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ight Summoner of the Knights Academy RAW novel - Chapter 48
48화.
샬롯의 대련이 무사히 끝나고, 나 역시 간단하게 대련을 끝마치고 내려왔다.
크게 어렵지는 않았다.
상대 생도도 내가 대련 상대라는 걸 안 순간부터 기세가 한풀 꺾인 채였기에 쉽다는 생각도 들지 않을 정도로 금방 끝나버렸다.
넬슨이 흥분해서는 샬롯을 잠깐 만나러 가긴 했으나 어쨌든 들키지 않고 잘 넘어갔다.
넬슨은 나랑 같이 샬롯의 초창기를 봤던 유일한 단원인 데다 자신의 후손이기도 하니까 감회가 새로웠겠지.
나만 해도 결과를 예상하곤 있었음에도 샬롯이 압도적으로 이기는 걸 보며 괜히 흐뭇했으니까.
“나 진짜로 상위권에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아!”
내가 이럴진대 샬롯은 어떻겠는가?
옆에서 쪼잘거리는 샬롯은 한껏 기세가 무르익어 있었다.
중위권에서 조금 높은 수준인 다이니에게도 이겼으니 사실상 샬롯은 대진운만 좋으면 상위권은 확실할 거다.
“와아, 검을 휘두르는 게 이렇게 감동적이었던 건 처음이야. 진짜 너무 재밌다!”
“그래 그래.”
원래 검을 휘두름에 있어, 동기도 중요했다.
누군가를 이기고 싶다는 승부욕이나, 쓰러트려야 한다는 분노 등은 나쁘지 않은 연료이나 금방 연소된다.
보통은 본인 스스로의 성취감이 가장 길게 유지되면서도, 정신건강에도 이롭다.
샬롯이 올바르게 나아가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아직은 은빛사자 기사단에 들어오기에 부족하디부족한 실력이었으나, 3학년이 되었을 때는 누구도 대체하기 힘든 귀한 인재가 되어 있을 거다.
“다음 대진은 어떻게 되는 거지?”
“교수님들이 다시 섞어서 부른다는데?”
이제 모든 생도들의 1차 대련이 끝났으니 승리한 생도들은 다음 대진을 준비하고 있다.
“얼른 했으면 좋겠다!”
양손을 꼭 쥐고 방방 뛰는 샬롯.
검을 휘두르는 재미와 승리의 쾌감을 맛보니, 기대가 되는지 기분이 좋아 보였다.
병아리가 먹이 달라고 삐약거리는 것만 같은 모습.
때마침 다음 대진이 불린다.
따로 대진표가 있는 건 아니고 그냥 대련장과 생도 이름을 불러서 알려주는 형식이었다.
“1번 대련장. 에디 브릴리언이랑 베런 둠베스트.”
“와!”
“빅매치다!”
“두 사람 중 하나가 여기서 떨어진다고?”
벌써부터 생도들의 탄성이 터져 나온다.
내가 봐도 비등한 두 사람이었기에 누가 승자가 될지 궁금하긴 했다.
“베런이 이기지 않을까?”
“뭐, 아마?”
같이 훈련했던 정이 있어서인지 바로 베런의 편을 들어주는 샬롯.
나도 작게 고개만 끄덕이며 그럴 것 같다 답해줬다.
뒤이어 호명된 내 이름.
두 사람의 대련을 봐야 하니 빨리 끝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쭉 불리는 대련장과 생도들.
이번 순서에는 샬롯이 없나 싶던 찰나, 딱 마지막 대련장에서 샬롯의 이름이 불린다.
“10번 대련장. 샬롯 일레인.”
“와! 와! 나다!”
샬롯이 양손을 번쩍 들고 껑충껑충 뛰어대며 좋아라 했으나….
“마리아 레이로즈.”
“아아아아악!”
바로 그 손으로 머리를 부여잡고는 절망하며 몸을 웅크린다.
* * *
중간고사 대련 자체는 워낙 동시에 여러 장소에서 진행이 되다 보니 오래 걸리진 않았다.
샬롯은 마리아에게 나름의 반항을 해봤으나 결국 패배했고, 둠베스트 가문과 브릴리언 가문의 라이벌 구도는 베런 둠베스트의 승리로 끝이 났다.
상당한 혈전이었기에 베런의 상태가 좋지 않았고, 그 탓에 그는 다음 대진 상대에게 패배했다.
나와 싸우지 못했다며 아쉬워하는 모습은 베런이 드물게도 보여준 감정표현이었다.
결국 대망의 결승전.
예상했던 대로 나는 무난하게 결승전에 올라왔고 상대는 당연하게도 적발의 여생도 마리아였다.
샬롯부터 시작해서 꽤나 많은 난적을 만나왔던 마리아였음에도 입가에는 미소가 그려져 있었다.
“정식 대련은 처음이네!”
내가 메이지 아카데미로 가기 전에 했던 건 정식 대련으로 치지 않는 건가.
뭐, 어쨌든.
마리아는 가슴을 탕탕 후려치며 선언했다.
