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Shura RAW novel - Chapter (91)
제91화 돌아온 운휘(2013.11.21.)
운휘는 복면을 내리며 바닥에 피를 한 사발 토해냈다.
바닥에 고여 있는 피 웅덩이.
그곳에 하얀 내장 조각들이 섞여 있는 것을 덤덤하게 응시하던 운휘는 서서히 허물어지듯 벽에 몸을 기대어 쓰러졌다.
‘겨우 따돌렸다.’벽에 기댄 채 거칠어진 호흡을 고르며 운휘는 눈을 감았다.
운 좋게 산장에서 빠져나오기는 했지만, 곧장 천마신교 사천 분타로 되돌아갈 수는 없었다.
무시무시한 기세로 추적해 오던 황궁의 세력과 천마신교의 무력 단체가 격돌할까 우려되었기 때문이다.
다급한 와중에도 그런 생각이 들었기에 운휘는 곧장 사천 분타로 돌아가지 않고 정도맹의 영역을 돌아다니며 추격자들을 따돌렸다.
두 배나 넘는 거리를 빙 돌아온 덕분에 죽을 고비도 여러 번 넘겨야만 했다.
뒤를 쫓던 황궁의 고수들은 실로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
‘세 명 정도…….’신법에 제법 자신이 있던 운휘였지만 그런 그를 정말 악착같이 쫓아오던 세 명의 고수를 떠올리며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지치고 부상이 심했던 것도 있지만,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고 뒤쫓아 오던 황궁의 고수들은 운휘조차도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일단 여기서 날이 밝기를 기다린다.’운휘는 천천히 숨을 죽였다.
그렇게 얼마나 기다렸을까?
한참을 기다려도 누군가가 뒤따라오는 기색은 전혀 없었다.
다행이었다.
여기까지 쫓아오는 녀석이 있었다면 정말 힘들어졌을 것이다.
조용히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가운데, 저 멀리서 서서히 날이 밝아오는 기색이 느껴졌다.
운휘는 어슴푸레 밝아오는 새벽 공기를 느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미리 알고 있어서 다행이었다.’그 주호유라는 사내가 펼쳤던 진법.
진법 안에 갇히는 순간, 운휘는 초류향의 얼굴을 떠올렸다.
초류향이 담담하게 말해주었던, 기본적인 진법에 대한 파훼법을 떠올린 것이다.
-순수하게 내부에서 힘으로 진법을 파괴하는 방법이라……. 사실 그건 매우 어렵습니다. 그래도 한 가지 조언을 드리자면, 진법이 가장 약한 순간을 노리는 게 그나마 성공률이 높습니다.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대부분의 진법은 완전하게 발동되기 직전이 가장 약합니다. 그 찰나의 순간을 감각적으로 느낀 후 전력을 다한다면, 어쩌면 진법 내부에서 힘으로 진법을 부술 수도 있을 겁니다.운휘는 그 말을 믿고 이를 악문 채 진법 안에서 그가 사용할 수 있는 최고, 최강의 기술을 사용했다.
‘귀도나락무(鬼刀奈落舞).’아직 완성된 것은 아니지만 운휘가 스스로 만들어낸 무공의 이름이었다.
미완성의 무공.
하지만 그것은 현재 운휘가 발휘할 수 있는 힘의 최대치를 끌어낼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대신 그 반발력이 어마어마하다는 게 문제지만…….’이 최후의 비기를 쓰고 나면 한동안 탈진 상태가 될 정도로 근육에 가해지는 부담과 내력 소모가 극심했다.
운휘는 비틀거리면서도 전신의 뭉쳐 있는 근육을 풀어주었다.
한계까지 혹사당한 몸이 가늘게 떨리며 극심한 통증을 호소해왔다.
그래도 운휘는 그것을 무시했다.
‘가야 한다.’약속했다.
그의 어린 주인과 약속하지 않았던가?
무사히 곁으로 돌아가겠다고.
그의 어린 주인은 지금도 늦어지고 있는 그를 걱정하며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더 늦기 전에 가야만 했다.
