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yo Black Prince RAW novel - Chapter 108
108화. 1부 에필로그
“이번 거사 때 보여주었던 의와 용맹을 모두 치하하고 상을 내리는 것이 마땅하나 공적에 높고 낮음이 있다면 마땅히 녹훈도 그리 해야 하는 법! 이에 유시하니 경들은 따를지어다. 일등공신 왕식, 왕간, 만종, 김취려, 정안연, 김방경, 이장용, 척인사….”
‘…안경후께서는 김약선을 쓰러뜨리고 태자 전하를 도왔으니 이해하며, 최우의 서장자인 만종 또한 의심스럽긴 하지만 일단 태자 전하께서 가담을 하시었다 하셨으니 1등 공신의 자리에 오른 것은 이해하나, 이미 졸한 김취려 시중께서 1등 공신에 오르다니….’
‘김방경이면 불혹(不惑 40)은커녕 그 반을 겨우 넘긴 새파랗게 어린 애송이가 아닌가?’
‘유갑수는 또 누구야?’
‘듣도 보도 못한 인간들의 이름을 이리도 많이 듣게 될 줄이야.’
‘끄응. 내 손주뻘 되는 녀석이 1등 공신이고 노신이 3등 공신이라고? 허참?’
거사의 공신들이 전부 열거되고 공신들에겐 그만한 상들도 내려졌다.
정전에 있는 신료들 중 어젯밤 세자와 함께 무기를 쥔 자들, 혹은 거사를 계획한 이들 외에도 오른 이들도 있었다.
최우와 약선이 죽고, 동궁으로 강제로 집합되어 사후 거사에 찬동을 하고 황상 앞에서 국본을 바로 세워졌다는 것에 첫 줄에서 답한 대신들이었다.
그들 중 가장 명망이 있고 직위가 높은 자는 단 한명 만이 2등 공신 말석에 오를수 있었고, 그 외에는 죄다 3등 공신이었으며, 3열 이후에 서 있는 자들은 3등 공신에도 들어서지 못하였다. 그러나 애초에 이번 거사에는 참여를 못한 것은 그들 스스로도 아는 사실인데다가 무엇보다 세자의 눈 밖에 나고 싶지 않았던 것도 있었기에 잠자코 들을 수밖에 없었다.
공신의 명부와 보상을 청한 것은 당연히 왕식이었다.
왕식은 이번 논공치하(論功致賀)에서 자신의 세력을 일구고, 조정을 물갈이하거나 못해도 자신의 사람들을 심으려고 하고 있었다.
그래서 왕식의 주변 인사들 대부분에게 공신으로 올렸는데 대표적으로 내솔부의 김방경은 시위대장군(大將軍 : 종3품 무관직)에, 척인사는 장군(將軍 : 정4품 무관직)에, 유갑수는 중랑장(中郎將 : 정 5품 무관직)에 오르는 매우 파격적인 승진을 받았는데 이게 고작 직위에만 한정하여 말하는 것이니 다른 보상과 대우는 얼마나 심했는지는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덧붙여 마지막 김약선의 발버둥에서 안경후를 구한 용호군 산원 장순량(張純亮)은 역적을 막고 왕자를 구한 공으로 낭장으로 올랐고, 내솔부 낭장 송 문주 또한 세자를 도운 공으로 낭장에서 중랑장으로 승진하였다.
물론, 무인들만 오른 것이 아니었다. 대표적으로 주자의 후손인 주잠과 제자들도 있었다.
주잠은 태사(太師 : 태자의 스승. 주로 종 1품의 관리가 겸직한다.)으로 올랐고, 그의 제자들 또한 각자 자리를 받을 수 있었으니 이장용이나 세자를 지지하는 서경 구족(舊族)들에 이르러선 논할 가치조차 없었다.
“폐하. 난신적자를 척결하고 조정에 인재가 들어온 것은 참으로 기쁜 일이오나 아직 미처 처리되지 못한 일이 있사오니 이 일도 시급히 처리함이 마땅하옵니다.”
이번 거사의 공신들에 대한 이야기가 끝나기 무섭게 말을 올린 이는 다름 아닌 김취려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이번 공신책봉에서 3등 공신으로 인정받고 조청대부(朝請大夫 : 문산계 종5품)가 된 김전이었다.
