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ight Summoner of the Knights Academy RAW novel - Chapter 119
119화.
“키야아! 이게 얼마 만의 맥주야!”
“주인장! 여기 소시지랑 빵이랑 야채볶음랑 베이컨이랑 절인 야채랑 찐감자랑 구운 감자랑 볶은 감자랑 스프랑……!”
“야, 그냥 다 시켜.”
한 손으로 메뉴판을 쥔 채로 이것저것 고르고 있는 도로시에게 한숨을 내쉬며 말하자 눈을 번뜩인다.
“진짜요오?! 오예에! 주인자앙! 다 주세요! 야, 너도 먹어. 누나가 특별히 몇 개 줄게.”
지가 사는 것도 아니면서 옆에 앉은 벨레스한테 바로 거들먹거리는 모습이 조금 짜증 나긴 했지만 굳이 한 소리 하진 않는다.
오늘은 일주일의 마지막.
내일부터 다시 아카데미가 정상화되기 때문에 그 전에 부원들과 단원들을 데리고 회식을 한번 하러 밖으로 나왔다.
‘돈을 쓰려면 이런 곳에 써야지.’
현재 돈은 풍족한 수준으로 가지고 있다.
내가 따로 돈을 쓸 곳이 없다 보니 메이제렌에서 황색 마탑의 지팡이를 팔고 얻은 돈도 아직 남아 있는데 윤의 현상금까지 얻어 버렸다.
아카데미 생도들 중에서는 개인 자금이 가장 많이 가진 생도가 아닐까 추측된다.
물론, 미래의 기사단 운영 자금으로써 아껴야 하는 게 당연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매일 아끼기만 할 수는 또 없으니까.
이렇게 회식을 통해서 단합과 사기를 증진시키는 데 투자도 좀 할 생각이었다.
도로시와 벨레스처럼 다들 각자의 훈련 상대의 옆에 앉아 있었는데.
“나도 한잔 마시면 안 되나?”
“어린노무 시끼가 무슨 술을 마시겠다고. 가서 우유나 마셔라.”
술잔으로 손을 내밀다가 윤의 장죽에 그대로 얻어맞는 마리아.
“푸하아! 이놈 자식아. 가문에 대해서만 생각하면 안 되고 네 미래를 생각해야지. 결국 네 인생인데.”
“하지만 그렇다고 가문을 버릴 수는 없습니다.”
“누가 그렇게 극단적으로 생각하라고 했냐……?!”
거대한 술잔에 담긴 술을 벌컥벌컥 마시며 베런에게 주사를 부리고 있는 톰.
“이런 순간에도 풀어지면 안 돼. 단전에 딱 응축시키고 있어.”
“……어우, 체하겠어요.”
최근 마몬의 기운을 더욱 세밀하게 다루는 연습을 시작한 다이니는 옆에서 주의를 주는 한나 때문에 포크를 내려놓는다.
“이런 것도 먹어야 좀 몸이 건강해지고 쑥쑥 크지 않을까?”
“저번부터 생각했는데 무슨 아빠처럼 말을…….”
아직 한창 성장기인 샬롯이 편식하지 않도록 이것저것 챙겨주는 넬슨.
그 뒤로도 실리아와 쌍둥이, 벨레스와 도로시가 서로 얘기하는 걸 듣고 있자니 괜스레 뿌듯함을 느낀다.
신구의 조화.
300년을 뛰어넘어 뒤를 이을 후배들의 등을 밀어주고 있는 모습은 기쁨을 넘어 묘하리만치 찡한 감동까지 선사했다.
“자, 그래도 돈은 내가 내니까 한 마디 할게.”
마음 같아서는 술잔을 들고 싶었지만 나는 또 부원들에게 모범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술잔을 드는 순간 실리아가 눈에 불을 켜고 득달같이 달려들어서 뺏어 갈 거다.
조금 아쉽긴 하지만 주스 잔을 들어 올리자 다들 내 쪽으로 시선이 쏠린다.
“이제 강의도 시작되고, 생도들도 훈련장을 활발하게 사용할 테니까 이렇게 자주 만나지는 못하게 되겠지.”
담당한 생도들의 훈련은 계속 이어가겠지만 그게 지금처럼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지속될 수는 없었다.
아마 주말에만 따로 만나는 방식으로 진행될 것이고, 그를 위해서 이미 단원들은 매주 자신이 담당하는 생도의 훈련 방식을 고안하고 있었다.
“그래도 많은 걸 배운 시간이었을 거라고 믿는다. 또 앞으로도 많이 배워야 할 거고.”
무슨 실습을 끝내고 뒤풀이하는 기분이었으나 어쨌든.
