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ight Summoner of the Knights Academy RAW novel - Chapter 210
210화.
나를 사이에 두고 대화를 나누는 두 대악마는 꽤나 당돌했다.
인류를 지키겠답시고 300년 후까지 날아온 기사단과 나를 앞에 두고 자기들끼리 뭔가 가능할 거라 얘기하는 걸 보면 차오르는 감정은 기묘했다.
어이없다고 해야 할까.
분명 그들이 말하는 게 단순 허세라고 볼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음에도.
이쪽을 과할 정도로 무시하고 있는 모습들을 보고 있자니 기분이 나쁜 수준을 넘어 어이가 없었다.
“지들끼리 난리 났네. 줄 생각도 없는데 너희끼리 뭐 하냐.”
“주제도 모르고 함부로 끼어드는구나.”
다 왔다고 생각했던 게 나 때문에 막힌 것에 화가 났는지 사탄의 목소리에 노기가 순식간에 들어찼으나.
오히려 화는 이쪽에서 내야 하는 거였다.
“너희야말로 대륙을 맘대로 할 수 있다고 말해대는 게 주제를 모르네.”
지금 누구를 앞에 두고 그런 말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는 걸까.
“300년 전에 마몬이 누구한테 졌는지 기억 못 해?”
“…….”
내 말에 입을 꾹 다무는 두 악마. 오랜만에 통쾌한 감정이 물밀 듯이 쏟아져 온다.
특히나 마몬 같은 경우는 당장이라도 나를 찢어발기겠다며 으르렁거리는 게 오히려 내게는 더 우습게만 느껴졌다.
“천사니 뭐니 원한을 가지고 있다는 건 잘 알겠는데. 어차피 나한테는 너희나 그놈들이나 똑같아. 대륙을 위협하는 괴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소리지.”
다시금 검을 쥔다.
천천히 하지만 분명하게 사탄을 향해 겨누자, 놈의 눈가가 꿈틀거렸다.
방금 전, 나와 검을 겨루던 때와는 다르게 지나친 오만 속에 파묻혀 검조차 제대로 들지 않고 있었다.
그 이상의 대화는 없었다.
주변의 마수들을 막아주고 있는 기사단원들을 생각해서라도 싸움을 길게 끄는 건 좋지 못한 판단이었으니까.
곧바로 놈을 향해 검을 휘두르며 앞으로 나아가자, 사탄은 손을 들더니 나의 검을 막아 세운다.
쿵!
성검의 예리함이 먹히지 않았다. 놈이 끼고 있는 두꺼운 갑옷에 약간의 피해만 줬을 뿐.
생체기를 내지는 못했으나, 투구 안에 있는 사탄의 반응이 미묘하다.
“크음!”
당황했다는 게 목소리에서부터 티가 나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나 때문에 그런 건 아니었다.
‘로만인가?’
녀석이 곧장 사자의 검을 휘두르려 했으나 그때마다 뭔가 턱 걸린다는 듯 제대로 움직이지를 못한다.
나 역시 마몬과 몸의 주도권을 두고 사투를 몇 번이나 벌여왔던지라 저 기분과 느낌을 잘 알고 있었다.
“적, 당히! 해라!”
대악마조차도 거슬리게 만드는 로만의 집념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놈은 저항하면서 억지로라도 나와 싸우려 들었으나 계속해서 검은 궤도를 잃고 다른 방향으로 휘둘러진다.
어찌 보면 추억이라고 해야 할까. 마몬 때문에 전신이 구속된 상태로 제국을 돌아다니던 때가 문득 떠올랐다.
하지만 이렇게 여유를 부릴 수는 없었다.
“고맙다.”
난적이 되었을 사탄이 제대로 싸우지 못하고 있다. 그 기회를 놓쳐서는 로만의 노력에 먹칠을 하는 거겠지.
곧바로 앞으로 치고 들어 검을 휘두른다. 싸움이라고 부르기도 뭐한, 일방적인 연격을 쏟아낸다.
갑옷 자체가 워낙 단단했던지라 성검이 제대로 박혀들지는 못했으나, 그것도 처음 잠깐이었을 뿐.
검이 계속해서 때려 박히자 결국에는 놈의 갑옷도 금이 갈 수밖에 없었고.
어느새 파편들이 바닥에 떨어지며 검은 진흙처럼 녹아내리고 있었다.
‘단순한 갑옷은 아닌 것 같긴 했지.’
마몬의 아르가스처럼 사탄이 입고 있는 갑옷도 성물이었던 모양이다.
어쨌든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검을 휘두른다.
