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yo Black Prince RAW novel - Chapter 104
104화. 85장 국본을 바로 세우다(4)
“음? 그대들은 견룡군이 아닌 것 같은데 어찌 황상 폐하께서 계신 궐에 그것도 태자 전하와 영공 저하께서 계신 곳을 경비하고 있는가? 어느 소속인가?”
“우린 영공 저하의 소속인 우봉별초(牛峯別抄)입니다. 영공 저하의 명에 따라 경비를 서고 있습니다.”
“영공 저하의 명으로 우봉별초에 서 있다라….”
별초란 정규군이 아니라 결사대·선봉대·별동대에 해당하는 특수부대이다.
원래는 상황에 따라 임시적이고 기동적으로 편성되었고 처음에는 이군육위 내의 각 부대별로 일정한 비율을 정하여 선봉대를 선발하는 형식이었으나, 시간이 지날수록 새로운 부대조직의 형태를 갖추기 시작하였는데 병제의 문란이 극심해진 무신 집권기에는 기존의 군사편제 및 전시동원 체제가 유명무실해지자, 별초는 치안 및 국방이라는 대내외적인 목적을 위하여 많이 설치되며 무신과 권신들의 사병 제작에 자주 이용되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리고 우봉별초는 이름에서부터 그들이 누구의 지휘를 받고 있는지는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었다.
“나는 태자 전하를 호위하는 우내솔부 산원 유갑수이네. 송 낭장과 일부 병사들이 장내에서 태자 전하를 호위하고 계시나, 태자 전하께서 계신 장소의 호위는 응당 우리 내솔부가 해야 하는 것이니 이후 경계는 우리에게 맡기고 물러나게.”
내솔부는 태자를 호종하고 호위하는 무장 병력이라는 것을 장교는 알고 있었으나 갑작스러운 증원에 대해선 들은 바가 없었다.
하물며, 이들이 온 것은 연회장 안이 아닌 밖이었다. 이에 대해 장교는 의아하게 여기며 거절하였다
“죄송하지만 연회가 끝나는 동안 연회장 밖은 우리 우봉별초가 반드시 경계를 서라는 지시를 받아 그럴 수는 없습니다.”
“…으음, 상국 저하의 명이시라면 어쩔 수 없지. 그렇다면 조금 거리를 벌려 우리 내솔부 병사들도 같이 경계를 서는 것은 문제없겠지? 태자 전하의 호위부대인 우리가 가만히 휴식을 취할 수는 없지 않은가?”
그렇게 말하며 유 산원은 손가락으로 2장(약 6m) 정도 떨어진 가리키며 말했다.
우봉별초의 장교도 내솔부의 업무를 아는지라 그것에 대해선 크게 막지 않았고, 유 산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돌렸다.
“뭐. 그것이라면….”
거리를 벌려 문에서 2장 정도 떨어진 곳에서 사열을 하여 경계를 서는 것이라고 장교는 그리 생각했다.
유 산원 외에 다른 병사들은 움직이지 않았고, 물러나지 않았는데도 장교는 안일하게 물러난다고 생각하고 신경을 껐다.
그렇게 유산원이 등을 돌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폭죽 터지는 소리가 다시 연신 터져 궁궐에 울리고 불꽃이 궐을 밝히었고 별초 장교는 또 터진 불꽃을 본다고 시선을 돌렸다.
폭죽은 좀처럼 보기 힘든 구경거리였기 때문이다.
그 순간 유산원은 재빨리 몸을 돌려 검을 빼 들어 장교 목을 베어냈고, 그것을 시작으로 내솔부의 병사들도 각자 곁에 있는 우봉별초들을 죽이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순식간에 벌어진 그 사태는 폭죽 소리에 묻혀 우봉별초들 대부분이 별다른 저항도 하지 못하고 죽어야만 했다.
그렇게 전부 죽인 유 산원은 침을 뱉어내고는 지시를 내렸다.
“퉷. 별다른 지위도 없는 놈이 뒷배만 믿고 더럽게 유세를 떠네. 뭐하느냐? 시체들을 치워라.”
“예!”
