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ight Summoner of the Knights Academy RAW novel - Chapter 196
196화.
– 그럴 수도 있겠다고?
내가 갑자기 이야기를 받아들이자 의아해하는 앤. 너무 쉽게 받아들이자 오히려 당황한 목소리였다.
“나한테도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진 검이 있으니까. 지금 쥐고 있어.”
검게 물들어 버린 성검을 내려다보며 말했으나 앤은 다소 회의적인 대답을 내놓았다.
– 그건 성검이잖아. 오래 전에 하늘에서 떨어진 검. 이건 성스러움이랑은 다소 거리가 먼 갑옷인데?
“앤.”
아직 뭘 잘 모르는 공주님에게 나는 혀를 차며 삶을 지혜를 쏟아낸다.
“하늘에서 떨어진 물건들은 대부분 질이 더러운 것들뿐이야. 천사니 악마니 하는 그것들은 우리 가지고 뭔가를 해보려는 수작질밖에 하지 않는다고.”
– 그런 거야?
“앞으로 알게 될 거야.”
상황이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으니까. 앤과는 몇 마디 정도만 더 주고받은 뒤 통화를 끊었다.
그제야 잠에서 깨며 머리가 돌아가서 그런 걸까. 생각해 보면 이렇게 여유롭게 있어서는 안 된다는 걸 실감한다.
점심은 좀 있다가 대충 빵으로 먹을 생각하고. 나는 각오를 다진 채로 학장실로 향했다.
덜컹!
문을 열고 바로 학장실 안으로 들어서자 깜짝 놀라는 로젤리아.
뭔가 하고 있었는지 묘한 표정을 짓던 그녀는 다급하게 나를 향해 소리친다.
“너 지난번부터 학장실에 너무 막 들어오는 거 아니니? 아무리 성검 보유자니, 레지스탕스 소탕이니 여러 공로를 세웠다고는 해도 너는 아직 생도……!”
“지금 로베르담이 위험한 거 아세요?”
“응?”
내 질문에 의아한 표정을 짓는 로젤리아.
프랑트 때문에 바쁜 건 알겠지만 지금은 이제 우리가 위험하다.
“프랑트에서 흘러나온 놈들이 이쪽으로 달려오고 있어요. 보통 수준이 아니고요.”
“그런 걸 네가 어떻게 아니?”
로젤리아의 의문은 당연히 합리적이었다.
뜬금없이 생도가 와서는 아카데미가 있는 도시로 마수들이 몰려올 거라고 말하면 누가 믿겠는가.
하지만 믿어야 한다.
“누구 보내서 확인해 보세요. 대신 그 사람한테 조심하라고 하시고요. 자칫 잘못하다간 죽을 테니까.”
“……알고 있단다.”
“그러니까 어서…… 네?”
말문이 턱 하고 막힌다.
지금 로젤리아 학장이 뭐라고 한 거지?
“알고 있다고요?”
내 말에 로젤리아는 피로를 참지 못하고 눈가를 꾹꾹 누르며 짙은 한숨을 내쉰다.
몇 번이나 봤던 광경이지만 지금은 진심으로 나이트 아카데미 학장이 된 걸 후회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아, 도대체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았는지. 네가 뭘 숨기고 있는 건지 정말 궁금하지만 그걸 따지고 들 시간이 없구나.”
“그럼 어떻게 하실 건데요?”
로베르담으로 밀려오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면 대응책을 마련하고 있었으니 그렇게 골머리를 썩고 있었던 거겠지.
하지만 그녀의 표정은 꽤나 심각했다.
“도망칠 생각이지.”
“네?”
너무나 뜬금없는 선언에 나도 모르게 되묻는다.
하지만 로젤리아 학장의 생각은 확고했다.
“이미 경비대랑 시장님이랑도 다 얘기가 끝났단다. 오늘 바로 알려서 최대한 빠르게 로베르담을 버리고 떠날 거니까 너도 준비하렴.”
“아니,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분명 상대가 강하다는 건 맞지만 그렇다고 제대로 대응도 안 해보고 꽁지 빠져라 도망치는 게 맞아요?”
내가 생각했을 때는 전혀 받아들일 수 없는 방식이었다.
분명 위험하고, 어렵겠지만 이들에겐 내가 있다.
정확히는 나와 기사단이 있다.
정말 최악의 상황이 된다면 정체를 숨길 생각하지 말고 그냥 싸울 수 있단 말이다.
하지만 학장의 표정은 여전히 어두웠다.
