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ight Summoner of the Knights Academy RAW novel - Chapter 195
195화.
무식하며 잔인하다.
하늘에 펼쳐진 풍경은 그런 식으로밖에 설명할 수 없었다.
성문 밖으로 시체들이 비처럼 쏟아져 내려온다. 시체들은 단순히 폭탄으로 활용되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일어난다!”
“마수야! 마수가 됐어!”
재빠르게 대응하는 기사들.
상대의 충격적인 방식에 비해 기사들의 반응은 날카로우면서도 재빨랐다.
안으로 파고 든 마수가 된 시체들을 창으로 찔러 넣거나, 방패로 밀어내며 기사들은 재빠르게 대응해 나갔으며.
마도병단은 아예 자신들의 옆에 시체가 떨어져서 기괴한 울음소리를 내어도 눈길조차 주지 않고 하늘을 향해 손을 뻗었다.
깔끔하게 쳐지는 마나로 된 방벽.
마도병단들이 마나를 모아 만들어 낸 벽은 웅장함을 자아낼 정도로 거대했고.
날아드는 시체들은 이제 중간에 가로막혀 바닥에 떨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전선이 형성되었다.
“마법사들부터 지켜라! 바깥은 방패로 막고만 있어! 내부 정리를 끝낸 다음에 반격에 들어간다!”
전체적인 지휘를 맡고 있는 마리안느 레이로즈의 마나가 담긴 외침이 전장에 퍼져 간다.
그녀의 목소리만으로도 이미 전황이 안정화되고 있다는 걸 모두가 느낄 수 있었고 발걸음은 가벼워진다.
“결국 협상은 결렬이다! 오히려 인질들을 구하기 위해 지금이라도 빠르게 치고 들어간다!”
협상을 요청했으면서 선공을 쳤다. 사실상 협상은 없는 거라고 봐야 했다.
저런 결정까지 혼자서 내릴 수 있는 건가?
군중 사이에서 지켜보던 힐다는 의문을 품었으나, 현장 지휘관이 가지고 있는 권한 이상을 휘두를 때도 종종 있었다.
이렇게 변수가 갑자기 생겼을 때는 결국 현장에서 어떻게 판단하느냐에 따라 많은 게 갈리니까.
그런 의미에서 힐다는 마리안느 레이로즈의 판단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협상의 여지가 사라졌다면 지금이라도 빠르게 들어가서 잡혀 있는 인질들을 구출하는 게 조금이라도 인원을 살릴 수 있는 길이였다.
“우리가 거칠게 치고 나갈수록 놈들이 인질들을 죽일 병력이 빠지게 된다! 여유를 주지 마라!”
‘명석한데?’
게다가 인질들의 목숨을 위한 행위라면서 병사들에게 사기를 북돋아주기도 했다.
실제로 자신들이 여기서 치고 나가면 인질들은 어떻게 되나 걱정하던 병사들 역시, 이제는 이를 악 물고 앞으로 치고 나가고 있었다.
인질을 죽이는 일에도 전력이 투입된다. 그렇다면 그런 여력을 남기지 못할 정도로 강하게 밀고 들어가면 된다.
하나 아쉬운 점은 공성을 하는 입장이었기에 기사들이 자랑하는 군마를 활용하기 어렵다는 정도.
‘쯧, 아쉽겠어.’
레이로즈 가문의 붉은 갑옷을 걸친 기사들이 종횡무진으로 활약하는 모습이 좀 보고 싶기도 했다.
은빛사자 기사단이 군마를 타고 적진을 휩쓸 때의 위용을 몇 번이고 눈에 담은 적 있던 힐다.
그렇기에 기사들이 전장에서 얼마나 큰 역할을 아는지 잘 알고 있었다.
‘기사로서의 힘이 반절은 날아가나.’
뭐, 그렇다고 해도 일반병사보다 뛰어난 보병이다.
그때 붉은 마갑을 걸친 군마들을 이끌고 오는 종기사들. 레이로즈의 적장미 기사단은 재빠르게 자신들의 군마에 올라탄다.
“음?”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브릴리언의 레아 기사단과 새벽 눈이라 불리는 기사단도 자신들의 군마에 탑승한다.
힐다의 눈동자가 총명하니 빛난다. 새로운 마법을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팍팍 들었다.
실제로.
이미 준비된 전략이 있는지 다른 기사들은 오히려 방패를 들고 전열을 거칠게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앞으로! 앞으로!”
둠베스트 가문의 가주로 보이는 덩치 큰 콧수염의 남자가 검을 앞으로 휘두르며 외치자, 흑곰의 기사들이 커다란 방패를 들고 앞으로 밀고 들어간다.
전차처럼 맹렬하게 앞으로 밀고 들어가는 그들의 모습은 뒤는 생각하지 않고 있는 것처럼도 보였다.
그리고 그때.
하늘 높게 찬란한 빛의 마나가 솟구치며 무지개가 그려진다.
