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yo Black Prince RAW novel - Chapter 177
177화
33장 남북조 상황(2)
송 조정은 고려가 어떤 상황인지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비록 기대한 요동 정복은 성사시키지 않았지만 번번이 승리를 거두고 요동까지 가서 대승을 거두고 전쟁을 무사히 마쳤다는 소식에 고려를 우군(友軍)으로 삼으려고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고려 사신을 영접하는 잔치가 한창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때 송의 신하 하나가 통역을 통해 질문을 던졌다.
“고려국의 국왕 전하의 치세에 해동은 태평성대를 맞이하고 계신다 들었습니다. 황상께서도 고려가 승전을 거둔 소식에 해동이 안전해진다고 기꺼워하고 계십니다.”
“모든 것은 열성조(列聖朝)분들의 가호와 군신과 백성들이 하나가 되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용감히 싸웠기에 일어난 당연한 현상이라 아국의 국왕 전하와 정윤(正胤=태자) 전하께서는 말씀하셨사옵니다.”
정사 최린은 그 말에 공손히 대답했다.
“옳으신 말씀이십니다. 험난한 위기에는 전국 만백성과 군신이 한 몸처럼 움직여 넘어야 하는 것이지요. 그러고 보니 귀국의 세자께서는 어린 나이에도 무예가 출중하시고, 군략이 뛰어나면서 장졸들을 부림이 귀신과 같아 이적들을 격퇴하는 그 무용이 조(趙)의 무안군(武安君)을 연상케 한다고 들었는데 사실인지요?”
조의 무안군이란 조나라의 명장 이목(李?)을 말하는데 이목은 천자문(千字文)에서도 기전파목 용군최정(起?頗牧 用軍最精)이라 하여 백기, 왕전, 염파와 더불어 용병이 가장 뛰어난 4명이라고 평가하는 내용이 있을 정도로 중국 역대 명장 중 한 명이었다.
이목의 유명한 공적 중 하나가 조나라의 골칫거리였던 북방의 흉노를 상대로 크게 승전을 거두며 흉노가 조나라에 얼씬도 거리지 못하게 만든 것이었는데, 지금 송나라 사람들이 왕식을 그런 이목으로 평가하는 것은 고려가 송의 이목이 되어주길 바라는 뜻도 있었기 때문이다.
“아국의 정윤 전하께서는 뛰어나신 용맹과 문무를 겸비하시었으나 그중에서도 궁술이 몹시나 뛰어나 몽고의 명궁도 전하께 당해내지 못하였습니다. 오죽하면 아국에서는 동명성제의 재래로 보는 이들도 있겠습니까. 그리고 참가한 친정에선 무조건 승전만을 거두니 그 군재는 감히 당 태종에 비견해도 모자람이 없다 하실 수 있습니다.”
당 태종은 고수 전쟁의 여파로 분열된 중국을 부친의 밑에서 활약하여 당으로 통일하고 돌궐들을 짓누르는 등 뛰어난 군재를 가진 것으로 유명하였다.
그러나 중국사에서 손꼽히는 명군 중 명군을 제후국의 세자를 높이는데 빗대니 송나라 사람의 얼굴에선 다소 당혹감이 떠올랐다.
그러다가 이내 최린의 안면에 근심이 떠오른 것을 보고 의아하여 물으니,
“당 태종께선 천하가 인정하는 명군이신데 그런 분과 비견되다는 것에 어찌 정사의 얼굴엔 근심이 어려져 있는 겁니까?”
“당 태종은 천하를 통일하고, 그 무재와 치세가 천지를 뒤덮을 정도로 뛰어남은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하나, 전란 속에서 임종하신 군주이기도 합니다. 다행히 정윤 전하께서는 뛰어나신 능력에 뒤지지 않게 효심과 우애 또한 깊으시어 궁의 변(宮之變)이 일어날 걱정은 없으나 전란에 휘말리시는 것이 아닌가 걱정이 드는 것입니다.”
“…그렇습니까.”
다시 송나라 사람들의 안색이 다소 굳어졌다.
그가 말한 궁의 변이 현무문의 변(玄武門之變)을 말하며 세자는 당 태종과 달리 현무문의 변을 일으키지는 않을 것이라고 은근슬쩍 세자를 높이고 당 태종을 비판한 것을 눈치챘기 때문이다.
