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yo Black Prince RAW novel - Chapter 22
22화. 22장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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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자. 죄송하오나 이 배는 상선이옵니다. 하여 선자를 태우시는 것은…”
정안연은 눈앞에 아리따운 선자에게 안타까운 목소리로 답하였다.
근현대와 달리 전근대 동아시아에서 나라를 오가는 배는 대개 사절단을 보내거나 상선들 뿐이었고, 당연히 민간인들이 타국으로 여행이나 유학을 갈 경우도 이런 배들을 이용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즉, 정안연의 대답은 사실상 거절을 나타내는 것이었으나 선자는 전혀 들은 척 하지 않고, 되려 일행들 사이에서 긴장과 경계의 시선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물었다.
“그 말 뜻은 저기 있는 고려인들도 상인들이라는 것이겠지?”
“그, 그야….”
“호오? 내 눈에는 그리 보이지 않는데 정녕 나만 그런지 근처에 돌아다니는 이들에게 저들에게 확인해보아도 되겠지?”
“…선자. 잠시만.”
근처에 돌아다니는 이들이 누구를 뜻하는지 아는 정안연으로서는 굳은 표정으로 선자를 불러세웠다. 냉정히 생각한다면 선자를 설득하지 못한다면 입을 막는 것이 가장 빠른 수단이었다. 그러나 금나라에 만연한 도가사상의 환경 속에서 자라온 정안연에게 선자를 죽인다는 일은 극히 꺼려지는 행위였다. 하물며 배 위가 익숙한 뱃사람들도 위험하다는 바다(서해)의 항해를 앞두고 도사, 그것도 여인을 죽여 부정을 타고 싶지는 않았다. 그것이 고작 미신이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꺼려지는 것이었다. 때문에 정안연은 거듭 간곡히 설득을 시도했으나 선자는 요지부동 따라가고 싶다는 뜻만을 내비쳤다.
“……타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합니다.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그대는 돌아올 생각이 있는가?”
“없습니다!”
정안연은 즉시 답했다. 단순히 겁을 주기 위함이 아니다. 이번 금나라 행만 하여도 고려 왕실과 연을 맺기 위해 상당히 감수하고 온것이다. 그마저도 자신이 예상한 것보다 훨씬 몽골의 경계가 삼엄하고 위험한 것을 확인한 지금. 정말로 다시 올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만일 고려에서 강제로 보낸다면 그대로 송나라로 도망갈 것이다.
“마찬가지다.”
그리고 선자도 즉시 답했다. 자신도 돌아올 생각이 없으니 태우라는 대쪽같은 요청에 정안연도 결국 두손 두발 다 들고 태울수 밖에 없었다.
“후우.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타시지요.”
“좋다. 배삯은 주도록 하마.”
“돈은 됬습니다. 선자.”
“아니 받아라. 나는 승객이니 지불 하는 것이 옳다.”
“…돈을 받기 보다는 그냥 조용히 있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
돈을 받는다면, 정말 대가를 치룬 만큼 제한이나 주의를 주기가 더 힘들어진다. 물론, 선자 또한 그것을 알기에 승객이라는 입장으로 신분을 확실히 구별한 것이리라. 정안연은 그냥 받지 않으려고 했으나 지금까지의 행동거지를 보면 이렇게 안받는다면 되려 문제가 불거질 것 같아 결국 받고 피하기로 했다…
“정말 조용히 있어주시옵소서. 문제가 생긴다면 이 장사치만이 아니라 여기 있는 모두가 위험해집니다.”
“알았다.”
그렇게 화약고를 안는 기분을 정안연은 배를 타고 고려를 향해 출항하며 속으로 다짐했다.
‘천존이시여. 이렇게 까지 하는데 항해에 풍랑을 보내시지는 않겠지요?’
* * *
개경에서의 일들은 얼추 끝을 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개경에서 할 수 있는 것은 현재 개경의 민심이 어떠한가? 상태가 어떠한가 등 현황을 확인을 하는 것과 지금으로부터 8년 전(고종 12년 1225년) 불타버린 본궐의 일부에 대해 재건을 하니 마니 하는 것을 강화도에 있는 조정에 건의 해보자고 이야기 하는 정도? 고 그 외에는 서경에서 개경으로 왔을 때처럼 얼굴이나 보이며 민심이나 다독이는 것이 전부고, 크게 관리하거나 개입할 것은 사실상 없었다.