땅에서 치솟아 오른 마나의 무지개는 거대한 다리가 되어 성벽을 훌쩍 뛰어넘어 안으로 연결되었고.
적장미의 붉은 기사들을 시작으로 군마들이 무지개를 타고 달리기 시작했다.
“오오.”
옅게 탄성을 흘리며 힐다는 박수쳤다.
왕국의 주 전력이 기사라고는 해도 만능인 존재는 아니다. 지금처럼 군마들이 헤집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을 때는 다소 무기력한 면이 있었으나.
“공성전에서도 기사를 활용하겠다고 아주 득달같이도 방법을 찾았구나.”
성벽 자체를 무시하고 안으로 치고 들어가는 기사들. 하늘을 달리는 그들을 보며 힐다는 300년이란 세월의 무게감을 느낀다.
물론, 다리를 건너는 동안 포격이라도 쏘아지면 다소 무기력하게 쓰러질 수도 있으나.
사탄의 군세는 무식하게 마수로 이루어져 있었기에 기사들은 별 문제 없이 안전하게 성 내부로 들어설 수 있었다.
위에서 돌입하는 기사들을 믿었던 아래의 보병진은 이제 완전히 밀고 들어가서는 기병들의 호흡에 맞춰준다.
그렇게 전격적으로 전진하는 군세.
“이거…… 나랑 이안이 너무 호들갑을 떨었나?”
힐다는 어이가 없다는 반응과 함께 헛웃음을 흘린다.
지금 자신들의 꼴이 노인네가 괜히 쓸데없이 걱정하고 참견하는 느낌이지 않은가.
알아서 잘할 수 있는데.
“대악마 사냥도 쉽겠는데?”
아무리 대악마가 대단하다고 해도 혼자서 이 정도의 군세를 뚫을 수는 없겠지.
마몬과 얼마나 차이가 있는지 몰라도 완벽하게 몰아넣은 대악마 사냥은 어렵지 않을 듯 보였다.
그때.
콰아앙!
뒤에서 들려오는 거친 파괴음.
힐다가 퍼뜩 고개를 들자 짙게 깔린 구름들 사이에서 무수히 많은 섬광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뭐야.”
인간이 사용하는 마나.
대악마들이 다루는 불길함의 기운과는 또 다른 느낌.
“피해! 피해!”
“막아, 마법사들 방벽 깔라고!”
“다리가 무너진다아아!”
하늘에서 쏟아지는 섬광이 마법사들이 깔아둔 방벽을 무참히 깨부수며 그들의 진형을 박살 낸다.
뿐만 아니라 무지개 다리가 반파되며 마나의 파편이 되어 사라졌고, 위를 달리고 있던 기사들은 바닥으로 고꾸라지며 추락한다.
하늘에서 쏟아지는 천벌.
후열이 속수무책으로 당하기 시작하며 지원이 끊겼지만, 전열의 기세가 워낙 훌륭했기에 이 정도로는 밀리지 않았다.
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다.
크아아아아!
길게 울려오는 거친 마수의 울음소리는 마리안느가 마나를 담고 쏟아내던 외침의 몇 배는 되는 강렬함을 담고 있었다.
정면의 전열이 뒤로 밀리기 시작한다.
거대한 검은 사자.
그 위에 올라타 있는 사자의 검을 들고 있는 기사.
로만 레이먼드.
그의 머리에 솟아오른 두꺼운 뿔을 본 순간 로만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대강 예상할 수 있던 힐다였다.
전장의 흐름을 뒤바꾸는 천벌과 로만 레이먼드의 등장.
“이안이 보면 슬퍼하겠네.”
훌륭한 후배라면서 극찬했던 이안을 떠올리며 힐다는 씁쓸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까지 보고만 있단 힐다가 천천히 로브를 고쳐 입으며 지팡이를 쥔다.
“가능하면 여기서 끝내야 해.”
전황이 점차 휘둘리며 혼란에 빠지기 시작했고, 그건 대악마에게 유리한 흐름이었기에.
여기서 불길이 번지는 걸 막기 위해.
힐다가 로만을 향해 걸어갔다.
* * *
“검은 해골 말을 탄 기사들이 오고 있었습니다. 숫자도 꽤 되는 게 보통이 아닙니다.”
“하아.”
이른 아침 돌아온 넬슨의 보고를 들으며 나는 피로에 절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제 결국 밤을 지새우면서 소환마법을 펼쳤던지라 몸이 무거우면서도 피로에 전신이 절어있다.
아무리 내가 체력이 좋아졌다고 해도 밤을 지새우면서 마법을 썼으니 멀쩡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얼마나 걸릴 것 같아?”
그래도 일어나야 한다.
나는 하품을 쩍쩍 해대며 억지로 침대에서 일어나며 물었고 넬슨은 침착하게 설명한다.
“제가 봤을 때는 적어도 이틀이면 도착합니다. 해골이라서 그런지 쉬지도 않고 그냥 달려오고 있습니다.”