그러나 송 신하들은 마지막 전란에 휘말릴 것 같다는 부분에 더욱 귀를 기울였는데 이때 송 황제도 정사에게 말을 걸었다.
“짐도 이전부터 고려에 뛰어난 세자가 있다 들어 관심이 동하니 그대가 설명을 해줄 수 있겠는가?”
송 황제가 묻자 최린은 공손히 고려의 왕이 천도를 할 때 세자가 개경에 남아 있었다는 것을 시작으로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일부는 각색되었고, 일부는 최린 본인이 오해하고 있는 것들도 있었기에 이야기가 다 끝났을 때 쯤에는 세자는 설화나 군담소설 속에서나 나올 영웅호걸로 둔갑되어 있었다.
“권신을 격퇴하고 내란을 진압하고 내란을 진압하는 그 모습 그야말로 태조(송 태조)와 같구나. 그런 세자를 자식으로 둔 고려국의 왕은 참으로 부럽도다.”
이렇게 말하는 송 황제는 아들들을 모두 요절하여 떠나 보내, 태자는커녕 황자조차 없는 상황이었는데 이때 고려의 세자의 활약을 듣자 고려왕에게 부러움을 느낀 것이다.
“본조와 고려는 개국 초부터 서로가 통호하고 우호를 다져왔다. 비록 요, 금 같은 이적들에게 가로막혀 번번이 소통이 끊기었으나 이렇게 해동에서 가장 든든하고 강성한 고려가 다시 속방(俗方)이 되어 참으로 기쁘지 않을 수 없구나.
만국에 여러 이적들이 있으나 천조가 유일하게 우호를 다지고 싶은 곳은 해동의 고려일지니, 추후 고려가 요동의 고토를 되찾게 본조도 도와주도록 하겠다.”
요동수복에 도움을 주겠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여, 이번엔 최린이 굳은 표정으로 입을 다물자 황제의 곁에 있던 환관이 부드러운 어조로 설득을 시도했다.
“황제 페하께서는 추후 고려와 함께 북방의 이적을 치고 서로가 서로의 고토를 되찾게 도울 수 있게 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천조는 만년대대로 고려의 은혜를 어여삐 여겨 큰 보상을 내릴 것입니다.”
* * *
“들을 것도 없사옵니다. 저들은 예전과 전혀 다를 바가 없사옵니다. 분명 입으로는 간이든, 쓸개든 줄 듯하나 결국 군사를 보내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이 아니라면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겠사옵니까?”
고려국의 사신단이 돌아가고 송 황제는 대신들을 불러 논의하자마자 고려에 대한 비평이 쏟아졌다.
최린은 요동수복에 지원해 주겠다는 송 황제의 말에 마음은 감사하지만 지금 고려는 잇따른 내란으로 입은 피해를 복구로 힘들다고 대답하며 물러났는데 비록 어느 정도 예상한 답변이긴 하였지만, 썩 좋아할 만한 대답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린 또한 단순히 어렵다고 거절만 하고 넘어간 것은 아니었다. 최린은 이때가 되어서야 고려 세자가 황상께 올린 전언을 전하였다.
“아국의 정윤이 황상께서 그러한 말을 묻고자 한다면 무례를 무릅쓰고 올리라고 하여 이렇게 올리옵니다. 부디, 참람(僭濫)하고 예에 벗어난 행동에 대해 이 번신(藩臣)만을 꾸짖고 받아주십오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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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제왕들은 반드시 먼저 자신을 수양하고 가정을 다스린 뒤에야 법도와 기강을 세워 일에 두서가 있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대국과 아국은 각자 많은 소란 속에서 조금씩 해결해 가며 한 걸음씩,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몽고라는 태풍은 단독으로 대처하기에는 힘든 재해(災害)이니 그 옛날 전국시대 소진(蘇秦)의 합종책을 해야 할 것입니다.
아조에서도 그 옛날 삼국이 대립하고 있을 때, 구고려가 백제와 신라를 삼키지 못한 것은 둘이 전심전력으로 서로를 도와 합종하여 맞대응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작금의 상황이 그때와 별다를 바가 없으니 해야 할 것도 그때와 크게 틀리지 않다 생각합니다.
