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yo Black Prince RAW novel - Chapter 180
180화
34장 위신(威信)(1)
고려 시대에 차는 보통 절에서 만드는데, 지금 내가 마시는 차도 근처 절에서 작은 공양을 하고 받은 차다.
목 넘김이 좋은 것이 차 맛을 잘 모르는 나도 좋은 차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차에 대한 짧은 감상을 속으로 내린 후 나는 내 앞에 부복한 천지사(天知司) 요원에게 조용히 되물었다.
“그래서 다른 신료들과 귀족들의 상태는?”
“아직 이렇다할 움직임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놔둬라.”
“존명! 하옵고, 아직 확실하진 않으나 심도에서 안경공이 조만간 약혼을 할 것이라는 소문이 떠돌기 시작했습니다.”
“뭐라?! 창이가 약혼을?!”
지금 내가 말한 ‘창이’는 머리가 아픈 동생 안경공 왕간이 공작으로 승격하며 개명된 이름 ‘왕창(王?)’을 말한다.
본래 고려 왕족들은 봉작을 받으면 개명을 하는데, 왕자인 왕간은 안경공으로 승작하면서 개명이 된 것이다.
덧붙여 본래라면 나도 세자 책봉을 받으면서 개명을 하는 게 상례인데, 세자 책봉 당시 상황이 상황이었던 지라 번갯불 볶듯이 책봉식을 치렀고 개명도 못 한 게 지금까지 이어진 것이다.
“그래. 어떠한 여식이더냐?”
어느 가문이냐고 묻지 않는 이유는 이 시기 고려는 아직 근친혼, 정확히는 족내혼(族內婚)이 성립되고 있기 때문이다.
전에 이야기 한 회안공 백부만 하여도 부친 왕진은 자기 친할아버지 인종의 증손녀와 결혼하여 회안공을 낳았으니 현대의 일본 이상으로 가까운 촌수에서도 결혼이 성립하는 셈이다.
물론, 이렇게 말하는 이 몸(원종의 몸)도 아버지인 고종과 어머니인 안혜태후(安惠太后)는 6촌 관계로 족내혼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이것도 그나마 전기시절 이복 남매끼리 결혼한 경우에 비하면 많이 나아진 것이라 하니, 나도 거사 이후 금수유를 세자비로 들이지 못했다면 십중팔구 왕실의 친척 여인 중 한 명을 세자비로 들였을 확률이 높았던 셈이다.
만일 그랬다면 같은 종실의 여인인 만큼 나도 마음대로 못하고, 그녀의 풍만함으로 만끽하는 밤놀이를 할 수 없ㄱ… 아니, 이게 아니라 여튼 고려 왕족에게 족내혼이 일반적인 결혼이란 것이다.
지금 창이가 약혼을 한다면 그 대상은 자연히 왕실의 사람으로 가까우면 남매뻘이고 멀어도 조카뻘의 여인과 약혼을 한다는 말이 된다.
‘몽골과 혼인 문제를 단념하니 바로 창이 녀석 혼인 소식 듣게 되네.’
다루가치 파견을 막기 위한 부마국 되는 길은 포기했다.
부마국이 가져오는 혜택이 결코 작지는 않지만, 그에 상응하는 폐단들도 많아 지금의 고려에 몽골의 부마국 화는 이득 이상으로 손해도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그것조차 원 역사 고려가 부마국이 되었을 때보다는 더 이득이 있을지도 모른다고도 생각해서 잠깐 몽골 부마가 되는 것도 생각해 봤지만 역시 단점이 너무 떠올랐다.
일단 원 역사에서도 부마국이 되었다고 공물이 면제된 것도 아니었고 전쟁 한창인 이 시기 몽골에는 더 수탈을 받는 것 아닐까 하는 걱정이 드는 것을 시작으로 다루가치 철폐 후 몽골 황실의 내부 간섭, 내가 아닌 다른 왕족을 부마로 만들어 또 고려 내부에 분쟁의 씨앗을 심기는 것이 아닐까? 하는 걱정도 들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내가 한게 모두 무의미로 돌아가는 것이다. 내가 이토록 노력하는 이유가 뭔가?
