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yo Black Prince RAW novel - Chapter 19
19화. 19장 금상 정안연
역사에 해박하다 못해 강박관념 끼도 있는 역수는 예전에 고려에 조공을 바친 송상들에 대해서 말해준 적이 있었다. 송과 고려는 형식상 황제국과 제후국으로 고려가 송나라에 조공을 바치는 관계지만 정작 황제국의 송나라 상인들은 제후국인 고려에 와서 고려의 왕에게 조공을 바치기도 한다고 말이다.
어째서 천조국인 송나라의 상인들이 제후국인 고려에 조공하러 오는 지에 대해 물어보니 이유는 대개 2개였다고 하는데.
하나는 송나라의 비공식 사절단으로서 왕래를 하는 것이다.
994년. 고려 성종의 치세 때 송과 고려는 1차 여요 전쟁 이후 공식적으로 국교가 단절되고 오랫동안 단절되었다가 1068년 문종의 치세에 송나라 상인 ‘황신’의 송나라의 재수교를 원한다는 소리에 1071년이 돼서야 겨우 공식적으로 재수교를 할수 있었다. 이 1068년에 왔던 황신은 송 황제와 조정의 뜻을 전달한다고 적혔을 정도로 사실상 공식 사절에 다를 바가 없었다.
이렇게 송나라에서 공식 사절이 아닌 송상을 보내는 것은 황제국의 체면으로 고려에 먼저 요청하기 힘든 문제들이나 확실히 정해지지는 않았지만 고려의 반응도 알아보고 싶을 경우 보내는 것도 있었던 것이다. 특히 여요 전쟁 이후와 금나라의 발흥 이후에는 고려 조정에 토산물이나 조공을 바치러오는 송상의 출현은 잦아졌다. 송 공식 사절이 아닌 일개 백성인 송상이 고려에 조공을 바치는 것이니 송 황실과 국가의 체면은 어찌 지킨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이윤 때문이다.
보통 조공 무역이란 일부 예외를 제외하면 조공을 받으면 그 이상의 답례품으로 하사하는 것이 보통이였는데, 고려는 이것을 이용하여 송나라에게서 많은 이윤을 뽑았냈다고 한다. 그러나 고려 또한 외왕내제와 해동천자국을 표방하던 만큼 상대의 조공을 받으면 해동천자로서 값비싼 회사품을 내줄 수밖에 없었다. 사실 조공무역으로 주는 더 비싼 회사품들은 대개 사치품들이라 조공하는 쪽이 반드시 득만 된다고 볼수는 없었으나 송나라 ‘상인’들 입장에선 ‘그 사치품’들을 받는 것으로 충분하였다. 그리고 송상들은 단순히 받고만 가는 것이 아니라 온 김에 벽란도에서 송의 물품을 팔기도하고 고려의 물품들도 사가지고 돌아가 송나라에서 되팔기도 하였다고 한다.
이 짭짤한 이윤 때문에 송상들 중에는 고려 왕들에게 조공을 하러 단골로 오는 자들도 있었고 규모도 100명이 넘는 어지간한 국가 사절단급 규모로 온 경우도 적잖게 있었다고 한다. 사실 고려에 진봉을 하러온 송상은 이 이윤 목적이 더 컸던 것이다. 이런 조공무역의 이윤을 노린 것은 비단 송상만을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여진족과 일본의 대마도나 구주 쪽 다이묘들과 탐라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런 송상들의 조공 사례중에서도 200명이 넘는 인원이 넘어온 적은 딱 한번 330명이라는 대규모로 건너온 1148년 뿐이었다. 이마저도 여러 상단주들이 단합하여 한꺼번에 모여 온것이며, 일개 상인이 온 것은 150명이 최대였으니, 정안연이 200명이 넘는 사람들을 데리고 물품들까지 사는데에 재산을 털어넣었다는 것은 믿을만 한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재산을 다 털어서 진상품용으로 샀다니 빈틈이 없구나.’
