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ight Summoner of the Knights Academy RAW novel - Chapter 139
139화.
아직 일정이 남았으나, 아쉽게도 나이트 아카데미의 폴탄 해안 활동은 끝이 나버렸다.
워즈 과수원에서 있었던 일로 인해서 교수들과 생도들은 치료와 조사를 받으며 시간을 보냈다.
모든 훈련은 취소됐고, 로베르담으로 돌아가기 위한 마차는 아직 준비가 안 됐으니.
하루 정도지만 생도들은 호텔 방에서 할 일 없이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하암.”
쩌억 하품을 하며 침대에 누워서 천장을 바라본다. 룸메이트인 베런은 다른 친구들이랑 같이 있겠다며 가버렸다.
베런을 따르는 친구들 중 마수와 싸우다가 다친 애가 있는지라 병문안으로 다녀온다나.
듣기로는 생도들이 대응을 워낙 잘해서 크게 다친 생도는 없다고 들었는데.
아무래도 호들갑을 떠는 녀석이 하나 있는 듯싶었다.
“뭐, 마침 잘됐지.”
생각을 정리하던 나는 침대에 걸터앉아 마나를 끄집어냈다.
잠깐 번쩍인 호텔방.
세 사람이 소환되었고, 순식간에 방이 꽉 차버렸다.
“단장님을 뵙습니다.”
가장 먼저 반응한 건 새로 소환된 워즈. 녀석은 처음과 똑같이 한쪽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숙여왔다.
아무래도 소환할 때마다 이럴 생각인 듯싶었다.
“보는 내가 부담스럽다.”
윤이 장죽을 입에 문 채로 절레절레 고개를 젓자, 오히려 워즈가 미간을 확 찌푸리며 그녀를 노려본다.
“단장님께 제대로 예우를 갖춰라. 예전에는 친우였을지 몰라도 너는 지금 은빛사자 기사단의 단원이다.”
“단원이기 전에 나는 쟤랑 친구인데?”
“쟤? 내가 잘못 들었길 바라지. 설마 단장님을 가리킨 건 아니겠지?”
“라인. 이안. 쟤. 저거. 뭐라고 부를까? 이번에 나름 공도 세웠는데 그냥 좀 넘어가라.”
“후, 단장님. 제가 기사단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이 꼬맹이를 훈육해도 되겠습니까.”
“칼 뽑을 거면 각오하고.”
워즈와 윤이 살벌하니 기 싸움을 벌이기 시작한다.
딱히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이렇게 보니 둘이 정말 상극이긴 했다.
자유분방하면서도 내 친우인 윤과 나를 향한 존경이 과한 워즈.
“으음.”
내가 뒷머리를 긁적이며 어떻게 정리를 할까 싶었으나, 함께 소환된 한나가 헛기침하며 둘 사이에 끼어든다.
“싸우는 모습 보여드리려고 소환된 건 아니잖아. 우선 단장이 우리를 부르신 이유를 들어야지.”
“단장님이라고 불러라, 한나.”
“예전에 단장이라고 부르기로 통일했잖아.”
“난 반대했다.”
이거 무슨 싸움닭도 아니고.
나를 향한 충성이 워낙 과하다 보니 워즈의 입장에서는 다른 단원들이 하나같이 마음에 안 들어 보이나 보다.
특히나 오랜만에 만나서 그런지 옛날보다 훨씬 과해졌다.
“다 조용히 하고. 시간 얼마 없다. 이번 사건 정리부터 좀 하자.”
베런이 언제 돌아올지 모른다.
일단 의견을 나눌 만한 단원들과 간단하면서도 명료하게 이번 일에 대해 정리하고 싶었다.
“톰이 삐지겠군요.”
자신과 워즈는 소환했는데 본인은 소환하지 않았다며 투덜거릴 톰의 모습이 보이는지 한나는 한숨을 내쉬며 방문을 잠근다.
윤도 내 옆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워즈는 그걸 불편해했지만 내가 별말 하지 않았기에 참으며 정자세로 선다.
“여러 가지로 생각이 많이 드는데. 일단 가장 먼저, 벨페고르의 마지막 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대악마들을 이 땅으로 보내는 누군가가 있다.
나에게 흡수당하기 전, 녀석은 마지막에 분명 그렇게 말했었다.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묵직한 발언.
몇 세기를 지나면서까지 대악들이 계속 대륙에 찾아오는 이유의 본질에 닿는 의문이었다.
“말 그대로 받아들이면 되는 거 아닌가?”
윤이 자신의 머리 위에 달린 늑대 귀를 만지작거리며 답했다.
그녀를 불러낸 이유는 그녀가 레비아탄을 몸에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같이 고민하는 건 기대도 안 했다.
“대악마의 상위개념이 있다고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요.”
“뭐, 마왕 그런 건가?”
