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ight Summoner of the Knights Academy RAW novel - Chapter 3
3화.
300년 전 은빛 사자 기사단의 위명은 어마어마했다.
은빛 사자 기사단의 위업을 전해들은 왕국민들은 입을 모아 외쳤다.
왕국의 자랑이라고.
당신들이 우리를 지키는 철의 방패라고.
왕국을 지키는 성벽 위의 짐승이라고.
자신을 샬롯 일레인이라 소개한 아이를 보고 있자니 옛 생각이 무럭무럭 솟아올라 왔다.
마차의 창틀에 팔꿈치를 얹고 턱을 괴고 있으니 이런저런 옛 생각이 더 몰아쳐 오는 거 같았다.
“나이트 아카데미에는 왜 가는 거야?”
벌써 닭꼬치만 3개째 먹고 있는 샬롯을 보며 묻자 그녀는 당황했는지 잠시 입가에 묻은 소스와 부스러기를 손수건으로 닦고선 답했다.
“뻔한 걸 왜 물어? 당연히 기사단에 들어가기 위함이지.”
지극히 당연한 대답.
나는 그 이상의 것을 물었던 거지만 제대로 답해줄 생각은 없어 보였기에 조금 질문의 방향을 돌려봤다.
“그럼 어떤 기사단을 희망해? 은빛 사자?”
솔직히 이걸 물을 때는 가슴이 조금 콩닥거렸다. 우리 기사단에 들어오고 싶어 하진 않을까 싶어서.
그러나 샬롯 일레인은 잔뜩 인상을 찌푸리며 대꾸했다.
“미쳤니? 거길 왜 들어가.”
“…….”
“300년 전에야 명문이지 지금은 그냥 잡졸들이 모여 있는 곳이잖아.”
틀린 말이 아니다.
나 역시 현 은빛 사자 기사단의 위치를 잘 알고 있었으니까.
내가 죽은 이후, 은빛 사자 기사단원들은 대규모 은퇴를 했다고 한다.
믿을 수 없었지만 어쨌든 모든 단원이 검을 놓고 사라졌다고 역사서에 적혀 있었다.
1개 기사단만으로 마몬의 군세를 이겨낸 명망 높은 기사단을 그냥 해체시킬 수는 없었기에, 당시 왕은 억지로 기사들을 긁어모았다.
질이 안 되면 양으로.
이는 소수 정예를 추구하던 예전과는 정반대의 방향성이었고, 은빛 사자에는 정말 별의별 기사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게 지금의 은빛 사자 기사단이 누구나 들어갈 수 있되, 누구도 가고 싶어 하지 않는 기사단으로 전락한 이유였다.
처음에야 은빛 사자 기사단이라는 이름값에 혹해서 들어오는 기사들이 많았다.
하나, 곧 이어진 내부분열은 물론이거니와 갖은 비리까지.
이 이야기를 접한 내 입장에서는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그래서 내가 나이트 아카데미로 가는 거지.’
시간이 지나면 우리의 손을 떠나 빛이 바라는 것이 세상의 순리라지만, 동료들과 함께 쌓아 올린 우리의 기사단이다.
이 내가 두 눈 부릅뜨고 있는 동안 은빛 사자 기사단이 이런 취급을 받는 걸 절대로 그냥 둘 수 없었다.
가족도, 고향도 없던 내게 기사단원들은 나의 가족이었고 기사단은 나의 고향이었으니까.
은빛 사자 기사단이라는 이름을 다시 한번 대륙에 우뚝 세우기 위하여 나는 또 다시 기사가 되려는 것이었다.
“도착했다.”
어느새 마차는 멈췄고, 마부의 무덤덤한 목소리가 들렸다.
“와.”
전생에서의 삶이 있었다지만 이번 생에는 시골에서만 살아왔다.
자그마치 300년이나 지난 만큼 많은 것이 발전했을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으나 그뿐이었다.
상상과 직접 그 광경을 보는 건 완전히 별개의 문제였다.
대륙에서도 손에 꼽히는 기사 육성소인 나이트 아카데미는 보는 순간 입이 쩍 벌어졌다.
단순히 광활하다는 말이 어울리는 모습 때문만은 아니었다.
건물의 높이부터 시작해서, 그 너머로 보이는 설비들까지 그 수준이 보통이 아니었다.
개인적으로 검에 관해 배울 건 없겠으나, 검에만 몰두한 젊은이들이 얼마나 독창적이고, 창의적인 검을 보여줄지 하는 기대감에 설레는 마음마저 들었다.