비싸고 유지도 힘든 진귀한 동물들이나 사치품 산 것이 어째서 보험이냐면 정 도수는 분명 고려 왕에게 진상하겠다고 했다. 안그래도 몽골에 고개를 숙이고 강화로 피신되어 해동천자로서의 위신이 위축되는 것 같은 시기에 고종과 최우가 전례 없는 규모로 금나라의 상인이 건너와 진상하는 것을 거절할 가능성은 적었다. 그리고 조공을 받은 이상 그 이상의 회사품을 줄 것이다. 설령 원나라처럼 조공만 받고 제대로 된 회사품을 주지 않는다고 해도 이만한 규모의 진상품과 현 상황이라면 아무리 못해도 정안연이 고려에 귀화를 바란다면 막지 않고 소정의 상은 내리리라.
그렇다. 정안연은 지금 고려에 귀화를 하면서 최대한 좋은 대우와 상을 받기 위해 이렇게 자신의 일처럼 따라주는 것이다. 외국인인 그에게 있어서 타국에서 출세하기 가장 편한 것은 타국의 권력자의 연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과인이 부탁한 것은 어디까지 거두었는가?”
내 물음에 정안연의 눈이 반짝이더니 순순히 대답했다. 자세한 것은 모르나 분명 뭐가 득인지 저울질하며 고민했을 것은 확실하다.
“송구하옵게도 소인의 능력이 모자라 금의 황제를 뵙지 못하였으며, 금국의 황족도 배알하지 못하였습니다.”
“개봉조차 가질 못하였다 하였으니 그렇겠지. 그리고 봉상에 있는 곽 장군과도 만나지 못했겠지.”
“그렇사옵니다.”
“금과 몽골의 사정은 어떠하더냐?”
내가 밀항을 시켜서라도 금나라에 보내 가져오라고 부탁한 것은 크게 4개였다.
1.개봉에 가서 금 황제를 만나볼 것.
2.황제를 못만날 경우 방계라거나 이름뿐이라도 좋으니 금의 황족이라도 만나 데려올 것.
3.금 제국 최후의 명장. 곽하마를 만나 데려올 것.
금 황제와 황족들, 그리고 곽하마를 만나거나 데려오라고 한 것은 다름 아니라 금나라 사람들로 하여금 몽골과 싸우게 하기 위해서였다. 일찍이 나당 전쟁에서 신라가 고구려 왕족인 안승을 내세워 보덕국을 만들어 고구려 유민들로 하여금 당나라와 싸우게 하였듯이 나도 금나라 황족이나 곽하마를 요동 지역에 보내 압록강 부근에서 몽골과 고려 양쪽에 저울질하거나 공격을 하는 여진족들을 규합 내지는 소탕시키고 장차 대몽골전쟁의 완충지대로 만들려고 했다.
‘역시 힘든가.’
사실 이 부탁들을 하면서도 일찌감치 불가능 할것이라고 생각하고는 있었다. 몽골군이 완안합달과 완안진화상을 죽인 이후 수부타이의 군대가 계속하여 개봉으로 진격하여 지난해(1232년) 결국 개봉을 함락하고 말았다. 비록 금 황제 애종은 한발 먼저 채주로 피신을 하였으나, 이때 개봉이 함락되면서 황제와 같이 있던 대부분의 황족들은 전부 몽골군 손에 들어가 황실 남성들은 전원 죽고 후궁을 비롯한 여성들은 전부 몽골군에게 끌려갔다고 들었다.
심지어 이때 끌려간 여성 중에는 금 애종의 황후도 있었을 정도였으니 그 피해가 어느 정도일지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수 있을 것이다. 거기에 더해 몽골군은 채주로 추격하면서 다른 지역의 지원을 받지 못하게 고립무원으로 만들며 금나라를 압박하였다는데 황제와 황족을 만나는 것이 어찌 쉽겠는가?
그리고 곽하마에 이르러선 개봉과 채주에서 훨씬 서쪽에 위치해있다. 이 또한 단순히 먼 거리만이 아니라 몽골군이 막고 있어 가기가 힘들었다. 즉, 애시당초 힘들 것을 알았기에 만약 힘들 것 같다면 달성하지 않고 돌아와도 좋다고 단단히 언질했기 때문에 답변에 대해선 아쉬운 감이 있어도 납득은 되었다.
