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n Empire is too strong RAW novel - chapter (298)
양위 발표에 대한제국은 또 한 번 난리가 났다.
내 나이가 환갑이 넘었다지만 건강에 큰 문제도 없고 아직 정정했기에 아무도 내가 양위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아니되옵니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이번에도 사람들은 거리로 나와 반대를 외쳤다.
이건 정말 안 된다는 듯이 저번보다도 더 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 반대 시위를 벌였다.
권력 이양까지는 넘어갈 수 있지만, 이것만큼은 절대 안 된다는 것일까. 시위의 규모는 전보다 더 컸다.
“흠. 기분이 나쁘지는 않네.”
그렇게 말하는 내 입꼬리는 나도 모르게 씰룩거리고 있었다.
저게 정말로 내가 좋아서 저러는 거라 생각하니 괜히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그런 그런 내 모습을 본 아냐가 키득거렸다.
“그렇게 좋으면 조금 더 하지 그러세요?”
“에이. 말이 그렇단 소리죠.”
나보고 일을 더 하라고? 누가 그러라고 하면 진짜 야반도주할 거다.
내가 이 몸에서 깨어난 직후부터 푹 쉰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 후 계속 일했는데, 여기서 더 일하라고 하면 그건 노인 학대다.
······뭐, 2차 세계 대전 때는 지금의 나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대신들도 일했지만. 그건 전쟁이란 특수한 상황 때문이니 어쩔 수 없었던 일이고.
난 어릴 때부터 일했으니 이제 은퇴하고 쉬는 게 맞다.
“그리고 그래야 우리 여보랑 여행도 다닐 여유도 생길 테니까요.”
“어머. 드디어 우리 편하게 여행도 다니는 거예요?”
여행이란 말에 아냐의 표정이 바로 밝아졌다.
황제 노릇을 하는 동안 일이 너무 많아 신혼여행을 제외하고는 부부끼리 가까운 곳으로 여행을 가기도 힘들었는데.
양위를 하고 나면 남는 게 시간이니 해외여행도 마음껏 할 수 있을 거다.
“어디 먼저 갈래요? 신혼여행 때 갔던 하와이는 어때요?”
“당연히 좋죠!”
아냐는 환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후, 난 공식적으로 양위할 것을 다시 한번 선포했다. 그리고 환이의 즉위식을 준비했다.
이에 양위 반대 시위대는 이번에도 자발적으로 해산했다.
내가 결심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1960년 6월 15일. 환이가 황위에 오르고, 난 태상황으로 물러났다.
“황제 폐하 만세!”
“만세! 만세! 만세!”
환이가 황위에 오르자 언제 양위를 반대했냐는 듯 온 백성이 환호하며 만세를 불렀다.
환이 또한 세계 최초로 달에 갔다는 위명 덕분에 인기가 많았기 때문이었다.
양위를 반대한 것도 내가 더 좋아서 좀 더 오래 황제로 남아 있어 주면 좋겠다는 뜻일 뿐. 환이가 부족하다는 뜻은 아니었으니까.
“앞으로 열심히 해라.”
“아바마마께 부끄럽지 않은 아들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내 은퇴 라이프가 시작되었다.
* * *
환이의 즉위식이 끝이 난 후, 난 아냐와 함께 아버지께서 살아계셨을 시절 지내셨던 창덕궁으로 이사를 갔다.
이제 황제도 아닌데 계속 경복궁에 자리 잡고 있을 수는 없는 법이니까.
그리고 여유로운 은퇴 라이프를 위해서라도 일이 많은 경복궁에서는 벗어나고 싶었다.
그렇게 창덕궁으로 이사를 간 후, 난 여유로운 삶이 무엇인지 정말 오랜만에 느낄 수 있었다.
늦게 일어나 아냐와 함께 여유롭게 아침을 먹고, 그 후엔 정원을 산책했다.
그러다 오후가 되자 점심을 먹고. 이후엔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다.
저녁이 되면 저녁 식사를 하고, 자기 전에 잠시 텔레비전을 보다 밤이 되면 바로 잠들었다.
