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 Shura RAW novel - Chapter (95)
제95화 막수의 등장(2013.12.05.)
초류향은 피곤한 얼굴로 사천 분타로 복귀했다.
선우초린과 이화궁의 고수들이 흑사련의 무력 집단을 순식간에 괴멸시키는 장면을 눈도 돌리지 않고 지켜봐야만 했던 초류향이었다.
정신적으로 너무 지치고 힘들었지만 그런 내색은 할 수 없었다.
천마신교의 소교주라는 위치는 고작 그러한 일로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주어서는 안 되는 자리기 때문이다.
초류향은 사천 분타에 오자마자 곧장 운휘가 쉬고 있는 거처로 찾아가 그의 안부를 확인하고자 했다.
보름 내내 침상에서 일어나지 못했던 운휘다.
다행히 오늘은, 창백한 얼굴이긴 하지만 자리에서 일어나 의자에 앉아 있었다.
그만큼 몸이 많이 회복된 것이다.
창밖을 보며 앉아 있던 그는 초류향이 거처에 들어서자 비틀거리면서도 자리에서 일어나 공손하게 무릎을 꿇었다.
“그동안 걱정을 끼쳐드렸습니다, 주군.”“…….”
초류향은 순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초췌해진 운휘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러다 퍼뜩 정신을 차리고 서둘러 다가가 그를 일으키며 말했다.
“괜한 격식 차리느라 무리하지 마세요. 이건 너무 비생산적입니다. 어제 의원에게 들어보니 죽을 고비를 넘겼다 하던데…… 이제는 좀 괜찮아진 겁니까?”“예. 사흘 정도만 쉬면 멀쩡하게 회복될 것 같습니다.”“내상은 다 나은 것입니까?”“예, 주군.”운휘는 씁쓸하게 웃어 보였다.
사실 겉으로 보이는 부상보다 내부에 입은 부상이 더 심각했다.
황실 고수들의 추격을 뿌리치기 위해 무리하게 공력을 사용해서 내부 장기가 크게 손상되어 있었던 것이다.
한때는 위험하기도 했지만 다행히 고비를 넘기자 빠른 속도로 회복기에 접어들었다.
평소에 이루어 놓은 무공 경지가 워낙 대단하다 보니, 일단 이렇게 몸의 균형이 어느 정도 맞춰지자 나머지는 금세 회복할 수 있었다.
“이번에 가져왔던 소금을 주군께서 거의 다 판매하셨다고 들었습니다.”“예.”운휘를 부축해 자리에 앉힌 초류향은 그의 맞은편 의자에 앉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운휘는 평소의 그답지 않게 호기심을 보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갈문혁과는 거래하지 않으셨을 텐데, 어떻게 그 많은 물량을 판매하신 것인지 여쭤 봐도 되겠습니까?”운휘가 알기로 갈문혁과의 거래가 틀어진 상황에서 천마신교가 소금을 판매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했다.
황궁과 손을 잡은 갈문혁이 사사건건 방해를 할 것은 분명했고, 물건 자체가 외부에 드러내놓고 팔 수 없는 것이다 보니 판로가 막혀 창고에 쌓여만 갈 것이라 예상했는데…….
대체 어떤 방법으로 그 많은 소금을 처분한 것일까?
그런 운휘의 의문을 눈치챘는지 초류향은 흐릿하게 웃었다.
“생각을 조금 바꿔보았습니다. 그러니 해결 방법이 보이더군요. 곁에 있던 노진녕 호위무사가 크게 도움이 되었습니다.”“……이 녀석이 도움이 되었다는 말입니까?”운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못 믿겠다는 얼굴로 초류향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자신의 무례를 눈치챘는지 황급하게 고개를 숙였다.
운휘의 이런 격렬한 반응은 예상 밖이었기에 초류향은 슬쩍 웃으며 대꾸해주었다.
“예, 발상의 전환을 할 수 있게 저를 깨우쳐주었습니다. 감사한 일이지요.”운휘는 여전히 믿지 못하겠다는 얼굴로 초류향의 뒤에서 오만방자한 표정을 짓고 있는 노진녕을 힐긋 바라보았다.
노진녕은 그런 운휘를 보며 느릿하게 팔짱을 끼었다.
그리고 운휘에게 ‘나란 남자, 이런 사람이야.’라는 뜻을 눈으로 강하게 내비쳤다.
“그렇게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가 없었습니다.”초류향은 탁자에 놓여 있는 찻잔을 들어서 그 안에 찻물을 따르며 말했다.
또르륵-
“갈문혁처럼 손님이 직접 가게로 찾아와서 물건을 사 가게 만드는 소극적인 방법이 아니라, 저희가 직접 물건을 들고 손님들을 찾아가는 적극적인 방법을 취했을 뿐입니다.”여기서 말하는 물건은 당연히 소금을 말하는 것일 터.
운휘는 그 사실을 깨닫고 입을 쩌억 벌렸다.
“그것은 너무 위험한 방법이 아닙니까?”이 방법은 신원이 외부로 너무 노출된다.
