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Shura RAW novel - Chapter (88)
제88화 초류향의 첫 번째 사업(2013.11.11.)
“아으……. 온몸이 다 쑤시네.”거울을 보면서 기지개를 켜는 사내.
북해빙궁의 후계자 적혈명.
그는 찌뿌둥한 근육을 한껏 풀어대며 고개를 사방으로 움직였다.
우둑-
우두둑-!
온몸의 근육을 다 푼 다음 적혈명은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씨익 웃었다.
“후후, 완전 부활이군. 완벽해.”시엽과의 승부에서 의외의 일격을 당하는 바람에 계획에 많은 차질이 생겨버렸다.
하지만 충분한 휴식과 요양을 취한 덕분에 지금은 본래의 힘을 완전히 되찾은 상태였다.
적혈명은 작게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스스로의 완벽한 외모를 거울에 비춰보았다.
그러다 시선을 가슴 쪽으로 내려 보았다.
잠시 동안 물끄러미 가슴께를 바라보던 적혈명은 입맛을 다시며 옷깃을 여미었다.
몸에 생긴 흉터는 의복으로 잘 가려져 있기 때문에 겉으론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절대로 잊을 수 없었다.
“좋은 공부를 했으니 됐지, 뭐.”최대한 흉터를 없애보려고 했지만 잘되지 않았다.
워낙에 깊은 상처였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이 몸에 흠집이 난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그 대가로 깨달은 것도 있기 때문에 적혈명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상처는 납득이 되지.”태어나 처음으로 타인에 의해 몸에 생긴 흉터다.
이것은 적혈명에게 대단히 긍정적인 자극이 되었다.
“다시는 이런 일 없을 거다.”적혈명이 그렇게 다짐하고 있을 무렵.
똑똑-
누군가가 문을 두들겼다.
이미 그 사람의 기척을 느끼고 있던 적혈명은 아예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
그저 감격 어린 시선으로 계속 거울을 들여다볼 뿐.
똑똑똑-!
조금 전보다 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커졌다.
그러거나 말거나 적혈명은 여전히 거울을 보며 연신 감탄사를 터트렸다.
결국 허락 없이 문을 열고 들어온 소녀가 질렸다는 표정으로 투덜거렸다.
“……대사형, 이건 인간적으로 좀 너무하잖아요. 아는 척은 해줘야죠. 사람 민망하게.”“너 같은 못난이를 한 번 보려면 얼마나 큰 마음의 각오가 필요한지 너는 모르겠지.”“……쳇.”적혈명의 사매인 주다혜는 입술을 삐죽이 내밀며 불퉁스러운 얼굴을 해 보였다.
그제야 적혈명이 고개를 돌리며 입을 열었다.
“어쭈? 지금 그 표정은 뭐지, 사매? 불만이 가득해 보이는걸?”적혈명이 손가락을 구부리며 음침한 목소리를 내자 주다혜가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다.
그러다 비명처럼 소리쳤다.
“……제, 제가 대사형 생명의 은인인 걸 잊지 마세요!”적혈명은 다가가던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잔뜩 김빠진 얼굴로 말했다.
“젠장, 약점 한번 그럴싸하게 잡혔군.”적혈명이 괴롭히지 않을 것 같자 어깨를 움츠리고 있던 주다혜가 고개를 들며 배시시 웃었다.
“에헤헤, 대사형~”“뭐냐? 왜 갑자기 그렇게 징그럽게 웃어.”“대사혀엉~!”주다혜가 갑자기 달려들어 적혈명의 허리춤을 와락 안았다.
그러자 적혈명의 안색이 창백하게 질렸다.
“……사매, 장난이 지나친데?”“어라? 왜요? 때리시게요? 생명의 은인을?”주다혜가 먹이를 노리는 암고양이 같은 얼굴로 묻자 적혈명은 볼을 씰룩거렸다.
역시 때릴 순 없었다.
본래라면 처절한 피의 응징을 가했겠지만 지금은 얌전하게 있을 수밖에 없다.
이 현실이 적혈명을 괴롭게 만들었다.
‘시엽……. 이 복수를 반드시 해주마.’애꿎은 흑월회의 시엽을 떠올리며 적혈명이 강렬한 복수의 의지를 다지고 있을 때.
주다혜가 적혈명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으며 작게 중얼거렸다.
“이럴 때가 아니면 또 언제 대사형의 비싼 몸을 만져보겠어요? 본궁에 있는 언니들이 지금 이 사실을 알면 부러워서 난리 칠걸요? 헤헤, 중원에 나오길 정말 잘했어요.”“……저런, 그건 나랑은 정반대의 마음가짐이구나.”적혈명은 주다혜가 자신의 허리춤을 놓을 생각을 하지 않자 서서히 얼굴을 찌푸렸다.
그때 주다혜가 살짝 붉어진 얼굴로 적혈명에게서 떨어지며 말했다.
“연락이 왔어요.”“슬슬 올 때가 되긴 했지. 한참 쉬었으니까.”가장 중요한 시점에 자리를 너무 오래 비워두었다.