입구에는 거대한 기사의 동상이 우뚝 솟아 있었는데, 바로 옆에 같은 재질로 만들어진 마법사의 동상도 서있었다.
“저기가 메이지 아카데미구나.”
나이트 아카데미가 기사들을 육성하기 위한 장소라면, 메이지 아카데미는 그 반대였다.
저곳은 오롯이 마법사를 육성하기 위한 장소.
두 아카데미는 이렇게 딱 달라붙어서 선의의 경쟁을 하고 있었다.
메이지 아카데미 쪽 역시 오늘이 입학식이라 그런지 인파가 넘쳤다.
“근데 얘네는 왜 안 들어가고 있어?”
마법학도들이 마차에서 내렸음에도 메이지 아카데미에서 정문을 열어주지 않아서 학도들이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자 닭꼬치를 얻어먹은 값이라도 하겠다며 옆으로 다가온 샬롯 일레인이 한차례 헛기침한 후 독백하듯 설명한다.
“메이지 아카데미의 전통이지. 이제 곧 진귀한 걸 볼 수 있을 거야. 그래서 나이트 아카데미 쪽 애들도 안 들어가는 거고.”
“으음?”
진귀한 걸 볼 수 있다?
어쩐지 나이트 아카데미로 발걸음을 옮기던 애들도 메이지 아카데미 쪽을 힐끔힐끔 쳐다보고 있었다.
뭔가 재밌는 구경을 할 수 있는 건가 했는데, 딱 마침 메이지 아카데미의 문이 열리며 절도 있는 움직임으로 교수진이 걸어 나왔다.
위압감 넘치는 모습.
나이트 아카데미 쪽은 뭐 없나 기대될 정도로 메이지 아카데미 쪽에서 꽤나 멋들어진 첫인상을 주었다.
그러길 잠시, 메이지 아카데미의 교수진이 지팡이를 뻗었고.
학도들 중 몇몇에게서 푸른빛이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푸른빛에 휘감긴 학도들은 마치 선택받았다는 듯 환한 미소를 지으며 주먹을 쥐거나, 당연한 결과라는 듯 팔짱을 꼈다.
“이런 식으로 교수들이 학기 시작도 전에 신입생들 중에서 원석을 골라내는 거야. 비록, 마나의 양만을 판별할 뿐이지만 마법사에게 마나의 양은 절대적이니까 사실상 지금 푸른빛을 띠는 녀석들이 수석이 될 가능성이…….”
생각보다 말이 많은 샬롯 일레인.
우리 막둥이였던 넬슨을 떠올리니 이런 부분도 좀 닮은 듯하다.
그 녀석은 술이 들어가면 말이 많아지는 편이었으니까.
뭐, 어쨌든.
“어? 어?”
무슨 상황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놀란 눈으로 어벙하게 나를 바라보는 샬롯.
그런 그녀를 보며 난 스스로를 손가락으로 가리키고는 물었다.
“이건 무슨 경우냐.”
전신에 새겨지는 은은한 푸른빛.
메이지 아카데미 수석 예정자들에게 나타난다는 푸른빛이 나의 몸에도 떠오른 것이다.
“아니, 어? 이게 뭐야? 너 메이지 아카데미 쪽 입학자였어?”
바보 같은 소리를 하고 있는 샬롯에게 나는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
“너랑 같이 나이트 아카데미 마차 타고 왔는데 무슨 소리냐.”
“그렇긴 한데…… 이거 뭐지? 잘못됐나? 아니, 그것보다 잠깐만.”
샬롯은 갑자기 호들갑을 떨며 나에게 말했다.
“이, 일단 뭐라도 잡아! 메이지는 능력우선주의라서 아마……!”
샬롯의 말은 계속해서 이어지지 못했다. 왜냐면 이미 내 몸이 하늘을 붕 떠서 메이지 아카데미 입구로 날아가고 있었으니까.
신묘한 경험이었다.
전생에 경험한 부유마법은 기본적으로 과격한 경향이 있었다.
마치 힘 조절을 잘 못 하는 거인이 갑자기 낚아챈 후 휙 놓아 버리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이 시대의 부유마법은 차원이 달랐다.
하늘을 침대에 비교해도 될 정도로 부드러운 부유감.
가볍게 내려서자 메이지 아카데미 앞에 다른 원석들과 함께 서게 된 나.
