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yo Black Prince RAW novel - Chapter 165
165화
28장 상인외교(商人外交)(3)
““폐하! 신을 죽여주시옵소서!””
사숭지와 정청지는 어느 누구도 물러나지 않았고 자기주장을 고집했고, 둘의 설전이 계속되면 될수록 송 황제는 깊은 한숨을 흘리며 현 상황에 골치 아픔을 느꼈다.
“그만, 그만하라. 승상은 작금의 사태 변화를 인식해야 할 것이다. 본조는 본래 고려와 함께 싸우려 했으나 지금 고려는 전쟁을 끝낸 상태로다. 이런 상황에서 이미 여러 번 예상을 벗어난 전쟁을 고집하는 것은 병력의 손실이 매우 크고, 위험도 크다. 하니 회군을 하는 것이 마땅하다.”
만에 하나를 위해서라도 회군을 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호응을 받을수 있을 것이라 선전하고 갔다가 폐허만 보고 두려워 정청지의 말도 일리는 있었다. 아니, 그보다 세간에서 자신을 보는 시선이 신경 쓰였다.
결국,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던 황제는 양자의 의견을 적절히 수용하는 계책을 채택해야 했다.
“하나 짐이 어찌 고토를 포기하고, 백성들을 포기하겠는가. 지금 당장 출병 중인 천군에 칙사를 보내 전하라. 지금 당장 회군을 하되, 근방에 있는 백성들을 될 수 있는 한 최대한 데려오도록 하라!”
그 말인즉슨, 왕식이 말한 회군할 때 회수 이북의 한인들(과 금인들)을 끌고 온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이 계책은 정청지와 사숭지 둘 모두에게도 양보할 수 있는 선택지였다.
‘회수 이북을 탈환하지는 못하였지만 옛 백성들을 구하고 왔다면 출병의 의의가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로다.’
‘백성들을 구하자는 말에 여기서 이의를 제기한다는 것은 정말로 회수 이북의 땅을 수복할 땅으로조차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이 된다. 어차피 몽고와 전쟁을 하게 된 이상 백성들을 데려오는 것은 안 하니만 한 것만도 못하다.’
“폐하의 말씀이 모두 맞사옵니다.”
“그리고 짐이 생각하건대 저 북방의 이적은 본조의 예상 이상으로 매우 위험한 흉적인 바, 해동의 번국 고려와 연계하는 것이 위기를 보다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길이로다. 하여 국신사(國信使)를 보내 국교를 맺는 것이 좋으리라.”
겨우 가라앉아 가던 대전은 송 황제의 발언에 다시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사숭지도, 정청지도 방금 전 살벌한 논쟁이 거짓말인 것처럼 함께 황제에게 반대의 의사를 밝혔다.
이들은 고려와 수교를 하고자 하는 뜻에 놀란 것이 아니라 수교를 하기 위한 국신사를 먼저 보내겠다는 것에 놀란 것이다.
“폐하. 그 옛날 신종황제 시절에도 고려의 의사를 확인하였으나 먼저 사신을 보내지는 않았사옵니다. 본조의 사신을 보내는 것은 고려의 사신이 먼저 오고 난 뒤에 행하여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사옵니다. 본조가 상인의 말만 듣고 사신을 보내었는데, 정작 당도하니 고려가 몽고의 문제로 수교를 거절하거나 그 자리에서 받지 않고 미룬다면 사신은 무슨 낯으로써 돌아올 수 있으며, 본국은 무슨 수치란 말이옵니까?”
오월동주(吳越同舟)와도 같은 의견을 내는 두 대신에 의해, 황제도 곰곰이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철회하였다.
“경들의 말이 맞다. 짐이 성급하였도다. 우선 상객 이연보를 다시 보내 고려를 설득하도록 하라. 단, 고려 세자 식의 충정 어린 소(訴)와 고려의 승리를 치하하고자 하경사(賀慶使)에 준하는 예물을 보내도록 하라. 이연보에게 만일 고려와 수교에 성공한다면 큰 상을 내릴 것이니 힘껏 일하도록 하라.”
“황명을 따르겠나이다. 폐하.”
* * *
“자, 잠깐! 너무 힘들다. 조, 조금 쉬게 해라.”