따지고 보면 초류향이 상인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일종의 방문판매를 했다는 것인데, 이건 뭐 동네 보따리장수도 아니고 너무 위험한 방법이 아닌가?
물건 자체가 덩치가 너무 컸고, 값어치도 비쌌다.
거래하려는 상대방이 마음먹기에 따라서 자칫 잘못하면 물건도 사람도 모두 잃을 수 있는 것이다.
“예, 분명히 위험하죠. 그래서 안전장치가 필요했습니다. 위험부담을 최소한으로 줄여야 할 필요가 있으니까요.”초류향은 말을 하면서 빙긋 웃었다.
안전장치?
그게 뭐지?
한층 더 의아한 표정을 짓는 운휘를 지켜보던 초류향이 입을 열었다.
“현시점에서 갈문혁보다 저희가 나은 것이 두 가지 있죠.”“그것이…… 어떤 것입니까?”“하나는 무공을 익힌 고수들의 질적 차이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바로 상품인 소금입니다.”“소금이요?”“예. 갈문혁이 가지고 있는 소금은 가루로 되어 있기에 누가 보아도 소금이라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죠. 그래서 밤에만 은밀하게 거래를 할 수 있습니다. 낮에는 성문을 통과할 수 없으니까요. 하지만 저희가 가지고 있는 암염은 다릅니다.”초류향은 소매에서 반듯하게 조각된 돌멩이 하나를 꺼내 들며 빙그레 웃었다.
“성도에 있는 부자들은 대게 집 안에 그럴싸한 정원석(庭園石:정원을 꾸밀 때 쓰는 돌)들을 두려고 하지요. 정원석은 전부 모양도 가지각색이고 색깔도 제각각입니다. 그리고 나라에서는 그것들에 대한 감시가 소홀한 편입니다.”운휘는 눈을 크게 떴다.
그랬다.
정원석은 부자들과 소위 말하는 높으신 분들의 전유물이기 때문에 감시 감독이 헐거울 수밖에 없었다.
초류향은 그 점을 노린 것이다.
“석공들을 동원해 암염을 개량해서 판매했습니다. 최대한 정원석처럼 보이게 깎아내고 쪼갰지요. 때문에 저희 쪽 소금은 낮에도 문제없이 판매할 수 있습니다.”낮에도 당당하게 거래가 가능하다는 것.
이것은 소금 시장에 실로 엄청난 반응을 불러왔다.
맛과 질이 훌륭한 것은 물론이고 낮에도 거래가 가능한 소금.
일석삼조의 이득을 볼 수 있는 소금은 상인들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게다가 판매자가 직접 배달까지 해주니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가격을 기존 소금값과 동일하게 책정했다는 것입니다. 지금 당장은 욕심을 부리면 안 되는 시점이니 이 부분은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못내 아쉬워하는 표정을 보니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누구도 쉽게 생각하지 못할 기발한 방법으로 소금에 대한 규제를 피하고 거래를 성사시켰으면서, 그런 점을 뽐내거나 우쭐거리는 듯한 기색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이 정도는 초류향에게 크게 어려운 일도 아니었고, 오히려 거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제값을 받아내려는 궁리까지 했던 것이다.
운휘는 이 시점에 이르러서는 아예 할 말을 잃어버렸다.
그가 모시고 있는 분이 대단하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지니고 있는 재능이라든가, 특이한 재주만 보아도 그 깊이를 알 수가 없을 정도니까.
하지만 이런 종류의 지혜(智慧)는 저 나이에 쉽게 터득할 수가 없는 것이 아닌가?
많은 양의 경험과 지식이 쌓여야 비로소 나올 수 있는 것일 터.
운휘는 잠시지만 눈앞에 있는 초류향이 인간의 범주에서 벗어난 존재같이 느껴졌다.
“지금이 바로 본교가 사천에 확실하게 자리를 잡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시점입니다. 그러니 하루바삐 몸을 회복하셔서 저를 좀 도와주셔야겠습니다.”운휘는 초류향의 말에 잠시 넋을 놓고 있던 정신을 재빠르게 수습하며 읍을 해 보였다.
“호위무사 운휘, 주군의 명령을 받들겠습니다.”초류향은 손가락으로 볼을 긁적이며 말했다.
“이건 명령이 아니라 부탁입니다. 이제 정말 빨리 몸을 회복하셔야 합니다. 제가 보기에 슬슬 적들이 움직일 시기가 되었습니다. 저들도 그동안 저에 대한 정보는 충분히 모았을 테니까요.”운휘의 표정이 점점 신중해졌다.
소교주님의 말이 옳았다.
이제 정말로 위험한 시점이었다.
그동안 벌인 일들을 감안할 때, 외부로 정보가 새어나가지 않았을 리가 없는 것이다.
“……내일까지 주군을 보필할 수 있는 최상의 몸 상태로 만들겠습니다.”비장한 표정의 운휘를 보며 초류향은 믿는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기다리겠습니다.”그 후 초류향은 운휘가 푹 쉴 수 있도록 거처에서 빠져나왔다.
