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s RAW novel - Chapter 111
제110화 좀 과한 거 아뇨?
소면통달은 오절신공의 근원에 대해서도 알아낼 수 있을까.
마침 그가 먼저 운을 뗐다.
“신법도 볼 수 있겠소?”
나는 내 뒤에 서있는 노인들을 돌아보았다.
쌍둥이임에도 그들의 외양은 사뭇 달랐다. 별호가 알려주듯 얼굴부터 천양지차였다. 팔십 줄에 들어선 노인임에도 옥면수라는 젊은 시절의 수려함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빼어나게 잘생겼을 뿐만 아니라 주름도 별로 없어 백발만 아니면 사십 대라고 해도 믿었을 터였다.
반면 귀면나찰은 이목구비가 다 흉하게 일그러져 문자 그대로 귀신같은 얼굴이었다. 기실 그녀의 귀면은 후천적으로 생긴 것이었다. 그녀도 원래는 쌍둥이 동생 못지않은 미색의 소유자였다. 그러나 막 강호에 무명(武名)을 알리기 시작할 무렵 사파 무림의 기린아와 조우해 가슴이 뭉개지고 얼굴이 망가지는 중상을 입었다. 그녀의 원수는 훗날 칠사의 좌장이 된 사사문의 생사대작이었다.
쌍둥이는 체형도 대조적이었다. 귀면나찰은 엄청난 비만이었고 옥면수라는 군살 한 점 없는 날렵한 몸매였다. 제비(燕)와 고래(鯨)라는 각자의 이름을 바꾸어야 할 판이었다.
공통점이 없지는 않았다. 수라와 나찰이라는 명호를 얻은 데서 알 수 있듯 둘 다 잔혹한 손속으로 악명을 떨쳤다. 그러나 그들의 장공에 당한 자들은 사마의 악인들뿐이었다. 명교에 투신하기 전 삼십 년 간의 행적이 증명한 바, 쌍둥이 남매는 협객이라 불려 손색이 없는 정인(正人)들이었다.
나는 쌍둥이를 번갈아 바라보며 말했다.
“두 분이 저를 공격해 보시지요.”
옥면수라가 손바닥을 비볐다.
“부족한 솜씨나마 최선을 다하겠소.”
그 말이 떨어지자마자 엉뚱하게도 귀면나찰이 장공을 발출했다. 거리가 십여 보에 불과했기에 대응이 만만치 않았다. 하지만 나는 신수를 발하지 않고 오절신공으로 귀면나찰의 기습을 빗겨냈다. 한 숨 돌릴 여유를 주지 않고 옥면수라도 맹폭을 가해왔다. 두 명의 초절정 극상의 고수가 일으킨 태풍에 갇힌 나는 어쩔 수 없이 공(空)을 비롯한 신수를 꺼내들었다. 오절신공만으로는 대처하기 어려웠다. 치명상을 입지는 않더라도 타격을 허용할 공산이 컸다.
훌쩍 물러나 있던 소면통달도 장공을 퍼붓기 시작했다. 의외였다. 그의 가세가 아니라 그의 무력이. 쌍둥이보다 서열도 높을뿐더러 무위도 반 뼘은 위라고 알려져 있었지만 소면통달의 장공은 그들보다 위력이 떨어졌다. 그렇더라도 그의 장공이 추가됨으로써 위협은 크게 증가되었다. 나는 스스로에게 일 푼의 방심도 허락하지 않고 전력을 다했다.
이십여 일 전 삼절문에서 겪었던 삼사(三邪)의 합공보다 흉험했다. 삼인의 무력이 그들을 능가해서가 아니라 쌍둥이가 워낙 손발이 잘 맞았기 때문이었다. 더욱이 내 반격을 경계하지 않아도 되었기에 세 노인은 호신강기에 공력을 할애하지 않고 공격에 온 힘을 쏟을 수 있었다. 불공평한 조건이었으나 나는 불평하지 않았다. 그러기는커녕 예기치 않았던 자극에 환호작약했다.
삼인의 강호가 근거리에서 쏟아내는 폭풍의 삼각파도는 물 샐 틈도 없었다. 초장에 빠져나갈 기회가 있었으나 나는 탈출을 거부함으로써 위기를 자초했다. 아찔한 순간이 닥쳤다. 무왕과의 비무에서 얻은 성과를 활용해 아슬아슬하게 피격을 모면하고 나니 욕심이 생겼다. 한 발 더 나가볼까.
실패하면 망신을 넘어 부상을 당할 우려가 컸지만 나는 도박에 나섰다. 방어막을 거둔 채 만근거석도 가루로 만들 장공들에 몸을 내맡긴 것이었다. 스치기만 해도 팔다리가 뜯겨져나가거나 자칫 잘못하면 몸뚱이가 으깨질 터였기에 위험천만한 짓이었으나 도저히 비약의 욕망을 누를 수 없었다.
