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ight Summoner of the Knights Academy RAW novel - Chapter 156
156화.
“아.”
엠버의 탄식은 짧았지만, 그 안에 담겨 있는 감정은 실로 다채로웠다.
고작 그 잠깐 사이에 복합적인 감정을 느끼게 해주는 건 재능의 영역이 아닐까 싶을 정도.
“그거.”
떨떠름하니 손으로 가리킨 건 당연하게도 내 손에 쥐고 있는 곰인형.
입꼬리가 달달 떨리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어딘가 망가진 것처럼도 보였다.
“어, 어디서 나셨습니까?”
“잠시만요!”
옆에 있던 넬슨이 화들짝 놀라며 끼어든다.
지금 내가 이걸 어디서 가져왔는지 말하는 순간, 자신의 입장이 묘해진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
“오해하실 수 있지만 일단 제 설명을 먼저……!”
“넬슨이 가지고 있던데.”
“…….”
근데 나도 모르게 대답해 버렸다.
“아차. 나도 모르게 그만.”
순간 넬슨의 원망스러운 시선이 꽂혀 들어왔으나 아무렇지 않은 척한다.
“입꼬리가 너무 움직이시는데요.”
티 났나.
솔직히 재밌어 보여서 그냥 질러본 감도 있다.
“야, 너희 300년도 전에 헤어졌다며.”
“……네에.”
“그렇죠.”
넬슨이 힐끔 눈치를 보고, 엠버는 불편하지만 또 오랜만에 나를 보는지라 티는 내지 못하고 있다.
“그럼 깔끔하게 이야기하고 끝내라. 괜히 다른 애들한테 이야기 나오지 않게 잘 처리하고.”
그대로 문을 열며 밖으로 나선다.
두 사람은 다소 당황한 표정을 지었고 나는 방긋 웃으며 자리를 비워준다.
“지금 충분히 시간 줄 테니까.”
쿵.
문을 닫는다.
안에서는 묘한 정적이 흐르고 있고, 슬쩍 귀라도 문에 대볼까 했으나.
‘알아서 잘하겠지.’
두 사람의 개인사정이니까. 나는 나름대로 즐길 건 즐겼다 생각하며 밖으로 나섰다.
* * *
“생각만큼 쓸모 있지는 않네.”
앞에 놓인 잡동사니들을 내려다보며 나는 씁쓸하니 혀를 찼다.
오늘 하루 이것 때문에 고생한 생도들의 따끔한 눈살이 쏟아져 온다.
노을이 지고 있는 건 오늘 하루를 우리가 이것에 전부 투자했음을 의미하고 있었지만 썩 의미가 있다고는 할 수 없었다.
‘뭐, 엠버를 소환했으니까 그걸로 만족하자.’
한 명만 소환해도 충분히 이득인 상황이었으니까. 이런 잡동사니들을 가지고 두 명이나 소환하려는 건 다소 욕심이긴 했다.
“저거 어떻게 후려 팰 수 없나?”
“진짜. 개때리고 싶네.”
오늘 하루 열심히 청소한 걸 쓰레기라고 취급받자 뒤에서 수군거리기 시작한 다이니와 마리아.
두 사람은 샬롯과 벨레스까지 불러서 작당모의를 했는데, 꽤나 흉흉한 대화들이 오간다.
“몇 명이 물고 늘어지면 나름 되지 않을까?”
“벨레스가 다리를 잡고, 샬롯이 등에 매달려. 그러면 바로 두들겨 팰게.”
“급소부터 때리면 힘도 빠질 거 아니야.”
부장한테 하는 말들이 참.
뭐, 오늘 고생한 것도 있으니까.
“회식하자. 내가 쏠게.”
내 나름 회심의 제안이었으나 안타깝게도 부원들에게는 크게 맛있는 떡밥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다 같이 고개만 휙 돌려서 나를 노려보며 한마디씩 거든다.
“어제 축제 때문에 굳이 그럴 필요 없는데?”
“무슨 또 회식이야.”
“애초에 우리 마을에는 그렇게 좋은 가게는 없어.”
“또 고기인가?”
‘아, 젠장.’
어제 축제를 한 탓에 이것들이 회식을 크게 반기지 않는다. 어쩔 수 없다고는 해도 이렇게까지 대놓고 싫어하다니.
단원들 같은 경우는 그냥 무슨 경우에든 일단 회식이라고 하면 다들 좋아서 신발 양말 다 벗고 달려오는데.
이럴 때는 도로시 같은 애들이 다루기 속 편하다.
“그럼 뭐. 다른 거 해줄 수 있는 게 없는데.”
여기서 내가 뭘 해줄 수 있겠는가. 로베르담으로 돌아가면 회식을 하겠다는 약속 정도가 최선이었다.
“그런데 언제 돌아갈 거야?”