내가 그토록 원했던, 놀고 먹고 잘 수만 있는 여유로운 삶이 시작된 것이었다.
그 후 몇 주가 지났다.
“지겹다.”
왜 이렇게 지겨운 걸까? 이제 놀고 먹고 자기만 해도 되니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즐거워야 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딱히 할 일이 없는 반복적인 생활에 나는 물론 아냐 또한 지루함을 느끼기 시작했다.
내가 침대 위에 누워서 멍하게 천장만 바라보자 아냐도 내 옆에 눕곤 중얼거렸다.
“예전 같으면 저도 행사들에도 참석하고 내명부 일도 하면서 지루함을 느낄 새도 없었을 텐데······.”
“예전에 우리가 하던 일을 환이랑 며느리가 다 하고 있으니까요.”
뒷방늙은이 신세가 된다는 게 이런 건가? 너무나 여유로워 지루함의 고통 속에 사는 것이?
그래서 은퇴한 어르신들이 자꾸 젊은이들 일에 참견하고 그랬던 건가? 안 그러면 너무 심심하니까?
‘도대체 아버지는 이 지루함을 어떻게 40년 가까이 버티신 거지?’
우리와 달리 재위 기간보다 태상황으로 지낸 시절이 더 길었던 아버지가 지루함을 느끼시는 걸 본 적이 없는데. 우린 왜 이렇게 심심할까?
‘운동을 하도 많이 해서 지루함을 느낄 새가 없으셨든 건가?’
생각해 보니 그게 맞는 것 같았다. 불곰 같은 덩치를 자랑하시던 분이셨는데, 그 덩치는 평범한 운동으론 유지하기 힘들 테니까.
그래서 나도 운동이라도 해서 시간을 보내볼까 했지만······.
“귀찮다.”
현대적으로 표현하면 헬창이셨던 아버지와 달리 난 운동은 진짜 몸 관리를 위해서만 하는 쪽이라 별로 내키지 않았다.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다 한숨을 쉬며 말했다.
“해외 순방이라도 빨리 오면 좋으련만······.”
이에 아냐는 동감한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양위 직후 이야기했던 여행은 그동안 못 갔던 것을 한 번에 몰아가기 위해 아예 세계 여행을 가기로 했다.
하지만 우리 부부 정도 되는 사람이 그냥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안전 문제도 있고 그곳에서 우릴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있을 테니까.
그래서 느긋한 일정의 해외 순방 겸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하지만 우리가 방문하려는 나라들에서도 준비를 해야 하니 시간이 필요했다. 우리는 그 사정을 고려하여 몇 주 후에 떠나기로 했고.
그러니 그때까지는 지루해도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진짜 그때까지 어떻게 버티죠?”
아냐의 질문에 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 지루함을 타파할 방법이 도저히 떠오르지 않았다.
텔레비전이라도 봐서 시간을 보낼까 고민했지만. 아직 이 시대에는 그렇게 재미있는 방송이 별로 없었다.
책이라도 읽어 볼까 했지만 이미 다 읽은 지 오래였고.
그래서 다른 건 뭐 없나 고민하고 있는데, 방의 구석에 있던 빗자루와 쓰레받기가 눈에 들어왔다.
“흐음.”
시간을 때울 거리를 찾은 것 같았다.
* * *
며칠 후. 경복궁에 있는 환이가 차라도 마시러 오라며 연락을 보냈다.
우린 바로 경복궁으로 향했고.
환이는 우릴 보자마자 한숨을 쉬더니 말했다.
“주변에서 아바마마와 어마마마를 제발 좀 말려 달라고 성화입니다.”
차를 마시자는 말은 핑계였던 듯, 환이는 우리에게 애원하는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청소하는 사람은 따로 있는데 왜 두 분이 청소를 하십니까? 사람들이 자신들이 뭐 잘못한 줄 알고 걱정하고 있습니다.”
“하하. 시간을 보낼 거리가 딱히 없는데 청소를 하니 시간이 잘 가더구나.”