이는 본래 개경에서 처리할 국정을 관리하는 자들은 왕과 최우가 강화로 갈때 같이 갔기에 국정의 대부분은 강화에서 결정되고 있기 때문이다. 참고로 내가 북방에 있는 동안 일어난 일로는 세조와 태조의 재궁이 강화로 옮겨졌다고 들었는데 그럼에도 민심은 문제 없다고 들었다. 일단 개경 왕도의 민심은 확실히 나쁘지 않았다. 왕도(개경성) 밖은 그 지역 일대를 물리는 사냥 외에는 벽란도 잠행이 전부라 자세히는 모르지만 벽란도 거리의 반응은 나빠 보이진 않았다. 거기에 보고를 들으면 이통의 난 같은 것은 없을 것이라고도 했고, 크게 걱정은 안해도 될듯 하다.
“큰일이 없는 것 같으니 과인이 없는 동안 유수가 황도의 안전을 지키느라 참으로 수고가 많은 것을 알겠네.”
“아니옵니다, 전하. 소장은 별로 한것이 없습니다. 이곳 황도도 안전한 것은 모두 서경에서 전하께서 몽고적들을 물리치신 덕택이옵니다.”
개경유수 김인경이 겸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뭐 틀린 말은 아니라서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그렇다면 치사하는 말은 이쯤 하겠다. 유수는 들었을 것이나, 다시금 묻겠네. 지금 벽란도에는 북조(北朝 북쪽의 나라. 이 경우 금나라를 지칭.)에서 온 상인에 대해 아는가?”
“들었사옵니다. 기특하게도 황상께 진상을 하기 위해 험한 바다를 건너 왔다지요?”
“그 말대로네. 그렇다면 그 수에 대해서 들었는가?”
참고로 지금 내가 이들을 맞이한 곳은 정궁(正宮 왕이 묵는 궁. 고려 당시에는 본궐本闕이라고 불렀다.) 연경궁(延慶宮) 내에 있는 전각으로 평소 고려왕이 정무를 보는 대소신료들과 말을 나누던 정전(正殿:정무를 보는 곳)인 대관전[大觀殿]이다. 원래 연경궁은 이궁(離宮:법궁,정궁이 아닌 궁)이었으나 이자겸의 난으로 본궐이 불타면서 본궐의 용도로 사용되어 지칭하게 되었다. 대관전이라는 이름 또한 건덕전[乾德殿]이라고 불렀으나 인종 16년(1138년)에 대관전이라는 이름으로 개칭된 것이다.
본궐이라는 명칭이 왕이 묵는 곳을 의미 하다보니 왕이 몽진을 하면서 당연히 왕이 지내는 본궐도 폐쇄를 하였는데, 내가 가출하면서 역사가 개변되어 다시 개방이 되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우선 내가 개경에 돌아온 후 민심을 다독이기 위해 왕실은 개경을 버리지 않았다며 구라를 거하게 치면서 기약없이 돌아오지 않는 듯한 느낌이 드는 폐쇄라는 표현이 이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몽골과의 화약에서 몽골이 내건 조건 때문에 (사실 생각도 없는 것 같지만)출륙 준비 겸 내부 민심을 다독이기 위해 정식으로 세자가 된 내가 개경에서 일하는 것을 보여주는 제스처를 취하기 위해 본궐로 불리게 된 것이다. 그리고 세자인 나도 여기서 정무를 논하게 된 것이다.
이 때문에 어디까지나 말밖에 없는 구색이지만 현재 고려에는 2곳의 본궐이 존재하는 셈이다.
다만 아무리 본궐에서 정무를 보게 될수 있다고 해도 옥좌에는 직접 앉지는 못하고 따로 의자를 준비하여 옥좌 앞에 두고 앉아서 정무를 봐야 했다. 서경의 장락궁[長樂宮] 경우는 이미 수도로서의 모든 권리를 잃었기에 만월대와 같이 정궁의 격으로 지어진 구조라 해도 그 격과 권위를 공식적으로 상실하여 어찌 넘길수 있지만 일단 본궐이라고 까지 불리는 개경에서 옥좌에 직접 앉거나 과하게 나섰다간 역모로 몰릴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비슷한 문제로 내가 지금 묵고 있는 곳도 당연히 원래라면 서경에서 약식을 치루는 것이 아니라 거하게 태자 책봉이 거하게 이루었을 곳이자 몽진 이전에 묵고 있던 고려의 세자와 세자비들이 묵었다는 여정궁[麗正宮]이다.
“소장이 듣기로는 이제껏 왔던 그 어떤 거상보다 많은 규모라고 들었사옵니다.”
“과인이 듣기로는 규모가 260명이 넘는다 들었다. 과인이 아는한 여러 도수들이 함께 온 경우를 제외하면 상인들중 이보다 큰 규모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웅성. 웅성.