로베르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 김에 다이니가 슬그머니 물어왔고 다른 부원들도 궁금하다며 시선을 모았다.
“아무리 그래도 여기 계속 있는 건 민폐잖아.”
“그렇게 생각 안 해도 괜찮은데.”
샬롯은 저렇게 말했지만 우리가 불편하다. 특히나 갑자기 식사가 네 명분이 추가됐다는 건 꽤나 부담스러우실 거다.
“창고 청소로 신세 진 걸 갚았다고 생각하자.”
그렇게 말한 후에야 성난 민심이 그나마 좀 잠잠해진다.
어쨌든 여기만 계속 있을 수도 없지만 문제는 얘네들이다.
“너희 정말로 계속 나 따라다닐 거야?”
내가 팔짱을 끼면서 묻자, 다이니와 마리아는 당연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어디 가라고?”
“또 가문으로 돌아가서 갇혀 있으라고?”
다이니는 사실상 홈리스라서 틀린 말은 아니지만.
마리아는 가문으로 돌아간다고 이전처럼 감금되거나 하진 않을 거다.
하지만 내가 뭐라고 말해도 결국 끝까지 따라오겠지.
“벨레스는?”
벨레스는 또 벨레스 나름대로 할 일이 있지 않을까 했다. 예를 들어서 윙보드의 단원들이 묻힌 묘비로 찾아간다든가.
“너희랑 움직이는 게 마음 편하다.”
“…….”
말은 그렇게 하지만 혼자서 돌아다니다가 수인이라는 걸 들킬 수 있으니 그냥 따라다니겠다는 소리였다.
“에휴, 어쩔 수 없네.”
솔직히 지금까지 숨기고 있던 일정이 하나 있었기에 나는 이마를 탁 치면서 물었다.
“우리 집으로 갈래?”
그러자 순식간에 분위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너희 집에? 와, 이건 좀 기대되는데.”
“오오오! 재밌겠다!”
“……나도 아빠한테 말해서 따라갈까.”
“흠.”
가지각색의 반응들을 보이고 있지만 대체로 긍정적이다.
다이니와 마리아는 어디든 따라다닐 거고. 워낙 시골 마을이라 벨레스의 정체가 걸릴 위험도 딱히 없다.
샬롯은 잘 모르겠지만 분위기상 따라오지 않을까 싶었다.
‘어머니 얼굴도 뵌 지 좀 됐으니까.’
여름방학 때도 찾아뵙지 못했다. 겨울방학에는 한 번은 찾아가야겠지.
‘마을까지 내 이야기가 퍼졌으려나?’
워낙 시골 마을이라서 잘 모르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기 중에 어머니에게 오던 편지에도 안부 정도만 물을 뿐 별말이 쓰여 있진 않았으니까.
‘뭐, 일단 가보면 되겠지.’
어쨌든 겨울방학이 슬슬 중반기를 넘어 끝물로 가고 있을 무렵.
행선지는 우리 집이 되었다.
* * *
콰앙!
콰앙!
콰앙!
“도망쳐! 저거 뭐야!”
“빠진다! 도망친다!”
세 갈래 숲이라 불리는 이곳에서 다급하게 펼쳐진 추격전.
경비대의 갑옷을 입고 있는 남자들은 창과 칼도 내던진 채로 그저 숲을 탈출하기 위해 달리고 있었다.
이미 몇 명이나 당했다.
살아남은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지만 다른 사람들을 신경 쓸 정도로 여유롭지 않았다.
“젠장! 젠장! 젠장! 저게 뭐냐고!
분명 숲이 이상하다는 보고를 듣고 오긴 했다.
평소와 다를 바 없이 기껏해야 들짐승 혹은 어디서 굴러들어 온 마수 정도가 어슬렁거리겠거니 했으나.
이곳 세 갈래 숲은 원래 마차를 위한 길도 잘 만들어져 있고, 탁 트여 있기에 마수나 짐승들이 보여도 금방금방 퇴치되는 장소였다.
세 갈래라는 이름에 걸맞게 여러 마을로 향하는 교차로와 같은 느낌인 장소였으나.
지금의 이곳은 열대우림이 연상될 정도로 울창한 숲이 되어 있었고.
그 중심에는 숲을 지배하고 있는 마녀가 우두커니 서 있다.
저건 보통의 마수와는 차원이 다른 존재였다. 감히 함부로 비교해서는 안 되는 종류의 괴물.
인간을 향한 맹목적인 증오를 지닌 마녀.
“어어어억!”
“자, 잠깐! 잠깐만!”
숲을 빠져 나가기까지 아주 조금 남았다고 생각했으나.
경비대원들은 어느새 자신들의 발목에 휘어 감긴 나무뿌리를 발견한다.
그것은 그대로 두 사람을 당기며 다시 숲 안쪽으로 끌고 들어갔고.
“끄아아아아악!”
“안 돼에에에에!”