“무엇인가?”
“이번 거사에 처벌을 받은 난신적자 김약선의 부친인 수태보(守太保) 김태서와 김약선의 여식이자 현재 태자비 후보로 점지되어 있던 김연을 어찌하면 좋겠사옵니까?”
김전의 말에 대전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최우가 난신적자로 죽고, 그의 사위인 김약선도 난신적자로 죽은 이상 그의 가문에 대한 것도 난신적자로 척결해야 함이 옳았다.
그러나 오늘에서야 불려온 김전과 달리 그곳에 있는 이들 상당수는 어젯밤 김태서가 동궁에서 처리되지 않은 것에 목격했기에 이에 대해 자연히 세자에게 시선을 줄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 자리에 있던 김태서 또한 김전의 말에 식겁한 표정으로 세자에게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고, 이에 고려 왕 또한 세자의 의견을 듣고자 하였다.
“부모가 난신적자라고 공을 세운 혈족까지 난신적자라고 한다면 일등공신인 만종과 2등 공신인 만전 또한 공이 아닌 벌을 내려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찌하면 좋겠느냐?”
“수태보 김태서의 삼남 김경손은 경상도에 일어난 반란 진압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고 악명 또한 없으며 본인 또한 명망이 높으니 스스로가 범한 죄가 없다 할 수 있으니 공이 흠을 덮고도 남음으로 보입니다. 차남 김기서 또한 이렇다 할 악행을 저지른 것이 없으니 흠이 있다 한들 과한 벌을 내리는 것은 옳지 않아 보입니다. 그리고 김약선의 여식인 김연은 난신적자의 피를 잇고 아비가 고혈을 짜 모은 재보로 먹고 살았으나 그 나이가 어리고 물정을 모르는바 아비와 같은 죄를 묻는 것은 아니 된다 사료되니 큰 죄를 내리지 않는 것이 타당하지 않은가 소자는 생각하옵니다.”
“흐음. 허면 수태보 김태서는 어떠한가?”
세자의 말에 왕이 되묻고 있을 때 김태서는 김약선 개인에게 죄를 한정한다는 것에 안도하고 있었는데 사람 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아는 것이라고 다음 이어진 말에 표정은 사정없이 일그러졌다.
“소자가 생각하기에 전주 김씨에서 죄인이라고 할 수 있는 자는 황실을 기만하고 국정을 농단한 최우와 함께 대역을 저지른 김약선과 그의 아비 김태서뿐이옵니다. 수태보는 응당 그에 맞는 죄를 내려야 할 것이 마땅하옵니다”
“폐하! 어, 억울하옵니다! 소인은 단 한 번도 황실에 다른 마음을 품은 적이 없사옵니다. 대역죄라니요. 부디 자비를 베풀어주시옵소서!!”
김태서는 깜짝 놀라 노구를 이끌고 나와 부복하며 왕에게 빌었으나 왕식은 이어 말했다.
“수태보는 최우나 김약선과 같이 붙어 다니며 그 위세를 빌려 조정의 중신이라는 위치에 있으면서 백성들과 신료들의 모범이 되기는커녕 타인의 전토를 강제로 탈취하고, 재산을 착복하였으니 아는 크나큰 죄라 할 수 있습니다.”
“…아, 아니옵니다. 신은 결코 그런 것이….”
“누가 거짓을 고하고 있는지는 조사를 하면 금방 밝혀질 것이옵니다.”
“짐도 수태보가 최우와 함께 다니고 있다는 말은 익히 들었도다. 허나 자신의 재물을 탐하고자 남의 것을 강제로 취하다니 참으로 가증스럽구나. 여봐라. 우선 저 늙은 여우를 감금하고 태자의 말이 사실인지 확인토록 하라!”
왕의 명이 떨어지기 무섭게 견룡군들이 들어왔고 김태서는 절규를 마지막으로 대전에서 끌려나갔다.
“또한, 김연이라는 아이가 어리고 스스로 범한 죄는 없다고는 해도 그 아비가 어젯밤 태자와 안경후를 시해하려고 한 죄인인 만큼 태자비로 삼는 것은 이치에 그릇된 일은 마땅하다! 일전에 있었던 태자비 논의는 모두 무효로 할 것이니 이에 대해 만조백관들은 이의가 있는가?”
