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Shura RAW novel - Chapter (92)
제92화 막수의 슬픔(2013.11.25.)
운휘의 상태는 생각보다 심각했다.
깊은 내상을 입은 상태로 너무 무리해서 내력을 사용했기 때문이었다.
의식을 잃은 운휘를 보는 초류향의 얼굴이 심란해졌다.
“갈문혁은 어떻게 하실 생각이십니까? 그대로 두실 생각은 아니시겠지요?”선우초린.
그녀의 질문에 초류향은 잠시 무언가를 고민하다 입을 열었다.
“갈문혁은 오히려 지금 그대로 두는 게 낫겠습니다.”선우초린이 마뜩잖다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설마 황궁의 고수들 때문입니까?”현재 황실에서 어느 정도의 고수를 얼마만큼 보냈는지는 선우초린도 모른다.
허나 이곳에 있는 전력으로 상대하지 못할 정도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한 번쯤은…….’선우초린은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어차피 사천 땅에서 소금을 팔려는 이상 황실과는 필연적으로 부딪치게 되지 않을까?
꼭 지금이 아니더라도 나중에는 황실과 부딪칠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 조금 무리해서라도 지금 그들의 기세를 꺾어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게다가 그 멍청한 놈, 마음에 안 들잖아?’굳이 갈문혁이 죽어야 하는 이유를 들자면 ‘괘씸죄’였다.
감히 천마신교의 행사에 개수작질을 부리려고 하다니?
그것만으로도 그놈은 천 번 죽어 마땅했던 것이다.
갈문혁을 떠올리며 인상을 찌푸리고 있던 선우초린은 이어지는 초류향의 대답에 스스로의 생각을 곱게 접었다.
“딱히 그들을 염려해서가 아닙니다. 흑월회 때문입니다.”흑월회?
뜬금없이 이게 무슨 말일까?
선우초린이 의아한 기색으로 잠자코 있자, 초류향이 안경을 고쳐 쓰며 부연설명을 해주었다.
“갈문혁은 겉으로 분명히 흑월회에 끈을 대고 있습니다. 그러니 그가 황궁과 밀담을 나누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 흑월회에서 가만히 있지 않겠지요. 그들도 자존심이 있으니까요. 황궁의 집중적인 보호를 받고 있을 갈문혁에게 굳이 저희가 무리해서 손을 쓸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지나치게 비효율적이죠, 그건.”“…….”선우초린은 묘한 시선으로 초류향을 바라보았다.
운휘 때문에 상당히 동요하고 있을 게 분명한 상황인데도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냉정하게 사태를 파악하고 있다.
확실히 남들보다 한 번 더 깊은 생각을 할 줄 아는 꼬마였다.
조금씩 초류향이 새롭게 보이고 있었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반대편에서는 초류향을 반드시 죽이고 싶다는 생각도 새록새록 생겨났다.
‘절대 아리와 잘되게 둘 수는 없지.’선우초린이 그러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초류향이 입을 열었다.
“흑월회 측에 갈문혁에 관한 정보를 흘리세요. 여기서 조심해야 될 것은 이쪽이 정보를 흘렸다는 사실을 모르게 해야 한다는 점입니다.”“알겠습니다.”그 정도야 천마신교에 있어서는 식은 죽 먹기였다.
지시를 마친 초류향은 다시 걱정 어린 눈빛으로 운휘를 내려다보았다.
그런 초류향의 옆얼굴을 보며 선우초린은 엉뚱한 생각에 잠겼다.
근래 공손아리가 침소에 데리고 와서 안고 자는 하얀 토끼.
막수라는 별 시답잖은 이름을 지닌 그 토끼를 초류향의 토끼라는 이유로 애지중지 보살피는 공손아리를 볼 때마다 괜히 마음이 언짢았다.
그래서 공손아리 몰래 틈틈이, 아니 시간이 날 때마다 토끼를 괴롭히고 있던 선우초린이다.
‘그러고 보니 그 토끼 어딘가 이상하던데…….’어디가 이상한 것이었을까?