운휘는 이를 악물고 신형을 날렸다.
스스슥-
아직까지 내력이 제대로 이어지지 않고 뚝뚝 끊겼지만 운휘는 쉬지 않고 몸을 움직였다.
그렇게 새벽안개를 헤쳐 나가 겨우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안에서 사람이 움직이는 기척이 느껴졌다.
“……주군.”쿠당탕-!
거칠게 문을 열어젖히며 정신없이 후원으로 뛰쳐나오는 한 사람.
운휘의 작은 주인.
초류향이었다.
“돌아왔습니까!”운휘는 힘겹게 미소 지었다.
초류향의 얼굴에 가득한 걱정과 안도를 보자 자신도 모르게 안심이 되었던 것이다.
“……예. 호위무사 운휘, 늦었지만 임무를 마치고 돌아왔습니다.”초류향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우두커니 서서 운휘의 몸 상태를 살펴보았다.
온몸이 피투성이였고 복면도 피로 얼룩져 있었다.
파리하게 질려 있는 안색과 가늘게 떨리고 있는 전신을 보면 얼마나 심한 고초를 겪었는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내 탓이다.’초류향은 자신의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실제로도 예상하지 않았나?
그렇다면 그에 따른 대비책도 전해줬어야 옳았다.
미리 주의하라고 경고를 했는데도 화경의 고수인 운휘가 이 상태라면 정말 죽을 고비를 넘기고 왔다는 말이었다.
당시의 긴박한 상황이 굳이 말하지 않아도 전해졌다.
‘만약에라도 운휘가 잘못되었다면…….’초류향은 거기까지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안경을 벗고 콧등을 만졌다.
서서히 붉게 충혈되어 가는 눈동자.
갑자기 조기천 스승님의 마지막 모습이 머릿속에 떠올랐던 것이다.
‘그런 일은 두 번 다시 만들지 않겠다.’천천히 운휘에게 다가간 초류향은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더듬더듬 말했다.
“살아줘서…… 살아 돌아와서 정말 고맙습니다. 다행입니다. 정말…… 다행입니다.”“…….”운휘는 힘겨운 동작으로 서서히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고 부복한 채로 입을 열었다.
“황궁이…… 이번 일에 개입했습니다.”초류향은 더 말하려는 운휘를 제지하며 서둘러 일으켜 세운 뒤 그의 한쪽 어깨를 부축했다.
“보고는 나중에 듣겠습니다. 우선 치료부터…….”운휘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힘겹게 입을 열었다.
“소교주님의 예상이 맞았습니다. 갈문혁 뒤에는 따로 배후가……. 황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는 상당한 수준의 고수가 섞여 있었습니다.”“역시…… 그랬습니까?”초류향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은 했던 일이었다.
하지만 미리 각오를 하고 들어간 운휘를 이렇게 만신창이로 만들 정도의 고수라…….
대체 그게 어느 정도인지 선뜻 가늠이 되지 않았다.
그때 운휘가 거친 호흡을 고르며 계속 입을 열었다.
“그리고 그곳에…… 소교주님처럼 진법을 손쉽게 펼치던 사람이 있었습니다.”“……!”“나이는 대략 서른쯤. 문사 차림에 무공은 익히지 않은 것으로 보였습니다.”초류향의 얼굴에 강한 불신의 빛이 떠올랐다.
“저처럼 진법을 손쉽게 펼쳤다는 말입니까?”“예.”“그건 불가능합니다.”당연히 불가능했다.
초류향이 쉽게 진법을 펼칠 수 있는 것은 그가 일반적인 진법가들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진법을 펼치기 때문이다.
정관법을 익히지 않은 보통 진법가라면 그처럼 진법을 펼치는 게 불가능하다.
운휘는 고통을 참으려는 듯 잠시 얼굴을 찡그렸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 사내가 저에게 작은 상자 하나를 던지자마자 저는 진법 안에 갇혔습니다. 소교주님의 조언이 없었다면 아마 사로잡혔을 겁니다.”“……상자를 던졌는데 진법이 펼쳐졌다는 말입니까?”“예.”초류향의 얼굴이 일순 멍하게 변했다.
