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ight Summoner of the Knights Academy RAW novel - Chapter 116
116화.
윙보드의 테러 이후 나이트 아카데미는 또 다시 미증유의 위기를 맞이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누군가의 목숨이 위급하다거나, 아카데미가 테러를 당한 게 아니었다.
책임.
그래, 책임이라는 이름의 위기가 찾아왔다.
3학년의 팔레스 패거리.
정확히는 잎담배를 자주 복용했던 생도들은 안타깝게도 전원이 사망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이라면 연기를 흡입하고 쓰러졌던 생도와 교수들은 상당한 내상을 입었을 뿐 사망자는 없다는 점.
지금은 다들 입원해 치료를 받는 중이었다.
이미 나이트 아카데미에는 수많은 위기가 있었다.
젊은 기사를 키우기 위한 기관의 보안이 이토록 허술하다는 점을 꼽으며 학부모들을 필두로 아카데미에 책임과 개선을 요구했고.
학부모라고 지칭하지만 사실상 대부분이 귀족이었기에 가볍게 넘어가긴 힘든 상황이었다.
덕분에 원래라면 피해 복구로 시끌벅적했어야 할 아카데미는 그 어느 때보다 고요했다.
“어휴.”
그렇기에 아카데미는 누가 얼음 마법이라도 사용한 것처럼 잠깐의 빙하기를 겪고 있었다.
많은 생도들이 강의에 나오지 못하는 상황이니 자연스럽게 일주일 정도 모든 강의를 미룬 것.
본가가 가까운 몇몇 생도들은 일주일이라도 아카데미를 떠나있겠다며 돌아가 버렸고.
남아 있는 생도들은 로베르담 거리를 배회하거나 개인훈련을 하며 시간을 때우고 있었다.
“와, 마법사들이 바람으로 물기 빼는 거 봐.”
“저걸 지금 며칠째 하고 있는 거야.”
샬롯과 마리아가 부실 창문에 딱 달라붙은 채로 마법사들이 강당의 물기를 날리는 모습을 구경하고 있었다.
마법사들을 이용한 대규모 청소부터 시작해서 소독까지.
혹시라도 남아있을 녹색 연기를 완전히 없애기 위해서 꽤나 공을 들이는 중이었다.
자연스럽게 강당 옆에 세워진 추모비로 시선이 간다.
죽은 3학년 생도를 잊지 말자는 추모비 앞에는 편지와 꽃들이 수북하니 놓여 있었다.
좋은 사람이라고는 할 수 없었지만, 그렇다고 할지라도 너무나 이른 나이에 눈을 감게 되었다.
이로 인해 인간들이 지닌 수인을 향한 적개심 더욱 커졌다는 걸 알게 된다면.
과연 가르덴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왜 그래?”
내가 묵묵히 책을 내려다보고 있자 옆에 앉아 있던 다이니가 팔을 툭 치며 묻는다.
“지금 그 페이지만 10분째 읽고 있어.”
턱짓으로 책을 가리키는 다이니.
그냥 버릇처럼 펼쳤던 책인지라 슬며시 덮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여러 고민이 있지.”
“고민? 무슨 고민?”
과자와 함께 질문을 내미는 다이니.
정신을 차릴 생각으로 과자를 입에 넣자 값싼 단맛이 입안으로 퍼져간다.
“이것저것.”
첫 번째로는 벨레스 테오도른이다.
과연 그의 처분이 어떻게 될지 궁금했다.
이번 윙보드의 습격을 미리 알아차리고 가르덴이 사고를 치기 전에 먼저 찾을 수 있게 해준 건 벨레스였지만.
결국 가르덴은 그러한 역경을 뚫고 아카데미에 막심한 피해를 입혔다.
이제는 아니지만, 과거 윙보드 소속 간부였던 벨레스도 그냥 넘어갈 수는 없을 거다.
‘아쉽네.’
원래였다면 아쉬워도 포기했을 거다. 인재를 놓치는 상황은 의외로 많았으니까.
하지만 이번에 가르덴의 절박하면서고 격정적인 모습을 보면서.
인간과 수인의 관계를 이렇게 이어가도 되는 걸까에 대한 의문이 다시금 내 안에서 점화되었다.
벨레스는 그러한 문제들에 적극적이면서도 색다르게 해결할 수 있는 인재였다.
‘단순히 기사단원으로만 필요한 게 아니야.’
앞으로의 미래를 변화시킬 수 있는 인물일지 모른다고, 나는 그렇게 벨레스를 평가하고 있었다.
“뭐야, 알려줄 것도 아니면서 왜 심란한 표정을 짓는 거야.”
툴툴거리며 다시금 과자를 오독오독 깨물어 먹는 다이니.
그녀의 투덜거림을 들으면서도 나는 계속 생각을 정리해 갔다.
‘두 번째는 잎담배.’
단순히 잎담배를 자주 피운 것만으로 팔레스 패거리는 마나를 인체에 유해하게 바꾸는 녹색 연기를 마구잡이로 뿜어댔다.