노진녕이 자신의 뒤에서 다친 운휘를 약 올리는 것을 보았지만 그 정도 장난은 모르는 척해주었다.
그렇게 얼마를 걸었을까?
저 앞에서 누군가가 후다닥 뛰어오는 것이 보였다.
그 모습을 보자 초류향은 자신도 모르게 스스로의 가슴을 움켜쥐었다.
‘또 이러는 건가…….’갑자기 심장이 쿵쾅거리며 뛰었다.
초류향은 금발 머리를 찰랑거리며 뛰어오는 공손아리를 보고 복잡한 얼굴을 해 보였다.
“안녕하세요, 소교주님?”“…….”바로 입을 열어 대답하지 못하고 말문이 막힌 초류향은 고개만 끄덕거렸다.
자신도 모르게 얼굴이 조금씩 달아오르는 기분이다.
‘오늘은 저번보다 증상이 더 심각해진 것 같다.’초류향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전혀, 정말 아무런 이유도 없는데 왜 자신이 공손아리만 보면 이렇게 안절부절 몸 둘 바를 몰라야 하는지 납득이 되지 않는 것이다.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그녀에게 숨기는 것도 없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공손아리 앞에만 서면 그녀의 시선과 행동 하나하나에 신경이 쓰였다.
입안이 바짝바짝 말랐고, 전신의 근육이 긴장으로 굳어져 갔다.
마치 스승님인 공손천기와 마주했을 때처럼 단 한 순간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역시 이해가 안 돼…….’공손아리는 스승님이 아니었다.
스승님이야 워낙에 특별한 사람이니 이해할 수 있었지만 공손아리는 그게 아니지 않은가?
‘대체 왜?’초류향이 그렇게 속으로 심각한 고민을 하고 있을 무렵.
공손아리가 입을 열었다.
“혹시 막수가 이곳으로 왔나요?”막수?
갑자기 그 녀석을 왜 찾는 거지?
의아한 생각이 들었지만 그런 내색은 하지 않고 짧게 대답했다.
“안 왔습니다.”“아……. 어쩌지.”공손아리는 선뜻 말을 꺼내지 못하고 발을 동동 구르며 한동안 안절부절못했다.
그 귀여운 모습을 지켜보는 동안 조금 마음이 편안해진 초류향이 평소의 침착함을 되찾았을 때, 공손아리가 쭈뼛거리며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우리 막수가 가출을 한 것 같아요.”‘우리’라는 단어가 묘하게 신경 쓰였지만 일단 초류향은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 녀석이라면 알아서 때가 되면 돌아올 겁니다.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누군가에게 걱정 받을 정도로 막수는 만만한 존재가 아니었다.
오히려 남들에게 해를 입히고 다니면 다녔지, 어디 가서 당하고 올 녀석이 아닌 것이다.
“그래도 벌써 열흘째 돌아오지 않았어요.”“열흘이나 되었습니까?”“네…….”초류향은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열흘이면 생각보다 긴 기간이었다.
그 녀석을 공손아리에게 맡긴 것은 그녀가 강하게 원했던 것도 있지만 일단 어느 정도 녀석과 거리를 두기 위함이 더 컸다.
헌데…….
‘그 녀석은 분명 나와 멀리 떨어지지 않는 것이 스스로에게도 좋다고 했었다.’‘멀리’가 정확히 어느 정도 거리를 말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좋은 것일 터.
그런데 사천 분타를 벗어나서 이렇게 오랫동안 자리를 비웠다는 것은 무언가를 꾸미고 있다는 소리가 분명했다.
‘묘하게 거슬리는군.’그 토끼 녀석은 아직 적인지 아군인지 확실하지가 않았다.
그랬기에 그 부분을 조금 더 명확하게 하기 전까지는 거리를 두려고 했던 것이다.
이런 식으로 나오는 것을 보면 좋지 않은 꿍꿍이가 있는 듯싶었다.
‘골치 아프게 되었다.’녀석과는 거래라는 것을 했기 때문에 녀석을 어느 정도 신용하고 있었던 초류향이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녀석이 이런 식으로 나온다면 녀석을 통제할 만한 방법이 딱히 없었다.
놈과의 거래 기한은 자신이 ‘죽을 때’까지였다.
그 말은 다시 말해서 그놈이 직접 자신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는 뜻이 되는 것 아닌가?
잠시 그 점을 염려하던 초류향은 피식 웃었다.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아직 닥치지도 않은 불행한 상황을 미리부터 고민하는 것은 지나치게 비효율적이었다.
그것은 초류향.
그의 방법이 아니었다.
“일단 기다려보십시오.”“그 아이가 정말 돌아올까요?”공손아리가 걱정스럽게 묻자 초류향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반드시 돌아올 겁니다.”그럴 것이다.
초류향에게는 막수가 간절히 원하는 것이 있었으니까.
그리고 막수가 돌아온 것은 초류향의 예상보다 조금 더 빨랐다.
막수는 바로 그날 밤에 찾아왔던 것이다.
그것도 전혀 예상치 못한 모습으로…….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