“전력을 다해서 와라!”
“그래, 그래.”
언제나 그렇듯 단순히 호탕한 여장부의 외침이겠거니 했으나 이번은 그 의미가 조금 달랐다.
마리아의 눈동자가 날카롭게 빛나며 본질을 꿰뚫는다.
“메이지 아카데미에서 배워 온 거 쓰라고.”
“…….”
“네가 거기 가서 뭘 배웠는지. 뭘 깨달았는지. 얼마나 성장했는지. 그걸 체험하고 싶어서 몸이 찌릿찌릿 거린다.”
나는 슬쩍 교수진을 바라본다. 그들은 입을 꾹 다물 뿐 굳이 마리아의 말에 제재를 걸어오지 않았다.
애초에 마법을 쓸 수 없다는 규정은 없지만, 굳이 쓸 생각은 없었는데….
마리아가 저렇게까지 당당히 내 성과를 보고 싶다고 하니, 나는 천천히 마나를 일으켰다.
[거인의 힘]힘을 올려주는 기본적인 보조마법. 기사들이 사용하는 신체강화랑은 조금 다른 개념이었다.
몸에 차오르는 고양감.
부족하던 근력이 확실하게 잡히자 꾸득 하고 쥐고 있는 목검에서 비명을 질렀다.
“보조마법? 그런 방법이 있었구나.”
내가 무슨 불덩이라도 날릴 줄 알았는지 마리아는 짐짓 아쉬워하면서도 또 호탕하니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그래야지. 결국 우리는 검이지.”
그렇게 대련이 시작되고.
우리 둘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바로 치고 들어왔다.
원래였다면 마리아의 근력을 이기지 못해서 정면대결은 꺼려지는 부분이었으나.
마법을 통한 근력의 상승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빠드득!
우리 둘의 목검이 맞부딪치고, 속절없이 부러지는 마리아의 목검.
주변에서는 그걸 보곤 깜짝 놀라서 탄성을 내뱉었으나, 오히려 정말 놀란 건 나였다.
마나에 마몬의 기운이 섞여서 그런지 기본적인 보조마법조차 효율이 심상치 않았다.
하지만 마리아는 이미 예상했다는 듯 검이 부딪치는 순간, 검을 놓고 몸을 숙인 상태였다.
눈동자에서는 이글이글 타오르는 승부욕이 겁화가 되어 나를 향해 쏟아져 왔다.
단순히 검을 휘둘러서는 이길 수 없다. 내가 상상하지 못하는 방식으로 찌르고 들어오겠다는 의지가 보였다.
웅크렸던 마리아가 몸을 일자로 펴면서 그대로 머리로 달려든다.
박치기를 시도한 마리아의 무식하면서도 유연한 사고방식에는 놀라긴 했다.
웬만한 생도라면 다들 제대로 반응도 못하고 쓰러졌겠으나, 안타깝게도 나는 그 부류에 들어가지 않았다.
반대 손으로 마리아의 머리를 그대로 막아 세운다.
보조마법으로 힘을 늘린 덕분에 크게 어렵진 않았다.
마리아 역시 눈을 부릅뜨며 당황한다.
“샬롯한테 배웠냐?”
내가 한숨을 내쉬며 그녀에게 묻자, 마리아는 짜증 난다며 주먹을 휘둘러 보지만….
결국 검을 포기하고 올인 전략을 걸어온 마리아였기에 이후는 무기력할 수밖에 없었다.
정공법으로는 나를 이길 수 없다는 걸 알았기에 일부러 움직임이 유연한 샬롯에게 여러 가지 배웠던 듯하다.
내가 없는 일주일 동안, 마리아도 나름대로 성과를 내려고 노력했구나 싶어 괜히 대견해 보였다.
“아 씨.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투덜거리면서 주머니에 손을 푹 찔러 넣는 마리아.
그 모습을 본 교수가 내 승리를 선언하며 중간고사는 막을 내렸다.
* * *
중간고사 성적표를 마무리 점검하던 A반 담임 젠트 교수는 미묘한 표정을 짓는다.
1학년 게시판에 걸어야 할 정도로 커다란 크기의 성적표. 상위 100명만 나오고 나머지는 개별 통보가 된다.
그런데 보다 보니 문득 묘한 기시감을 느꼈다.
교수 일을 그렇게 오래 한 건 아니지만 뭔가 싶어서 하나둘 명단을 확인하기 시작한다.
“뭐 하세요?”
교무실이었기에 다른 교수들에게도 당연히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역사학의 에밀리 교수가 슬쩍 젠트를 보며 묻자 그는 허허 하고 웃으면서 답한다.
“아뇨, 이번 기수가 참 신기한 것 같아서요.”
“이번 기수요?”
슬그머니 석차표를 훑어봤으나 에밀리 교수는 딱히 이상한 점을 느낄 순 없었다.
굳이 꼽자면 평민 출신의 이안 아이넬이 수석을 차지하고 있다는…….
“어?”
사고가 꼬리를 물고 자연스럽게 이끌리기 시작한다.