검을 닦아내고는 유산원은 조용히 문으로 다가가 귀를 가져다 대었다.
혹시나 이 일을 눈치챘는가, 하는 걱정에 물었으나 연회장에서 눈치챘는가 확인했지만, 안에서 별다른 조짐은 들리지 않았다.
“허허허. 김중랑장님도 안타깝겠군. 거사 직전에 그런 일을 겪어 나와 바뀌게 되다니….”
* * *
문하시중 최종준은 최우와 당여들이 참석한 궁궐의 연회장이 아닌 밖에서 김방경과 오랜만에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최종준은 김방경을 누구보다 총애하였기에 그와 만나보고 싶었다.
김방경을 태자의 호위군으로 추천한 것은 다름 아닌 최종준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처음 김방경이 활약한 소식을 들었을 때만 하여도 최종준은 자신의 일인 것처럼 흡족했다.
특히 지금은 경주가 된 동경에선 그의 가문을 왕으로 추대하는 반란이 일어나 본인은 위왕으로 추대되었음에도 나라에 대한 충정을 잊지 않고 큰 공을 세웠다는 것에선 자기 자식이 공을 세운 것 같아 무척 뿌듯하기도 했다.
그러나 태자의 활약이 늘어나고, 그 명성이 커져 들을 때마다 불안함과 답답함도 커져가야만 했다.
영석한 그라면 승진하고 호위로 발령된 이유를 이해했을 것이다.
그런데 태자에 대한 감시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태자는 그야말로 천둥벌거숭이처럼 날뛰었고 이에 상국은 북벌이라는 초강수를 사용했고, 김방경에에 올라온 보고들은 기껏해야 태자가 어디로 갔다가 출발했다는 기록과 아직 하지 않은 일들도 태자가 조정에 직접 올린 이후 할 행동 보고들과 별 차이가 없었던 것이다.
비록 태자의 일로 청하상국이 자신을 내치지 않고, 여전히 총애하였다지만 만약 태자가 청하상국과 완전히 결별하고 대립하였다면 자신은 어떻게 되었을지 생각하니 식은땀 다 났다.
“강녕하셨습니까?”
“나는 강녕했다. 너야말로 많이 고생하였다 들었다.”
최종준은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외란에 끌려가 내란에 끌려가 북벌에 끌려가 고생 많았다는 걱정이 반, 왜 자신에게 그 일들을 제대로 보고하지 않았냐는 불만이 반 담긴 신경질이었다.
“소장은 그저 명을 다하였을 뿐이옵니다. 시중께 걱정을 끼쳐 들어 죄송합니다.”
“자네가 나에게 그런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니 그나마 고맙군.”
최종준은 조금 누그러진 목소리로 답했다. 조금 다르게 생각해 보자고 생각한 것이다.
제대로 된 보고를 해주지 않아 답답하고 실망스러운 것은 사실이나, 지금까지 태자의 행적을 본다면 어디 태자가 주변의 말을 들을 인간처럼은 보이지 않았다.
그런 태자를 제어하지 못하고 감시도 못 한 것은 아쉽지만, 김방경도 끌려갔을 가능성도 생각하니 되려 이렇게 신경질을 낸 게 미안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어차피 태자의 철없는 반항도 국혼을 하면서 이제 끝이 아닌가?
“태자 전하께 끌려다닌다고 고생 많았다. 이젠 지금처럼 고생할 일은 없을 것이야.”
애초에 무관보단 문관이 나았으리라. 이번에는 경험했다 치고 자신의 밑으로 배속시키고 가리키면 될 것이다.
그러나 김방경의 대답은 묘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최종준은 그리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과연 그러할까요?”
“쯧. 고생이 많았나 보구나. 안심해라. 내가 영공 저하께 청을 올려 너를 내솔부에서 빼내주마.”
“시중. 이래도 괜찮은 것입니까?”
“그게 무슨….”
퍼퍼벙!
“벼, 벼락?!”
갑자기 들려오는 폭음에 최종준은 화들짝 놀라 상체를 숙였지만, 김방경은 아무렇지 않게 하늘을 바라보며 답했다.