대관전은 단번에 들썩이기 시작했다. 참고로 탐라가 고려에 보낸 조공사가 150~200명으로 추정하고 조선 시대에 조선에서 에도 막부로 보냈던 조선 통신사가 대개 2,300명이라고 했으니 이것만 봐도 일개 상인인 정안연이 데려운 인원이 얼마나 크고 경계가 될수 밖에 없었다. 하물며, 동진국의 포선만노나 우가하(于加下),황기자(黃祺子), 가유(賈裕) 등 고려의 국경 인근에서 침탈하며 하나 같이 저고여 피살사건의 용의자로 뽑히던 이들 전부가 금국 출신이었다. 심지어 금에 반란을 일으킨 거란족인 야율유가 또한 금국에서 장수를 하던 이가 아닌가? 이들 모두가 고려에 침공을 해오면서도 가증스럽게 친근하게 지내고 싶다고 사신을 보내왔다. 이러니 정안연이라는 금상의 규모가 적지 않으니 경계를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북조의 상인이 이렇게나 대규모로 진상을 해온 사례는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이는 지금 북조가 매우 위기임과 동시에 남조(南朝 남쪽의 나라. 이 경우 남송을 지칭.)보다 아조가 더 안전하다 판단하여 온것으로 보옵니다.”
이때 김인경은 차분하게 대답했다. 구태여 남조와 비교함으로 써 고려의 국력과 위상을 설명을 하며 입조를 하는 것에 해명을 하자 듣는 이들도 소란을 멈추고는 조용히 인경의 말을 경청하기 시작했다.
“유수께서는 북조의 상인이 아조에 흑심을 품은 것이 아니라 몽고적들을 피해 왔을 뿐이다라고 생각하시는 것입니까?”
“그렇소. 몽고적과 싸우는 것으로도 급급한 북조가 어찌 아조를 넘볼수 있단 말이오?”
“허나, 북조는 이미 북조의 선제 선종 시절 몽고적을 두고도 남조를 치는 짓을 벌인 적이 있지 않사옵니까? 또한, 얼마전 참란을 일으킨 대요수국 황제라고 자칭한 야사불이나 금산왕자는 물론 동진국의 포선만노나 우가하, 가유들도 몽고적을 두고도 아조를 침탈한 후안무치하고 어리석은 짓을 벌인 전례가 있습니다.”
그러나 김인경을 단번에 고개를 저었다.
“이번에는 그때와 상황 자체가 많이 다르오. 그들은 전부 병장기를 갖춘 병력을 소유하였으나 이번 정안연이라는 금상은 일개의 상인이지, 군벌이 아니오. 더군다나 조공을 하는 규모가 크다곤 하나 제대로된 무기도 없으며 300명도 채 안되는데 무엇을 겁낸단 말이오?”
“300여명 밖에 안된다고 하였으나 기해년에 난신적자 정중부와 정균을 타파하였던 경대승 장군이 이끌던 수도 고작 30여명 밖이 되지 않았습니다. 또한, 그들이 직접 일을 벌이지 않는다 한들 그가 강화로 가는 길과 조정의 상태를 파악하려는 것인지 어찌 알겠나이까?”
기해년 1179년(명종 9년)에 있었던 경대승의 기해정변을 사례를 들어 반박을 들자 김인경도 잠시 멈칫했다.
기해정변이라…
기해년 당시 고작 26살의 나이였던 경대승이 30명이 될까 말까 하는 작은 병력으로 고려 전권을 쥐락 펴락 하며 어마어마한 병력을 가진 정중부 가문에 도전해서 승리를 이루며 고려를 뒤흔들었던 대 사건이라고 역수가 말해줬던 것 같긴 하다. 그리고 그 말을 한 후에는 이 경대승의 자이언트 킬링(Giant-killing. 약자가 압도적 강자를 상대로 이기는 것을 말함.)은 그가 살아생전은 물론 사후에도 그의 의도와 달리 권력에 미련이 있거나 욕심을 가진 자들이 중과 부적의 상황에 처해도 마지막 시도를 해보게 만드는 마력을 남겨주었던 걸지도 모른다고 평가했다.
경대승의 사례를 빗대어 신중론이 나오자 신료들의 의견도 그쪽으로 기울기 시작하며, 정안연을 돌려보내자는 말도 나오기 시작했다. 물론 나는 그것을 찬성해줄 생각이 없다.
* * *
물품을 점검한다고 벽란객잔은 분주하였다.
왕과 세자 둘중 누구를 선택하던 간에 정안연이 가져온 물품들이 강화에 있는 고려 왕에게 진상된다는 것은 변함이 없었다. 그리고 일국의 왕에게 바치는 진상품들인 만큼 혹여나 흠이라도 있거나 해서는 안된다. 그렇게 점검을 하던 도중 갑자기 소란과 함께 비명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우와아앗!!”
“무슨 소란이냐?”
식사를 하다가 갑자기 들려오는 비명소리에 놀라 방에서 튀쳐 나온 정안연에게 상원이 다급히 다가와 보고했다.