원 간섭기를 막기 위해 이 짓거리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내정간섭 당하면 결국 원 간섭기나 매한가지다.
무엇보다 지금 고려가 부마국이 된다는 것은 오고타이 계(구유크)에 속하게 될 것인데, 원 역사대로 흘러가면 구유크 사후 몽골 대칸 자리는 툴루이 계(몽케)가 이어받는다.
그때 오고타이 계는 세력이 약해지고 몽케 계가 득세하는데 그때 고려가 오고타이 계로 취급받는다면 어떤 견제와 수탈을 받을지도 장담을 못 한다는 점도 크다.
‘역사가 개변된 만큼 구유크 계가 계속 대칸이 되는 미래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섣불리 확신하기는 힘들고, 결국 구유크 계가 잘돼도 고려가 잘될 거라곤 장담 못 하고, 실패하면 완전 끝장나는 게 부마국이 되는 거니, 이 문제는 도저히 답이 없을 때 다시 생각하기로 결정하자.’
“아직 조정 내 움직임이나 말은 없어 알 수가 없사옵니다.”
“창이는 이 소문에 대해 어떠한 반응을 보이고 있더냐?”
“안경공도 이 소식을 아직 접하지 못하였는지 없었사옵니다.”
“소문은 어디서 나오고, 누구의 입에서 오르고 있더냐?”
“어디서 나온 것인지는 모르나 시중에서 떠돌고 있습니다.”
“시중에서만이더냐?”
“그렇사옵니다.”
“…하면 그저 헛소문인 것이 아니냐?”
조정 내에서도 움직임이 없고, 동생 녀석도 반응이 없다면 그냥 저잣거리 소문 아닌가? 왜 이런 걸 보고한 거지?
“소인도 그저 헛소문일지도 모르지만 안경공에 대한 것은 실오라기가 떨어진 곳조차 보고하라 엄명을 내리셔서….”
끙. 그러고 보니 창이를 이용하려는 이들도 있을지 몰라, 내가 창이 관련 문제만은 예의주시하며 허튼 것이라도 넘기지 말고 보고하라고 밀명을 내리긴 했다.
“…그래. 수고했다. 혹시 모르니 확인하고 혹여라도 창이한테 수작을 부리려는 녀석이 있다면 내게 보고하라.”
“존명!”
요원을 떠나보내고, 생각해보니 안경공의 결혼 문제도 관심을 가져야 할 문제다.
창이가 왕실 여식과 결혼을 하던 다른 가문과 결혼을 하던 각자 장단점이 있지 않은가.
이걸 이제야 떠올린 것에 한심해 해야 하는가. 아니면 지금이라도 안 것에 안도를 해야 하는가.
그런 생각을 하던 차에 막사 밖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시끄럽구나. 무슨 소란이냐?”
“그것이….”
* * *
인삼밭에 있던 물론 노비들과 관리와 환관은 눈앞에 벌어진 광경에 경악하며 바라보고 있었다.
감히 세자가 쉬고 있는 막사에, 그것도 죄를 지어 노비가 된 자가 일을 안하고 찾아가 말을 걸려다가 적발된 것이다.
“그, 그러니까. 소인은 그저 태자 전하께 알려드릴 것이….”
“무엄하구나! 감히 노비 따위가 어디서 태자 전하를 태자 전하를 찾는단 말이더냐!”
솔부 소속 견룡군 낭장의 노성에 청구는 두려워하며 엎드렸다.
“하, 하나 이 일은 태자 전하께서 구상하시던 일이 일말의 도움이 될지 모른다 여겨 찾은 것입니다. 절대 불온한 마음 따윈 품지 않았습니다. 그, 그러니 소인. 장병분들께 먼저 찾아가 마, 말을 건 것이 아니겠사옵니까!”