저번에 공손아리 몰래 그 토끼의 뒷다리를 집어다가 허공에 붕 던졌을 때.
토끼의 시선에서 무언가를 본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착각이겠지…….’비애(悲哀:슬픔과 설움)였나?
아니, 차라리 체념에 가까운 눈빛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토끼라는 한낱 미물이 보이기에 너무도 복잡한 눈망울이었던 것이다.
그 이후로 선우초린은 되도록 녀석을 괴롭히지 않으려 했다.
찝찝하니까.
하지만 공손아리가 행복한 표정으로 초류향에 대해 토끼에게 소곤소곤 묻는 모습을 보자, 자연스럽게 속이 뒤집어졌다.
토끼의 슬픈 눈빛 따위는 금세 잊어버리고 다시금 몰래 그 큰 귀때기를 잡아 올려서 한 번 크게 휘두른 다음 허공에 휙 하고 집어던진 것이다.
그때 토끼가 보인 눈빛은 뭐라고 해야 할까…….
그건 마치 인생을 다 산 늙은 노인의 눈빛과 매우 흡사했다.
‘별 미친 생각을 다 하게 만드네.’아무튼 토끼 주인이나 토끼 새끼나 둘 다 기분 나쁜 종자였다.
누가 주인 아니랄까 봐 그런 면은 쏙 빼닮았다.
선우초린이 그렇게 투덜거리고 있을 때, 그 기분 나쁜 토끼는 축지법을 발휘해서 본래 자신이 봉인되어 있던 장소에 와 있었다.
‘독한 년들…….’막수는 아직도 얼얼한 느낌이 남아 있는 자신의 두 귀를 앞발로 문지르며 속으로 이를 갈았다.
머리 노란 기집애나, 까만 머리에 사갈(蛇蝎:뱀과 전갈) 같은 성미를 지닌 기집애나 둘 다 똑같았다.
‘처절한 피의 복수가 두렵지도 않더냐…….’전신을 부들부들 떨며 복수를 다짐했지만 사실 그것이 매우 힘든 일이라는 것은 막수 본인이 가장 잘 알았다.
초류향이라는 괴상한 어린놈이 뒈지지 않는 이상 복수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힘없이 축 늘어진 어깨를 한 채로 봉인되어 있던 장소로 가려는데 무언가가 막수의 감각을 자극했다.
“크르르…….”짐승의 노린내와 함께 어둠속에서 빛나는 두 개의 인광(燐光).
이마에 새겨진 선명한 왕(王) 자.
산중지왕(山中之王:산의 왕)이라 불리는 호랑이였다.
그 황소만 한 몸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박력이 정말이지 장난이 아니었다.
허나 그런 호랑이를 바라보는 토끼, 막수의 눈에서 두려움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막수의 입가에 선명한 비웃음이 떠올랐다.
[까불지 마라, 고양이. 내 이런 겉모습에 현혹되지 말고, 배가 고프면 저기 가서 다른 놈을 찾아봐.]“크르르르…….”막수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호랑이는 군침을 집어삼키며 한 발짝 가까이 다가왔다.그 모습을 본 막수의 눈가에 잠시 분노로 잔경련이 일어났다.
그러나 다음 순간, 오랫동안 수행한 막수는 호흡을 고르며 화를 가라앉히고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마지막으로 경고하는데 이 어르신 진짜 바쁘다. 너와 놀아줄 시간이 없어. 저리 꺼져.]“크와아앙!”막수가 떠들거나 말거나, 호랑이는 크게 도약해서 앞발로 위에서부터 막수를 찍어 누르려 했다.그동안 수없이 많은 사냥감들을 한 번에 때려죽인 엄청난 공격이었지만, 그 모습은 오히려 막수의 분노만 자극할 뿐이었다.
[아놔! 이 새끼들이 진짜 보자 보자 하니까…….]막수는 이번에는 참지 않았다.아니, 참을 필요가 없었다.
그는 가볍게 도약해서 뒷발로 옆차기를 날렸다.
그것은 정확하게 호랑이의 아래턱에 비스듬히 꽂히며 커다란 호랑이를 저 멀찍이 날려버렸다.