하여 폐하께서는 능히 혼잡하고 자질구레한 일들을 처리하시고 장차 있을 전란을 대비하여야 할 것이옵니다.
소방의 정윤이 작은 재주와 기연이 있어 전장에서 북방의 적들과 맞서 싸워 알게 된 것이 몇 가지 있사온데 이것들을 감히 대국의 황상께 간언을 올리고자 하오니, 꾸짖어 걸러 들어주시옵소서. 우선 북방의 이적들은….
(중략)
…폐하께서 진실로 심신(心身)을 깨끗이 하시어 잡다한 모든 일들을 일체 제거하시고, 마음과 생각에 한결같이 이 일만을 위주로 하신다면, 대국의 신하들과 백성들도 어찌 감히 나라를 위해 제 몸을 바치려 하지 않겠습니까?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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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세자가 적은 글의 내용들은 지금은 양국 모두 수신과 대비를 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이었는데 보다 파고들면 몽골은 남송을 칠 것이니 크게 대비를 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글들의 내용은 송 조정의 심기를 건드리는 내용이기도 했는데 고려에서는 현재 형국을 전국시대 진과 연, 제, 조 등 열국(列國)들로 비유하며 몽골은 전국시대의 강대국 진(秦)에 놓고, 고려를 포함한 송을 제(濟)나 연(嚥)등 약소국(弱小國)에 놓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무례한 비유로 송 조정은 고려에서 몽고를 얼마나 심각하게 보고 있는지를 깨닫게도 해주었다.
“지금은 수신을 우선 하라는 고려의 뜻도 일견 틀린 말은 아니옵니다. 적들의 기세가 파죽지세(破竹之勢)에 달하였는데 어찌 감히 맞서 싸우겠습니까?”
“아니옵니다. 고려는 지금 본조와 북방의 이적이 요와 금처럼 천천히 굳어지길 바라는 것입니다.”
“반드시 그렇게 볼 문제는 아닙니다. 최소한 고려 세자의 행동이나 글귀나 뜻에 참람하고, 무례하며, 인정하기도 싫은 것들이 다소 있긴 하나 고려와 고려 세자는 진정으로 본조가 ‘강대한 이적들을 상대로 멸하지 않는 것’을 진심으로 바라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이는 본조가 고려에 양국이 ‘순망치한의 관계’라는 것을 인식시켜야 한다는 소기의 목적은 제대로 성사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반대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대체적으로 무례하면서도 전달하고자 하는 열의만큼은 전해졌던 것이다.
“고려국 정사도 말하지 않았습니까? 대승을 거두긴 했으나 적들은 여전히 많고, 강력하니 쉬이 맞서 싸우는 것은 위험하다 말입니다. 이적과 맞서 싸워본 고려가 이리 말하는 것이니, 마냥 흘려 들을 문제는 아닙니다.”
“맞는 말이옵니다. 세자를 만나본 상인의 말로도 세자가 이후 본조에서 회수 이북의 백성들을 데리고 왔다는 말에 크게 당혹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이번에도 전리품으로 얻은 전마(戰馬)를 보낸 것도 서찰에 적은 ‘적들은 산성을 두고 마을을 치고 보급로를 끊으려 들 것인데, 이를 조금이라도 막아보기 위해선 전마가 필요하다’라는 뜻과 부합하옵니다. 개국 이래 외방에서 이렇게까지 천조에 대해 간섭하려는 속방은 없었으나 동시에 천조의 존속에 열의를 가졌던 속방도 없습니다. 허투루 들으셔선 아니 될 것입니다.”
왕식은 서찰에 몽골이 칠 곳과 사용하는 전술에 대응할 방도 등을 적어놓았다.
그중에는 송의 성벽이 굳건하면 분명 말려 죽이기 위해 주변을 초토화하고 보급로를 끊으려 들 것이니 이를 대비하기 위해선 기병이 필요하다며 고려 숙종, 예종 시기 윤관이 주장했던 기병 양성론도 인용하여 전마와 기병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지금 고려의 요구를 자세히 들어보면 결국 재물을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부와 재를 뻔뻔하게 요구하는데 넘어가자는 말입니까?”