“혹여라도 살아남은 황족이 있는가 알아보았으나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지난해 개봉이 함락되었을 때 미처 황제와 피신하지 못한 다수의 황족과 황실의 여성들이 몽고군에 붙잡혔다고 하옵니다. 황실의 남성들은 신분과 나이를 막론하고 죽인후 저잣거리에 내팽겨쳐졌으며, 여성들도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몽고 장수의 애첩이나 노예로 끌려가 몽고인들에게 겁탈당하고 욕을 보이고 있다고 하옵니다. 금국 황후 또한 끌려가 욕을 보일 것이라는 소문이 자자하였습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이제 금 황실의 피는 채주로 피신한 잔당에 불과한 금 조정 밖에 안남았다는 말이구나.”
물론 더 조사해보면 변경에 있는 방계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으로선 사실상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렇사옵니다. 그러나 소인의 능력이…”
“아니, 되었다. 현재 금의 땅에 얼마나 많은 몽골군들이 돌아다니는지, 그리고 금의 황족들을 요주시하는지는 앞선 보고로 잘알았다. 책망하지 않을 것이니 걱정마라.”
“송구하옵니다. 전하.”
금사에선 남자들은 전부 죽었고, 황후들을 비롯한 여성들은 끌려간 이후 소식이 묘연하다고 하였다는데 생각보다 더 심했구나. 어찌보면 금이 북송을 몰아내며 송 황실 여성들을 끌고 간 100여년 전의 정강의 변을 자신들이 당하는 꼴이니 뿌린대로 거둔거라고 할수 있겠다. 여튼 금 황족을 데려오는 것은 힘들었으니 포기하기로 하자.
“너는 과인이 어찌하여 금의 황족을 만나보고 데려오라고 하였는지 아느냐?”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어째서 과인이 보호하기 위해서 데려오라고 했는지는 아느냐?”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대해와 같은 마음으로 망국의 황족을 불쌍히 여겨 자리를 주어 금의 유민들도 달래는 것이 아니겠사옵니까?”
전부 간파했는지는 몰라도 빙빙 돌리며 아부를 하나 어느 정도 뼈가 있는 답이다. 역시 머리도 모자라지는 않다.
“그런가. 금의 사정은 잘았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그것들’은 얼마나 들고 왔느냐?”
“송구하옵게도 염초와 유황을 공급하는 길에도 몽골군들이 길을 막고 있어 밀무역조차 쉽지않아 많이 구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런가.”
이 대답에는 나도 모르게 아쉬운 목소리로 답했다. 이것이 내가 내린 4번째 지시. 금나라에 간 김에 들고 올수 있는한 최대 한도로 염초와 유황을 가져올 것.
사실 어느 의미로는 앞의 3가지 지시보다 이것이 더 주된 목적이라고 할수 있었다.
내가 빙의하고 여몽항쟁에 개입할 것을 결심한 뒤 가장 먼저 떠올렸던 것이 화약 제조였다. 역수에게 흑색 화약 제조법을 들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 역수 말로는 흑색 화약은 화약중에서도 특히 만들기가 매우 쉽고, 8, 90년~00년초 까지만 해도 일반인들도 제조법을 알아보려고 조금만 작정하여 조사한다면 어렵지 않게 알수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문제는 제조방법이아닌 재료였다. 화약을 만드는데 드는 주재료는 초석, 숯, 황인데 여기서 숯을 제외하면 모두 고려에선 구하기가 힘든 재료들 이었다. 그나마 황은 일본에서 유황을 수입하는 방도라도 있었지만 초석은 깨알 같이 염초를 자체 제조하는 것 외에는 중국에서 구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금나라에 갔을 때 혹시 구할수 있다면 최대한 구해보라고 지시한 건데 역시 못구한 것이다. 허나 이걸로 화를 낼수는 없었다. 애초에 화약의 주재료를 시중에 한도 없이 팔 금나라도 아니고, 하물며 금나라도 국가존망이 걸린 상황에서 화약의 주재료인 초석을 쉽게 팔지는 않을 것이다. 거기에 정안연은 속셈이 있다고 해도 가산을 털어 물신양면으로 사람을 구하고 시킨 일을 따르려고 하지 않았는가? 상을 주면 줬지 벌을 내릴수는 없었다.