하고 싶은 말은 넘치지만 굳이 여기서 시간을 많이 잡아먹을 생각은 없었다.
“그러니까 적어도 여기서 배우고하는 동안은 소속감을 가지고 당당히 행동하면 좋겠다. 은빛사자로서.”
잔을 들어 올리자 다른 단원들도 호응하며 잔을 올려준다.
아직 어려서 이런 분위기가 어색해 보이던 생도들도 곧이어 자연스럽게 흐름을 타며 함께한다.
그렇게 초저녁부터 시작된 나름의 파티는 늦은 시간까지 계속 이어져 갔다.
* * *
이전의 학장이 아카데미를 떠나가고. 새로운 학장의 취임식이 진행되었다.
좋지 못한 이유 때문이긴 해도 전임 학장에게 조촐하게나마 뭔가 해주지 않을까 싶었으나.
그는 해가 떠오르면 자연스럽게 밤의 어둠이 물러가는 것처럼, 새로운 학장의 등장과 함께 자연스럽게 아카데미를 떠나갔다.
보통 취임식 같은 행사는 강당을 사용하지만 지난번 테러의 여운이 아직 가시지 않았기 때문인지 굳이 운동장에 나와서 행사를 진행 중이었다.
“새로운 학장님 엄청 젊으시다.”
내 옆에서 조잘거리는 샬롯.
확실히 강단 위에 서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는 여인은 아카데미의 학장이라는 직책을 맡기에는 과히 젊게 보였다.
‘기껏해야 서른 중후반?’
안경을 쓰고, 긴 머리를 말아 올리고 있는 모습은 그녀가 어떤 성격인지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듯했다.
철두철미하면서도 굉장히 깐깐한 성격이 아닐까?
“안녕하십니까, 새로이 나이트 아카데미의 학장이 된 로젤리아 벤젠이라 합니다.”
검처럼 날카로운 목소리.
이어지는 취임사는 뻔하다면 뻔한 종류의 것이었다.
생도들이 최근에는 아카데미의 보안과 안전에 대한 불안을 가지고 있었기에 그 부분을 최대한 중점적으로 설명하고 있었다.
“단순히 경비대에서 추가적으로 인원을 공급받는 것뿐만 아니라, 나이트 아카데미도 낡은 관습을 버리고 최신식 마법 설비들을 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검을 사용하고 기사를 배출한다는 아카데미에서 마법으로 된 장벽에게 보호받는다?
고지식한 아카데미 측은 그런 걸 썩 반기지 않기도 했고, 비용도 많이 들었으나.
이제는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사실들이었다.
그 뒤로도 로젤리아의 보안에 대한 새로운 정책들에 대해서 하나하나 설명하며 생도들에게 믿음을 주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당장에 가르덴이 침입했던 루트 등을 상세하게 설명하면서 앞으로 이런 상황이 재발하지 않기 위해 고안한 방법들을 설명한다.
거기에 추가로 희생자들은 안타깝지만 그들이 수인들이 침입할 수 있게끔 경로를 흘린 것에 대해서도 언급하며, 생도들의 각별한 주의와 지원이 필요하다 말했다.
‘흠?’
이야기를 듣는 몇몇 교수들의 표정이 썩 좋지 않았다.
뭔가 문제가 있는 건가 싶었는데 교수들 근처에 아예 처음 보는 사람들도 몇 눈에 띠었다.
‘본인 측근이라도 데려온 건가.’
이상한 건 아니라 생각했다.
고위직에서 내려온 거기도 하고, 학장 같은 자리면 자신의 측근 몇은 충분히 바꿀 수 있다.
‘새로 온 학장 눈에 들기도 전에 이미 자기 사람들이 있으면 불편할 만하지.’
마찬가지로 교수들이 불편해 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리고 아카데미는 지금보다 훨씬 더 엄격한 규칙 속에서 운영될 겁니다. 외부의 침입을 막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생도 분들의 인식개선과 책임감이 중요합니다.”
꾸득.
주먹을 쥐고 앞으로 내민 로젤리아는 자신의 각오를 보이듯 굳건히 다짐했다.
“나이트 아카데미의 생도로서, 이 시대 최고의 기사가 되기 위해서, 사명감을 지니고 배워 나가시길 바랍니다.”
* * *
“뭐 이렇게 자꾸 부르냐.”
나름의 각오가 느껴지는 새로운 학장의 취임식이 끝나고. 다시 시작된 강의에 앞서 나는 강당으로 향하고 있었다.
새롭게 취임한 학장이 부른다고 듣긴 했는데 학장실이 아니라 강당으로 불렀다는 점이 묘했다.