적혈명은 주다혜의 살짝 붉어진 얼굴 따위는 관심도 두지 않고 손을 내밀었다.
“내놔.”주다혜는 그런 적혈명의 태도에 살짝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가 곧 평소의 뻔뻔한 얼굴로 돌아가 소매에서 어떤 종이를 꺼내어 주었다.
“그럼 읽어볼까…….”종이는 암호로 되어 있었지만 적혈명은 이미 암호를 통째로 외웠기에 읽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한참 문서를 읽어 내려가던 적혈명이 어느 대목에서 눈을 빛냈다.
“호오? 그 대단한 천마신교의 소교주가 현재 사천에 있다?”“예, 아무래도 이번 사천 진출의 책임자로 나온 것 같아요.”“귀하신 몸이 위험을 무릅쓰셨네.”의외였다.
천마신교의 후계자가 이렇게 위험한 곳에 직접 나오다니?
“스승님께서는 그를 제거하길 원하세요.”당연한 것이다.
북해빙궁은 물론이고 남만야수문, 흑월회까지 아마도 다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제2의 공손천기를 만들 순 없지.’천마신교의 후계자, 게다가 저 대단한 공손천기의 후예라면 단지 그것만으로도 죽을 이유가 차고 넘쳤다.
적혈명은 그 사실을 떠올리며 턱을 쓰다듬은 후 야릇한 웃음을 입가에 그렸다.
‘너는 얼마나 강하냐?’소교주에 대한 정보는 단 한 줄도 없었다.
이 부분이 묘했다.
성별은 무엇인지, 나이가 몇인지, 취향이나 버릇은 무엇인지 등등, 가장 기본적인 정보조차 없는 것이다.
그래서 더 상상을 부채질하지 않는가?
공손천기가 워낙 뛰어나다 보니 그 후계자도 보통 이상이 아닐까 하는 막연한 기대감을 갖게 만들었다.
‘하지만…….’두 번은 없다.
공손천기처럼 괴물 같은 고수는 다음 세대엔 절대로 존재해선 안 된다.
위험한 싹은 미리 잘라내야 하는 것이다.
천하사패는 그렇게 지금 모두가 같은 생각으로 사천에 모여들고 있었다.
* * *
잠에서 깨어난 초류향은 이상하게 온몸이 몽둥이로 두들겨 맞은 것처럼 뻐근한 것을 느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어려울 만큼 몸이 무거웠던 것이다.
‘어떻게 된 거지?’심상이라는 최상승의 무공 연마 방법.
그것은 단지 머릿속으로만 무공을 연마하는 것이 아니었다.
일부분이긴 했지만 신체에도 직접적으로 적용이 되었던 것이다.
그랬기에 근육이 뻐근해진 것이지만 초류향은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끙…….”초류향은 몸을 일으키려다가 포기했다.
그리고 곧장 누워 있는 그 상태로 월인도법을 운용했다.
신체를 가장 완벽하게 통제하는 것이 월인도법이다.
그 청명하고 맑은 기운이 전신에 가득 퍼지자 뻐근하게 뭉쳐 있던 근육들이 순식간에 풀려나갔다.
팔다리를 들어보고 이제 무리가 없다는 것을 깨달은 초류향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늘부터는 할 일이 아주 많았던 것이다.
초류향이 문밖으로 나가자, 문 앞에 서 있던 노진녕이 바로 읍을 해 보이며 공손하게 예의를 갖췄다.
“호위무사 노진녕이 주군을 뵙니다.”초류향은 제법 그럴싸해 보이는 노진녕의 태도에 흐릿하게 웃으며 말했다.
“잘 주무셨습니까?”“예.”“그럼 오늘부터 잘 부탁드리겠습니다.”“헤헤. 알겠습니다, 주군.”노진녕은 헤벌쭉 웃은 후 초류향의 뒤에 가서 섰다.
그리고 눈을 부릅뜨고 주변을 살폈다.
그 노골적인 태도에 초류향은 빙긋 웃은 후 취의청으로 향했다.
“소교주님을 뵙니다.”취의청에 도착하자 미리 와 있던 선우초린이 초류향에게 읍을 하며 인사를 해왔다.
초류향 역시 손을 들어 답례를 하며 말했다.
“약속된 사람은 왔습니까?”“예, 접견실에서 소교주님의 부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그럼 이곳으로 데려오도록 하세요.”“알겠습니다.”초류향은 취의청의 가장 상석에 앉아 준비되어 있던 차를 마시며 기다렸다.
잠시 후 창백한 얼굴에 흉터투성이의 냉막한 인상을 한 사내가 문을 열고 들어섰다.
그는 상석에 있는 초류향을 보고 놀란 표정으로 잠시 움찔하더니 곧장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듯 얼른 바닥에 넙죽 엎드렸다.
“흑사련(黑蛇連)의 련주 갈문혁(葛聞奕)이 소교주님께 인사 올립니다.”“반갑습니다. 초류향이라 합니다.”갈문혁은 엎드린 상태로 식은땀을 흘렸다.
설마설마했는데 저런 꼬마가 천마신교의 소교주였다니…….
