최하가 이류였고, 대다수가 일류에 속하는 고수들인 것이다.
절정의 경지에 속한 고수도 몇몇 있었다.
전위는 초류향과 면담을 하면서도 계속 힐끔거리며 옆에서 묵묵하게 말에 올라타 있는 선우초린을 응시했다.
미모면 미모, 무력이면 무력.
어느 하나 빠지는 구석이 없었다.
게다가 그 불쾌한 첫인상부터 너무 강렬한 느낌으로 전위의 기억에 남아 있었다.
―눈 깔아, 이 새끼야.실로 강한 첫인상이 아닌가?
그 사건 이후로 전위는 선우초린은 물론, 천마신교 무인들 쪽에는 아예 얼씬도 하지 않았다.
초류향은 전위에게 받은 보고서를 꼼꼼히 다 확인하고 수결(手決:손도장)을 찍은 후 마차 밖을 응시했다.
그러고 보니 이제 겨울이다.
차가운 바람이 마차 밖에 머물다 어느새 마차 안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그 낌새를 느끼고 서둘러 문을 닫으며 초류향은 말했다.
“출발하지요.”“알겠습니다.”문을 닫자 마차가 서서히 움직였다.
그러다 곧 엄청난 속도로 바뀌며 산길을 질주하기 시작했다.
앞으로 보름은 더 이런 속도로 가야 사천에 있는 첫 번째 거점에 도착한다.
초류향은 잠시 마차 창밖으로 보이는 험악한 산길을 보며, 어쩌면 마차를 타고 지나온 이 길을 다시 돌아가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입가에 절로 쓴웃음이 번졌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유기학당에서 평범하게 산법만 공부하고 있지 않았었나?
이런 죽네 사네 하는 절박한 생각 따위는 해 본 적도 없었다.
그런데 일 년도 채 안 되는 짧은 기간 동안 정말 너무나도 많은 변화가 생겨버렸다.
‘언제 암습해 올까?’마차 지붕 위에 은신해 있는 운휘를 믿고, 또 마차를 끌고 있는 노진녕을 믿는다.
둘 모두 화경의 고수.
어중이떠중이들은 암습을 감히 시도조차 못 할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런 쭉정이들이 아니다.
이 둘의 눈과 귀를 속이고 그에게 접근할 진짜배기가 문제인 것이다.
그런 괴물들을 상대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분명 생각지도 못할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그를 암습하려 들 텐데?
‘과하다.’초류향은 자꾸 어두운 쪽으로 생각이 기우는 것을 느끼며 머리를 가볍게 흔들었다.
자신은 절대 죽지 않을 것이다.
아직 해결하지 못한 일들이 너무도 많지 않은가?
억울해서라도 순순히 죽어줄 순 없었다.
초류향은 주먹을 꽉 움켜쥐며 이를 악물었다.
어찌되었든, 어떤 모양새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원으로의 첫발.
그것은 ‘그놈’과의 거리가 그만큼 가까워진 것을 의미했다.
‘유설빈…….’무당파.
그놈에 대한 원한은 단 한순간도 잊은 적이 없다.
과거에는 저항할 수 있는 방법이 아무것도 없어서 무력하게 당하기만 했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조기천 스승님의 피맺힌 원한은 스스로의 힘으로 풀 것이다.
막 그러한 각오들을 다지고 있을 때.
똑똑-
누군가가 달리는 마차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초류향은 이미 ‘누군가’의 접근을 알고 있었다.
의식하든 하지 않든 월인도법으로 ‘영역’의 세계를 열어 버렸기 때문에 주변 일정 범위 내로 접근하는 사람들을 미리 알 수 있었던 것이다.
“무슨 일입니까?”“소군주님께서 잠시 안에 들어가 봐도 되는지 여쭤 보고 오시랍니다.”소군주라면 이번 표행에 함께 따라온 공손아리를 말하는 것이다.
잠시 고개를 갸웃거린 초류향이 입을 열었다.
“용건이 있습니까?”“그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잠시 고민하던 초류향은 결국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알겠습니다. 들어오셔도 된다고 전해주세요.”“예, 모셔오겠습니다.”선우초린이 멀어지고 초류향은 생각에 잠겼다.
맨 처음 이 위험한 표행에 공손아리가 함께 한다고 했을 때 스승님이 한 말을 떠올렸다.
―바보 같은 여자가 좋으냐, 똑똑한 여자가 좋으냐?초류향은 생각했다.
지금과 같이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시기에 뜬금없이 무슨 여자 이야기인가 싶었다.
그리고 그런 것을 생각하기엔 자신은 너무 이른 나이지 않은가?
잠시 멍청한 얼굴을 하고 있자니 공손천기 스승님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너도 그냥 이쁜 여자가 좋으냐?초류향이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고 복잡한 얼굴을 해 보일 때, 공손천기가 의자 팔걸이를 검지로 톡톡 치며 말했다.