“일을 끝내고 나야 쉴 게 아니냐!!”
“아, 알았다! 조, 조금만 쉬고 간다!”
고려군에 잡혀 공노비가 된 거란인 회란타이(廻鸞朶已)는 툴툴대며 다시 물지게를 지고 일어났다. 끌려갈 때부터 예상했지만 공노비 생활은 예상 이상으로 힘들었다.
특히, 해가 쨍쨍한 날이 되면 여지없이 끌려 나와 냇가나 우물에서 물을 퍼와 말라붙으려 하는 논에 퍼주어야 했다.
아니면 보를 설치하거나 밭을 갈거나 하는 등의 노역에 시달렸다.
이 때문에 오죽하면 그가 가장 먼저 배운 고려 말이 ‘잠깐’, ‘힘들다’, ‘조금 쉬게 한다’였으니 그 노고가 얼마나 심한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렇다간 내 몸이 못 버틴다.’
물론, 이런 고된 노동은 거란인에게만 한정된 것이 아니었다. 여진인과 한인 등 포로로 잡혔다가 공노비가 된 이들 대부분이 예외 없이 고된 노동에 허덕이고 있었다.
그리고 이들이 하는 노역의 정체는 대부분이 보 설치, 더위로 말라가는 논에 물을 퍼서 채우기, 내고 소속 염전, 개간 등의 일이었다.
특히 염전과 모내기법 경우 전쟁이 터지기 전까지만 하여도 얼마 안 되는 공노비들과 서경 귀족들의 사노비, 혹은 서경민들이나 북방 백성들의 도움을 받아 불만을 누르면서 억지로 유지한 던 것이었으나 갈라전 전쟁, 통주 전투, 갑오북정(甲午北征 : 3차 여몽 전쟁 중 고려군이 압록강과 천리장성을 넘어 공격한 전쟁.) 등으로 많은 포로들을 얻게 되자 그 일부를 공노비로 편입되면서 전 포로들이 맡게 된 것이다.
그들이 오기 전 왕실어료지(王室御料地 왕실이 소유하고 경영하는 토지) 염전과 모에 물을 대는 것을 겪은 고려인들은 그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고 있었으나 야속하지만, 자신들이 해가 쨍쨍한 날에 밭을 오가며 물을 대는 것보다는 전쟁에서 패해 끌려온 외인들이 대는 것이 자신들이 훨씬 편했기 때문이다.
‘젠장! 젠장!! 이럴 줄 알았다면 갈라전 여진 놈들에게 사여된다 할 때 갈걸. 아니면 둔전이니 내솔부니 하는 곳에 갈걸. 괜히 변경보다 내지가 안전하다는 말에 혹해서…….’
“어이. 회씨. 그만 죽상 얼굴하고 여기서 와서 주먹밥이나 먹어!”
그나마 다행인 점은 전 이 노역을 담당하거나 관리하는 고려인(노비)들은 얼마나 힘든지 알아서 다소 배려를 해주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물론, 이런 고려인들의 배려에는 그들이 오기 전 사전에 이번에 끌려오는 외국노비를 괴롭히거나 사고가 나 빈자리가 생기게 되면 거기에 문제를 일으킨 노비를 이전처럼 직접 고된 노역에 부과시킬 것이라는 상부의 경고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회란타이는 몰랐지만 말이다.
* * *
올해 왔다가 돌아갔던 송나라의 상인 이연보와 명수창이 9월에 다시 돌아와 절을 올린 뒤 말하였다.
“소인 이연보. 지난번 성국(成國 : 번영을 맞이한 나라.)에 입조하였을 때 미처 전쟁이 끝난 것을 제대로 알지 못하여 승전을 감축드리는 진상품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하였사온데 성국에서 내린 것은 바친 것에 그런 것에 비해 너무나 진귀하여, 받고 나고 돌아간 후 지금까지 너무 부끄러워 잠을 이룰 수 없었사옵니다.
하여, 그 죄를 씻고자 다시 찾아와 바치옵니다. 간절히 생각건대 지금 변변치 못한 물품을 받들어 지난번 폐하께 미처 올리지 못한 것을 올리는 작은 정성을 표하려 하는 것이오니, 이번에는 하사품을 내려 상을 내려 이 소인에게 수치를 주지 말아주시옵소서.”