‘대체 얼마나 대단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길래…….’강호에는 소교주에 대한 정보가 거의 전무했다.
알려진 게 전혀 없는 것이다.
천마신교의 정보 통제가 훌륭한 탓도 있었지만 감히 천마신교의 심기를 거스르면서까지 내부에 파고들 만한 세력이 현재 강호에 없다는 것도 컸다.
“사천 지역의 염상(鹽商:소금장수)들을 관리한다고 들었습니다.”초류향의 담담한 목소리에 갈문혁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고개를 들어 소교주를 보았다.
애체(안경)를 쓰고 그를 무덤덤하게 내려다보는 눈빛.
갈문혁의 눈동자에 순간 곤혹스러움이 떠올랐다.
‘뭐야? 무공을 배운 흔적이 없어?’남자의 경우 무공을 배우게 되면 그 경지가 높아질수록 양쪽 태양혈(太陽穴:눈 옆의 관자놀이 부근)이 불끈 튀어나온다.
그런데 초류향에게는 그런 것이 없었다.
이런 경우는 딱 두 가지뿐이다.
무공을 배우지 않았거나.
아주 높은 경지에 이르러서 겉으로는 티가 나지 않는 경지에 다다랐거나.
‘설마 화경의 고수? 저 나이에?’천마신교의 공손천기를 생각하니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갈문혁은 자신도 모르게 짧게 헛바람을 집어삼킨 후 입을 열었다.
“예, 소인이 사천 지역 소금의 암거래 물품 삼 할을 관리하고 있습니다.”지극히 공손한 어투.
초류향은 앞에 놓인 문서를 펼쳐 보이며 입을 열었다.
“저희에게 협력한다고 했는데 괜찮겠습니까? 흑월회에서 보복을 하려 들 텐데…….”본래 흑사련은 흑월회와 줄이 닿아 있었다.
그들의 비호 아래 상당한 상납금을 바치며 안전하게 장사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줄을 갈아타면 흑월회가 가만히 두지 않을 것임은 뻔한 일이다.
갈문혁은 히죽 웃어 보였다.
그 역시 그 위험을 잘 알고 있었다.
허나 지금은 도박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더욱더 위로 올라가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위험부담은 감수해야 하니까.
갈문혁은 지극히 공손한 어투로 입을 열었다.
“저희 같은 밑바닥에 있는 놈들은 대세를 읽을 줄 알아야 하지요. 앞으로 사천 지역에서 계속 장사를 하려면 어느 줄을 잡아야 하는지 판단이 필요한 시점이었습니다.”초류향은 문서를 내려놓고 조용히 갈문혁을 바라보았다.
비굴하게 웃고 있었지만 그 눈빛은 침착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살펴보고 있는 것이다.
이쪽이 어떻게 나오는지, 무엇을 보여줄지 확인하고 싶은 것이다.
‘이쪽의 힘을 읽으려고 하는 건가?’과연 바보는 아닌 모양이다.
사천 지역에서 삼 할의 소금 상권을 쥐고 있다는 것은 정말 어마어마한 일이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일.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 단순히 비위만 잘 맞추는 소인이어서는 곤란했다.
앞으로 함께 일을 하기 위해서라도 똑똑한 자가 필요한 것이다.
“그게 본교와 손을 잡으려는 이유의 전부입니까?”“예, 뭐든 안전한 게 좋지요. 천마신교라면 흑월회의 힘을 충분히 걷어줄 수 있을 거라 확신합니다.”초류향은 싱긋 웃었다.
그리고 약간은 나른한 음성으로 말했다.
“그쪽이 원하는 것은 그게 다가 아니지 않습니까?”“……예?”“그럼 본교의 소금 전매권(專賣權:독점권)은 필요 없으십니까?”“…….”갈문혁은 여기서 잠시 머뭇거렸다.
이렇게 바로 본론이 나올 줄은 생각도 못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꼬마…….’어떻게 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생각이 읽힌 모양이다.
천마신교가 얼마만큼의 소금을 가져올지는 알 수 없지만 천하제일의 문파가 움직이는 일이다.
그 소금량이 결코 적지 않을 터.
그렇다고 덥석 이 미끼를 물기에는 그 뒤가 부담스럽다.
갈문혁이 망설이고 있을 때.
초류향은 의미심장한 얼굴로 계속 입을 열었다.
“지금 저희가 그쪽과 손을 잡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갈문혁의 얼굴이 순간 처참하게 구겨졌다.
만약 이 시점에서 천마신교가 그의 손을 내친다면 입장이 무척 곤란해진다.
흑월회는 철저히 이익을 추구하는 단체다.
그들이 한번 등을 돌리려한 그와 흑사련을 가만 놔둘 리가 없다.
천마신교가 이 상황에서 나 몰라라 발을 빼버린다면 흑사련 전체가 위험해지는 것이다.
‘망했다.’갈문혁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릴 때쯤.
그 얼굴을 지켜보던 초류향이 입을 열었다.
“이제 거래할 준비가 되었군요.”갈문혁과의 거래.
이것이 초류향이 사천에서 한 첫 번째 일이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