“끄워워엉!”쿠우웅-!
호랑이가 바닥에 떨어지자 묵직한 충격음이 들려왔다.
허나 막수는 거기에서 만족하지 않았다.
퍼억-!
“컹!”호랑이가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에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러댔지만 막수는 아랑곳하지 않고 주먹질과 발길질을 연속으로 날려댔다.
퍽-! 퍼억-!
그렇게 호랑이가 죽지 않을 만큼 두들겨 팬 막수는 겁에 질려 있는 호랑이 앞에 쪼그려 앉은 다음 입을 열었다.
[어떠냐? 이제 세상이 좀 보이느냐?]“끄으으…….”호랑이가 낮게 신음을 흘리며 몸을 움찔움찔 떨자 막수가 말했다. [너 같이 덜 여문 놈을 죽이면 욕먹으니까 그냥 봐준다. 좋은 말로 할 때 저리 꺼져.]“끄응…….”호랑이가 힘겹게 몸을 일으켜 비틀비틀 사라지자 막수는 고개를 돌리며 한숨을 내쉬었다.자신이 언제부터 이렇게 한심한 짓거리를 하게 되었을까?
저런 놈과 드잡이질을 벌였다는 사실 자체가 남들에게 말도 못 할 망신살이었다.
자괴감이 발끝에서부터 서서히 차올랐다.
잠시 그렇게 멍하게 있던 막수는 고개를 저으며 정신을 차린 후 입을 열었다.
[빨리 그 아이나 수습해 가야겠다.]주변을 두리번거리며 한참을 서성이던 막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 이곳이 맞을 텐데?]그런데 아무리 둘러보아도 신령초가 보이지 않았다.누가 캐간 것일까?
[그럴 리가 없지.]신령초는 아무나 손댈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사실 초류향과 운휘 정도였기에 신령초가 살려달라는 몸짓을 취한 것이지, 보통의 경우 평범한 사람이 신령초에 접근하면 그 넓고 강력한 뿌리 부분에 휘감겨 영양분이 될 뿐이었다.
한참 동안 주변을 살펴보던 막수는 눈썹을 꿈틀거렸다.
[설마?]무언가 수상했다.그래서 감각을 최대한으로 끌어 올려 주변을 둘러보던 막수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크게 벌렸다.
[주술? 아니, 이건 결계인데? 어? 뭐야? 두 개를 합쳐 놓은 건가? 이게 말이 돼?]막수는 비 맞은 중처럼 그렇게 연신 혼자서 무언가를 중얼중얼거리고 있었다.그러다 한참 후 막수가 코끝을 찡그리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그 괴상한 부채를 들고 있던 영감. 그놈과 비슷한 수작질을 부릴 줄 아는 거였군, 그 버릇없는 꼬마가.]이것이 산법이라는 것을 알 리가 없는 막수였기에, 초류향의 존재에 대해 다시 한 번 강하게 의심하게 되었다. [그 영감의 제자 정도 되는 건가…….]그 영감을 떠올리자 다시금 불쾌한 기억이 떠올랐다.그러나 금세 감상에서 빠져나온 막수는 낮게 입맛을 다시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근처 어딘가에 분명 결계의 핵심을 이루는 ‘매개체’가 떨어져 있을 것이다.
과연 그 매개체는 금방 찾을 수 있었다.
[……근데 이런 돌멩이를 매개체로 썼다고?]막수의 표정이 다시 한 번 괴상하게 변했다.일반적으로 결계를 칠 때는 귀한 보석이나 그에 준할 만큼 특이한 물건을 매개체로 사용한다.
근데 한낱 돌멩이를 매개체로 삼는 것은 막수로서도 처음 보는 일이었다.
파삭-
막수가 앞발로 돌멩이를 가볍게 움켜쥐자 순식간에 가루로 변했다.
동시에.
후욱-
주변의 막혀 있던 공기가 한순간에 트이며 전면에 공간이 뻥 뚫렸다.
그리고 그곳에 막수가 찾고 있던 것이 보였다.
항아.