그러면서 바친 양은 각양 각색의 비단 종합 1만 필, 은 2천 냥, 차 1백 근이었는데 그 양이 결코 일개 상인 1명이 낼 수 있는 양이 아니기에 여러 신료들과 사람이 무척 놀랐지만, 고관 대부분은 담담하였고 고려 왕 또한 담담히 받아들이며 치하하였다.
“날씨가 더운데 고생하며 왔구나. 그대의 뜻과 노고를 알겠도다. 그러나 어느 성군과 군주가 받기만 할 수 있으랴. 따로 상을 내릴 것이니 이에 대해선 그대는 괘념치 말라.”
* * *
“이번에 바친 비단들은 하나같이 귀한 것들이며, 송 황실에서만 취급하는 비단도 있사옵니다. 이는 곧 남조에서 상인을 통해 우리에게 보내는 것이 분명하옵니다.”
예부상서의 보고에 고려왕은 짐짓 예상한 바라는 듯 고개를 끄덕이곤 물었다.
“남조는 인종 대왕 시절 사신을 보내어 무리한 부탁을 하였다가, 우리가 거절하자, 우리가 사신을 보내도 내치고 수호(修好)의 뜻을 거부하여, 아조도 또한 사신을 보내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이렇게 상인을 통해 우리와 교린(交隣)하려 하고, 또 승전을 축하하였으니 보사(報謝)하는 것이 ‘의’라고 생각하는데 이번에 상객 이연보에게 어떤 말을 하는 것이 족하겠는가?”
고려 왕의 말에 문하시중 최종준은 곧바로 대답했다.
“국교가 단절되기 이전에 아조와 남조는 교우가 돈독하였사오며, 금번(今番) 상인이 다시 온 것도, 지난번에 전쟁이 끝난 것을 모르고 왔다가 보고 후 제대로 축하하고자 보낸 것이니 이는 경하사(賀慶使 : 축하를 위해 보낸 사신)라고 봐도 무방할 것입니다.
이것은 칭찬할 만한 것이니, 바로 사절을 보내는 것에 대해선 미루더라도 사람을 대하는 도리란 박대하는 것보다는 후대하는 것이 도리이오니, 상객 이연보를 크게 후대하고, 깊이 생각하겠다고 우선 돌려보내는 것이 어떻겠사옵니까?”
최종준의 말에 대왕은 고개를 끄덕이며 되물었다.
“지당하도다. 그러나 상객 이연보 등이 말하기를 ‘(송의) 천자께서는 동방의 고려에 국신사(國信使)를 보내려고 하는데 (고려의) 뜻을 알 수 없으니 답답하다고 하시며 고려왕의 뜻을 보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대왕 폐하께선 필히 답을 해주시어 양국의 관계를 회복하게 하여주십시오’. 라고 하였다.”
국신사(國信使)는 대등국 내지는 대등에 준하는 나라를 취급하는 국가에게만 보내고 받는 사절단이었는데, 북송 시기 요의 국신사와 송의 국신사가 오고 간 것이 그 예라 할수 있었다.
그런 국신사의 예우를 고려가 받은 것은 문종이 재수교를 하고도 40여 년 후 예종 때에 이르러서였는데 현 남송은 단번에 국신사의 격에 올릴 것이라고 뜻을 내비친 것이다.
“이 뜻은 매우 바람직한 처사이다. 대개 지난번 단절은 그들(남송)의 잘못이며, 지금 저들의 처지도 그 옛날 본국의 인종 대왕께서 태자 시절 경고한 바를 묵살하고 일어난 일이니 자업자득의 소치가 아닐 수 없다.
또 지금도 우리나라가 아니면 실상 의지할 만한 곳이 없으니, 그들은 (고려를 대하는 것에 있어서) 마땅히 과거의 예우에서 떨어져서는 아니 될 것이다.
그러나 저들이란 반복(反覆)이 무상하고, 오늘날 북조는 그 옛날 거란과 여진보다 (우리와) 가깝고, 강대하니 섣불리 통교를 하게 되면 북조에서 아조로 하여금 따지려 들 것이니 감히 결단하기 어려운 것이 아니겠는가?