쌍둥이 노인들이 발출한 강풍의 소용돌이의 결을 따라 기괴한 곡선을 그리며 회전한 내 동체는 소면통달의 장공을 허용하고는 폭죽처럼 터져나갔다. 지레 놀란 소면통달이 경악성을 내질렀다.
“헉!”
그로서는 다행히도, 그리고 나로서는 더더욱 다행스럽게도 그가 본 것은 환상이었다. 그의 장공이 때리고 부순 건 내 육신이 아니라 귀면나찰의 강기였다.
삼 장 상공에 뜬 내 실체를 발견한 소면통달이 폐부에서 우러나오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가히 신기였소. 아니, 그 이상이었소. 노부는 이날까지 이런 비술이 존재하리라고는 상상도 못했소. 이에 비하면 좌검우도는 소꿉장난 수준이었구려.”
옥면수라가 참견했다.
“아까 보여 준 검공과 도법 말고 이 신법의 격에 맞는 신공도 있을 듯싶소만.”
귀면나찰이 동생의 의견에 동조했다.
“맞아요. 삼절문에서 자전검군, 파산권귀, 경천도군을 일수에 날리고 사흘 전 정맹에서는 오대세가 원로들을 한꺼번에 무릎 꿇렸던 절대무공이 따로 있을 테죠? 그것도 보고 싶어요, 전왕.”
‘좀 과한 거 아뇨? 초면에 밑천을 다 까놓으라는 거요.’
이렇게 대꾸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말하지는 않았다. 존장에 대한 예의가 아니어서가 아니라 너무 흡족했기 때문이었다.
전혀 기대치 않았던 행사에서 무왕과의 일전에서 획득한 전리품에 준하는 성과를 올린 탓인지 마치 횡재한 기분이었다. 이제 무왕에게 팔 초를 견딜 수 있게 되었으니 어찌 기쁘지 않을쏜가?
겨우 일 초 차이에 유난 떨지 말라고? 모르는 소리! 벽에 가로막히면 일 년이 지나도 해내지 못할 진일보였다.
검황자와의 결정전에서 시작된 비약 행은 아직도 진행 중이었다. 나는 이 여정이 지속되기를, 그래서 십왕이 모여 있는 경지에 이르기를 빌고 또 빌었다.
소면통달이 귀면나찰을 나무랐다.
“안 될 말일세, 큰 아우님. 전왕이 이만큼 성의를 보여준 것도 우리 늙은이들을 크게 대접해 준 걸세. 여기서 더 요구하면 노욕이라고 욕할 걸세.”
귀면나찰이 콧방귀를 꼈다.
“흥, 오라버니도 보고 싶으면서. 괜히 속에 없는 말 하지 말아요.”
“저런 말본새 좀 보게. 요즘 내 기력이 쇠했기로서니 전왕 앞에서 내 체면을 깎아내릴 참인가?”
“여기서 그 소리가 왜 나와요? 그런 얘기가 아니잖아요?”
나는 티격태격하는 노인들을 말렸다.
“하하, 그만 하지지요. 보여드리겠습니다.”
두 노인이 입씨름을 멈췄다. 소면통달이 반색했다.
“그래 주겠소?”
나는 품에 수습했던 옥소를 다시 꺼냈다. 그러고는 광환과 광폭, 그리고 광망(光網)을 연달아 펼쳤다. 인지하기 편하라고 일부러 섬전을 일으켰음에도 노인들은 신수들의 신묘함을 가늠하지 못한 기색이었다.
소면통달이 솔직한 감상을 밝혔다.
“뭐가 뭔지 모르겠네만, 무언가 굉장한 게 지나간 느낌이었소.”
귀면나찰이 숟가락을 얹었다.
“그 정도가 아니에요, 오라버니. 이건 사상 최고의 쾌검임에 틀림없어요. 그렇지 않으면 그 콧대 높은 위인들이 수천 쌍의 눈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엉덩방아를 찧고 아연실색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을 거예요.”
옥면수라가 뒤를 이었다.
“우리도 체감할 수 있도록 해 주겠소? 그렇다고 목을 날리지는 마시오. 정파의 늙은이들에게 했던 것처럼 맛만 보여주구려.”
참으로 죽이 잘 맞는 쌍둥이였다. 재주를 부리는 곰이 된 기분이었으나 나는 기꺼이 옥면수라의 요구를 들어주었다.
광환으로 세 노인의 소매를 자른 나는 그들이 뒤늦게 내뱉는 탄성을 즐겼다.
소면통달이 장광설을 쏟아냈다.