“황상의 말씀이 합당하고 이치에 맞사온데 어찌 감히 이의를 올리겠사옵니까. 존명대로 함이 마땅하다 사료되옵니다.”
이때 최우의 당여였으나 살아남은 문하시중 최종준은 왕식의 눈치를 보며 왕에게 간하였다.
“본래 이번에 국혼을 급히 시행한 것은 국본을 바로 세우고자 함이었습니다. 하오나 어젯밤 태자 전하께서 난신적자를 척결하시어 조정과 나라의 우환을 제거하였음에 황상께서도 ‘국본을 바로 세우셨다.’고 하시었으니 구태여 국혼을 지금 급히 할 것은 없는 것으로 사료되옵니다.”
그는 최우가 세자에게 강제로 국혼을 성사시키려 했다는 것을 떠올려 세자가 원하는 것은 정반대로 국혼을 서두르지 않는 것이라고 이해했다.
그리고 세자가 지금 비를 만들지 않는 것으로 차후 자신들의 여식 혹은 관련 있는 사람의 자녀를 태자비로 삼을 가능성도 있기에 대전에 있는 신료들은 국혼을 미루는 것에 되려 동의하는 바이기도 하였다.
“흐음. 국혼을 미루라. 태자는 어찌 생각하느냐?”
고종 또한 이번 국혼을 허락한 것은 순전히 최우의 외손녀를 세자비로 삼으려는 권신의 결정에 순응하고자 한 것이라 미룬다는 것에 큰 불만이 없었고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번에도 왕식은 대전의 신료들과 왕의 예상과 다른 대답을 했다.
“소자는 국혼을 시행하여야 한다고 생각하옵니다. 이미 나라에 대대적으로 소자가 국혼을 할 것이라고 널리 알려진바 갑자기 궐에서 거사가 일어나고, 국혼까지 미루어진다면 백성들도 불안에 떨 것으로 보이옵니다.”
“…!?”
얼토당토않은 이유로 국혼을 찬성하는 세자의 말에 대전은 단번에 술렁이기 시작했고 그 상황에서 왕은 빠르게 침착함을 되찾고는 세자에게 되물었다.
“태자는 지금 김연이라는 아이를 태자비로 삼겠다는 것이냐?”
“아니옵니다. 어찌 제 아우를 시해 하려 한 자의 여식을 태자비로 삼겠사옵니까. 하옵고, 그 아이가 태자비 후보로 간택되긴 하였으나 결국 혼례를 치르지 않은바 어디까지나 후보에 올랐을 뿐 어찌 고려 천지에 그녀만이 태자비가 될 수 있는 자격이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호오. 태자는 혹여 이미 마음에 둔 정인(情人)이라도 있는 것인가?”
왕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게슴츠레 시선을 보내며 물었고, 그 물음에 왕식은 처음으로 작게 놀란 표정을 짓더니 이내 쑥스러운 듯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반응에 다시 장내는 술렁였고 왕의 표정도 굳었다.
“…누구의 여식인 것이냐?”
“은청광록대부(銀靑光祿大夫 문산계 정 3품) 용강후(龍岡侯) 정안연의 양녀(養女) 금수유라는 여인과 혼약을 맺었사옵니다.”
“…허어. 용강후의 양녀라고?”
정안연은 세자인 왕식과 안경후 왕간, 만종, 김취려 다음으로 공신에 이름을 올라갔는데 우봉 가문을 잠재우기 위한 용도인 만종만이 아닌 거사와 하등 상관도 없는 김취려까지 끌어들여 밑줄에 넣은 것이 귀화인인 그가 다른 고려인 공신들의 시기를 막고자 한 것이었다.
실상은 왕식 바로 다음이라는 것을 거사에 직접적으로 관련을 가진 이들은 다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을 모르는 대소 신료들 또한 어젯밤 동궁에 출석한 이들은 살생부를 쥐고 판가름한 것이 그라는 것으로 그가 거사의 공신이라는 것은 확실히 인지하고 있었다.
그렇게 성공한 거사에서 정안연이 받은 것은 김방경이나 척인사 이상으로 파격적이었다.