그러나 청구는 떨리는 몸과 목소리를 진정하며 할 말을 다했다.
어차피 엎질러진 물 여기서 그냥 돌아가도 경을 치는 것은 매한가지 이리된 이상 어떻게든 세자가 들을 수 있도록 더 큰 소리로 외쳐야 했다.
“닥쳐라! 그런 마음을 가진 것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모른단 말이냐! 뭐 하느냐! 이 노비를 끌고 가지 않고!”
“낭장은 잠시 멈추시오.”
“무슨 일이십니까.”
“태자 전하께서 그 노비를 안으로 들이라 명하셨소이다.”
세자의 명이라는 말에 낭장은 마지못해 그를 안으로 들였다. 청구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들어갈 수 있었다.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느냐?”
“소, 소인은 태자 전하의 명에 따라 염초를 만들고, 인삼의 재배 일을 하고 있는 공노비 청구라고 하옵니다.”
“그래.”
청구의 떨리는 소개에도 세자는 느긋이 차를 마시며 경청했다.
아무리 막사 안으로 들어왔다 한들, 세자가 관심이 없어 한다면 의미가 없었고, 언제 변덕으로 쫓겨나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그래서 청구는 곧바로 본론에 들어가리 하고는 다시 엎드려 외쳤다.
“부디 염초를 보다 많이 만들 수 있는지 시험 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염초? 지금 네가 염초의 생산을 늘릴 수 있는지 확인할 기회를 달라고 하였느냐?”
“그렇습니다. 성공만 한다면 분명, 보다 많은 염초를 구, 구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 그러니까….”
“잠깐.”
염초라는 말에 세자는 처음으로 고개를 돌려 청구에게 관심을 보이더니 말을 중단시켰다.
그러고는 청구의 얼굴을 유심히 보더니 이내 입을 열어 물었다.
“너는… 혹 용문창의 일로 노비가 된 자인가?”
“흡! 그, 그렇사옵니다! 소, 소인은 용문창의 사건으로, 아니 소인의 이름은 청구로 경기의….”
설마 태자가 일개 노비인 자신을 알아볼 거라곤 생각 못 했던 청구는 깜짝 놀랐다. 청구의 대답에 세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 그러고 보니 그때 왕 병사(왕심)을 따르던 자들 중에 견룡군에 입대하지 않고 노비로 들어간 자들도 제법 있었지. 오냐. 마저 말해보거라.”
다소 경청하는 자세와 함게 관용의 모습도 보이자 청구는 조금 진정한 채 떠오른 생각을 모두 고했다.
“…그리 하오니 아마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드옵니다. 부디 시도를 할 수 있게 해주시옵소서.”
곁에서 모두 다 들은 환관 마휘는 어이없어하더니 이내 쌍심지를 켜며 경을 쳤다.
“…즉슨, 결국 네 녀석의 망상이고 그런 망상을 비책이라도 된다는 것 마냥 태자 전하를 찾아왔다는 것이 아니냐! 네가 정말로 황실의 지엄함을 우습게 보기가 하늘을 찌르는구나! 전하.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이 허무맹랑한 노비를 엄히 벌하도록 하겠사옵니다!”
환관의 분노에 청구는 절로 몸을 움츠렸다.
환관은 당장에라도 병사들을 불러 그를 호되게 벌을 내릴 듯 행동했다.
그에, 청구는 ‘괜히 말한 건가’ 싶은 후회가 치솟아 올랐다.
그러던 차에 이렇다 할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경청하던 세자의 손이 다시 들어 올려졌다.
* * *
말투를 봐서 개경 인근이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용문창의 사건 때 참여한 녀석인 듯하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허무맹랑한 말이라도 어지간하면 용서해 주자라고 생각했는데….
청구라는 녀석은 재밌는 말을 했다.
‘이것 봐라? 다소 엉터리 이론에 어쩌다 맞은 감도 없잖아 있지만, 이 녀석 해토법, 아니, 해토자취법(海土自炊法)에 도달했구나!’