그녀가 두려워하고 있는 건 단순히 흑기사들만이 아니었다.
“프랑트가 함락됐단다.”
“……예?”
너무 황당한 소식에 입이 떡 벌어진다. 왕국의 수도가 함락되었다?
‘힐다도 갔는데?’
정작 힐다는 아직 역소환되지 않았다. 설마 패배해서 돌아오고 있는 중일까?
순간적으로 여러 불안점이 떠오르며 등줄기에 오싹함이 올라왔다.
마나는 계속 사용하고 있었다.
멀리 있어서 마나의 연결이 끊기는지라 많은 양을 보내주진 못하지만 분명 마나를 일정량 쓰는 중이었다.
당혹스러워하는 나를 두고 로젤리아 학장은 말을 계속해서 이어간다.
“프랑트에 모였던 대부분의 기사들은 물론이고, 마도병단까지도 전부 피해가 막심해. 가까스로 후퇴하는 중이라고는 하는데…… 다시 전력을 가다듬기 위해서는 시간이 많이 필요하겠지.”
생각 이상으로 상황이 급박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여유롭게 행동해왔던 내 자신을 질타하며 묻는다.
“그래서 후퇴하는 겁니까? 시민들을 전부 데리고?”
“우리 후방에 있는 프롤라인 성으로 이동할 생각이란다. 그쪽은 아무래도 방비가 좀 될 테니까.”
“…….”
“상대의 전력이 가장 적은 지금이 아니면 빠질 수 있는 시간이 없을 수도 있으니까. 시민들의 안전은 지켜야지.”
프랑트가 함락되었으니 그 안에 있던 대악마의 군세들이 쏟아지듯 왕국 땅을 점거하며 밀려올 것이다.
거대한 마수의 파도가 밀려오기 전, 발을 뺄 수 있는 타이밍을 잡았다는 소리였다.
‘틀린 말은 아니야.’
괜히 흑기사들과 싸우다가 시간이 끌려서 후속 부대가 도착하면 시민들이 도망칠 수 있는 기회가 없어진다.
마수들은 군인과 민간인 상관없이 똑같이 죽이고 먹어치우니까.
“명확해야 할 건. 우리는 교육자이지 군인이 아니며, 너희는 생도이지 기사가 아니라는 거야.”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뻔히 보인다며 로젤리아는 부탁해왔다.
“괜한 짓 하지 말렴. 그냥 가만히 있어. 네가 대단한 생도인 건 알고 있단다. 몇 년만 있어도 분명 뛰어난 기사로 이름 날리겠지.”
로젤리아는 진심으로 나에게 부탁하고 있었다.
몸을 낮추고, 고개를 숙이며 이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참담한 심정을 이해해 달라며.
“그러니까 그때까지만 우리가 너를 지킬 수 있게 해줘. 프롤라인 성으로 가면 다른 도시에서 온 전력들과도 합류하게 되어 있어. 왕국 전선의 중심이 될 장소야.”
“…….”
“알았지? 이안 아이넬. 내 말 들어.”
그녀의 말에 나는 입을 꾹 다물고 몸을 틀었다. 여기서 내가 뭔 짓을 해도 어차피 얘기를 들어주지 않을 거다.
기사단을 소환하든, 라인 레이먼드라는 걸 밝히든.
뭐든 간에.
결국 나는 그녀의 생도였고, 또한 도시 시민들의 목숨이 걸린 문제를 나 한 사람을 믿는 걸로 떠넘길 수는 없으니까.
그대로 밖으로 나온 나는 발걸음을 재촉한다.
‘놈들은 나를 찾아서 오는 거라고 했어.’
내가 로베르담에 있는 걸 확신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흑기사 다음으로 후속부대가 도착한다면 어차피 로베르담에서 버티긴 힘들다.
결국 내가 할 일은 하나였다.
시민들과 아카데미에 머무는 생도, 학도들이 도망친다면 나는 그들을 위해서 시간을 벌어줄 생각이었다.
* * *
“어이구, 이게 무슨 일이야.”
태도를 허리춤에 걸친 채로 가방을 맨 마리아는 어처구니없다면서 긴장감 없이 중얼거린다.
마수들이 침공한다면서 로베르담을 떠나 프롤라인이라는 성으로 향한다.
예전 대악마 시절에도 요새로 쓰였다는 프롤라인 성으로 도시의 시민들까지 대규모로 이동하는 걸 보면 확실히 보통 일은 아니었다.
소문이 돌기로는 프랑트가 대악마에게 함락당했고, 대부분의 기사단과 마도병단이 패배하고 후퇴하는 중이라고 들었다.