단순 작위만 하여도 용강남(龍岡男)에서 용강후(龍岡侯)로 승작되었을 뿐만 아니라 식읍(食邑) 또한 언급상으로만 준다고 한 것이 아니라 진짜 제대로 된 것으로 100호를 받고, 은청광록대부(銀靑光祿大夫)라는 문산계의 직위도 받아 승진한 것이다.
그러나 외인이 종친이 된다는 것에 아무런 반발이 없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고 결국 입장적으로 큰소리를 외칠 자격이 없는 최종준이 먼저 반대의 의견을 내놓았다.
“폐, 폐하! 이는 쉬이 결정할 일이 아니옵니다. 고려 개국 이래로 외국의 여인을 황실에 들인 적은 없었사옵니다. 하물며 친딸도 아닌 양녀라니요? 그 출신이 어떠한지 알고 황실에 들이시려는 것이옵니까?”
3등 공신 최종준이 반대를 시작하자 대전의 다른 신료들도 수군거리며 하나둘씩 최종준의 말에 찬동하는 말들이 이어 나오기 시작했다.
“그렇사옵니다. 용강후의 공이 적지 않음은 이곳에 있는 모두가 알고 있사오나 태자비를 정하는 것은 무릇 나라의 중한 일이옵니다. 그러한 중요한 일을 성급히 결정할 수 없는 노릇이옵니다. 부디 심사숙고하여 신중히 결정을 하는 것이….”
“그렇사옵니다. 폐하. 이번에 그가 1등 공신임은 분명하오나 그 옛날 신라 문성왕도 거병의 일등공신인 장보고의 딸을 비로 삼지 않았사옵니다. 그런데 공신의 딸이라는 이유로 이리도 쉽게 간택하여 삼는다면 외국에서 아조를 우습게 보지 않을까 걱정이옵니다.”
그러나 그들은 몰랐다.
이번 혼사를 주장한 것은 정안연이 아닌 왕식으로 정안연의 파격적이고 파격적인 승진 또한 금수유를 양녀로 삼게 할 경우 합법적으로 태자비로 삼을 수 있게 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말이다.
즉, 왕식은 이 자리에서 어떻게든 금수유와의 국혼을 성사할 각오를 마친 상태였다.
‘어차피 지금 정하지 않아도 이후 다시 국혼 문제에 맞닥뜨리게 될 것이 뻔하고 괜히 다른 가문의 입김이 강한 여식을 태자비로 삼았다가 예상도 못 한 외척을 만들 바엔 내 근처에 살고 내가 제어할 수 있는 금수유와 정안연이 훨 낫지. 거기에 여진족 문제도 있고….’
“폐하. 신라 문성왕은 간신들의 아첨과 허례허식의 주장에 중요한 약조를 어기었고, 그 결과 장보고는 난을 일으켰으며 장보고가 죽고 난 후 신라의 수군과 군사력은 피폐 되어 군웅할거의 시대가 도래시켰습니다. 또한, 용강후는 고려에 정착하고 그 직위를 받아 외지인이 아닌 고려인이 되었음은 폐하께서도 아시는 바입니다. 그런 그는 아조의 은혜에 몸과 마음, 재산을 바쳐 이번 거사를 추진하였고 큰 공을 세운 자입니다. 그런 자를 가벼이 보고 업신여긴다면 장차 조정에 누가 충성을 바칠지 소자는 걱정이 들 뿐이옵니다.”
“…….”
* * *
팔관회 혹은 연등회 같은 중한 행사에만 사용되는 위봉루.
왕식에 의해 원 역사와 달리 강화도가 임시 수도로 사용되고는 있는 형국이었지만 연등회와 팔관회를 거를 수 없어 강화도에도 위봉루는 설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위봉루에는 많은 고위 귀족들과 신료들이 모여 엄숙한 표정으로 행사를 지켜보고 있었다.
오늘 그곳에서 일어나는 행사는 연등회도 팔관회도 아닌 ‘국혼(國婚)’ 그것도 고려의 왕태자 왕식의 가례(嘉禮)식이었다.
그러나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의 이목은 대다수 세자가 아닌 신부에게 집중되고 있었다.
세간에 의문으로 가득한 새로운 세자비의 정체에 그곳에 모인 이들은 놀라거나 의심의 시선을 보냈고 ‘정말 저 여인이 세자비가 되는 것이냐?’라는 시선들이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신부의 복장에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고려 왕실에서 심혈을 기울이고 기울여서 만든 것이라 흠잡을 데도 없었다.
