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gs RAW novel - Chapter 199
제198화 스앙카?
당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그럴 리가 있겠는가.
마녀의 손톱에 가슴을 내준 순간 나도 옥소로 그녀의 정수리를 내리쳤다. 이 교환은 내 손해로 판명되었다. 마녀는 머리통이 찌그러지긴 했지만 부서지지는 않은 반면 내 동체는 좌견에서 오른쪽 옆구리까지 길게 갈라졌다. 뼈까지 갈리고 내장이 상할 만큼 중한 부상이었다. 그나마 심장이 무사해 천만다행이었다.
나는 마녀가 후속타를 날리기 전에 무릎으로 그녀의 사타구니를 올려 찼다. 호리호리한 몸매였으나 마녀는 백만 근의 바윗덩이처럼 무거웠다. 천공으로 솟구쳤어야 할 그녀의 몸뚱이는 고작 일 장 정도만 튕겨 올라갔을 뿐이었다. 어쨌든 활로를 마련했지만 나는 피신하는 대신 재차 공격했다. 공중에 뜬 마녀에게 광참을 꽂았으나 그녀는 복부가 길게 찢어졌음에도 그에 아랑곳없이 나를 덮쳤다.
나는 급히 피신했다. 마녀의 손에 걸리면 끝장이었다. 그녀는 나를 추격했다. 그러고는 단숨에 내 지척에 이르렀다. 그러는 동안 나는 그녀의 목을 겨냥해 광참을 잇달아 날렸다. 세 번이나 광참에 찍히고도 그녀의 가녀린 목은 삼분지일만 쪼개졌을 뿐이었다.
나에게 달라붙은 마녀를 떨쳐내려 안간힘을 썼지만 결국 다시 그녀의 손톱에 우견을 내주고 말았다. 좌수의 부상으로 이미 철봉을 부리기가 원활치 않았던 터에 오른쪽 어깨마저 상하자 공격력이 크게 둔화되었다.
기실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필사적인 승부수로도 마녀를 끝장내지 못한 후과로 나는 생존 자체를 심각하게 걱정해야 할 처지였다.
간신히 마녀의 손아귀를 빠져나왔지만 그녀는 내가 거리를 벌리도록 허용하지 않았다. 그녀와 붙어서 치고받아서는 승산이 없었다. 특단의 대책을 강구해야 했다.
처음에는 왼팔을 내주고 마녀의 목을 취할 작정이었다. 그러나 실현가능성의 희박했다. 마녀의 목을 자르려면 광참을 다섯 번은 더 적중시켜야 했다. 그 동안 마녀가 수수방관하고 있을 리 만무했다.
마녀의 손톱에 난도질당할 찰나 나는 두 가지 상반된 대응책을 떠올렸다. 하나는 그녀를 껴안고 폭사하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어떻게든 위기를 벗어날 방도를 찾는 것이었다.
놀랍게도 둘 다 성과가 있었다. 절체절명의 순간 암담함으로 물든 심상에 두 줄기 빛이 번득였다. 바로 그때 마녀의 기다란 손톱이 내 목을 가르고 지나갔다. 하지만 내 두부는 동체에서 분리되지 않았다. 부지불식간에 두 번째 대응책을 실행한 덕분이었다.
불완전하나마 순간이동을 구현한 나는 내가 목전에서 사라지자 일순 어리둥절해 하는 마녀에게 광참을 날렸다. 하지만 예상대로 마녀의 목을 떨어뜨리는 데는 실패했다.
기로였다. 초장부터 전력을 다한 데다 내상이 가볍지 않아 최대치의 원력을 쏟아낼 수 있는 건 한 번뿐이었다. 그 한 번으로 마녀의 숨통을 끊어야 했다. 광참으로는 그럴 수 있으리라 장담하기 어려웠다. 하여 나는 방금 얻었던 첫 번째 깨달음을 결정타로 삼기로 했다.
목이 반쯤 잘리고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마녀가 내게 쇄도했다. 나는 순간이동을 써서 그녀로부터 물러나는 대신 그녀에게 짓쳐들었다. 유감스럽게도 마녀는 내 역공에 당황하지 않았다. 감정과 이지가 없기 때문일 터였다. 그녀는 이모와 같았다. 그저 나를 적이라 인식한 후 본능적으로 반응할 뿐이었다.
마녀가 양 손으로 내 팔뚝을 잡았다. 그녀가 내 팔들을 뜯어버리기 전에 나는 그녀의 입에 철봉을 쑤셔 박았다. 그러고는 광폭을 선사했다. 광폭은 광폭이되 같은 광폭이 아니었다. 내 몸을 폭사시킬 비책이 가미된 탓에 위력이 한층 증가된 광폭이었다.
퍽!