모든 생도들을 기억하고 있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귀족 가문 출신인 생도들의 이름 정도는 대강 인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100위권 안에 든 생도들 중 생소한 이름들이 꽤 있었다.
자신과 같은 수순을 밟으며 무언가 이상함을 알아차린 에밀리 교수를 향해 젠트는 쓴웃음을 지으며 설명했다.
“평민 출신들이 꽤 많죠? 비율로 따지면 4 분의 1 정도인데. 작년에는 100위 안에 평민이 손에 꼽을 정도였던 걸 생각하면 신기하죠.”
“그러게요.”
“특히나 C반 출신이 몇 있어요. C반이라고 따로 훈련을 열심히 하는 것처럼 보이진 않았는데 말이에요.”
그 말에는 에밀리도 동의했다.
모든 반을 아우르며 강의를 하는 에밀리 교수는 C반이라고 크게 차이점을 느끼지 못했다.
“그렇다고 C반 모든 생도가 전부 올라온 건 아니에요. 일부 생도들이 치고 올라온 거라서.”
뭔가 공통점이 있나 싶어 흥미를 가지고 분석하는 젠트 교수.
젠트 교수에게 이런 분석적인 면모가 있었구나 감탄하면서도, 에밀리 또한 이유가 뭘까 궁금해 관심이 갔다.
단순히 C반의 성장폭이 높을 뿐이지, B반과 A반의 평민 출신들의 성적이 낮은 것도 아니다. 그들도 100위권 내에 대거 위치해 있다.
이런 걸 보면 학급의 차이는 아닌 것 같은데.
‘이안 아이넬을 보고 자극이라도 받은 건가?’
그렇게 따지기엔 또 귀족 생도들이 놀고 있던 건 아니다.
오히려 이안을 따라잡으려 더 악을 쓰는 귀족 출신들이 많았으니까.
현장을 보고 추리하는 탐정처럼 두 교수는 어느새 자신들의 생각에 심취해 있었는데….
정답은 젠트 교수가 발견했다.
“아. 체험실습인가?”
그 말을 하며 곧장 기사단 체험실습 명단표를 가져온 젠트는 슬그머니 미소를 짓는다.
정답을 맞췄다는 사인.
“아아! 맞네요. 성적이 가파르게 오른 생도들 대부분이 같은 기사단으로 체험을 갔네요.”
에밀리 교수도 어디 한번 보자면서 명단표를 확인한다.
그리고 그 기사단은….
“은빛, 사자네요?”
어벙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는 두 교수.
늘 말도 많고, 탈도 많아 생도들 사이에서 절대 가면 안 되는 기사단 1순위로 꼽히는 은빛사자.
“음?”
“어엄.”
두 교수는 의아한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봤다.
뭔가 풀린 것 같으면서도 풀리지 않은 찜찜한 기분만 남긴 채로.
* * *
“난 망했어어어!”
발라당 자빠져서는 바닥을 기고 있는 샬롯은 양손으로 얼굴을 부여잡은 채로 스스로를 자책하고 있었다.
상위권을 노렸던 샬롯은 천적이던 다이니에게 이겼으나, 결국 마리아를 만나서 패배했다.
뭐 대진운이 나빴다고밖에 할 수 없는 상황이긴 했으나 성적은 운이 나쁘다는 말로 퉁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최하위권은 아니고, 다이니를 상대할 때 보여줬던 검술이 있기에 나름 중하위권에 위치하고 있으나 기대만큼의 성적이 나오지 않은 건 사실이다.
“성적 잘 나와서 2학년에는 장학금 받으면서 다닐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했는데에에!”
이제는 거의 빗자루가 되어서는 바닥을 쓸고 다니는 샬롯.
운동장이었기에 몸에 흙먼지가 다 묻지만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했다.
“저, 저기 이안!”
그때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
바닥을 구르고 있던 샬롯은 나 말고 다른 사람이 이 모습을 봤다는 부끄러움에 얼굴이 벌겋게 변해서는 누운 상태로 고개를 획 돌린다.
저러면 본인인 줄 모른다고 생각하는 건가.
나를 찾아온 건 얼굴이 익숙한 생도들이었다.
숫자는 대략 열 명 정도 되어 보였는데 전부 은빛사자 기사단에서 내가 가르쳤던 아이들이라서 알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굳이 나를 찾아올 이유가 있나 싶었는데 다들 긴장한 듯 서로의 눈치를 본다.
그러더니 앞에 있는 안경을 쓰고 있는 생도가 심호흡하며 고개를 깊게 숙였다.
“우, 우리도 같이 훈련할 수 있을까!”
갑자기 다 같이 정중하니 부탁해 오는 자세에 깜짝 놀랐는데, 그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일행들 맨 뒤에서 혼자 초조하게 서 있던 다이니와 눈이 맞는다.
몸이 작다 보니 덩치 큰 애들 뒤에 숨어서 자연스럽게 끼어들려고 했던 것 같은데….
내가 피식 웃자 녀석은 부끄러움에 얼굴을 붉히면서도 슬며시 고개를 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