아직 이전 사건의 여파가 가시지 않아 자물쇠가 걸려 있던 입구가 어느새 열려 있었고.
그 안에는 학장과 더불어 그가 데려온 다른 직원들이 분주하게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이미 조사는 다 끝났을 텐데도 저리 열심히 움직이는 걸 보면 혹여라도 놓친 걸 찾는다기보다는.
‘진짜 뭐가 있다고 생각하는 거 같은데?’
자신들만 아는 무언가의 존재를 확신하고 찾고 있다는 느낌이 강했다.
“이안 아이넬 생도?”
강당 중앙에서 팔짱을 낀 채로 서 있던 로젤리아가 나를 발견하곤 부른다.
“예, 1학년 이안 아이넬입니다.”
“물어볼 게 있습니다.”
인사치레 없이 곧바로 사무적인 주제로 넘어간다.
이전 학장과는 확실히 다른 분위기의 여인이었다.
빛이 반사되어 번뜩이는 안경 너머로 그녀의 눈동자가 날카롭게 꽂혀 들어온다.
마치 조사를 받는 느낌에 솔직히 썩 유쾌하진 않았다.
“헥토르 교수에게 듣기로는 당신이 가르덴을 쓰러트린 장본인이라고 들었습니다.”
“맞습니다.”
이미 다 알려질 대로 알려졌으니 숨길 것도 없었다.
“검은 마수를 군마로 다루면서 상대했다고요?”
“그것도 맞습니다. 이전에 메이지 아카데미에 체험입학으로 일주일 다녀온 적이 있거든요.”
“예, 그렇다고 들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입학 초에는 샤카렌이라는 레지스탕스를 상대해서 승리했다고 듣기도 했습니다.”
꽤나 오랜 시간이 지난 것 같은 기억. 나는 별 망설임 없이 끄덕여 맞다고 답했다.
“제가 알아본 바로는 대악마의 하수인이던 가르간테를 막는 데 일조한 것도 당신이고, 이번에 아카데미를 습격했던 늑대 귀 수인 토벌에도 혁혁한 공을 세웠다고 들었습니다.”
“그렇게 들으니 저도 참 바쁘게 살았군요.”
알려진 것만 치더라도 꽤나 여러 개 있구나 싶었다.
“이제 1학년 2학기인데 당신은 참으로 많은 일을 해결했습니다. 우습게도 몇 년에 한 번 일어날까 말까 한 일들을 말이죠.”
“……무슨 말을 하고 싶으신 겁니까?”
처음에는 칭찬이라도 하려고 부른 건가 싶었으나.
로젤리아의 눈은 그리 호의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냥 궁금했던 것뿐입니다. 당신이라는 생도를 중심으로 너무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게 아닌가.”
“휘말린 거라고 봐주시면 좋겠네요.”
나는 정말로 조용히 생도들이나 키우면서 은빛사자 기사단의 입지를 다지고 싶지만 그게 생각만큼 쉽지 않았을 뿐이다.
물러서지 않고 맞받아침에도 로젤리아는 여전히 표정의 변화 하나 없었지만.
“좋습니다.”
굳이 이 이상으로 물어보지 않고 물러났다.
또한 자연스럽게 분위기가 풀어지며 무겁던 공기가 가벼워진다.
“다시 사건으로 돌아가자면. 가르덴이 녹색 연기를 흡입했음에도 아무런 문제없었고 오히려 강해졌다고 헥토르 교수가 보고했습니다.”
베히모스에게 짓밟히면서 뼈가 부러졌음에도 아무렇지 않게 일어났던 그의 모습을 떠올린다.
오히려 덩치가 터 커진 듯한 모습은 단순 투기와 증오로는 설명이 안 되는 부분이었다.
“맞습니다.”
“흐음.”
내 증언까지 일치하자 로젤리아는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에 빠진 소리를 내었다.
‘뭔가 알고 있는 것 같은데?’
그들이 다루던 잎담배와 녹색 연기는 나 역시 거슬리던 부분이었다.
단순한 마약이라고 보기에는 지나칠 정도로 효율이 좋았고, 성능도 이상했으니까.
내가 자신의 반응에서 무언가 읽어내려 한다는 걸 눈치챘는지 헛기침 하는 그녀.
하지만 곧이어 뭔가 고민하던 로젤리아는 슬며시 내게 한 걸음 다가온다.
“궁금한 게 있나 보군요?”
“뭐, 여러 가지로요.”
슬쩍 떠보듯 묻는 그녀의 목소리.
덤덤히 답하자 로젤리아는 답지 않게 미소를 입가에 걸며 말했다.
“그렇다면 오고 가는 게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