“크아아아아!”
제대로 된 힘도 사용하지 못하고 두드려 맞는 상황 자체가 억울하고 답답했는지 결국에는 사자의 검을 내던진다.
그게 뭔가 영향이 있나 싶었는데, 의외로 그때부터 사탄의 움직임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검을 쥐고 있는 동안은 기사로 있겠다는 로만 나름대로의 노력이 엿보이는 장면이었다.
그대로 녀석이 떨어뜨린 300년 전 내가 사용하던 검을 쥔다. 사탄의 기운이 넘실거리며 주인을 알아보지 못했으나.
성검 때와 마찬가지로 탐욕스러운 마몬이 검에 묻은 사탄의 기운까지 집어 삼키며 다시 주도권을 가져왔다.
쿵!
양손에 쥔 검을 그대로 바닥에 찍는다. 둘 다 한 손으로는 휘두르기 힘든 장검이었던 탓에 준비가 필요했다.
어깨를 타고 흐르는 마나가 손끝에 닿아 멋들어진 문양을 만들어 낸다.
보조마법의 경우 강화하는 범위가 좁아진다면 그 위력이 증폭되는 만큼.
이번에는 내 양손에만 근력을 증가시키는 마법을 걸었고.
푹!
다시 검을 뽑았을 때, 두 자루의 명검은 내 손에서 자유자재로 휘둘러지고 있었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그대로 다시 사탄을 향해 나아간다.
얼추 자세를 잡은 녀석은 검을 버린 대신 전신에서 짙은 검은빛의 기운을 뿜어대며 나를 맞이했다.
지금까지는 로만 레이먼드의 방식으로 싸웠다면 이제는 진짜 사탄이 스스로 싸우려 한다는 게 뒤바뀐 공기를 통해서 느껴졌다.
마몬과는 다른.
차가우면서도 날카로운 한기와 같은 살의가 나를 향해 쏘아졌다.
대악마들을 상대하면서 느꼈던 것들 중 가장 의문이 드는 건.
도대체 저들은 무엇 때문에 이리도 분노를 품고 있으며 그걸 왜 대륙에 풀려고 하는지 모르겠다는 점이었는데.
사탄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디서부터 끌어 오르는 건지 모르겠는 형언할 수 없는 분노.
여기서 내가 가장 가까운 방패로서 놈을 막지 않는다면, 수많은 마수를 이끌고 대륙을 향해 전진해 나아가겠지.
꾸득.
검을 쥔 양손에 다시금 힘이 들어간다. 의도치 않게 짊어지게 된 사명감은 다소 무거우나 그렇기에 쓰러지지 못하게 나를 지탱한다.
“로만.”
나지막이 그의 이름을 불러본다.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흉흉한 사탄의 눈초리만이 쓸데없는 말이라며 대꾸해 왔으나.
그래도 나는 계속 입을 열었다.
“내가 여기서 놈을 쓰러트린다면, 네가 도와준 덕분이야.”
사탄의 갑옷이 이제는 제 역할을 하지도 못할 정도로 망가졌으며 놈이 다루던 사자의 검도 빼앗아 왔다.
사실상 놈은 무기를 전부 잃은 상태에서 나와 싸움을 시작했다는 소리였다.
“네가 그랬잖아…….”
“못 들어주겠군!”
사탄이 곧장 움직였다.
로만의 변화를 가장 빠르게 느낄 수 있는 건 녀석이니까,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점을 느끼고 저항하려는 거겠지.
하지만 맨손이 되어버린 놈의 주먹 정도는 검을 교차로 들어 올리며 막아냈다.
무게감이 상당했기에 뒤로 밀려났으나 딱 그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언젠가 나랑 같은 전장에 서고 싶다고.”
그러니까.
나는 여전히 로만을 향해 말하고 있었다.
이런 방식이길 원하진 않았을 걸 알고 있으나.
어쨌든 우리는 같은 전장에 서서 같은 적을 상대로 두고 있다.
“너 같은 남자가 내 후손을 자처해 줘서 고마웠어.”
“네노오오옴!”
다급하게 사탄이 손을 휘두른다.
날아드는 놈의 손에 담긴 거대한 기운은 망치처럼 위에서부터 나를 찍어 누르려 들었으나.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딱 손만 움직임이 고정된다.
휘두르던 와중 멈춰선 자신의 손을 허망하니 바라본다.
탄식과 분노가 섞인 숨소리가 흘러 나왔으나 바람이 금방 그것을 훔쳐갔고.
양손에 쥔 나의 검은 그대로 사탄의 가슴팍을 찌르며 들어갔다.