청구의 주장에 의하면 해안가의 흙들에는 벌레나 물고기 시체, 새 똥 등이 많이 퇴적되어 있을 것이니 땅의 흙과 차이가 없을 것이고 그것을 구워도 염초가 생산되지 않겠냐는 것이다.
이론과 어설픔은 둘째 치고 실제 해토를 구워서 염초를 생산하는 법은 조선 중후기에 사용하던 염초 생산법 중 하나다.
원 역사에선 조선 중기 임몽이 그 방법을 알아내고 실제로 성공하여 조정에 진상하였다고 하는데, 나도 이 채취법은 알고 있고, 현재 시행 시도 중이다.
그러나 시도하고 있는 곳이 정안연의 영지인 용강현 해안가이고 이것도 은밀히 하다 보니 이 사실을 왕실이나 여기 공노비들은 청구는 모르고 있는 것일 뿐이다.
‘그럼 이 녀석을 어떻게 할꼬? 얘가 말한 주장은 엉터리인 걸 아니까. 들을 필요는 없는데 그렇다고 여기서 들을 필요 없다며 돌려보내면 십중팔구 린치당할 것 같고… 일단 용강현에 보내줘 볼까.’
용문창의 사건에서 거복 일파는 몰라도 왕심과 함께한 이들은 사실상 배가 고파 일어난 불쌍한 백성들이다. 그렇다 보니 조금 유하게 대하고 싶긴 하다.
“알았다. 너는 당장 돌아가 채비를 하라.”
“가, 감사합니다! 반드시 성공해 보이겠습니다!”
내가 그 말을 듣고 기회를 주는 거라고 생각했는지 청구라고 소개한 노비는 얼굴이 화색이 되었다.
그렇게 그 녀석을 용강현에 보내는 것으로 마무리를 하고 있는데, 저 멀리서 이장용이 헐레벌떡 달려왔다.
“전하! 전하! 조정에서 사자가 내려왔습니다. 어서 가시지요.”
“팔관회의 일로 귀환하라는 지시더냐?”
아직 시간도 있는데 그리 재촉하지 않아도 되는데, 라고 생각했는데 다음 나올 말에서 나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아니옵니다. 팔관회가 아니라 지금 남조의 국신사(國信使)가 왔으니, 국신사가 심도에 오기 전에 속히 귀환하라는 명이옵니다.”
“뭐라? 송의 국신사가 왔다고?!”
비공식이라곤 해도 전쟁이 끝난 이후에 보낸 송나라 조정의 사절단만 벌써 올해 2번인데 3번째의 사절단이라고!?
정식 수교를 맺었으니 빨라도 내년이나 절일(節日)에 보낼 거라 생각했는데 올해에 또 사절단을 보내다니….
#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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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흙으로 염초(焰硝)를 구워내는 일을 도감에서 매번 중국 사람들과 시도해 보려 하였으나 아직 실효를 얻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서천(舒川)의 군보(軍保) 임몽(林夢)이 염초를 구워내는 일을 여러 가지 꾀를 내 시험하여 성공을 거두고서 도감으로 찾아와 말하기를 ‘어떤 곳에 가서 구워보기를 원한다’ 하였습니다. 즉시 감관(監官) 조효남(趙孝南)을 시켜 남양(南陽) 지역의 바닷가로 데리고 가 굽도록 하였더니 5일 사이에 바다 흙으로 구운 염초 1근과 함토(?土) 2분(分), 바다 흙 1분을 합하여 구운 염초 3근을 가지고 왔습니다. 약제들을 합쳐 시험 삼아 쏘아 보았더니 성능이 뛰어나 쓸 만하였으므로 두 가지 약제를 각기 담아 올립니다. 필요한 바다 흙은 반드시 사람과 말들이 밟고 다닌 염전(鹽田)에서 취하고 바닷가의 숲이 많은 지역을 찾아서 많은 양을 구워낸다면 힘도 덜고 큰 이익을 얻을 것입니다.
– 28년 5월 25일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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