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yo Black Prince RAW novel - Chapter 210
210화
45장 을미개혁(乙未改革), 약팽소선(若烹小鮮)(2)
“전하. 참으로 영명하신 결단을 내리셨사옵니다. 개국이래 이어져온 향, 소, 부곡의 폐단을 해결하였으니 그 공이 어찌 작다할수 있겠사옵니까. 그야말로 대대손손 이름을 남길 공이라 할수 있습니다.”
“하옵고, 향, 부곡민들의 국자감과 과거의 응시는 허락하되, 승려로 귀의하는 것은 허락하지 않았으니 이 또한 군자의 도를 다한 것이라 할 수 있사옵니다.”
이번 을미개혁에 향, 소, 부곡민들에 밀리지 않게 반색한 이들이 있었으니 바로 태자부 주잠 일행들이었다.
불교와 도교 등, 괴력난신을 부정하는 그들에게 승려들이란 밥만 축내고 나라에 크게 도움을 주는 것이 없다 여겼는데 정작 자신들이 따르는 왕검은 여지껏 불교를 중히 여기거나 설령 벌을 내려도 사찰 개인에 벌을 주는 등 미온적이었는데, 국자감과 과거는 허락하되 승첩은 허락하지 않은 것이 오랜만에 마음에 든 것이다.
이때 시강학사 조창은 이 기세를 밀어 더욱 불교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였다.
“전하께서는 지금 향, 소, 부곡의 폐단을 개혁하시고, 태자비 전하의 문제도 바로 잡았사옵니다. 또한 외국들에 대해선, 서쪽으로는 대송과 북쪽으론 거란, 동쪽으론 여진을, 남쪽으로는 왜국과 교역을 하였으니 너무나 성대한 일입니다. 하온데 그럼에도 현재 나라에서 불사(佛事)에 너무 의지하고 법문을 지나치게 소중히 여겨 정기적으로 행하는 재(齋)가 이미 많이 베풀어져 비용도 막대하옵니다.
거기다 장생표로 토지를 하사하여 본래 국고에 들어가야 할 세가 줄어들었으니 이 또한 나라의 폐라 할 수 있사옵니다. 이는 오직 복과 장수를 구하는 데에 전심하고 기도만을 일삼아 한정된 재력을 탕진하는 격이니 나라를 근심하고 공무를 봉행하는 도리에 있어서 결단코 방치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부디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왕검도 눈과 귀가 있다. 하물며 태자부의 학사들은 외적으론 자신들의 측근이라 부르고, 실제로도 명분을 위해 둔 것이라곤 하나 자신의 당여들이 맞았으니 그들의 불만에 관심이 없지는 않았다.
그러니 이번 을미개혁의 승직(僧職) 제한은 유학자들을 생각하여 목적으로도 시행한 것이다. 그리고 실제 이 개혁으로 학사들의 답답한 가슴과 갈증어린 목을 다소 달래는 효과는 해주었다. 또한 조창의 말도 딱히 틀린 것은 아닌 것이 연등회나 팔관회는 물론, 장생표 등의 문제로 폐단이 있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대들이 걱정하는 바는 알고 있다. 과인이 부덕하고, 소지(小智 : 작은 지혜)밖에 없는 탓에 그대들 중 크게 우려하는 것을 쉬이 혁파하지 못하고 있도다. 유학이 만연한 남조에서도 경들의 학문이 전파되는 것에 미진함이 없잖아 있거늘, 본국에는 구태여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느냐. 그럼에도 그대가 말한 대로 나라의 폐단은 해결해야 하는 것이 맞도다.”
그러나 조창의 요구를 당장 승낙하기엔 왕검이 아닌 당시 고려의 백성들이 허락하지는 않을 문제였고, 이에 왕검은 다시 한번 그들에게 제동을 걸어야 했다.
본래 사람이란 무엇도 하지 않은 이들이 말한 것은 으레 믿지 않거나 변명이라 의심하는 반면 이미 성과를 보인 이가 한 말은 귀를 기울이거나 솔깃 하는 것이 심리였고 학사들로서는 불만이 없지는 않았지만
앞서 을미개혁으로 억불의 뜻을 편린으로나마 확인한 지라 일단은 군말 업이 물러났다.
“하나 무릇 나라를 다스리는 방도는 ‘마치 생선을 삶듯이(若烹小鮮)’ 해야 하니, 급하게 하였다가 그 진통과 폐단이 나타날 수 있는 일이로다. 하물며 사찰과 승려들은 본국을 개국하고, 전조 때부터 백성들에게 뿌리 깊이 박히었으니 함부로 속단하여 도려내려 해서는 아니 되는 일이다. 그러나 그 영광의 반대편에 만만찮은 폐단도 있으니 그러한 사무친 고충 거리를 그대들이 걱정하고 하루빨리 해결하고자 하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여 진정으로 바른 개혁을 하고자 한다면 그대들은 이러한 사태를 이해하면서 준비해야 할 것이다.”
“하오나….”
“전하의 장구대계를 미처 읽지 못한 소인들이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조창은 납득하지 못하는 듯했지만, 세자의 뜻을 확인한 주여경이 선수를 쳐서 대답하였다.