애처로우면서도 섬뜩한 비명을 끝으로, 세 갈래 숲에서 펼쳐진 추격전은 끝을 고했다.
* * *
똑똑똑.
정갈한 노크 소리가 밖에서 들려오자 집 안에 있던 중년의 여성, 아랜 아이넬은 의아하게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을 사람들과는 워낙 친하다 보니 굳이 저렇게까지 정중하게 노크를 할 사람이 없었다.
이미 밖에서부터 크게 아랜의 이름을 부르면서 음식을 나눠줬겠지.
스튜를 휘젓고 있던 국자를 내버려둔 채로 밖으로 향한다. 물기가 묻은 손을 앞치마로 대충 닦아내며.
“누구세요?”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아랜은 별 망설임 없이 문을 열었다. 누가 찾아왔든 어차피 큰일은 아닐 거라 생각한 것.
하지만 의외로.
정말 뜬금없게도 살면서 단 한 번도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는 사람이 서 있었다.
퀭하고 내려앉은 다크서클이 다른 무엇보다도 눈에 띠는 삐쩍 마른 남자.
덥수룩한 머리는 걸치고 있는 로브의 후드로 덮어 두고 있었는데.
중요한 건 바로 그 로브였다.
싱그러운 식물이 연상되는 초록색 로브. 그리고 그곳에 박혀 있는 복잡해 보이는 꽃의 문양.
보통 사람이라면 보는 순간 그가 어디 소속인지 바로 알았겠으나.
남편을 잃고, 아들 키우는 데만 집중하던 어머니에게는 시장통에서 파는 로브랑 하등 다를 게 없어 보였다.
“아, 아이넬 가문이 맞습니까?”
“네에, 여기가 아이넬가인데요.”
사람이 많은 건 아니지만 어쨌든 이안과 아랜이 있으니까 아이넬 가문이라 불려도 이상하진 않다.
아랜이 고개를 끄덕인 순간, 남자의 입가가 파들파들 떨리며 희미한 미소가 지어졌다.
그 모습이 불쌍하게 느껴져서 지금 끓이고 있는 스튜라도 좀 건네주고 싶었다.
“저, 저는 녹색 마탑의 7등급 마법사 수온이라 합니다.”
녹색 마탑?
게다가 7등급 마법사?
이런 시골에서는 산삼이나 인삼보다 귀한 존재이지 않은가.
하지만 딱 신기하다 정도일 뿐, 호들갑스러운 반응은 없었다.
그리고 수온도 크게 기대하지 않았는지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아드님이신 이안 아이넬 님 계십니까? 나이트 아카데미가 겨울 방학에 들어가서 오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네? 이안이요?”
최근 따로 편지가 오지 않고 있는지라 아랜은 묘한 표정을 지었다.
수온은 간절함을 담아서 제발 이안이 여기 있기를 바랐으나.
“겨울방학 하고 안 돌아왔는데요? 나이트 아카데미 쪽에 있는 거 아닐까요?”
“아…….”
“여름방학 때도 걔는 따로 돌아오진 않았었어요. 아무래도 귀족분들이 많은 곳이니까 따라잡으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있겠죠.”
“아아…….”
짙어지는 탄식은 안타깝지만 정말로 아랜이 해줄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었다.
아들놈은 겨울방학 시작한다고 편지만 달랑 쓰고 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데 어떻게 하겠는가.
“아, 아드님이 프나틱스 신전에서 따로 어디 간다는 편지도 없었나요?”
“걔가 프나틱스 신전에 갔었어요?”
프나틱스 신전은 알고 있다.
종종 이런 마을에도 전도사들이 와서 말씀을 전파하곤 했으니까.
그걸 일종의 연극처럼 구경하는 건 마을 사람들의 일상에 찾아오는 하나의 유흥거리였다.
근데 아들이 그곳에 간 건 처음 알았다.
“아아아…….”
더욱 탄식이 깊어지는 수온. 그는 반쯤 울먹이며 끄덕였다.
“아, 아드님이 성검의 소유자로 간택되셨습니다.”
“성검이요?”
뭔지는 모르겠으나 얼핏 들어도 대단해 보이긴 했다.
“걔는 그런 걸 왜 말도 안 하는지.”
심드렁하니 대꾸하는 아랜에게 결국 수온은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로 말했다.
“이, 이안 님이 없으면 저는 물러가 보겠습니다. 프나틱스 신전에서 고향으로 돌아오신 게 아니면 아마 나이트 아카데미로 가셨나 보네요.”
“……힘내세요. 스튜라도 좀 드릴까요?”
뭔가 응원해 주고 싶은 남자였기에 제안했으나.
“아뇨, 괜찮습니다.”
입맛도 없는지 터덜터덜 걸어가는 모습이 참으로 안쓰러웠다.
하나, 며칠 후.
이안이 친구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온 걸 본 아랜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이고, 조금만 빨리 오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