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night Summoner of the Knights Academy RAW novel - Chapter 7
7화.
생도들 사이에서 관심을 모으고 있는 베런 둠베스트와 이안 아이넬의 대련.
베런 둠베스트.
원래부터 기사 명문가로 알려진 둠베스트 가문의 유일한 혈육.
라이벌 격 가문인 브릴리언 가문에서 끊이지 않고 적자가 나오는 것과 반대로 이번 세대의 둠베스트에서는 아들은커녕 딸도 하나 들어앉지 않았다.
그렇게 점점 가주가 늙어가던 와중 겨우 얻은 게 바로 베런 둠베스트.
당시 가주가 얼마나 기뻐했는지 큰 연회를 열어서 아내의 임신을 축하하기 위해 찾아온 손님들에게 상당 금액의 선물을 준 건 아주 유명한 일화였다.
그렇게 애지중지하게 키워진 베런이었으나, 정작 그는 아버지의 뒤를 이을 사람이 자신밖에 없다는 걸 깨닫고부터 늘 자신을 몰아붙였다.
둠베스트의 검은 강하다.
만약 둠베스트가 브릴리언보다 약하다는 이야기가 들린다면 그것은 둠베스트의 문제가 아니라 훈련을 게을리 한 자신의 탓일 거라고 생각해 왔던 베런.
언제나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또한 그는 재능을 맹신하지 않는다.
재능이라는 이름으로 타인의 땀을 무시하는 자들을 혐오한다.
그의 안에서 절대적인 재능이란 없었기에 누구보다 열심히 노력한다면 누구보다 강해질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고.
그렇기에 베런은 언제나 우직하고 거대한 곰처럼 나아갔다.
오늘 역시 재능만을 믿고 있는 상대방을 쳐부술 생각이었다.
‘제대로 된 기술도, 경험도 없이 마나만 많다면 상대하는 게 어렵지 않다.’
재능이라는 것 자체를 부숴버리자.
베런이 선택한 작전은 정면돌파였다.
메이지 아카데미에서 인정받았다는 그 잘난 마나량을 이용해서 대련을 이끌어 보라지.
베런이 봤을 때, 지금의 이안 아이넬은 가문을 떠나기 전, 마지막 훈련으로 상대한 마수와 마찬가지였다.
힘에서는 베런이 마수에게 질 수밖에 없다. 마나량 역시 거대한 덩치를 가지고 있는 마수 쪽이 더 많았으나….
베런은 둠베스트의 검술과 그동안 길러온 기술, 적절한 마나의 운용. 마지막으로 치밀한 작전을 통해 승리했다.
이번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동안 흘려온 땀방울이 차오르며 둥둥 떠오르는 부유감을 느낀다.
이안 아이넬과의 거리가 벌려진다.
고작 태생적 재능으로는 메울 수 없는 거리가.
결국에 모든 것은 노력이 증명할 것이다.
그렇기에 베런은 스스로 대련을 주도할 생각으로 빠르게 나아가 몰아붙였다.
…….
그런데 이게 도대체 무슨 상황인 걸까.
메이지 아카데미의 다섯 원석 중 하나로 꼽혔을 정도의 마나량을 가지고 있는 이안 아이넬은.
정작 대련이 시작되자 마나를 꺼낼 기색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뿐이라면 상관없다. 그저 마나 운용법을 배우지 못했다고 생각하면 되는 일이니까.
그러나 문제는….
되레 베런만 마나를 사용하고 있음에도 이안 아이넬은 유연하게 자신의 검을 흘려내고 있다는 점이었다.
“도대체 무슨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흘려온 땀방울이 스민 소년의 검이 무력하게 스러진다.
베런은 이때 처음으로 자신의 무능을 느꼈다.
검술을 통해서 부술 생각이었다.
하나, 자신의 검술이 역으로 이안 아이넬에게 부정당하고 있다.
수많은 대련을 통해 얻은 경험과 가문에서 배워온 대련의 흐름, 운용, 심리전과 수 싸움으로 압도하려 했다.
정작, 압도되고 있는 건 본인이었다.
마나에 재능이 있다는 그에게 고작 마나량만으로는 무엇도 할 수 없다는 걸 알려주려 했다.
그러나 현실은, 베런 둠베스트 홀로 마나를 사용하며 신체를 강화하고 있을 뿐이었다.
결국.
정석을 통해서 완전한 승리를 쟁취하려 했던 베런은.
완벽하게 반대의 입장이 되어 정면돌파를 당하고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아니, 그보다 대체 왜…?”
이 정도의 검술 실력을 지녔다면, 그에 걸맞은 마나 운용법을 익혔을 게 자명하다.