손에 걸레를 든 아냐가 호호 웃으며 환이의 책상을 닦으며 말했다.
“해외 순방을 떠나려면 몇 달이나 남았는데 가만히만 있기도 뭐해서 청소 좀 했다. 사람들에게 부담을 주었다니 이거 미안하구나. 이제부터 멈추도록 하마.”
“감사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한숨을 쉰 환이가 이번엔 날 보며 물었다.
“아바마마. 서류 가지고 뭘 하시는 겁니까?”
“응?”
시선을 내리자 내 손에는 현재 해결해야 하는 일들이 담긴 서류가 들려 있었다.
······뭐지. 나 이거 언제 한 거지? 언제 확인을 다 하고, 고쳐야 할 부분들까지 모두 수정한 거지? 심지어 완벽하기까지 해!
내가 황급히 서류를 내려놓자 환이는 또 한숨을 쉬었다.
“그렇게 심심해하셨을 거면 조금만 더 하고 제게 물려주시지 그러셨습니까.”
“······.”
그 말에 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순간 진짜 그럴 걸 그랬나 하고 후회가 들었기 때문이었다.
순간 살짝 소름이 돋았다. 젠장. 놀고 먹고 자기만 하는 게 꿈이었던 내가 이럴 줄이야. 나 혹시 일중독이었나?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이렇게 아무것도 안 한 적이 한 번도 없었으니까.
계속 일을 하던 게 습관이 들어 버리는 바람에 양위하고 나서 찾아온 여유로움에 익숙해지기가 힘이 들었다.
그동안 쉬는 날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몇 달 동안 아무것도 안 하고 쉬기만 한 적은 없었기에 이런 여유로움을 몸이 어색해하는 것 같았다.
복잡한 감정이 담긴 표정으로 날 바라본 환이가 물었다.
“해외 순방 일자를 앞당길까요?”
“아니다. 그럼 준비 중인 나라들에게 부담이 될 것 아니냐?”
“안 그러면 제가 부담일 것 같습니다만?”
“그럼 다행이구나. 다른 사람이 피해를 입는 것보다는 낫지 않느냐?”
“······.”
환이는 또 한숨을 내쉬었다.
음. 시간 때우기로 아들 놀려먹기도 나쁘지 않을 것 같군.
어차피 의회도 만들어졌겠다 황제가 하는 일도 줄어들었는데, 심심한 부모님과 놀아줄 시간 정도는 있잖아?
이후 해외 순방까지 남은 기간 동안 잡일이나 하고, 환이를 괴롭히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몇 주 후, 해외 순방이 예정된 9월이 되었다.
환이는 홀가분한 표정으로 우리를 배웅해 주었다.
“드디어 해방이군요.”
“얌마. 부모님이 외국으로 떠나는데 걱정해야지 해방감을 느끼면 되냐?”
“자식이 걱정하는 모습을 보고 싶으셨으면 좀 덜 괴롭히시지 그러셨습니까?”
그러면서 환이는 이제 좀 마음 편히 살겠다며 껄껄 웃었다. 나도 마찬가지였고.
역으로 향하는 차에 오르며 환이에게 인사했다.
“종종 편지하마.”
“저도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편지를 보내겠습니다.”
나와 아냐가 탄 차는 기차역으로 향했다.
우리의 첫 번째 목적지는 러시아 제국. 정확히는 바이칼 호수였다.
말이 해외 순방이지 실제로는 해외여행이 목적인 만큼 유명한 관광지인 바이칼호부터 갈 생각이었다.
우리 둘 다 가 본 적이 없는 곳이라 기대 중이었고.
기차에 오르고 출발을 기다리고 있던 중 아냐에게 물었다.
“처남 가족들도 모두 바이칼호로 온다고 했죠?”
“네. 저희가 도착할 때쯤 자기들도 도착할 거라 했어요.”
우리가 바이칼호로 가고 싶어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러시아의 차르, 빅토르는 곧바로 연락을 보냈다.