“용강남이 들고 온 폭죽 소리인 듯하옵니다.”
“폭죽? 아, 폭죽인가. 그런가. 참으로 멋지구나.”
최종준도 폭죽이 무엇인지 정도는 알고 있었다.
폭죽이라는 것을 알고 진정하고 하늘을 보니 하늘에 수놓아진 알록달록한 불빛들이 눈에 들어왔다.
지식이 아닌 실물로 본 그 광경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너무나 아름다운 나머지 감상에 정신이 팔린 그는 조금 전 김방경의 말에 반문하고 답을 듣는 것을 잊었다.
* * *
“으윽!”
신음성과 함께 병사들이 쓰러졌다.
갑자기 찔러 들어오는 공격에 그들은 속수무책으로 제대로 된 저항 하나 할수 없이 죽어나갔다.
그중 그나마 살아남은 이들은 눈앞의 사태에 주변에 알리고 도움을 청하고자 큰 목소리로 외쳤다.
“바, 반라! 반란이….”
퍼엉! 펑!
하지만 폭죽 소리에 그의 도움 요청은 묻혀갔다.
“신속히 움직여라! 거사는 폭죽이 끝나기 전에 끝내야 한다!”
“존명!”
연회와 폭죽에 정신이 팔린 사이 최우를 죽이고, 왕을 수중에 보호한다.
모두의 이목이 연회장에 팔린 지금 최우를 죽이고 고려 왕만 보호할 수만 있다면 명분과 권력의 중심은 단번에 수중에 넣은 자에게 집중이 될 것이 뻔하였다.
병사들은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여기까지 온 이상 거사를 성공시키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모든 병사들은 제대로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최종준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태자의 문제는 이제 해결되고 앞으로도 이전과 다를 바 없이 평화롭게 지낼 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었는데, 갑자기 웬 병사들이 들이닥쳐 자신을 포위하고 창칼을 들이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더 혼란스럽게 하는 것은 그들이 다름 아닌 내솔부 병사들이었기 때문이다.
그 내솔부 병사들 중에서 낭장 하나가 곧바로 아직도 혼란스러워하는 최종준 곁에 비정상적으로 태연한 김방경에게 다가가 고개를 숙였다.
“중랑장님. 맞이하러 왔사옵니다.”
그 말에 최종준은 비로써야 곁에 있던 김방경이 눈앞의 무리와 한통속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시퍼렇게 변하는 최종준은 더듬더듬 아직도 믿기지 않다는 듯한 목소리로 김방경에게 물었다.
“김방경. 네 녀석 지금… 거병을 획책하려는 것이냐? 황실과 청하상국께 칼을 들이밀 셈이더냐? 내가 얼마나 너를 아끼었거늘 그것이 내 등에 비수를 꽂는 행위임을 모른다는 말이냐?”
“이와 같은 사태는 결코 소장의 본심이 아닙니다. 그러나 현재 섬 밖 육지에는 백성들이 힘들어 그 원망이 하늘까지 이르렀으며, 변경에는 언제 내려올지 모르는 외침을 두려워하여 힘이 드는데, 조정에는 대의에 어긋난 난신적자(亂臣賊子)가 판을 쳐 황실을 겁박하며 백성들과 변경을 괴롭혀 그 원망이 하늘까지 이르러 국가를 위태롭게 하였기 때문에 태자 전하께서 거사를 일으킨 것입니다. 부득이 이런 사변을 일으킨 것입니다. 부디 대의를 따르려는 소장의 청을 이해하여 주십시오.”
“기, 김방경. 방경이! 잠시 기다려라! 그게 무슨 말이냐. 설명을, 좀 더 설명을 해다오!”
최종준은 다급히 불러세웠으나 병사들은 다짜고짜 그를 끌고 갔다.
끌려가면서도 최종준은 현 사태에 대해 이해할 수가 없었다.
태자가 거병하였다? 태자께서 왜? 정말로 하셨단 말인가?
아니면 태자의 이름을 빙자해 김방경이 거병을 일으킨 것인가?