상대가 어떤 방식으로 진법을 펼친 것인지 한순간에 이해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잠시 멍청하게 굳어서 당시의 운휘가 처했을 상황을 머릿속으로 재현하던 초류향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이건 말이 안 된다.’운휘만 한 고수를 바로 가둬버릴 만큼 강한 진법.
그 정도의 진법을 단순히 상자를 던지는 간단한 동작 하나로 펼쳤다는 것은 상대방 역시 초류향처럼 산법으로 세상의 이치를 이해하고 있다는 뜻이 된다.
순간 전신에 소름이 쫙 돋았다.
초류향은 저 멀리서 허둥지둥 다가오는 노진녕에게 운휘를 맡긴 후 멍청한 얼굴로 제자리에 서 있었다.
“의원에게 데려가 보겠습니다.”“예…….”노진녕이 운휘를 부축해서 순식간에 사라지자 초류향은 머릿속으로 자신 외에 산법으로 세상의 이치를 이해하는 사람이 존재할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따져보았다.
그리고 나온 결론에 초류향의 눈빛이 깊게 가라앉았다.
‘전혀 불가능하지는 않다.’다만 그런 경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정말로 막대한, 그야말로 상상도 가지 않을 정도의 노력을 산법에 쏟아부어야 한다.
과거에 제갈량이 산법으로 세상을 보게 되었을 때처럼 심도 있는 수련.
그 정도의 공부를 한 사람이 현재에도 존재한다는 말이 된다.
‘한번 만나 보고 싶군.’만약 만난다면 어떻게 될까?
적으로 마주친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초류향에게 있어서 인생 최대의 난적(亂賊:어려운 적)이 될 것이다.
잠시 그런 생각들을 하고 있는데 뒤에서 무언가가 그의 종아리를 툭하고 쳤다.
고개를 내려 보니 막수였다.
초류향은 시름시름 앓는 얼굴인 토끼를 보며 입을 열었다.
“네가 여길 어떻게?”[……그게 그 망할 기집애에게 날 떠맡겨놓고 가버린 네가 할 소리더냐?]“도망쳐 나왔나 보군.”지극히 시큰둥한 어조로 대답한 초류향은 잠시 무심한 눈으로 토끼를 내려다보다 걸음을 옮겼다.
너무 충격적인 사실을 접해서 운휘를 소홀히 대했다.
의원으로 찾아가 운휘의 상태도 알아봐야 하는 것이다.
초류향이 그를 무시하는 태도로 바쁘게 움직이자 막수는 전신을 덜덜 떨며 발작적으로 소리쳤다.
[이 빌어먹을 애새끼! 도저히 못 참겠다! 네가 지금 누굴 무시하는지 알기나 하느냐?]갑자기 토끼의 전신에서 숨 막힐 듯한 위압감이 뿜어져 나왔다.하지만 초류향은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겁먹지도 않았다.
“네가 누군지 알 바는 아니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실히 알겠군.”초류향은 코끝까지 내려간 안경을 쓸어 올리며 낮게 말했다.
“네놈은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놈이라는 거지.”[……!]“왜 그런 눈으로 보지? 내가 잘못 알고 있는 건가?”막수는 서서히 기세를 죽이며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저 어린놈과 했던 거래.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거래고 나발이고 몽땅 엎어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은 거래를 인정한 자신이 더욱 잘 알았다.
[……내가 잠깐 이성을 잃었다. 사과하마.]초류향은 토끼가 더듬거리며 하는 사과를 받아주며 고개를 돌린 후,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어버렸다.과거에 이무기였던 천노를 통해서 경험해 보았지만 이런 존재들은 이상하게도 약속이라는 것에 민감했다.
아니, 그것에 강하게 집착했다.
이들은 인간과는 달리 신의(信義:믿음과 의리)가 있는 것이다.
[나는 너에게 꼭 물어볼 것이 있다.]토끼가 빠르게 걸어가는 초류향의 뒤를 깡총깡총 쫓아오면서 말했다.“물어봐라.”지나치게 성가시다는 듯한 말투.