저도 모르게 의문을 표한 베런.
하지만 눈앞의 이안은 오롯이 대련에 집중하고 있었기에 답은 되돌아오지 않았다.
그때 의문에 빠진 베런의 귓가에 들려온 한 생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설마 이안 아이넬은 보여주려는 건가?”
“뭘?”
“자기가 단순히 마나량만 많은 게 아니라고.”
안경을 쓴 남생도의 말에 베런은 절로 고개가 돌아갈 뻔했다.
지금 그게 무슨 소리지?
“생각해 봐. 저 정도 검술 실력을 가지고 있다면 당연히 마나 운용법도 익히고 있을 거야. 본인한테 그 정도 마나가 있다는 것도 진즉 알았을 거고. 그런데 왜 메이지가 아니라 나이트로 왔겠어.”
“와, 대박.”
“소름 돋아!”
안경 소년의 말이 품은 진의를 깨달은 생도들이 동경의 눈으로 이안 아이넬을 바라본다.
이어질 말을 모두가 이미 알아차렸음에도, 안경 소년은 자신이 했던 말을 끝마치고 싶었는지 굳이 말을 내뱉었다.
“마나량보다 더 뛰어난 검술이 있으니까! 그러니까 이안 아이넬은 나이트 아카데미로 온 거야! 도대체 어디서 저런 괴물이 나온 거야?”
허.
어처구니가 없었다.
메이지 아카데미의 다른 생도들보다 뛰어난 마나량을 가지고 있음에도….
실은 검술에 더 자신이 있었기에 나이트 아카데미로 왔다.
그리고 자신은 고작 마나량 하나만으로 입학한 어중이떠중이가 아니라는 걸 1학년 전체에게 보이기 위해, 검술만으로 이 둠베스트를 상대한다?
지금까지 이안 아이넬은 한마디도 한 적 없다.
소년의 꾹 다물어진 입은 마치 자물쇠를 채우고 있는 듯했으나 그는 지금, 대련을 통해 이 자리의 누구보다 거칠게 포효하고 있었다.
자신을 가벼이 판단하지 말라고.
본인은, 오롯이 검을 휘두르는 기사라고.
베런은 지독하리만치 아찔한 패배감을 느끼면서도, 자신 역시 전신에 뿌리내린 마나를 거두었다.
“좋다! 어디 한번 투박하게 가보자!”
마나 따위가 감히 끼어들 수 없는, 검사의 전투를!
* * *
‘쟤 뭐라고 씨부리는 거야.’
나에게도 안경 소년의 목소리는 들려왔는데 솔직히 헛웃음이 나왔다.
마나를 사용하지 못하는 건 당연히 아니었다.
넬슨을 소환하면서 오히려 이전보다 더 많은 마나를 운용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물론, 썩 만족스러운 수준은 아니었고 앞의 베런과 비교하자면 터무니없이 적은 양이지만.
어쨌든 내가 굳이 마나를 쓰지 않고 대련을 이어가고 있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첫째로는 몸의 미세조정이 필요했다.
‘몸이 아직 제대로 따라오지 못하고 있어.’
과한 마나 탓에 어렸을 때부터 몸이 약한 편이었다.
잔병 치례를 자주 겪었던 건 물론이고,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찰 정도로 체력도 약했다.
약했던 몸을 억지로 성장시킨 게 지금의 내 육체.
그런 몸으로 처음 하는 대련.
단순 훈련으로는 알아채지 못했던 부족한 점이나 단련할 부분을 하나씩 차근차근 깨닫고 있었다.
둘째로는 300년 동안 발전한 기사들의 검술과 마나 운용이 퍽 흥미로웠기에 관찰하는 재미가 있었다.
시골에 있어서 몰랐는데, 아무래도 기사들이 마나를 다루는 방법에서도 꽤나 발전을 이룬 듯했고.
투박하던 둠베스트의 검술이 꽤나 세련되게 변해있는 것도 신기했다.
이처럼 대련을 통해서 스스로의 부족함을 곱씹을 수 있었고 발전된 마나 운용에도 관심이 있어 일부러 마나를 사용하지 않고 대련을 끌었다.
마지막으로는 베런 둠베스트 개인에 대한 흥미였다.
17살이라는 나이치고는 썩 훌륭한 솜씨를 가지고 있지 않은가.
“좋다! 어디 한번 투박하게 가보자!”
그런데 갑자기 녀석이 육체강화를 해제하고 달려드는 게 아닌가.
퍼억!