가족끼리 모여서 여행을 간 적도 없는데, 이번 기회에 함께 놀자고.
당연히 우린 좋다고 했고. 그래서 이번 러시아 여행은 꽤 북적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바로 바이칼호로 향한 것은 아니었다.
여유롭게 여행할 생각이었기에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가면서 중간중간 들리는 마을들에 들러 구경을 하기도 하였다.
그럴 때마다 우리 부부를 구경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고. 기차역은 구경꾼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그렇게 출발하고 열흘이 흐르고, 우리는 바이칼호에 도착했다.
“오길 잘했네.”
물은 투명할 정도로 맑고, 주변 풍경은 그림을 그린 듯이 아름답다.
꾸엉! 꾸엉!
여기에 호숫가에 나와 햇볕을 쬐며 일광욕을 즐기는 바이칼물범들까지.
괜히 현대에서도 유명한 관광지가 아니라는 듯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해졌다.
호수에 발을 담그고 가만히 앉아 풍경을 즐기고 있자, 얼마 지나지 않아 빅토르의 가족들 또한 바이칼호에 도착했다.
“아냐! 매제!”
“오라버니!”
오랜만에 가족들과 만난 아냐가 그들에게 달려갔다.
나 또한 일어서서 빅토르와 인사를 나누었고.
“오랜만입니다. 잘 지내셨습니까?”
“흐흐. 심심해서 미칠 판입니다. 이렇게 밖으로 나오니 좀 살겠군요.”
그 말에 빅토르는 그럴 줄 알았다며 껄껄 웃었다.
“세계를 주무르시던 분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쉬기만 하려고 하니 당연히 그렇죠!”
“쩝.”
빅토르는 자기도 나처럼 될까 봐 걱정된다며 껄껄 웃었다.
그 후 빅토르의 아이들과도 인사를 나눈 뒤, 우린 일 이야기는 일절 하지 않고 휴가를 즐겼다.
낚시도 하고, 낚시로 잡은 바이칼호의 특산물인 오물(Omul)을 구워도 먹고 매운탕도 끓여 먹으면서.
그렇게 시간을 보내니 지루할 틈도 없더라. 확실히 여행을 오니까 시간이 빨리 가.
그러다 보니 어느새 밤이 되었다.
“대한제국이 입헌군주제와 민주주의를 받아들였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깜짝 놀랐습니다.”
모닥불 앞에 앉아 있던 내게 찻잔을 건네주며 빅토르가 말을 이었다.
“그토록 강한 권력을 가지고 계셨으면서. 그렇게 쉽게, 그것도 스스로 포기하실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으니까요.”
“흐흐. 그 이유가 궁금하셨나 보군요.”
이게 궁금해서 함께 놀자며 바이칼호로 온 것이었나? 난 미소를 지으며 차를 마셨다.
러시아 제국에서 가장 예의주시하는 나라인 대한제국이다.
잠재적 적국이라서가 아니라, 가장 중요한 동맹이기에 그런 것이었다.
또한 오래전부터 대한제국이 발전하는 모습을 보고, 이를 따라 하며 발전할 수 있었던 러시아 제국인 만큼 대한제국의 일거수일투족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대한제국이 입헌군주제와 민주주의를 받아들였다. 빅토르는 진짜 이유가 따로 있음을 알고 이를 궁금해했다.
하지만 대놓고 이유가 뭐냐고 물으면 실례니 이런 자리를 만들어 조심스럽게 물은 것이겠지.
아냐의 가족인 만큼 숨길 생각은 없었기에 빅토르에게 말해 주었다.
어째서 입헌군주제와 민주주의를 받아들인 것인지, 그리고 그로 인한 이득은 무엇인지.
“황실이 모든 것을 다 결정하기 힘들어질 테니 차라리 백성들에게 나라의 운영을 맡긴다라······. 실리도 챙기고 물론 백성을 위해 자발적으로 권력을 포기했다며 칭송받을 수 있겠군요.”
이유를 들은 빅토르는 확실히 괜찮은 방법이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저희도 그렇게 해야겠군요.”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