―백지처럼 새하얀 아이가 있다. 뭐, 같이 지내다 보면 그것 말고도 다른 장점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겠지만, ‘일단’은 아무것도 그려지지 않은 게 가장 큰 장점인 아이다. 거기에 네가 그림을 그려 보겠느냐?처음에는 이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그리고 차후에 공손아리가 합류한다고 했을 때 그 의미를 알게 되었다.
스승님의 의도를 그제야 파악하게 된 것이다.
숨겨진 의도를 그렇게 파악하고 나자 자신도 모르게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그리고 생각했다.
‘스승님, 그래도 이건 너무 노골적인 게 아닙니까?’그랬다.
지나치게 노골적이지 않은가?
그래서 부담스러웠다.
그 때문에 더욱 의식적으로 공손아리가 있는 쪽으로 시선조차 돌리지 않게 된 것이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무려 보름 동안 의식적으로 피해왔다.
아마 공손아리도 그것을 느꼈을 것이다.
‘지금은 마음에 여유가 없다.’아니, 이것은 공손아리뿐만 아니라 다른 누구라도 마찬가지였다.
또 그러한 생각을 하기엔 나이도 어렸고…….
초류향이 두서없이 그런 생각들을 하고 있을 때.
누군가 마차 문을 두드렸다.
똑똑―
초류향이 달리는 마차의 문을 열자 겨울의 차가운 바람이 마차 안에 폭풍처럼 휘몰아 닥쳤다.
휘우우우―
저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린 초류향의 귀에 갑자기 주변의 소리가 한층 더 크게 들려왔다.
다가닥―다가닥―
덜커덩―덜커덩―
마차 소리와 주변에 있는 말들이 달리는 소리가 귓가에 크게 울리는 것이다.
그때 선우초린이 타고 있는 말.
그 앞에 해맑은 얼굴로 앉아 있는 공손아리가 눈에 들어왔다.
두근―
그리고 저물어 가는 햇살이 잠시 그녀의 반짝이는 금발에 머물렀다.
‘이건…….’초류향은 표정 관리를 못 하고 잠시 넋 놓고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지금 눈앞에 있는 광경이 너무도 현실성이 없는 모습이라 생각한 것이다.
그때 배꽃같이 새하얀 치아가 벌어지며 공손아리 특유의 티 없이 맑은 음성이 흘러 나왔다.
“마차보다 여기서 보는 경치가 더 좋아요! 소교주님!”“…….”이럴 때에는 뭐라 대답해야 되지?
잠시 생각하던 초류향은 겨우 정신을 수습하고 마차 문 앞으로 몸을 살짝 꺼내었다.
그러자 더욱 정제되지 않은 거친 바람이 초류향의 전신을 때려왔다.
두두두두―
마차의 순수한 흔들림을 온몸으로 느끼며 초류향은 얼굴을 찌푸렸다.
공손아리를 보자 기분이 이상해졌기 때문이다.
‘선녀인 줄 알았다.’순간적으로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
초류향은 스스로의 생각에 화들짝 놀라며 공손아리를 아찔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 * *
“녀석 지금쯤 엄청 당황하고 있을 거야.”“예?”“아니, 제자 녀석이 갑자기 생각나서 말이야. 신경 쓰지 말고 할 일들 해.”전박과 선우조덕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뜬금없이 장난스럽게 히죽거리는 교주 공손천기가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평소에도 늘상 있었던 일인지라 그러려니 하며 조용히 문서 더미에 고개를 파묻었다.
아직도 검토해야 될 일이 산더미처럼 많았던 것이다.
공손천기는 그들이 그러는 와중에도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계속 음흉하게 웃으며 중얼거렸다.
“제자야, 이런 건 말이다, 의식하는 순간 지는 거다. 이제는 좀 눈치챘으려나?”공손아리에게는 따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초류향에게만 따로 공손아리를 의식할 만한 것들을 던져놓은 것이다.
머리가 좋은 제자니 계속 자신의 말이 무슨 의미일까 고민했을 것이고, 그 의도를 알아차리면 본인도 모르게 자꾸 의식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종류의 일은 평소에 신경도 쓰지 않고 무덤덤하게만 여기던 것을 한 번 되짚게 만들어, 의식하게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자아, 너는 어떤 그림을 그려 볼 생각이냐? 제자야.”공손천기는 그렇게 하루 종일 낄낄거리며 문서들을 검토하고 있었다.
작가의 말
사천성으로 드디어 출발했네요. 과연 어떤 일들이 펼쳐질까요? 그나저나 첫눈에 반한다는 게 어떤 것인지 저도 좀 겪어보고 싶습니다. 류향이가 부럽네요. ^^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