“하아, 프랑트의 포위가 빈약했던 것 같지는 않고. 다른 방식으로 탈출한 건가?”
머리를 긁적이면서 생각을 정리한다.
“흑기사라는 놈들이 내가 상대했던 그놈 정도 수준이면 로베르담 방비로는 못 막겠네.”
“예, 맞습니다. 아카데미에서 다 붙어줘야 하지 않을까요?”
“교수들?”
“맞습니다.”
넬슨의 말에는 다소 회의적인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나쁘진 않은데 큰 전력까진 되지 못할 것 같은데.”
지난번 폴탄 해안에서 봤을 때, 헥토르를 제외하고는 사실 그다지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메이지 아카데미 측 마법사들은 어떨지 모르겠으나, 어차피 전열이 없으면 기사들의 마상돌격에 무기력하게 밀려날 뿐.
“흐아암.”
눈가를 꾹꾹 누르며 천천히 일어난다. 뭔가 입에 넣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일단은 우리 애들 다 나설 생각해야지. 여차하면 소환마법도 숨기지 않고 싸울 생각해야겠어.”
일단 넬슨을 역소환하고 식당으로 향하려 자리에서 일어나자 책상에서 들리는 요란한 소리.
로아 제국의 앤에게 헤어질 때 받았던 소형 통신기였다. 연락 자주하라고 말해줬는데 연락할 시간이 없었다.
뚝.
통신기를 쥐자 안에서 흘러나오는 그리운 목소리.
– 왜 연락 안 해!
아침부터 아주 생기가 넘치는 게 꽤나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모양이다.
“앤, 오랜만이네.”
텁텁한 목소리가 나와 버렸다.
뭔가 먹으러 식당에 가고 싶었는데 앤에게 붙잡혔다.
– 목소리가 안 좋네?
“어제 좀 늦게 잤거든.”
사실상 눈을 감았다가 다시 뜬 거나 다름없다.
기사 시절 밤을 새우는 건 몇 번이나 했었으나 이렇게 마나를 전부 쏟아내며 날을 새운 적은 처음이었다.
진짜 마법사가 된 기분.
– 몸조리 잘해. 맛있는 거 먹고. 잘 자고. 몸에 좋다는 거 좀 보내줄까?
“아니, 무슨 일 때문에 연락했어?”
– 좀. 오랜만인데…….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자고 말한 게 섭섭했는지 앤의 목소리에서 다소 투덜거림이 묻어나왔다.
황좌에 앉아서 투덜거리는 앤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상상이 되어서 피식 웃음이 흘러 나왔다.
“피곤해서 그래. 좀 쉬고 다시 연락할게.”
– 네가 먼저 해!
“알았다고. 왜 연락했냐고.”
– 폴 벨크터스 기억하지?
“흑광의 기사단장? 내가 상대했던 사람이잖아.”
이제야 왜 연락했는지 알 것 같았다. 그가 걸치고 있던 갑옷이 지니고 있던 대악마의 기운.
하지만 녀석은 악마에게 받은 게 아니라면서 발악하며 외쳤었다.
– 벨크터스 기사단장은 해임됐어. 네가 갑옷을 부순 다음에 더 이상 기사를 할 수 없다고 말했거든.
“……뭔가 미안한데.”
하지만 그럴 만했다.
실력적인 면에서 분명 뛰어나긴 했으나 사실 갑옷의 절대적인 방어력을 바탕으로 쌓아올린 검이긴 했다.
그런 방패가 사라지니 자신의 검이 흔들리는 걸 느꼈고 더 이상 기사로서 활동할 수 없었다는 게 자연스럽게 연상된다.
뭐, 아니면 자신이 지지하던 황자가 황제가 되지 못했기 때문에 그냥 일선에서 물러선 걸 수도 있고.
– 갑옷 말이야…… 음, 믿지 못할 것 같긴 한데.
머뭇거리는 앤.
하지만 나는 심드렁하니 대꾸했다.
“내 근처에 일어나는 일들은 대부분 믿기 힘든 것들이야. 말해 봐.”
당장에 내가 여기 서 있는 것부터가 믿을 수 없는 일이지 않은가.
300년 전에 살아가던 기사, 라인 레이먼드가 나이트 아카데미에 생도로 생활한다니.
– 신이 내려주셨다는데?
“뭐라는 거냐, 정말.”
하지만 이건 진짜로 믿기 어려웠다.
대악마의 기운이 스멀스멀 흘러나오던 물건을 신이 줬다고 말하는 건 투정부리는 꼴이 아닌가.
– 아니, 근데 진짜야. 마법을 써서 진위여부까지 확인해 봤어. 갑자기 하늘에서 자기한테 떨어졌데.
“그게 도대체…….”
뭔 어처구니없는 소리냐고 대꾸하려 했으나.
“아.”
마나로 소환마법진을 그린다.
손에 묵직하게 잡힌 성검을 내려다보며 나는 민망하게 끄덕였다.
“그럴 수도 있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