그 결과, 지금까지의 치열해 보이던 대련이 허무하게도 베런은 나의 검에 정수리를 얻어맞고 그대로 쓰러졌다.
헛웃음은커녕, 황당했다.
“지금까지 내가 왜 마나를 안 썼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구나?”
빈틈은 정말 말도 안 되게 많았다.
그런 상황에서 신체강화마저 해제하면, 뭐.
이 이상 뭔가를 얻을 수는 없어 보였기에 그냥 빠르게 끝내줬다.
“승자…… 이안 아이넬.”
치열해 보이던 대련이 너무 갑작스레 끝나서인지 심판을 맡은 교수님도 당황한 표정.
게다가 다른 생도들의 묘한 동경과 감동이 담긴 시선이 나에게 쏠렸다.
“마나가 아니라 검술로, 자신의 실력을 직접 증명한 거야.”
“기사. 저게 진정한 기사의 모습이 아닐까?”
“최근의 기사들은 너무 마나에 의존한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기는 했어.”
“우리 기수 수석은 이미 정해진 것 같은데? 2등 싸움이 치열하겠어.”
저들끼리 나에 대한 묘한 이미지를 쌓아가고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내 시선을 끈 건….
내 방 창문에서 손을 이리저리 흔들며 엄지를 치켜들고 있는 우리 기사단 막내였다.
* * *
붉은 머리의 소녀, 마리아 레이로즈는 땀 한 방울 흘리게 하지 못한 자신의 대련상대 때문에 욕구불만이 가득히 차 오른 상태였다.
대륙에서도 가장 알아주는 나이트 아카데미에서의 첫 대련.
듣는 것만으로도 흥분했던 그녀는 막상 검 몇 번 휘두르니 연약하게 풀썩 쓰러지는 상대 탓에 짙은 짜증이 확 밀려왔다.
‘하아, 짜증나.’
이 답답함을 어떻게 풀어야 할까?
괜히 아이처럼 발만 동동 구르던 마리아의 귓가에 들려온 생도들의 소란.
“나름 빅 매치다.”
“빅 매치는 얼어 죽을. 개소리하고 자빠졌네.”
빅 매치?
마리아는 호기심을 가지고 시선이 쏠린 중앙의 대련장을 확인한다.
이미 입학하기 전부터 상대로 찍어둔 베런 둠베스트와 처음 보는 은발의 소년.
‘평민인데?’
딱 서 있는 자세부터 시작해서, 그들 특유의 후줄근한 옷차림.
물론, 마리아는 개인적으로 꽤 좋아하는 모습이지만…….
어중이떠중이가 마나만 많이 가지고 있어 봤자, 근본이 되는 검술이 허접하면….
근본이 되는 검술이 허접하면….
‘아, 쟤가 걔구나?’
이번 1학년들 중에는 메이지 아카데미에 입학해도 되는 마나량을 가진 신입생이 있다고 들었다.
주변 생도들의 대화로 은발의 소년이 그 주인공이라는 걸 눈치챘다.
‘뭐, 그것만 가지고는 아마…….’
고작 마나량 하나만 가지고 있는 범생이가 뭘 할 줄 알겠는가.
또다시 지독한 실망감을 느낀 마리아는 베런 둠베스트의 검술이라도 보자고 생각하며 턱을 괴었지만….
대련이 진행될수록 그녀의 눈동자는 더없이 크게 벌어졌고, 마지막의 마지막에 와서는 주먹까지 불끈 쥐고 있었다.
“미친놈이잖아!”
입 꼬리는 더없이 깔끔한 호선을 그리고 있었다.
* * *
“역시 단장! 대단하십니다!”
넬슨이 주먹을 허공에 휘두르며, 반편성 배치고사에서 보여줬던 검술을 따라 한다.
“이런 식이었나요? 설마 17살의 몸으로 그 정도의 검술을 보여주실 줄은 몰랐습니다.”
“지금 너랑 싸우면 네가 이기잖아.”
별거 아니라고 대충 답했지만, 넬슨에게는 전혀 그렇지 않은 듯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단순히 강함만으로 검을 판단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단장의 검은 정말 대단하십니다!”
“…….”
저렇게까지 띄워주면 조금 부끄러운데.
“근데 너는 밥 안 먹어도 되지?”
“예, 괜찮습니다. 이래 봬도 소환수니까요.”
“그래, 괜히 먹을 거 싸 오면 조금 이상하게 보일 것 같아서.”
“근데 먹을 수는 있습니다.”
입을 살짝 벌리며 자신에게도 치아랑 혀가 있다며 은근히 시위하는 녀석.
그런 녀석에게 나는 손을 뻗었다.