“그리고 내 오늘 그대들을 부른 것은 불사에 대해 신중히 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은 것도 있으나 다른 일도 있다. 그대들도 알다시피 해동은 태조께서 나라를 세우신 이래 나날이 세와 명성을 천하에 떨치고 있었다.
무릇 나라를 세우면 왕의 선조분들의 시호(諡號)를 올려 이름을 바꾸고, 존숭(尊崇)하는 전례(典禮)를 거행하였는데 아조의 태조께서도 삼대조고(三代祖考)분들을 추존하시어 시책(諡冊)으로, 시조(始祖)의 존시(尊謚)를 올려 원덕대왕(元德大王)이라 하고 비(妣)는 정화왕후(貞和王后)라 하였으며, 의조(懿祖)는 경강대왕(景康大王)이라 하고 비는 원창왕후(元昌王后)라 하였으며, 세조(世祖)는 위무대왕(威武大王)이라 하고 비는 위숙왕후(威肅王后)라 하셨다.
한데, 지금 과인이 보기에 위무대왕의 묘호(廟號)이신 세조가 과연 위무대왕의 묘호로 합당한지가 의뭉스럽도다. 아조는 태조께서 건국하셨으나 그 태조께서 궁예 치세에 세력과 인심을 얻은 것은 선조분들의 공로이시며, 궁예가 송악에 당도하였을 때 슬기롭게 대처하여 세력을 보존하고, 작고하시는 그때까지 종가와 세를 지켰으니 이는 나라의 기틀을 마련하신 것이다.
이는 대왕께서 총명하시어 예지가 있음을 말하니 시법(諡法)으로 따지면 총명하고 예지가 있는 경우를 ‘헌(獻)’이라고 붙이는 것이 합당하다 할수 있으며, 나라의 기틀을 만드셨으니 아조의 속풍에 따른다면 ‘국(國)’에 더 합당하지, 어찌 세(世)가 맞는 것인가?
이러하니 그대들에게 묻노니 의뭉스럽지가 아니한가? 하여 과인인 근시일에 황상 폐하께 건의를 드려 대왕의 존호를 바꿀 것이로다. 그대들은 이 중사(重事)를 맡아주었으면 한다.”
세자의 그런 말에 학사들 중 누구라고 할 것 없이, 감동 속에서 부르르 몸을 떨고 있었다.
예로부터 존호를 결정하는 일은 매우 중차대한 일이고 명예로운 일이었다.
하물며, 지금까지 멀쩡히 사용하던 존호를 개정(改定)하여 바꾸는 일을 맡기려고 한다는 것은 또 무엇이겠는가?
세자는 위무대왕의 묘호가 문제가 있어 보인다고 하였지만 실제로는 아주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세조’는 시법에 따르면 군주를 극찬할 때 사용하는 최고의 묘호 중 하나였고, 방금 말한 ‘헌’이 도리어 세조보다는 아래로 보는 경향이 크니 졸지에 자기 선조의 평을 깎는 것에 가까운 것인데 구태여 개정을 논한 것이다.
이는 자신들을 왕실의 일에 개입하게 하여 차후 조정의 국사에 보다 접근하게 만들겠다는 뜻이었으니 기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
“전하. 무릇 대왕의 시호를 더하거나 정하는 것은 반드시 나라 사람들과 더불어 같이 의논할 것이고, 두세 대신만으로 의논하여 정할 수 없는 것이옵니다.”
묘호 개정의 공을 독점한다는 것에 희희낙락하던 학사들의 눈이 일제히 눈치 없는 장본인의 낮짝이나 보자 돌아갔으나 그 말을 한 장본인이 다름 아닌 자신들의 스승 주잠인 것을 깨닫고는 쌍심지에 들어간 힘을 황급히 풀어야 했다.
‘스승님께선 어째서 저런 말씀을 하시는 것일까?’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왕검은 주잠의 말을 듣고 잠시 고민하더니 고개를 끄덕이곤, 말을 번복하였다.
“듣고 보니 태자태사의 말이 매우 맞는 듯 하오. 하면 과인이 폐하께 평장사와 문하시중, 수문하시중들과 더불어 그대들도 함께 의논하여 정하도록 청하고자 하는데 태사께선 이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오?”
“그리 합당하게 처리하시는데 감히 누가 이의를 논하겠사옵니까.”
주잠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하자 그제서야 제자들도 귀화인에 제대로 된 관직이 없는 자신들이 처리하였다가 추후 문제나 이견이 나올지 몰랐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스승에게 탄복하였다.
“하면 그대들에게 이 일을 맡기도록 하겠소.”
* * *
동궁.
“…….”
스승과 동문들과 함께 고향도 버리고 외국으로 건너온 시강학사 조창은 생각도 못 한 동궁에서의 초대에 다른 일행들이 전부 묘호 개정 문제로 나갈 동안 홀로 동궁에서 세자가 오기만을 기다려야 했다.
‘태자 전하께서는 어째서 나만을 부르신 것인가.’
동궁에서 홀로 기다리는 동안 조창은 겉으론 침묵을 고수했지만 그 속내는 지금 혼란스럽기 그지없었다.