“언니들은 어떠려나.”
레이로즈 가문의 적장미 기사단까지도 패퇴했는지 확인이 되진 않았지만 분명 껴있겠지.
하지만 마리아는 별 걱정 하지 않고 있었다.
자신의 억척스러운 언니들이 죽었을 것 같지는 않고, 만약 죽었더라도 싸우다 죽었으면 호상이라고 생각했으니까.
“프롤라인 성으로 가면 우리도 싸우겠지?”
마리아의 질문에 다이니는 뭐 그렇게 당연한 걸 말하냐고 대꾸했다.
“그럼 놀겠니. 기사 생도가 됐으면 이런 상황도 당연히 생각해야지.”
생도들.
특히나 1학년들 중에는 아직 자신들은 준비가 안 됐다며 겁에 질린 아이들이 많았다.
여러 사건사고를 거치며 성장했기에 다소 무딘 반응을 보이는 2학년과는 확실히 차이점이 있었으며 선배로서의 위엄을 뽐내는 중이었다.
그때 허겁지겁 달려온 분홍머리카락의 소녀, 샬롯.
그녀는 로베르담 밖을 나서고 있는 생도들 무리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묻는다.
“이안 봤어?”
“이안?”
“남자 쪽에 있겠지.”
뭔가 싶어 두 사람이 대답하자 샬롯은 다시금 표정이 어두워지며 말했다.
“이안이 안 보여. 베런이랑 벨레스가 찾고 있는데도 없어. 헥토르 교수님도 찾고 있어.”
“…….”
그 말을 듣는 순간 마리아는 곧바로 몸을 돌려 로베르담 쪽으로 걸어가려 했으나.
“어디 가.”
다이니가 그 앞을 막아선다.
“몰라서 묻는 건 아니지?”
비아냥거리며 답하는 마리아.
“이안이 무슨 화장실 가서 깜빡하고 안 왔겠냐? 여기 없는 거 보면 걔 지금 혼자서 싸우겠다고 간 거잖아.”
“그래서?”
“하, 그래서?”
당장이라도 태도를 뽑을 듯 흉흉한 분위기.
마리아는 성큼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답했다.
“가서 같이 싸워야지. 꼴에 부장이라는 명패를 달고 있는 놈인데 이대로 그냥 둘 거야?”
“…….”
마리아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는 다이니였다. 자신 역시 바로 이안이 있는 장소를 향해 달려가 그의 등을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네 실력으로?”
다이니를 지나치던 마리아의 고개가 홱 돌아간다.
그녀의 걸음이 멈추며 다시금 맹렬한 적의를 쏟아내는 마리아.
하지만 다이니는 표정의 변화 하나 없이 냉담하게 말했다.
“엊그제 해골 기사 기억나? 내 감이 맞으면 지금 이안은 그런 놈들이랑 싸우러 건 거야.”
마몬의 기운이 몸에 담겨 있는 다이니였으니 흑기사가 대악마와 연관이 있다는 건 그녀도 알아차렸었다.
당시 이야기가 나오자 입이 꾹 다물어진 마리아.
베런과 벨레스 그리고 마리아가 같이 덤벼들었음에도 처참하게 패배했으나.
정작 이안 아이넬은 혼자서 너무나 간단하게 처리했기에.
다른 생도들과 이안의 수준 차이를 확실하게 실감하게 되는 시간이었다.
“그냥 가만히 있어. 이안이 우리한테 아무 말 없이 간 거면 우리 도움이 필요하지 않다는 뜻이야. 그게 아니면…….”
침을 꿀꺽 삼키며 다이니는 잠시 뜸을 들인다. 다른 두 소녀의 시선이 그녀의 입술에 모여들었고.
결국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방해되거나.”
“…….”
“…….”
말은 날카롭게 소녀들을 찌르고 들어갔다.
마리아와 샬롯뿐만 아니라 그걸 직접 내뱉은 다이니도 혀에서 알알함이 느껴졌다.
자신들의 은인이나 다름없는 소년이 싸우고 있건만 결국 어떠한 도움도 줄 수 없다.
이유는 명확했다.
약하니까.
“화나네.”
검자루를 강하게 쥔 마리아였으나 발걸음은 움직이지 못했다.
이안의 방해가 될 수도 있다는 부분이 그녀에겐 패배나 죽음보다 치욕스럽게 다가왔다.
그래.
결국 그녀들이 할 수 있는 건 이안이 무사히 돌아오길 바라는 것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