“너무 오래 소환하고 있으면, 내가 피곤해서 안 되겠다.”
“소환하신 이후에는 제가 특별히 활동하지 않아서 크게 마나가 들지는……!”
하얀 빛무리가 되며 사라져 버리는 넬슨.
가능하면 계속 소환해 두고 싶었으나, 아무리 독실을 사용한다고 해도 혹시 모른다.
넬슨이 누군가에게 들키는 순간, 꽤나 복잡한 상황이 되어버릴 테니까.
어차피 식사만 하고 와서 소환술에 대해 연구해 볼 생각이었기에 크게 미안하지도 않고.
그렇게 바로 저녁을 먹으러 식당으로 향했다.
‘메뉴가 많네.’
예전 기사단처럼 그냥 큰 솥에 스튜 같은 거 하나 떡 해두고 알아서 퍼 먹으라고 할 줄 알았는데.
그런 내 상상을 비웃듯 전문 요리사들의 손을 거친 다양한 음식들이 세팅되어 있었다.
솔직히 300년이라는 세월이 지났다는 게 가장 실감이 나는 시간이었다.
일단 가장 눈에 들어오는 스테이크를 골랐다.
신입생들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첫날에는 무료로 메뉴를 시킬 수 있다기에 제일 비싼 걸 골랐다.
다른 생도들도 나랑 비슷한 생각이었는지, 대부분이 스테이크를 썰어 먹고 있었고.
다들 어제 처음 만났을 텐데 벌써부터 어느 정도 무리가 형성되었는지 삼삼오오 모여 앉아 하하 호호 떠들고 있었다.
‘마법에 조예가 있는 애가 있다면 좋을 텐데 말이지.’
이곳이 메이지 아카데미였다면, 참 배울 게 많았을 텐데.
‘기껏해야 검이나 휘두르는 애들이지. 마나를 다뤄봤자, 검에 두르는 게 다이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스테이크를 썰어 먹으니, 생각보다 훨씬 맛있어서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톰이 봤으면 기절했겠네.’
기사도는 헝그리 정신에서 나온다는 미친 소리를 지껄이던 톰이 떠올랐다.
녀석은 어렸을 때부터 워낙 가난했던 탓에 배고픔을 잊으려 산 속에서 마음을 다 잡고 검을 휘둘렀다고 한다.
그때의 마음가짐을 끝까지 간직하고 있어서 은빛의 사자가 될 수 있었다고 떵떵거리던 녀석.
그와 동시에 넬슨이 옆에서 “검을 휘두르면 더 배고프지 않나요?”라고 말했다가 꿀밤을 얻어맞던 장면이 스쳐 지나간다.
그렇게 나름의 추억과 함께 음식을 음미하고 있자니….
“야.”
옆자리에 앉아 말을 걸어오는 붉은 머리의 소녀.
딱 인상에서부터 호전적인 성격이 보이는 아이였다.
기사단장으로 지내며 이런저런 사람을 봐왔다 보니 한눈에 알 수 있었다.
기사단에 받으면 사고를 자주 칠 부류였다.
하나 눈에 띠는 게 있다면….
‘적발?’
새빨간 장미가 연상되는 적발.
내 감상과는 무관하게 소녀는 턱을 괴고는 포크로 내가 썰어놓은 고기를 야무지게 찍어 먹었다.
“야, 나중에 나랑 한번 붙어보자.”
“…….”
“원래는 브릴리언이랑 둠베스트 도련 놈들 노리려고 했는데, 네가 이번 1학년 중에 가장 강한 것 같더라?”
그래, 대련에서 눈에 띄었으니 이런 녀석들이 나올 거라고는 생각했다.
식당에 들어올 때만 해도 꽤나 시선이 쏠려왔으니까.
한숨을 내쉰 나는 손에 쥔 포크로 소녀의 입을 슬쩍 가리키며 말했다.
“그거 바닥에 떨어트려서 옆에 둔 거야.”
“뭐? 퉤! 아이 씨! 어쩐지 이상한 게 씹히더라!”
“먹지를 말던가. 그것보다 너 이름이…….”
혹시라도 내가 생각한 이름이 나오진 말아달라고 속으로 빌며 물었으나나….
내 말을 끊고 들어오는 남생도들의 목소리 때문에 말을 마칠 수 없었다.
“뭐? 지금 시비 거는 건 그쪽 아닌가?”
“적당히 까불어라.”
그리고 잠시 후.
무언가 날아와, 내 스테이크 위에 얹혔다.
이게 뭘까 하고 나이프로 콕콕 집어보니….
후식으로 나온 아이스크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