수박 깨지는 기음을 일으키며 부용아씨의 얼굴을 한 마녀의 면상이 산산조각 났다. 두부가 박살났음에도 그녀는 내 팔을 비틀었다.
뚜둑.
뼈가 부러지고 으스러지며 내 양팔이 모두 기괴한 각도로 꺾였다.
최종승자였지만 나도 두부를 잃고 허물어지는 마녀와 함께 땅바닥에 쓰러졌다.
개전 이후 처음으로 숨을 들이켜고 나서야 전신이 만신창이가 되었음을 알았다. 왼 허벅지와 오른 종아리의 창상(創傷)은 언제 입었는지도 몰랐다. 둘 다 상처가 꽤 깊었음에도 의식조차 못했다. 그만큼 흉험한 싸움이었다.
바닥에 널브려진 내 귀에 요란한 아우성이 한꺼번에 밀려들었다. 살아남은 수만 군중이 사방으로 달아나며 내는 소리였다. 그들은 알까. 자신들이 얼마나 운이 좋은지. 누가 그들을 구했는지.
나는 히죽 웃었다. 공치사를 할 마음은 개구리 코딱지만큼도 없었다. 다만 내 성취와 승리가 뿌듯했을 따름이었다.
광명에 암운이 드리운 것은 무언가 내 면상에 쏟아지던 햇살을 가렸을 때였다. 나는 그것이 사울의 얼굴임을 알았다. 그리고 나를 내려다보는 그의 눈을 본 순간 그가 어떤 작심을 했는지도 알았다.
나는 내 직감이 틀렸기를 바랐다. 그래서 즉각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고 기다렸다. 하지만 사울은 내 선처를 스스로 거부했다. 그가 내 목을 찌를 양으로 단창을 치켜들자 나는 어쩔 수 없이 그의 미간에 광환을 쏘았다. 이마가 뚫린 사울이 하필이면 내 몸뚱이 위로 엎어졌다. 가슴에 느껴지는 그의 무게가 한없이 가벼웠다. 그렇더라도 그를 치우려 했지만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이 없었기에 그냥 내버려두었다.
나는 사울을 좋아했다. 그는 나와 통하는 바가 많았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와 나 사이에 끈끈한 우정이 생겼다고 믿었다.
그러나 나는 아직 그를 ‘등을 내줄 수 있는 이‘로 분류하지는 않았다. 그에게 무언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어서가 아니라 강호에 나온 이래 얻은 교훈 때문이었다.
사람은 단순하면서도 복잡한 존재였다. 누구도 다른 누군가를 오롯이 안다고 자신하지 못할 터였다. 아무리 가까워도 타인의 전모를 파악하는 건 불가능했다. 우리는 단지 그들에 대한 자기 나름의 해석만 가질 뿐이었다.
그래서 나는 만인을 경계하기로 했다. 심지어 진소월조차도 전적으로 믿지는 않았다. 신뢰도로 따진다면 최상위에 위치한 이들은 괴선과 광객이었다. 그들이라면 내 등만이 아니라 목을 맡길 수도 있었다. 나는 그들 또한 나를 그런 벗으로 여기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이 또한 내 일방적인 바람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젊은 날 형제결의까지 했던 이에게 뼈아픈 배신을 당한 아버지는 전장에서 ‘진정한 전우들’을 만나면서 그 심상(心傷)을 치유하고 극복할 수 있었다. 나도 그럴 수 있을 터였다. 그렇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 * *
나는 몸을 일으켰다. 잠시 누워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지동에 도착했을 때 중천에 떠 있던 해가 어느새 서천으로 기울어있었다. 얼마 후면 노을이 질 터였다. 족히 두 시진은 지났을 터임에도 나는 채 절반도 회복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만큼 부상이 중했다는 반증이었다.
나는 주변을 휘둘러보았다. 수천 구의 시체가 그대로 방치되어 있었다. 수습을 시작하지도 않을 걸 보니 참변의 초기에 달아난 지동의 민중은 아직 공포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 모양이었다.
나는 시신들 중에 마녀를 부린 법사가 들어있는지 궁금했다. 사울은 그자를 잡아 죽였을까. 아니면 나와 마녀의 혈투를 관전하느라 그자를 놓쳤을까. 전자이리라 추정했지만 확신할 수는 없었다.
광장을 돌아다니며 시체들을 살펴보았으나 나로서는 법사를 찾아낼 방도가 없었다. 찜찜했다. 만약 그자가 살아있다면 곤란했다. 나를 죽음 일보직전까지 몰아붙였던 마녀를 또 만들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지 않은가. 그녀와 다시 싸운다면 이번처럼 고전하지는 않을 테지만 또 모를 일이었다. 예컨대 마녀가 무공이라도 익힌다면 전투력이 배가될 터였다. 그 경우에도 그녀를 이길 수 있을지는 의문이었다.