월궁에 산다는 전설적인 미녀의 이름이다.
막수는 구지난약화에 그 이름을 붙여주고 애지중지 키워왔던 것이다.
구지난약화의 이파리가 막수를 보자 가늘게 떨리며 아는 척을 해왔다.
막수는 그 이파리 한쪽을 가볍게 쥐며 말했다.
[네가 살아 있음을 알아서 이렇게 찾아왔다. 다행히 늦지 않게 도착했구나.]구지난약화의 전신을 부드럽게 만져주며 막수가 힘없이 말했다. [나는 이제 그 건방진 꼬마를 따라 가야 한다. 힘을 조금이라도 빨리 회복하려면 그 방법이 최선이니까. 하지만 너를 여기에 두고 가는 것이 아무래도 마음에 걸리는구나.]구지난약화는 다른 쪽 이파리를 뻗어서 막수의 볼을 쓰다듬었다.마치 괜찮다고, 자기는 걱정 말라고 말하는 듯했다.
잠시 그 부드러운 손길(?)을 음미하고 있던 막수가 조용하게 말했다.
[너는 나를 따라가겠느냐?]구지난약화는 잠시 동안 미동도 없었다.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막수는 그런 구지난약화를 인내심을 가지고 바라보았다.
잠시 후 구지난약화가 긍정의 몸짓을 해 보이자 막수가 밝은 얼굴로 웃으며 말했다.
[고맙구나. 힘든 결정이었을 텐데. 나를 믿어줘서 고맙다.]막수는 조심스럽게 구지난약화의 뿌리가 있는 바닥 부분에 앞발을 가져다 대었다.그리고 신중한 얼굴로 물었다.
[후회하지 않겠느냐?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일이다.]항아.구지난약화는 다시금 긍정의 몸짓을 해보였다.
막수는 그 모습에 흐릿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제부터 나 역시 너와 함께하겠다.]그리고 한 번 크게 힘을 주자 바닥이 물결처럼 출렁거렸다.
그 후 막수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신력(神力)을 최대한도로 끌어올리는 것이다.
[흐아아압!]드드득-!구지난약화의 엄청나게 커다랗고 굵은 뿌리들이 허공에 둥실둥실 떠올랐다.
그 상태로 막수가 입을 열었다.
[내 내단이 있는 곳에 뿌리를 내려라.]구지난약화의 뿌리가 막수의 복부를 향해 쏘아져 갔다.우웅-
몸이 꿰뚫릴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구지난약화의 커다란 뿌리들이 막수의 복부를 향해 서서히 빨려 들어가기 시작했다.
잠시 후 막수는 자신의 복부를 내려다보며 미소 지었다.
작은 이파리 부분만 빼고 막수의 몸에 구지난약화가 완전히 자리 잡은 것이다.
가만히 제자리에 서 있던 막수가 천천히 움직였다.
[끙…….]너무 과도하게 힘을 사용해서 전신이 자꾸 늘어지려 했지만 일단 걸었다.초류향의 근처에 붙어 있어야 그래도 힘의 회복이 빨라지니까.
그 건방진 꼬맹이는 여전히 마음에 들진 않았지만 지금으로서는 어쩔 수가 없었다.
곧장 하늘에 올라가 못다 한 복수를 할 것이다.
그렇게 굳은 다짐을 하며 막수는 걸음을 옮겼다.
그러다 자신도 모르게 욕을 내뱉었다.
[젠장! 망할!]힘을 너무 쓰는 바람에 축지법을 펼칠 여력이 없었다.그 먼 거리를 터덜터덜 걸어서 가야 될 판인 것이다.
천마신교의 분타로 걸어가는 내내 막수는 스스로의 처지가 너무도 불쌍하게 느껴졌다.
그러다 막수는 무언가를 깨닫고 우뚝 멈춰 섰다.
[그러고 보니….]자신에게는 힘 이외에 다른 재주도 있지 않았던가?왜 이렇게 중요한 걸 까먹고 있었을까?
조금 전까지 체념에 가득 차 있던 막수의 눈빛이 서서히 음흉하게 변했다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