푸우우욱!
살이 찢겨나가는 소리가 길게 울려오고, 핏물이 찐득하게 흘러 나와 검을 타고 바닥에 떨어진다.
“이리도…….”
허무하게 쓰러져야 하는가.
그런 의문을 내게 쏟아내는 사탄이었으나 나는 입을 꾹 다문 채로 놈을 올려다본다.
마몬의 기운이 넘실거리며 검을 타고 흘러간다.
“내가 너희를 먹으면, 결국 누구도 부활하지 않은 채로 살아가게 된다는 소리잖아.”
이제야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된 녀석의 손이 다급하게 검 위에 얹어졌으나.
힘이 빠지는지 딱 그것뿐.
그 이상 뭔가를 할 수 있는 힘이 남아있지는 않았다.
결국 의미 없는 저항이라고 볼 수 있었다.
“대악마도 결국 죽을 때는 다 똑같더라.”
나는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눈동자에 담긴 연민을 느꼈는지 사타은 순간적으로 치욕스러워했으나.
마몬의 기운에 잡아먹히는 것 외에는 그가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아쉬워하고 괴로워 해. 야, 다시 태어날 수 있는 너희도 그렇게 힘들어 하는데.”
“마……!”
“다음이 없는 우리라고 오죽하겠냐.”
“마아, 모오온!”
억지로 마몬을 불러대며 자신을 먹지 말라고 발버둥치지만.
동족을 향한 탐욕의 이빨은 어느 때보다 빠르게 놈을 곱씹어댔고.
“마모오오오오온!”
결국 단말마와 같은 비명을 내뱉으며 사탄은 점차 사라졌다.
“충분히 영웅적인 싸움이었다, 로만.”
이제는 무엇도 남지 않은 사탄이 있던 장소를 내려다보며 잠시 눈을 감았다.
짧은 묵념을 끝내고 주변을 확인하자 머리를 잃은 마수들은 다시금 짐승으로 돌변해서는 도망치고 있었다.
아마 산이나 숲, 동굴 같은 곳으로 기어들어가서는 야생 속에서 살아가겠지.
갑자기 확 늘어난 마수 때문에 한동안은 기사단이나 마도병단은 마수 토벌에 집중할 수밖에 없을 거다.
은빛사자의 단원들은 내 쪽으로 천천히 모여들고 있었다.
슬쩍 아카데미 쪽을 확인하자 거기서도 생도들과 윤이 웃으며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끝났나.’
순간적으로 확 안도감이 차올랐다.
왕국을 궤멸시킬 수도 있었던 대악마를 다시금 토벌해 냈다.
로만 덕분에 손쉽게 이길 수 있었지만 정작 사탄과 싸우러 가는 길 자체가 상당히 험난했다.
‘피곤하네.’
일단 좀 씻고 자고 싶었다.
아카데미에서 농성하는 동안은 밖에 마수가 있으니 쉬어도 긴장을 놓을 수 없었으니까.
“단장, 회식은 언제 합니까?”
피범벅으로 튀어 나와서는 거슬리는 소리를 해대는 도로시를 보자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덕분에 끝났다는 게 다시금 실감이 났다.
“나중에. 한번 거하게 먹어야지.”
내 말에 다들 기뻐하며 환호성을 질러댔다. 단순히 회식을 해서 좋은 게 아니라 대악마의 군세를 몰아냈고, 다시 대륙을 지켜냈다는 게 모두에게 큰 기쁨으로 다가왔다.
새벽이 물러가려는 걸까.
햇볕이 따스하게 내리쬔다.
따사로운 하얀 빛을 받으며, 나는 오늘이라는 하루를 지켜냈다는 것에 만족하며 천천히 고개를 들었고.
하늘은 여전히 어두웠다.
먹구름이 껴 있으며, 아직 일출이 시작되기에는 다소 이른 시간이었다.
“어?”
상황이 제대로 인지가 되지 않는 느낌이었다.
날은 어두우며, 아직 해도 뜨지 않았건만.
나를 향해 내리쬐는 온기가 담긴 빛은 노골적으로 존재감을 과시한다.
“아…….”
피로감 속에서 흘러나오는 탄식이었다.
무슨 상황인지 유추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프랑트 성에서도 이미 이런 적이 한번 있었으니까.
아직 쉬기에는 이르다고 내게 말해주는 빛 무리. 점차 내리쬐는 빛의 숫자가 늘어나더니 곧이어.
하늘에서 쏟아지는 천벌처럼, 우리가 서 있는 땅을 무자비하게 두들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