‘그래도 나라가 어지러우니 되려 쉽게 구할수 있지 않을까도 생각해봤는데. 역시 안되나. 쩝.’
“그래서 얼마나 가져왔느냐?”
나의 물음에 정안연은 바싹 긴장한채 고개를 숙였다.
“염초 2백근, 유황 6백근이 옵니다.”
“……뭐라?”
무심코 반문하였다. 그 양이 적어서냐고 한다면 절대 아니다. 아니, 절대량으로 보자면 확실히 작은게 맞다. 당장 조선 세종 대에 화약 연 소비량이 8천근이라고 하였으니 염초 2백근과 유황 6백근으로 화약을 만들어도 그 양에는 미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일개 개인이 들고 온 것이라고 한다면 어떻게 될까?
참고로 조선시대 세종 시기 구주(규슈)다이묘들이 세종에게 바쳤던 유황의 양이 6백근이라는 기록이 있다. 물론 그때 그들이 바친 품목에는 부채, 서각, 토황, 금란, 진피, 동, 소향휴, 소목 등 매우 많았으며, 유황은 그런 품목중 하나에 불과했으니 다이묘들이 낸 것과 비할 바는 못된다. 다른 예시로는 고려 말기 창왕 시기 유구국에서 왜구들에게 납치된 포로를 돌려주면서 유황 3백 근을 바쳤다. 물론, 유구국도 유황만 바친게 아니라, 소목, 호초, 갑옷 등을 함께 바쳤다.
그러나 그것을 감안하더라도 정안연이 들고온 양은 급히 들고온 것 치고는 많은 양이 아니라 할수 없었다.
“전하. 어찌하면 좋겠사옵니까?”
“소, 소인이 능력이 부족하여 제대로 챙겨오지 못하였나이다. 부, 부디 다시 한번 기회를 준다면 송에 상을 터보겠나이다.”
내가 놀란 목소리로 답하자 화가 났다고 착각한건지 유갑수는 당장이라도 벌을 내릴 듯이 명령을 기다렸고, 정안연도 그 모습에 화들짝 놀라곤 곧바로 바닥에 무릎을 꿇고 조아렸다. 이게 무슨 소리냐고 할려고 했으나 생각해보니 고려는 지금까지 화약이 없었으니 재료에 대해서도 잘 와닿지 않는 것도 이해가 갔다.
“아니. 됐다. 그보다 너는 분명 염초와 유황이 오는 길에 몽고군들이 있어 들고 오기 힘들다고 하였다. 그런데 어찌 이렇게 들고 올수 있었느냐?”
“그.그것이…”
내가 심문하자 정안연은 잠시 눈알을 굴리는가 싶더니 그냥 실토하였다.
“사실. 몽고군에 의해 개봉이 함락되고 금 황제에게 가는 길마저 막히자 회수지역의 지주(知州=태수)들과 장병들중 몽고와의 싸움을 준비하였으나 개봉이 함락된 것에 절망하고 포기한 자들도 더러 있어 그들에게 돈을 주어 구했사옵니다. 만약 신에게 한번만 더 기회를 주신다면 더 많은 염초와 유황을 구해보이겠나이다.”
즉, 평소 유황과 염초를 구할수 있는 밀무역 길이 막히자 아예 회수 지역에서 유황과 염초를 가진 자들을 상대로 밀무역으로 긁어왔다는 것이다.
“그대의 이름이 정 안연이라고 했느냐?”
“예. 그,그렇습니다. 저에게 한번만 더 기회를 주신다면…”
금으로 보내면 더 구할수 있다고? 이런 인재를 이대로 사지인 금으로 다시 보내다니 가당치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