애들 동화에나 나오는 존재를 거론하자 의견을 낸 한나 역시 미묘한 표정을 짓는다.
우리 모두가 대악마를 보고, 대륙에 놈들이 끼치는 영향을 느꼈으며, 직접 싸워봤다.
솔직히 대악마보다 상위의 개념인 뭔가가 존재한다는 건 믿기 어려웠다.
애초에 그런 녀석이 있었다면 진즉에 대륙에 찾아와서 인류를 멸절시켰겠지.
“저희를 혼란시키려고 그런 말을 하진 않았겠죠.”
방금까지 윤이나 한나에게 불만을 품었던 모습과는 다르게, 고민에 빠진 워즈는 언뜻 차가운 느낌을 주었다.
그는 자신의 머릿속에서 뭔가를 연결하듯 중얼거리며 말을 내뱉는다.
“기억하십니까? 벨페고르는 제 형인 웨인이 필요했다고 말했었습니다.”
“그렇지.”
300년 전, 웨인을 찾아와 그와 함께하게 된 이유가 따로 있다고 말했다. 심지어 웨인이 필요했다고.
“대악마가 고작 인간 하나가 필요했다? 상식적으로는 이해가 잘 되지 않지만 일단 넘어가도록 하죠.”
자신의 형과 관련되어 있음에도 워즈는 냉정하니 다음 스텝을 밟는다.
“바로 다음, 녀석은 자신에게 이런 방식의 죽음도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고 했습니다. 그건 아마 같은 대악마에게 먹히는 걸 뜻했겠지요.”
마몬의 힘에 먹혀서 죽는 방식.
그러니까 같은 대악마에게 자신의 힘을 넘겨주는 걸 뜻했다.
“자신을 어서 먹으라는 발언을 생각하면 이게 합리적일 겁니다.”
워즈의 의견에 한나도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나 역시 같은 생각이었다.
“중요한 건 그 다음입니다.”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워즈는 턱을 만지작거리더니 힐끔 나를 바라본다.
깊은 근심이 그의 눈동자에 담겨 있었다.
“자신이 실패했으니, 그 가능성을 단장님에게 넘긴다고 말했습니다.”
“…….”
“결국 종합하자면, 벨페고르는 자신의 죽음으로서 힘과 어떠한 목적을 넘겼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의도치 않게 떠맡게 된 무언가.
“아마 그게 대악마들을 이 땅으로 보내는 존재와 연결되어 있겠지요.”
거기까지 말한 순간, 우리가 어떤 벽에 도달했음을 인지했다.
벨페고르가 남기고 간 힌트들로는 결국 여기까지가 한계였다.
“결국 대악마보다 상위의 무언가가 있고, 그것들을 처리하면 이 지긋지긋한 대악마들이 더 이상 대륙을 넘보지 않는다는 뜻이네.”
대강 정리해서 읊조리자 워즈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하아, 왜 대악마들도 나한테 짐을 떠넘기는 기분이 드냐.”
투덜거리며 침대에 드러눕자 윤이 곧장 내 배 위에 다리를 얹는다.
“그래도 벌써 대악마만 둘을 족쳤는데 대륙에 더 있겠어?”
“그건 또 그렇지만.”
300년 전에는 마몬 혼자서 날뛰는 것만으로도 대륙 전체를 위기로 몰고 왔었다.
레비아탄은 강림하기 전에 처리할 수 있었고, 벨페고르도 제대로 힘을 발휘한 순간 바로 토벌했기에 큰 피해 없이 넘길 수 있었지만.
사실 운이 좋았다.
만약 나와 아예 연관이 없는 장소에서 대악마가 소환되어 기반을 잡기 시작한다면?
아마 마몬이 보여줬던 파괴력을 다시 한번 대륙에 펼쳐 보이겠지.
“단장, 그 부분에 있어서 조금 거슬리는 게 있습니다.”
“음?”
그때 지금까지 입을 꾹 다물고 있던 한나가 손을 들었다.
“마몬을 토벌한 전인지 후인지 모르지만 일단 벨페고르는 300년 전, 웨인과 접촉했습니다.”
“그렇지.”
만약 벨페고르가 300년 전에 마몬이랑 같이 날뛰기 시작했으면 끔찍…….
“으음?”
내가 의아한 반응을 보이자 한나는 바로 말을 이어간다.
“왜 바로 활동하지 않았던 걸까요?”
“…….”
“마몬이 토벌되기 전이었다면, 마몬과 함께 대륙을 점령하면 되었습니다. 마몬과 적대적인 관계였다면 오히려 더 빨리 움직였어야죠.”
마몬이 완전히 대륙을 먹어치우기 전에 벨페고르가 움직여야 했다.
“만약 마몬이 토벌된 후라면 더 이해가 안 됩니다. 마몬의 광신도들은 그때 자신들이 섬길 신을 잃고 해매는 중이었습니다.”