나는 천외천의 비력을 획득하는 비법을 찾기 위한 경쟁에서 중원 무림이 사방 이역의 이인들을 멀찍이 따돌렸다던 독의의 호언이 틀렸음을 알았다. 그는 이런 곳에서 이런 괴물이 나올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을 것이었다.
마녀와의 일전으로 나는 겸손을 배웠다. 그리고 목표를 더욱 높게 설정했다. 단순한 일인자는 성에 차지 않았다. 내가 바라는 것은 절대무적의 무력이었다. 설령 마녀가 무공을 구사할지라도 그녀를 압도할 수 있어야 진정한 최강자라 할 것이었다.
* * *
천랑성으로의 귀환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길을 물어볼 수도 없었다. 나는 지동이 천랑성에서 대충 이삼천 리 남서에 위치했으리라 추산했다. 아데까지 오천여 리를 달린 후 최고 속도로 세 시진 가까이 거슬러 올라갔으니 절반은 되돌렸을 터였다.
남은 거리도 적지 않았으나 지리만 알면 늦어도 네 시진 이내에 천랑성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었다.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는 않았으나 경신을 전개하는 데는 큰 지장이 없었다.
문제는 ‘지리만 알면’이라는 전제를 충족시킬 수 없다는 점이었다. 숨어있는 지동의 생존자들을 찾아내 손짓발짓을 해가며 물어보았지만 다들 나를 보고는 입에 거품을 물고 혼절하기 바빴다. 하는 수 없이 해의 경로를 참고삼아 북동 방면으로 몸을 날렸다.
일몰 후에는 별을 보며 방향을 잡았다. 그러나 아무래도 너무 막연했다. 이대로 가다간 엉뚱한 곳으로 빗나갈 우려가 컸기에 나는 일단 비행을 멈추고 몸을 더 회복시킨 후 날이 밝기를 기다려 근처의 대처를 찾아보았다.
반 시진쯤 고생한 끝에 소도(小都)를 발견한 나는 행인들이 많은 거리로 내려갔다. 그러고는 어제 지동에서 했던 짓을 반복했다. 다들 경계하긴 했지만 지동에서와는 달리 아무도 경기를 일으키지는 않았다.
나는 집게손가락을 허공에 이리저리 찔러대며 ‘스앙카’를 거듭 외쳤다. 모두들 나를 미친놈 쳐다보듯 하는 가운데 내 수고에 화답하는 이가 있었다. 배불뚝이 사내였다. 조심스러운 발걸음으로 나에게 다가오더니 그가 ‘스앙카?’라고 물으며 팔을 들어올렸다. 나는 그를 따라 검지를 뻗으며 확인했다.
“스앙카?”
그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스앙카.”
“고맙소.”
배불뚝이 사내에게 중원어로 감사를 표한 나는 그의 검지가 가리킨 방향으로 비상했다. 내 경신에 놀랐는지 뒤에서 경악성들이 터져 나왔다.
나는 스앙카를 경유할 필요가 없어졌다. 가다가 눈에 익은 지형을 만났기 때문이었다. 전날 사울이 나를 천랑성으로 데려가며 지났던 산악이었다.
길을 물으려 들렀던 소도는 천랑성에서 멀지 않았던 것이었다. 혹시 거기가 전갈독수를 제작한 약재상이 산다는 오파가 아닐까. 천랑성에서 남쪽으로 사오백 리쯤 떨어져있다고 했으니 거리는 얼추 비슷할 터였다.
설마 그런 우연이 있을 수 있겠느냐고? 누가 알겠는가. 정말로 오파였을지. 뭐, 아니라도 아무 상관없었다. 어차피 우린이라는 자는 이미 천랑성에 잡혀왔을 테니까. 내게 중요한 것은 우린이지 오파가 아니었다.
천랑성이 깃든 바위산에 이른 나는 절벽 위로 수직 비상했다. 석굴 입구에 올라서니 전날처럼 삼십여 명의 무인이 삼면의 동굴에서 몰려나와 나를 맞았다. 맞은 게 아니라 막은 걸까. 그들의 의도가 무엇이건 나는 단도직입했다.
“이탄!”
내 시선을 받은 쌍둥이가 동시에 어깨를 으쓱거렸다. 말귀를 알아들었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나를 대두노인에게 데려가지 않고 외면했다. 대신 무인 하나가 좌측의 통로로 달려갔다. 잠시 후 그가 들어갔던 통로에서 소리가 들렸다. 그러자 쌍둥이가 나에게 손짓했다. 그들을 따라 통로로 향하며 나는 석굴 안을 일별했다. 그 자그마한 할머니는 밖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고 있을까.
그녀는 몰라도 대두노인은 아는 모양이었다. 석실에서 본 그의 표정은 심각하기 이를 데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