뿐만 아니라 가르덴은 그 연기를 통해서 오히려 스스로의 한계를 뛰어넘은 듯한 행보까지 보였다.
‘도대체 그건 뭐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안 사실로는, 잎담배 안에 묘한 벌레가 있었다고 한다.
기사단원들과 나는 잎담배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안에 있던 벌레가 원인이 아닐까 추측하고 있었다.
잎담배 유통책인 수인은 이미 경비대에 잡혀 있으니, 경비대에서는 아마 뭔가를 알겠지만.
‘일반 생도인 나한테 알려지진 않겠지.’
가르덴을 쓰러트린 나는 또 다시 아카데미의 화두에 올라섰지만, 이번만큼은 조용히 지나갔다.
눈을 감은 생도들을 향한 추모의 물결 덕분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고민은…….
덜컹.
“이안, 허락 받았어. 4번으로 가면 돼.”
부실 문을 열고 들어온 실리아가 4번이라 적힌 열쇠를 내게 건넨다.
기다렸던 나는 벌떡 일어났다.
벨레스를 빼고 전부 모인 부원들.
내가 부장의 권한으로 불러냈었기에 다들 기다렸다는 듯 나를 바라본다.
“4번 훈련장으로 가자.”
“훈련장?”
“고학년만 쓸 수 있는 거?”
베런과 샬롯이 한마디씩 내뱉으며 물어 왔으나 나는 이미 문 밖을 나서는 중이었다.
부원들은 조금 강압적인 내 모습에 당황하면서도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며 따라붙는다.
“무슨 일이에요?”
“나도 몰라. 이안이 부탁해서 훈련장만 얻어 온 거야.”
“아하, 실리아 선배가 2학년이라서 빌릴 수 있었구나.”
그렇게 우리는 4번 훈련장에 도착했다.
다른 훈련장에 비해서 좁은 편이었으나 그 덕분에 우리만 전세 낸 것처럼 사용할 수 있어 보였다.
“뭐야, 대련하는 건가?!”
이렇게 부원들이 다 같이 훈련장에 온 건 또 처음이다 보니 두근거린다며 외치는 마리아.
원래였다면 부원을 추가로 더 뽑은 다음에 훈련이든 뭐든 진행하려고 했지만.
이번 사건 때문에 당장 부원을 받기는 힘든 상황이 된 건 물론이고.
위기의식을 또한 느꼈다.
“이번 습격에서, 샬롯 빼고 전부 졌지.”
이게 바로 내가 가지고 있던 마지막 고민.
내 말에 움찔하며 떠는 부원들.
유일하게 샬롯만이 어수룩하게 뒷머리를 긁적인다.
마리아, 다이니 그리고 실리아는 가르덴을 3:1로 상대했음에도 제대로 된 피해조차 입히지 못하고 그대로 두들겨 맞았고.
베런은 벨레스와의 대결에서 힘도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무릎을 꿇었다.
상대한 적이 다른 사람들에 비해서 비교적 쉽긴 했지만 어쨌든 샬롯은 부실이라는 좁은 장소의 특성을 이용해서 고양이 수인에게 승리를 따냈다.
덕분에 윙보드의 일원 중 하나를 체포하는 성과도 만들었고.
하지만 부족하다.
억울하다고 할 수도 있었다.
상대가 너무 강했다. 지금 우리의 수준에 비해서 과한 걸 요구한다 등등.
만약 그런 사람이 있었다면 조금 실망할 뻔했으나.
다들 스스로의 무기력함을 뼈저리게 깨닫는 시간이었는지 입을 꾹 다문 채로 내 말을 기다린다.
패배를 인정한다.
부족함을 찾는다.
모자람을 깨닫는다.
강해지기 위한 시작점이었다.
“상대가 강했던 거 알아. 레지스탕스라는 위험한 조직이기도 했어. 하지만 결국 우리는 기사가 될 거잖아. 늘 우리보다 약한 상대랑, 안전한 장소에서 싸울 수는 없어.”
졸업한 다음, 기사단에 바로 투입된다고 실전에서 모든 저력을 보일 수 있는 사람은 흔치않다.
졸업은 시작일 뿐.
그때부터 기사로서의 진정한 배움이 시작되지만.
나는 우리 부원들을 그렇게 차근차근 키울 생각이 없었다.
“따로 말은 안 했어도, 다들 알고 있겠지만. 나는 뛰어난 기사를 찾고 있어.”
꿀꺽 침을 삼키며 다들 내 이야기를 경청한다.
눈치로 알고는 있었겠지만 내가 이렇게 직접적으로 말하니 집중도가 확 올라간다.
“과거 은빛사자 기사단에 버금가는, 위대한 기사단을 만들 생각이야.”
버금가는 수준이 아니라 욕심 같아서는 그 아성을 뛰어넘고 싶었다.
“만약 원치 않는다면 그대로 여기서 나가도 괜찮아.”