막수는 초류향의 태도에 눈가에서 잔경련이 일었지만 참아야 했다.
약속하지 않았던가?
적어도 저놈의 시선이 미치는 곳에서는 평범한 토끼인 척하겠다고…….
그 약속만 생각하면 딱 혀를 깨물고 죽고 싶은 심정인 막수였다.
[내가 애지중지 키웠던 신령초(神靈草)는 어떻게 했지? 네가 먹었나?]“신령초?”[그래. 잎이 붉고…… 꽃잎은 녹색인데…… 모양은 요렇게 생긴 거다.]막수가 깡총거리며 달리는 와중에 재주도 좋게 손짓 발짓해가며 꽃에 대해 설명하는 것을 듣던 초류향이 입을 열었다.“구지난약화를 말하는 건가?”[그러고 보니 우매한 인간들이 그렇게 불렀던 것 같긴 하군.]막수가 긍정하자 초류향은 잠시 자리에서 멈추고 고개를 숙여 막수를 내려다보았다.
“그걸 왜 묻지?”[그건 한낱 인간들이 함부로 다뤄도 될 물건이 아니다, 꼬마.]위엄 서린 말투.
하지만 토끼가 그런 말을 하니 헛웃음만 나올 뿐이다.
초류향은 애써 그 웃음을 참으며 말했다.
“내가 먹었다면?”[……다른 놈들은 먹었으면 그대로 죽었겠지만 네놈은…….]막수는 잠시 고민하다가 코끝을 찡긋거렸다.
그리고 풀죽은 음성으로 말했다.
[네놈은 어쩌면 먹고 살아남았을 수도 있겠군. 그래서 물어보는 거다. 네놈이 설마 그걸 처먹은 거냐? 응? 이 욕심 많은 새끼야.]“아니, 안 먹었다. 아직 그 자리에 있지.”막수의 귀가 뾰족하게 세워졌다. [정말이냐? 정말 네놈이 먹지 않았나?]“정말이다.”[인간은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해대지. 지금 그 거짓말, 믿을 수 있는 거냐?]“……믿지 말던가.”초류향이 살짝 언짢은 낯빛을 해 보이자 막수는 서둘러서 스스로의 작고 앙증맞은 두 팔을 흔들며 말했다. [아니다, 믿는다. 너는 다른 인간들과는 다르지.]막수는 말을 하면서도 새삼 신기하다는 얼굴로 초류향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왜 먹지 않았지? 너희 인간들은 그런 것에 환장하는 족속이지 않나?]“그냥……. 왠지 살아 있는 것 같아서 해치기 싫었다.”초류향이 솔직히 말하자 막수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그리고 고개를 옆으로 꼬며 말했다.
[진짜…… 그 이유가 전부냐?]“그래, 전부다.”[그 거짓말을 내가 믿어도 되는 거냐?]“……거짓말은 아니지만 네가 믿든 안 믿든 그건 나와 상관없겠지.”초류향이 이번에는 확연히 불쾌한 얼굴로 대답하고 고개를 돌렸다.“더 이상 할 말 없으면 가봐라. 나는 지금 정말 급한 볼일이 있다.”운휘의 부상이 어느 정도인지 너무 걱정되었다.
초류향이 그렇게 막수를 내버려두고 서둘러 의원이 있는 곳으로 향하자 혼자 덩그러니 남은 막수가 작게 중얼거렸다.
[나는…… 세상에 그렇게 욕심이 없는 인간이 있다고 믿지 않는다.]하지만 막수도 알 수 있었다.초류향이 정말로 구지난약화를 취하지 않았음을.
저 녀석은 정말로 그 꽃을 꺾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던 것이다.
단지 그 사실을 믿고,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을 뿐.
[인간들은 모두 우매하고 멍청한 놈들뿐이라고 생각했거늘…….]어쩌면 하나 정도는 아닌 놈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막수의 얼굴은 눈에 띄게 복잡해졌다.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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