마법으로 나를 데려온 교수들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길을 터줬다.
“메이지 아카데미는 늘 재능과 능력 있는 자가 우선시된다. 그렇기에 이번 기수 중 당장에 가장 큰 재능을 보이는 이 다섯 사람이 아카데미에 첫 발을 내딛게 될 것이다.”
다섯 사람은 메이지 아카데미가 마법사 꿈나무들에게 보내는 첫 번째 메시지였다.
지금 뽑힌 다섯 명은 가장 마나량이 높기에 아카데미로 먼저 들어오는 영광을 얻게 되었다.
능력 있는 자는 그에 걸맞은 대우를 받게 해주겠다는 의미.
메이지 아카데미가 재능과 실력만으로 모든 것이 결정하는 아카데미라는 건 알고 있었으나, 시작부터 이렇게 단호한 차별을 둘 줄은 몰랐다.
문제는….
“저기요, 저는 메이지 아카데미 쪽 학도가 아닌데요.”
“응?”
교수 중 하나가 어벙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본다.
* * *
메이지 아카데미의 교수 중에서도 가장 오랜 기간을 근무해 온 알프레도는 이번이 무려 서른두 번째로 맞이하는 입학식이었다.
젊고 재능 있는 학도들을 받아들인다. 32년 동안 해왔던 일이지만, 그럼에도 이 작업은 늘 뿌듯했다.
앞으로 무럭무럭 자라날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마법사들.
그리고 그런 원석들을 깎아내는 자신의 역할. 알프레도는 자신의 천직이 마법사가 아닌 교수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마법에 재능이 있어 남들을 가르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게 감사할 정도.
메이지 아카데미의 첫 선발작업은 솎아내기였다.
마나량이 뛰어난 학도 다섯을 선발해서 먼저 아카데미에 받아준다.
누군가는 차별이라고 말할 수 있었으나, 이건 메이지 아카데미의 상징이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학도들의 성장에 불을 지피는 데도 아주 효과적이다.
뽑힌 다섯 명의 학도들은 지금 느낀 압도적인 우월감을 만끽하기 위해서 계속해서 노력한다.
선발되지 못한 아이들 또한 그들에게 질투심과 경쟁심을 불태우며 앞으로의 학업에 더욱 정진한다.
지금 당장에 보라.
자신이 뽑히지 않았다고 분해하는 아이들이 적잖이 눈에 들어왔다.
‘저런 아이들이 결국엔 결실을 맺는다.’
자신의 부족함을 단순히 부족함으로 여기지 아니하고, 치부로서 부끄러워하고 분해한다.
메이지 아카데미의 학도라면 꼭 가져야 할 소양이었다.
“자, 그럼 가자꾸나.”
알프레도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한 소년에게 주목하고 있었다.
‘마나량이 가늠이 되질 않는 아이가 하나 있군.’
은발이라는 흔치 않은 머리색과 더불어 신비한 느낌이 드는 미남.
어떻게 저 나이에 저런 마나를 가지게 되었을까.
적어도 자신이 알고 있는 마도 명문들 중에서는 은빛 머리칼을 가진 곳은 없었다.
한마디로 어디선가 튀어나온 불세출의 천재.
행동거지나 옷차림을 봐서는 평민으로 보였지만 그게 오히려 알프레도의 가슴을 벅차오르게 만들었다.
‘아아! 진흙 속의 진주로구나!’
교수들 중에는 은근히 귀족과 평민을 차별하는 자들이 있으나, 적어도 그는 아니었다.
평민이라면 지금까지 마도에 대해 제대로 배우질 못했을 거다.
그렇다면 기초가 없는 완전한 백지 상태일 것이기에 가르치기 더욱 편할 것이다.
쓸데없는 버릇이나 비효율적인 멋도 없을 테니까.
겉으로는 차분한 척하고 있으나, 사실 오늘 입학하는 신입생들보다 알프레도 교수 본인이 더 흥분한 상황.
‘이번 기수에는 골드먼드부터 시작하여 각 가문에서 천재라 불리는 아이가 많다고 들었거늘 이들을 뛰어넘는, 진짜들 중에서도 진짜가 나와 버렸군!’
가문 내에서 천재라며 치켜세워지던 다른 아이들에겐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미 알프레도의 눈에는 1학년 수석을 누가 차지하게 될지 뻔히 보였다.
눈앞의 아이와 다른 아이들 사이에는 그만큼 어마어마한 격차가 있었으니까.