최종준이 그리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의종 경인년 사태 이래로 몇 번이나 거병이 일어났고, 출신이 미천하거나 글 하나 읽지 못하는 무장들이 무섭게 나서 조정을 틀어쥐고 새로운 권신으로 등극하지 않았던가?
이의방이 그리하였고 정중부와 이의민이 그리하였다.
어디 그들이 무너지기 직전까지 무너뜨린 이들이 그만한 힘이 있다고 판단되었던가?
그렇다면 은문상국 최충헌이 수립하고 최우가 이은 우봉 가문의 정권도 지금 이 자리에서 무너진다 한들 이상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어리석다.
“김방경! 잠, 잠깐. 이번 거병은 실패한다! 고작 너 따위가 황실과 우봉 가문을 뒤엎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것이냐!”
“소장으론 불가하겠지요.”
김방경은 최종준의 말에 발걸음을 멈추고는 고개도 돌리지 않은 순순히 인정했다. 그렇기에 최종준은 더욱 이해가 되지 않았다.
똑똑한 그가 어째서 이런 어리석은 짓을 한단 말인가? 그렇다면 어째서? 라는 물음이 나오기 전에 김방경은 대답했다.
“그분은 가능할 것이라 믿기에 하는 것 입니다!”
“서, 설마 그럼 정말로 태자 전하께서?!”
* * *
“저것이 폭죽인가. 참으로 멋지구나.”
폭죽이 잘못될 경우를 대비해서 곁에 있던 병사들이었지만 그들이라고 폭죽을 본 이는 극히 적었다.
아니, 아예 없었다는 말이 사실이리라.
그런 그들인 만큼 난생처음 보는 아름다운 불꽃에 너나 할 것 없이 화려하게 수놓아진 하늘에 정신이 팔리는 것도 전혀 무리가 아니리라.
그리고….
“으윽!”
“모조리 죽여라! 단 한 명도 살려둬서는 아니된다!”
“기, 기습이다! 반란이다! 반란군이….”
김방경과 그 병사들은 곧바로 사전의 계획대로 폭죽을 쏘아올리고 있는 곳으로 향해 그들을 감시 보호하는 병사들을 습격하기 시작했다.
퍼엉! 퍼퍼펑!
“큭! 폭죽 소리에 묻히고 있어!”
그들의 비명도 폭죽 소리에 묻혀 끔찍이 도륙되었고, 그런 도륙 되는 광경을 목격한 폭죽을 쏘는 사람들은 겁에 떨려 움직임을 멈추어야 했다.
그러나 김방경은 그들이 멈춘 모습을 용납할 수 없었다. 그는 칼을 들이밀며 명령을 내리기 시작했다.
“어찌하여 멈추는 것이냐! 너흰 정남작에게 폭죽을 쏘라고 명을 받았을 터! 어서 재개하지 못할까!”
“히이익. 아, 알겠습니다. 하겠습니다.”
일꾼들은 기겁하며 다시 쏘기 시작했고 끝난 듯 한 불꽃놀이는 이어 재개되었고 폭음도 다시 울리기 시작했다.
“자, 장군님. 장군님이 남작님께서 말씀하신 때가 오면 알 것이니 지체 말고 건네드리라고 한 분이옵니까? 그렇다면 전해드릴 것이 있사옵니다.”
그렇게 말하며 일꾼이 건넨 것은 거대 상자였는데 그 속에는 다른 폭죽을 쏘아올리는 통보다 좀 더 크고 줄이 꼭 묶여 있는 대나무통과 자갈을 비롯한 여러 재료들이 들어져 있었다.
“잘 받았다. 너희는 지금 당장 가장 작은 폭죽을 쏘고 그 후로도 계속해서 폭죽을 쏘아라. 폭죽이 고갈되기 전까지 절대 여길 떠나서도 쏘는 것을 멈추어서도 안 된다. 알겠느냐? 이번 거사에 우리와 너희 가족들은 물론 나라의 존망이 걸려 있도다.”
“아, 알겠습니다.”
화약을 쏘는 일꾼들이 고개를 조아리며 지시대로 하자 병사들에게도 지시를 내렸다.
“서둘러라. 우봉별초들이 들이닥치기 전에 끝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