새로운 대악마로서 그들을 규합하기만 했어도 어렵지 않게 기반을 닦을 수 있다.
그런데 왜?
벨페고르는 가만히 있었던 걸까?
한나의 의문은 합리적이었으나 답을 내놓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쾅쾅!
“어우, 깜짝아.”
깊게 파고들던 사고를 부수는 격정적인 노크가 울려온다.
“야아아! 이아아안! 뭐 하는데 문을 잠그고 있냐아아!”
철컥 철컥 철컥!
문밖에서 들려오는 마리아의 목소리.
윤은 자신의 제자를 반가워했으나, 나는 바로 세 사람을 역소환하며 침대에서 일어나 문을 열어줬다.
“뭐 하고 있었어?”
음흉하게 웃고 있는 마리아.
뒤를 보니 샬롯과 다이니 그리고 벨레스까지 따라왔다.
재밌다며 키득거리는 녀석들을 보니 한 방씩 때려주고 싶었으나 그냥 무시하며 질문으로 답해준다.
“너희는 뭐 하냐. 방에서 대기하라고 했잖아.”
“심심하잖아. 그리고 폴탄 해안까지 또 언제 올 기회가 있다고 가만히 호텔에 박혀 있냐.”
호탕한 웃음소리와 함께 마리아는 내 손목을 낚아챈다.
“바다 보러 가자!”
* * *
밤바다는 확실히 운치가 있었다.
“으아, 모래 밟는 거 지긋지긋해.”
“트라우마 생길 것 같아.”
훈련 기간 동안 모래사장에서 구를 대로 구른지라 다이니와 샬롯은 몸서리쳤지만.
“시원하니 기분 좋군.”
“소금 냄새.”
친구 병문안을 갔었다가 우리에게 잡혀온 베런과 바다 내음이 괴로운지 코를 막고 있는 벨레스.
저럴 거면 왜 따라왔나 싶었다.
“하아, 이러면 안 되는데.”
그리고 나중에 합류한 실리아까지.
바닷바람에 흩날리는 머리를 정리하며 그녀는 한숨을 내쉰다.
선도부에게 걸리지 않고 밖으로 나오는데 그녀의 도움이 지대했다.
“뭐, 별일 있겠어요. 저희가 술 마시거나 연초 피우는 것도 아니고. 그냥 바다나 구경하러 온 거죠.”
“……그건 그렇지만.”
원리원칙을 중시하는 실리아였기에 내 말을 듣고도 찝찝해 하는 표정을 지었으나 그 정도만 해도 충분했다.
예전의 실리아였으면 우리는 호텔 밖으로 나오기 위해 그녀와 싸워야 했을 거다.
“힐링하는 거죠. 바닷바람이나 맞으면서 긴장도 좀 풀고.”
“그래…….”
실리아는 결국 못 이기는 척 주머니에 손을 푹 찔러 넣고는 밤바다를 바라본다.
은은하니 입가에 미소가 걸리는 게 분위기 자체는 꽤나 마음에 드는 듯 보였다.
“근데 이런 기특한 아이디어는 누가 생각했대.”
내가 휙휙 고개를 돌리며 칭찬할 사람을 찾자 벨레스가 입을 연다.
“샬롯이 가자고 했다.”
그러자 샬롯은 바로 다이니를 가리킨다.
“다이니가 가자고 찾아왔는데?”
이번엔 다이니는 주변을 둘러보며 답했다.
“나는 마리아가…… 말했는데?”
순간 우리 모두 싸한 감각을 느낀다.
우리가 아는 마리아라면 주도적으로 밤바다 같은 풍경을 보러 가자고 할 리 없다.
“얘 어디 갔냐?”
게다가 보이지 않는 마리아.
설마 하는 마음으로 방파제 쪽을 확인하자 그곳에는 검을 뽑은 채로 바다를 보고 있는 마리아가 있었다.
“왔다! 왔어!”
뭐가 그리 신났는지 그녀는 방방 뛰면서 이쪽으로 달려온다.
그녀의 뒤로, 파도를 타고 올라오는 해양 마수들.
벨페고르가 불러냈던 수준은 아니지만 어쨌든 마수였다.
“어부 아저씨들이 그랬거든. 이쪽 해안은 밤이 되면 마수들이 자려고 올라온다고!”
“…….”
“원래 1학년은 마지막 날이 실전이었는데 못 했잖아! 아, 맘껏 즐기자고!”
왜 검을 챙기라고 그렇게 닦달했는지 이제야 알겠다.
벌써 마리아는 자려고 찾아온 마수들을 베어 넘기며 그들을 자극했다.
“과수원에서 미친년처럼 날뛰어놓고도 어떻게 저러냐.”
“그냥 버리고 도망가면 안 돼?”
다이니와 샬롯이 투덜거렸으나.
뭐, 폴탄 해안에서의 마지막 추억으로 장식하기엔 딱 적당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