외관상에도 상흔이 있다거나 한 것도 아니었다. 미모가 추하다고도 할 수 없었다.
되려 남성의 시선을 절로 빼앗는 흉부의 군살을 본다면 추후 세손이 나올 때를 기대할 법도 보였다.
그러나….
‘크다-!’
‘…세자비가 되기엔 너무 많은 것 아닌가?’
‘부부로는 보이지 않는데….’
‘진짜 크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남녀 간의 신체 차이였다.
여성이 어린 남성보다 성장이 빠르다 보니 초혼을 할 경우 신부가 신랑보다 큰 경우가 종종 보이긴 하지만 눈앞의 광경은 그 정도가 심했다.
신랑의 머리가 신부의 어깨 내외에 겨우 도달하는 듯한 신장 차이와 앳된 소녀가 아닌 성숙한 여인의 신체.
둘이 나란히 있을수록 둘 사이의 연령 차이는 더욱 도드라졌다.
하지만 이목이 집중된 것에는 그러한 이유만이 아니었다.
‘저 여인이 바로 이번 거사의 일등공신의 여식인가요.’
‘살다 살다 외국인을 태자비로 모시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아무래도 다음 권력은 그 정안연이라는 자가 쥐게 되는 것일까요?’
‘그건 어떨까요. 이번 혼례는 용강후가 아니라 태자께서 직접 추진하신다 들었는데 어쩌면 그 소문이 사실이지 아니겠습니까?’
‘그 소문이라고요?’
‘모르셨습니까? 단지 소문입니다만, 아조로 도피한 금국의 황녀가 태자 전하와 눈이 맞아 밀애를 나누고 있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너무나 허무맹랑하군요.’
‘소문이 사실인지는 모르지만 확실한 것은 지난해 용강후가 아조에 귀화하였을 때만 하여도 용강후에겐 여식이 없었다고 저는 들었습니다.’
‘그것은… 확실히 의심스럽군요. 그 사이에 태자 전하보다 연상의 여인을 양녀로 입적시켰다니. 혹 저 여식이 정말 금 황녀일까요?’
‘그건 모르겠습니다. 뭐, 일단 비천하게 보이지는 않습니다만.’
‘문제는 사실일 경우 향후 금과 몽고와의 문제가 아니겠는지요?’
‘그러니 양녀로 입적시킨 것이라고도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런 주위로부터 보내지는 시선 속에서 정작 금수유는 내색하지 않게 당당한 발걸음으로 앞으로 나아갔다.
‘…….’
그러나 겉으로 내색하지 않는다 한들, 정말로 아무렇지 않을 리는 없었다.
그녀는 자기가 지금 긴 울퉁불퉁한 흙길을 걷는지, 아니면 융단이 깔린 바닥 위를 걷고 있는지조차 구별할 수 없는 상태였다.
고작 걷는 것에 불과한 것이지만 부담이 되었다.
철면피에 가까운 그녀였으나 지금의 상황은 이해 불능이었다. 자신이 이곳에 있는 것도 있어도 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도대체 무슨 생각이지? 나는 어디까지나 금의 유민들을 끌어들이는 용도가 아니었던 건가? 무리하게 나와 황실에 들인다고 무슨 이득이 있다고 나를…?’
속으로는 표정이 굳다 못해 식은땀과 분노, 당혹, 의심 여러 복합적인 감정이 가득 차 있는 금수유였지만, 이윽고 책비(册妃) 의식을 끝내고 다시 마주한 왕자가 그녀를 향해 소리 없이 입을 벌려 전했고 그 말을 눈치챈 수유는 맥이 빠짐과 동시에 쓴웃음이 지어졌다.
(나는 말한 대로 하였소. 약속을 지켜주시오.)
‘…이 응큼한 꼬맹이.’
마음에도 없는 욕이라도 하지 않으면 스스로를 유지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감정이 복받쳐 표정을 유지할 수 없었다.
고작 하룻밤의, 결코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 바람을 정말로 들어준 송악산 왕 도령의 행동이 어이없으면서도 기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결국 의식의 말미에 금나라의 선자는 눈물을 흘리고야 말았다.
-1부 완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