지난번에는 미루었으나 금일에 이르러 하경사(賀慶使)나 다를 바 없는 통인(通人. 통하는 사람)을 보내오니, 그 물품과 뜻은 가상하고 기쁘나, 정식으로 답하기는 여전히 고민이 들도다.
문하시중 말대로 이번에는 송상을 돌려보낸다 하나 만약에 남조에서 다시 이러한 뜻으로 사람을 보내어 청해 온다면 장차 어떻게 처리하면 좋겠는가?”
왕이 재차 묻자 조석이 대답하였다.
“남조 황제는 전일의 잘못을 뉘우치고 우리에게 재화와 언변으로 달래, 우리를 신하로서 다시 복사(服事)시키고자 하니, 비록 그 노림수와 노력은 인정할 만하나 남조는 옛날부터 도와줄 듯하면서도 정작 중요할 때는 본국에 큰 도움을 준 적은 없었사오니, 저들과의 수교가 북조와의 문제를 키울지언정 해결하거나 문제가 될 시 해결할 때 도움은 되지 않을 것입니다.
만약, 뒷날에 다시 배반한다면 본국의 우환이 될 것이니 다시 수교의 뜻을 보내온다면 후하게 대접은 하되 또다시 미루거나 거절해야 할 것입니다.”
수교를 반대하는 조석과 반대로 호부상서 경번은 주저하며 주장했다.
“그, 그러나 남조와 수교를 한다면 그들은 그 옛날 아조를 대하는 것 이상으로 대우를 할 것인데, 남조와 수교를 하였을 때 받은 재물은 결코 작지가 않사옵니다. 또한, 우방국이 있다면 역시 국방에도 안전에도 도움이 되는 것이….”
“부를 탐내다가 나라가 불탈 수가 있음을 호부상서께서는 어찌 모르는 것이오?”
“아니, 내 말은 그저… 섣불리 거절하기보다는 조금 더 나은 선택이 없는가 모색을 해보자는 말입니다. 지금 본국은 수차례 일어난 전란과 내란으로 소모된 전비만 하여도 적지 않습니다.
단순 전비만 들었다면 모르겠지만, 동경(김해) 개축, 북방 증축, 갈라전 개축, 대장경 작성 등에 전비 외에도 드는 경비도 너무나 많습니다. 이런 상황이면….”
“그렇다 하더라도….”
“그만! 남조와 재수교에 대해 논란이 있다면 다시 논의하여 보고하라!”
두 주장이 격화되려고 하자 왕은 끼어들어 막았는데, 이때까지 잠자코 있던 세자 왕식이 입을 열었다.
“폐하. 신 태자 왕식. 방금 황상께서 논의 후 보고 하라 하였음을 들었사오나, 지금 남조와 수교에 대한 신의 의견을 올려도 되겠사옵니까?”
“태자는 남조의 문제에 대해 궁리한 바가 많은바, 귀를 기울일 만하도다. 말해보라.”
“호부상서의 말대로 본국은 잇따른 내란으로 많은 경비를 소모하였사옵니다. 비록 이번 전쟁에서 승리를 하였고, 갈라전 등지에는 소금을 보내는 식으로 나라에 최대한 부담을 줄이고는 있사오나, 부유함과는 거리가 멀다 할 수 있사옵니다.
그러나, 그 옛날 송과의 수교로 본국에서 방물을 보내고 회사품을 받아 이익을 보기는 하였으나 작금의 사태에서 이전과 같은 수준에 만족해서는 아니 됩니다. 또한, 북조에게 숨겼다가 들키는 것을 우려 해야 하는 것도 맞사옵니다.”
“그에 대해 태자는 말하고 싶은 바가 있는가?”
“신에게 작은 계책이 있사온데, 이에 대해 어찌할지 황상과 대소신료분들께서 듣고 판단하여주시옵소서.”
* * *
그렇게 운을 떼고는 왕식은 의견을 내놓았고, 전부 들은 왕과 신하들은 묘한 표정을 지을 뿐 쉽사리 말하지 못하였다.
그저 왕만이 수염을 쓰다듬으며 쓴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본국에 아태자만큼 기책(奇策)을 내놓는 자는 없을 것 같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