저런 소년을 성장시키는 데 이바지 할 수 있다는 건 알프레도에게 최고의 축복이나 다름없었으나….
그 소년이 어색한 미소와 함께 자신에게 다가와 속삭였다.
“저기요, 저는 메이지 아카데미 쪽 학도가 아닌데요.”
“응?”
잉어가 입을 뻐끔거리듯 눈을 끔뻑이는 알프레도.
어색하게 웃은 이안 아이넬이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알프레도를 보며 슬쩍 나이트 아카데미 쪽을 가리켰다.
“저는 나이트 아카데미 신입생입니다.”
“……아니,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이 아이가 지금 무슨 착각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마도의 명문 중에서도 명문이라 불리는 가문들이 줄지어 서 있는 가운데서도 우뚝 솟아 올라와 있는 마나량을 보라.
명문가의 피를 잇고 어린 시절부터 각종 영약으로 마나량을 늘려온 명문가 자제들을 뛰어넘는 독보적인 마나량을 가지고 있는 이 아이가 지금 뭐라고 하는 거지?
기사?
지금 기사를 한다고?
이게 무슨 개 풀 뜯어먹는 소리란 말인가!
“어이! 우리 생도한테 무슨 짓이야!”
그때, 얼굴에 험악한 흉터가 있는 덩치 큰 남자가 학도들 사이를 비집으며 알프레도에게 다가왔다.
경비대장이라는 별명을 가진 나이트 아카데미의 교수 헥토르였다.
이맘때는 신입생들 때문에 손이 부족해서 허드렛일까지 직접 한다고 들었는데 오늘은 마차까지 몰고 왔는지 몸에 먼지가 잔뜩 묻어 있었다.
“헥토르? 이 아이가 나이트 아카데미의 신입생이라고?”
믿을 수 없다는 듯 되묻는 알프레도를 보며 헥토르는 망설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내가 오늘 직접 데려온 아이다! 하만 마을의 이안 아이넬! 평민전형으로 입학한 소년이지.”
“아니, 그…… 그럴 수 없네. 이 아이는 고작 검이나 휘두를 그런 재능이 아니야!”
갑작스러운 소란에 웅성거리는 학도들.
함께 뽑혔던 나머지 네 명의 원석들도 아카데미로 들어가지 않고 상황을 관망하고 있었다.
알프레도는 이안의 양쪽 어깨를 붙잡고 격하게 흔들며 외쳤다.
“소, 소년! 자네는 지금 큰 실수를 하고 있는 거야. 내 직권으로 메이지 아카데미에 입학하는 걸 허락하겠네. 자네에게는 대마법사가 될 가능성이 있어! 고작 검이나 쥐고 땀이나 흘리는 게 아니라, 손짓 하나로 파멸과 구원을 조율하는 마법사라고!”
“하하…….”
어색하게 볼을 긁적이며 웃는 이안. 그 모습을 보고 알프레도는 거칠게 외쳤다.
“아직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구만! 자네는 300년 전 활약하신 대마법사 힐다 님과도 비견될 정도의……!”
“아, 알프레도 교수님 이쯤하시죠!”
“학도들이 보고 있습니다. 이 무슨 추태입니까!”
결국 다른 교수들까지 나서서 말리기 시작했다.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보니 학도들의 눈도 따갑다.
절대적인 분위기를 뿜어내던 교수들의 이미지가 실시간으로 망가지고 있었다.
결국 교수들에 의해 뒤로 밀려나던 알프레드는 자신의 품에서 마법문자가 적힌 돌을 급하게 꺼내서 건넸다.
“이, 이건 오늘 신입생들이 자신의 마법속성을 찾는 걸 돕기 위해 가져온 감별석이네. 부디, 부디 가져가서 자신의 재능을 확인하게!”
“알프레도 교수님!”
“하, 학도들은 안으로 들어오도록!”
교수들의 지시에 우르르 몰려 들어가기 시작한 메이지 아카데미의 신입생들.
안타깝게도 메이지 아카데미의 전통이라던 입학식은 썩 만족스레 끝나진 않은 듯했다.
그리고 그런 와중에도 계속해서 이안과 눈을 맞추며 소리치는 알프레도.
“잘 생각하게! 자네는! 자네는 자신의 재능을 전혀 모르고 있어! 내가 깨워주겠네에에에!”
다른 교수들에게 질질 끌려가는 알프레도를 보며 이안은 헛웃음을 흘릴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