그 말에 베런이 순간적으로 움찔한다.
그는 둠베스트 가문의 유일한 후계. 그의 아버지가 기사단장으로 있는 흑곰의 뒤를 이어야 할 사명이 있었다.
그렇기에 나는 잠시 기다려주었다.
마리아야 어차피 레이로즈 가문의 눈치 따위는 보지도 않고, 다른 세 사람은 따로 예정된 기사단이 없으니까.
고민 끝에 베런은 우선 자리를 지켰다. 나 역시 지금 이 자리에서 확정하라고 강요할 생각까지는 없었다.
베런이 흑곰으로 가는 건 아쉽겠지만, 그렇게 되면 흑곰과의 연이 만들어지는 거니 무조건 나쁜 건 아니었다.
“정으로 누군가를 데려가진 않을 거야. 실력으로 증명해야 돼. 기사란 존재는 그런 거야.”
“꽤나 장황하게도 연설하네.”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히죽거리는 마리아.
“됐고, 뭘 시킬 건지 모르겠지만 얼른 하자고. 네 말에 쫄아서 나갈 사람 없는 것 같은데.”
마리아의 일침에 슬며시 부원들을 바라보자 다 비슷한 생각인 듯했다.
“좋아, 울지나 마라.”
호기로운 이들에게 웃어주며 나는 밖에 있는 사람들을 불렀다.
안으로 들어오는 은빛사자 기사단원들.
오늘을 위해 어제 따로 쇼핑을 나가서 원하는 옷을 사준지라 갑옷이 아니라 평상복을 입고 있었다.
부원들은 처음 보면서도 뜬금없는 사람들의 등장에 의아해 했지만.
“야?!”
유일하게 이들의 정체를 알고 있는 다이니만은 당황하며 나와 그들을 번갈아 가며 봤다.
“괜찮아.”
걱정 말라고 답해준 후, 다시 헛기침으로 시선을 모은다.
“이 사람들은 내가 믿을 수 있는 실력자들이야. 그리고 오늘부터 여기서 너희를 가르칠 거고.”
“외부인…… 아니니?”
규칙에 민감한 실리아가 미간을 찌푸린다.
특히나 이번 사태로 아카데미의 보안이 더욱 철저해진지라 걱정하고 있었다.
“맞아요. 외부인이에요. 따로 허가를 받지도 않았어요.”
“그건…….”
“그게 뭐 어때서요.”
“…….”
“아카데미의 규칙을 지켜야 하는 건 알아요. 하지만 규칙만 지키다가 이번 같은 상황이 또 발생했을 때 아무것도 못 하고 손가락만 빨 건가요?”
실리아 같은 경우는 특히나 이번 사건을 더 민감하게 여겼다.
그녀의 친한 친구였던 베티가 병상에 누워 있었으니까.
잎담배를 피우진 않았지만 강당에 있을 당시 팔레스의 옆에 있었기에 가장 많은 연기를 흡입한 베티.
목숨에 지장은 없지만 자칫 잘못하면 마나가 얽혀 기사로서의 길을 포기해야 할 수도 있다고 한다.
베티와 사이는 틀어졌지만.
실리아가 그녀의 병실 앞에서 꽤나 오랜 시간 서 있던 걸 나는 봤다.
“이 사람들은 무조건 이 훈련장 안에서만 행동할 겁니다. 따로 어디 돌아다닌다면 그때는 저한테 말하세요. 바로 쫓아낼 테니까.”
아카데미에 피해를 주지 않겠다는 단언.
내 뒤에 있는 단원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약속하자 잠깐의 고민 끝에 실리아는 한 걸음 물러났다.
예전이었다면 절대로 허락하지 않았을 테지.
“그럼 시작하자. 각기 어울리는 조교들이 붙을 테니까 따라가.”
“쥐어 털린 제자야! 이쪽으로 와라!”
바로 호들갑스럽게 마리아를 부르는 윤.
“에이 씨. 진 거 말했어?”
투덜거리면서도 마리아는 그대로 윤을 따라갔고.
“이쪽으로.”
원래부터 다이니를 교육했던 한나가 부르자 다이니는 울상이 되어선 터덜터덜 따라간다.
“둠베스트. 넌 이리 와라.”
톰은 베런을 지목했다.
그 뒤를 따라 쌍둥이 중 하나인 켈빈도 톰을 보조하기 위해 따라갔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우리 중간고사 때 본 적 있지? 이쪽으로 오겠니?”
“아, 네!”
넬슨은 샬롯을 데리고 훈련장 구석으로 향했다.
남은 부원은 실리아.
“갑시다아아! 좋아하는 음식이 뭔지부터 말해볼까요?”
“하아, 제가 도로시 옆에서 잘 감시할게요. 단장.”
그런 실리아를 데리고 가는 도로시와 도로시를 감시하기 위해 따라붙은 엘빈.
그렇게 4번 훈련장에선 어찌 보면 돈 주고도 못 받을 고급 과외가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