하지만 반대하는 이들은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고려는 전란에 소모된 것들이 많아 복구를 해야 한다는 빌미로 군대도 쉬이 움직일 수 없으며, 되려 이 피해를 수복하기 위해 대국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요청하는 것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결국, 이런 논란을 끝낸 것은 이번에도 송 황제였다.
“짐이 들은바 양자 모두의 의견이 틀린 것은 아니나, 결국 고려에선 이적들이 본조를 칠 것을 확신하고 대비할 것을 간언하고 있고 본조가 비록 수복하지는 못했으나 천군은 이미 회수를 넘은 만큼 이적들도 가만히 있지만은 않을 것은 분명한 바이다. 하니, 고려의 속내가 무엇이든 세자의 말은 지극히 합당하다 할 수 있다. 그러니 우선 대비를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지난번 출정에서 이적들과 맞서 싸우거나 견식한 장수가 있는가?”
“맹공 장군은 지난번 금을 멸할 때 몽고군과 협력을 하며 활약을 하였고, 이번 출정에서도 습격을 한 몽고적들을 격퇴한 천하의 명장이옵니다.”
“그렇다면 그를 불러 이번에 고려국 세자가 올린 간언을 보게 하라. 그가 보는 것이 그대들과 짐이 보고 판단하는 것보다 세자가 올린 간언의 허실을 파악하는 데에 더 도움이 될 것이다.”
“천자의 말씀이 모두 옳사옵니다!”
적재적소(適材適所). 문관들이 군략을 보고 평하는 것 보다 장수에게 보게 한 다음 의견을 듣자는 말에 신료들도 더 이상 반대하지 않았다.
“하온데 폐하. 하면 이번에 고려에서 주청한 해상무역 문제에 대해선 어찌해야 하옵니까?”
고려에서는 국신사를 보내면서 수교의 뜻만 밝힌 것이 아니었다.
“그것에 대해선…….”
* * *
카라콜룸.
예상치 못한 고려의 문제가 일어났음에도 오르콘 강에 몽골의 제왕들을 불러 연회를 벌이는 것은 차질 없이 진행되었으나 남송이 회수를 넘어 공격하였다는 소식까지 전해지자 다르게 흘러갔다.
원 역사와 다르게 왕식의 조언을 들었기 때문일까?
본래라면 5월경에 다시 제왕들과 백료(百僚=백관)을 불러 모아, 을 반포하였을 계획이 지체되어 가을이 된 지금 와서야 겨우 반포를 하게 된 것이다.
“고려의 말이 맞았군.”
덤덤한 말과 무미건조한 표정과 다르게 회의장 바닥에 펼쳐져 있는 거대한 지도를 바라보는 대칸의 시선은 한없이 영맹(獰猛)하며 잔인했다.
회의장 내에 있는 저마다 다부진 체구와 전장에서도 그 용맹을 여지없이 드러내는 용장(勇壯)들조차 그런 대칸의 심기에 잔뜩 긴장하고 떨고 있었다.
“송이 조약을 어겼구나.”
불가침 조약을 부수고, 심지어 자신들의 노복(奴僕. 하북백성들을 비유)까지 납치하여 끌고가는 그 행태는 예케 몽골 울루스에 선전포고했음은 명백하며, 이상 일말의 자비도 베풀 이유는 없었다.
“너희들에게 묻겠다. 우리 예케 몽골 울루스를 건든 적들을 그냥 넘어간 적이 있었던가?”
““없습니다!””
시선 하나 돌리지 않은 채 묻는 대칸의 혼잣말 같은 물음에 장내 제왕과 제장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제창으로 답한다.
어떠한 대군도, 성벽도, 나라도 푸른 늑대와 하얀 암사슴 후예들 앞에선 적이 아니다.
서하도, 금도, 호라즘도 저마다 자신의 국력을 자랑한 모든 나라가 예케 몽골 울루스의 분노 앞에서 패망하여 세월의 저편으로 사라졌다.
하물며, 신의와 약속을 초개(草芥)처럼 버리는 한족들 따위쯤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
“신의를 저버린 저들에겐 피의 보복을 선사할 것이다.”
조용하지만 차갑고도 소름 끼치는 대칸의 선언이 떨어졌다.
그것은 남송에게 있어서 지옥을 고하는 말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