‘오늘 태자 전하께서 보여주신 모습을 생각한다면 아쉬운 점이 많긴 하나 분명 유학에 뜻을 품은 것은 틀림없다. 혹여 주자의 학문을 묻기 위해 부른 것인가?’
그렇다면 주잠의 제자인 자신을 부른 것도 이해가 되지만, 동시에 그렇기에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자신 외에도 주자학에 대해 아는 이들은 많으며, 학문의 깊이는 물론 지모에서도 자신보다 윗줄인 주잠 스승이 있는데 자기만을 부른단 말인가?
하물며 이제는 태자태사라는 관직에 있는 스승이니 더욱 자신이 아닌 스승이 여기에 있는 것이 이치에 맞는 일이었다..
물론 아주 캥기는 것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자신은 종종 해동유학에 불만을 표했고, 오늘도 더욱 불교를 억누르자고 논하였으니 태자 전하 입장에선 거슬릴 수도 있었다.
이 때문에 일이 끝나고도 자신만을 불러 타이르고자 하는 것일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오늘 말이 막혀 못했던 말을 전부 하리라! 그리고 오늘 태자 전하의 심중이 어떠한지 확인하고 말겠다!’
“생각보다 많이 늦어 조 학사를 기다리게 하였구나.”
그때였다. 드디어 세자가 들어온 것이다. 조창은 그대로 일어서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였다. 세자가 고개를 들라고 할 때까지는 고개를 들지 않겠다는 듯 조창은 계속 고개를 숙였고 세자도 자리에 앉을 때 까지 따로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
“조 학사는 고개를 들라.”
고개를 숙이는 동안 여러 가지 생각을 정리했는지 아까까지만 하여도 조용히 자리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으면서도 쉴새없이 굴러가고 있던 눈동자에는 평온과 진정만이 가득했다.
“그래, 조 학사는 내가 어찌하여 그대를 따로 불렀는지 짐작하는 바가 있는가?”
“감히 짐작할 수가 없사오니, 부디 하교하여 주시옵소서.”
당당한 질문에 당당하게 모른다고 대답하는 조창의 말이 의외였던 것일까. 세자의 눈이 잠시 흔들렸지만 이내 상관없다는 듯 고개가 작게 끄덕였다.
“내가 그대를 부른 것은 다른 일이 있어서가 아니다. 불사나 사찰에 관한 문제를 논하기 위해 그대가 해주어야 할 것이 있어 부른 것이다.”
“하명하시옵소서.”
조창은 속으로 역시라며 고개를 끄덕였다. 듣고 나니 마음 속으로 깊은 한숨을 절로 나왔다. 불사의 폐단의 문제를 논할 때부터 어느 정도 짐작은 하였지만 그 짐작이 사실이었던 것이다.
‘태자 전하께서 지금 내게 하고자 하시는 것은 명하고자 하는 것인가 묻고자 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그것은 정학인가. 사학인가. 성현의 말씀인가, 불씨의 말인가.’
“그대가 차후 절에 들어가 주었으면 한다.”
조창은 눈을 껌뻑거렸다. 그리고는 감히 세자 앞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얼굴에 감정을 드러낸 채 반문하였다.
“저, 전하? 그, 그것은 무슨 말씀이시옵니… 까?”
누가 들어도 알법한 억지로 내뱉은 목소리는 그 마저 덜덜 떨리고 있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 하늘이 무너지는 사람마냥 떨리는 조창의 얼굴은 그가 지금 얼마나 놀란 것인지 알려주고 있었다.
‘누가 절에 들어가? 자신이 절에 들어간다? ‘군자불어 괴력난신’이라고 매일 주장하는 유학자가 사찰에 들어가? 그 누구보다 불씨들을 싫어해 볼 때마다 혐오스러워하는 자신이?’
차라리 자진하라거나 사직을 권하는 제의를 받았더라면 탄식을 할 지언정 이렇게까지 당황스럽지는 않았을 것이다.
“당황스러운가. 그렇겠지. 군자불어 괴력난신을 입에 담는 그대를 보고 괴력난신 그 자체라 할수 있는 사찰에 가라고 했으니 오죽 당황스럽겠는가.”
세자는 그런 조창의 반응을 당연하다는 듯 이해하고 긍정하는 듯 반응하였다. 물론 듣는 조창으로서는 더욱 혼란스러울 따름이었다. 자신의 우려를 이해해주는 것은 다행이나 정작 그 우려를 부정해주지는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세자는 지금 정말로 자신을 보고 삭발하여 불교에 귀의 하라고 한단 말인가?
“그대가 평소 말하는 불사의 폐단을 과인이라고 모르지는 않는다. 그러나 과인은 오늘 그 자리에서도 말하였다. 그 일은 약팽소선(若烹小鮮)으로 대해야 한다 말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그대는 납득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여기서 묻겠다. 조 학사.”
왕검은 거기서 잠시 한차례 숨을 고르고 난 후 담담하게 말했다.
“그대는 입신양명과 부귀영화를 위해 이 자리에 있는 것인가, 아니면 나라의 폐단을 막고, 공맹의 도를 널리 알리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