“하아, 알고도 막을 수 없는 비수외다. 헌데 이상하구려. 구환도법과 뇌전검공을 바탕으로 삼은 줄 알았는데 그런 흔적이 없더이다. 너무 빨라 노부가 알아채지 못했을 수도 있겠지만. 그러고 보니 전왕의 신법에도 묘한 점이 있었소. 처음에 아우님들의 장공을 흘려낸 수법에서는 십전도객, 아니 무왕의 연환신이 연상되었는데 뒤에 가서는 전혀 딴판이더이다. 그러면서도 어딘가 닮은 것도 같고. 하지만 그런가 하면 완전히 별개의 무학임에 분명해 보이고. 이런, 횡설수설해서 미안하오. 만류귀종이라더니 아마도 극점에 이른 절학끼리는 통하는가 보오. 우리 교주의 일섬지(一閃指)에도 방금 전왕이 현시한 빛살과 흡사한 부분이 있소. 어쨌거나 참으로 대단했소. 이 늙은이의 눈을 호강시켜주어서 고맙구려.”
나는 소면통달의 안목에 감탄했다. 그러면서 그가 말한 장왕의 일섬지에 호기심이 생겼다. 내 광환과 어떤 유사성이 있을까. 이제 곧 확인하게 될 터였다.
하지만 소면통달이 그런 내 예상을 뭉갰다.
“정말 알차고 뜻깊은 만남이었소. 노부는 오늘 천룡을 친견하고 신위를 목도한 기쁨과 영광을 오래도록 간직하겠소. 그럼 조만간 친인들을 데리고 올 전왕과의 재회를 학수고대하겠소이다.”
나는 당황했다. 수천 리를 날아왔는데 명교를 코앞에 두고서 장왕을 보지도 않고 그냥 가란 말인가. 그럴 수는 없었다.
“이왕 온 김에 장왕 어르신께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무리한 청이 아님에도 소면통달은 난색을 표했다.
“그게, 교주는 워낙 공사다망한 관계로 짬을 내기가 쉽지 않소이다. 일 년 간의 일정이 시진 단위로 짜여 있다오. 아, 오해는 말구려. 전왕이라면 만사를 제쳐두고 만나시려 할 게요. 그러나 신하된 입장으로서…….”
귀면나찰이 끼어들었다.
“그러지 말고 전왕을 교주에게 데려가요, 오라버니. 어차피 한 번은 대면해야 하잖아요.”
옥면수라가 누이를 거들었다.
“맞소, 형님. 매도 빨리 맞는 게……, 아니, 그게 아니라 쇠뿔은 단김에 빼는 게 낫소.”
이게 다 무슨 소리지? 장왕에게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건가?
눈짓으로 경솔한 언사를 내뱉은 오누이에게 주의를 준 소면통달이 마지못해 내 청을 수락했다.
“그렇게 합시다. 다만 교주가 전왕에게 많은 시간을 내줄 수 없을 것임을 미리 양해드리겠소. 올해 이 땅에 수십 년 만에 든 흉작으로 인해 교주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오. 그래서 전왕과의 협상에도 나를 내보내신 거라오. 교주에겐 백성들을 돌보는 것보다 중요한 일이 없소.”
미심쩍은 구석이 적지 않았으나 일단은 넘어가기로 했다. 여기서 캐물은들 소면통달이 사정을 실토할 리 만무했다. 장왕을 보면 대강의 윤곽이 잡힐 터였다.
* * *
은천은 나 같은 절대고수에겐 엎어지면 코가 닿을 만큼 가까웠다. 초절정 극상의 고수들에게도 먼 거리가 아니었다. 나와 장왕의 만남을 원치 않는 기색이 역력했던 소면통달은 웬일인지 가쁜 숨까지 토해내며 전속력으로 경신을 전개했다. 우리는 반 시진 남짓 만에 이백오십 리를 주파하고 은천에 이르렀다.
맑은 물빛을 드리운 하천을 건너니 고적한 고을이 나왔다. 중원사패의 하나인 명교가 터를 잡은 요처였음에도 고층전각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진소월에게서 들은 바에 따르면 은천에서 가장 높은 건물인 수미옥도 삼층밖에 되지 않았다.
중원의 대도에서 숱하게 보았던 불야성과도 거리가 멀었다. 최소한의 등만 걸려있어 도시는 짙은 어둠에 잠겨있었다.
소면통달은 나를 은천 초입의 단층와옥에 들였다. 지은 지 수백 년은 되어보였지만 먼지 하나 없이 깨끗했다. 장왕과의 심야면담을 기대하고 있던 나는 날이 밝고 사시(巳時)에 장왕이 대신회의를 집전한 후 자리를 마련할 테니 기다려달라는 소면통달의 말에 실망했다. 그러나 당장 만나게 해달라고 보챌 수는 없는 노릇인지라 그의 청을 받아들였다.
나는 눈을 붙이지 않고 명교 삼대호법의 시험에서 얻었던 성과를 되새기며 시간을 보냈다. 이윽고 닭이 울고 해가 떴다. 사시가 되려면 아직 한 시진 이상 남았지만 나는 와옥을 나왔다. 그러고는 특이한 경험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