“도, 도수! 큰일 났습니다! 맹수가, 맹수가 우리에서 벗어났습니다!”
“그것이 무슨 소리냐? 맹수가 어떻게 벗어났단 말이냐?”
“바다를 건너오는 동안 바닷 바람에 우리의 나무가 내부부터 썩고 있었는지 부수고 탈출하였다고 합니다.”
정안연이 가져온 왕에게 바칠 진상품 중에는 동물들이 있었는데 그 동물들은 하나같이 고려에서는 보기 힘든 진수(珍獸)들이었고, 그 중에선 맹수도 있었다.
“맹수라면 무엇이 탈출하였단 말이냐?”
“범입니다. 안남국에서 잡아왔다고 한 ‘그 범’ 말입니다.”
그 말을 들은 정안연의 인상은 왈칵 일그러졌다.
“하필 많고 많은 것 중 그 녀석이…. 그래서 어찌되었느냐? 몰아넣고 있느냐?”
“그것이….”
“맹수가 밖으로 나갔다!!”
“와아아아!!”
상원이 대답을 주저하고 있을 때 곧바로 나갔다는 소리가 들려오자 정안연은 대답을 듣지 않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당장 잡아드려!”
.
.
.
“버, 범이다!”
“꺄아아아아!!”
보통 호랑이라는 맹수는 맹수 가운데에서도 가장 강하고 무서운 맹수로 취급받는다.
호랑이의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성정은 둘째치고서라도, 그 무자비한 힘과 날렵함에서 오는 본능적인 공포 때문에 사람들은 호랑이와 마주하는 것을 극도로 꺼려했다.
오죽하면 일개 미물 주제 산군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겠는가? 그런 맹수가 깊은 산속도 아닌 벽란도 거리에 나타나니 당연히 거리는 혼란의 구렁텅이로 빠졌다. 거기에 벽란도 거리를 활주하는 범은 고려에서는 결코 보이지 않는 전신이 새까만 흑범이었다.
그 윤기가 좌르르한 검은 모피와 사나운 울음소리가 보는 이들의 공포를 더욱 자극하였다. 그 공포에서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는 것 밖에 없었다.
그리고 맹수 또한 좁디 좁은 우리에 갇혀 있어서 뿔이 날대로 나 계속해서 달려갔다. 가로 막는 것이 있다면 무엇이든 죽일 듯이 달려드는 맹수의 분노와 폭주는 계속되었고, 누가 있든 멈추지는 않았다.
“위험합니다!”
“크어엉!”
그렇기에 때마침 뭣도 모르고 골목을 나온 여인은 무척이나 운이 없었다. 라고도 할수 있었다. 하지만 무조건 운을 탓할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녀는 주변의 비명 소리가 듣고도, 맹수의 출몰했다고 들었음에도 그렇게나 지근거리까지 오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오판을 한것이니 말이다.
그녀는 검을 들고 있었고 제 몸을 지킬 자신도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뛰어난 검술을 가지고 있어도 빼들지 않은 검은 의미가 없는 법이다. 그녀가 뒤늦게 맹수가 가까이 있음을 눈치챘을 때는 범은 이미 도약을 감행하고 달려들고 있었고, 그녀 본인 조차 늦었다고 생각하는 속도로 팔을 들어 부질없는 방어를 시도 하는 것 밖에 없었다.
* * *
금수유는 아이가 싫었다. 쉽게 투덜대고, 쉽게 짜증내고, 쉽게 죽는 아이가 너무나 싫었다.
“으아아아앙!!”
“이 더러운 도둑 계집. 감히 고려에서 생선을 훔쳐! 어서 꺼져!”
여자 아이는 싫다. 함부로 끼어들고, 제대로 설명 못하고, 단순히 울어 제끼는 여자아이가 무척이나 싫다.
“소저께서는…”
남자 아이는 싫다. 세상 물정도 모르면서 아무렇게나 끼어들고, 상대도 못알아보고 자신감만 넘쳐 나대는 남자 아이가 너무나 싫었다.
“모두 나의 잘못이오.”
어린 아이는 싫다. 아프면서도 울지 않고, 감정을 숨기고, 어른 인척 나이에 맞지 않게 억지로 행동을 취하는 조숙한 어린아이는 삼라만상,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는 것 같아 꼴 보기도 싫다.
“송악산 아래에 사는 왕도령이오.”
‘애늙은이 같으니…’
어린 아이는 싫다. 그중에서도 세상 물정도 모르고 잘난 듯이 나대며, 어설픈 지식으로 어른 인 척 하는 애는 귀여운 맛도 없어 더 싫었다. 그 외에도 부모의 배경만 믿고 설치거나 눈치도 없이 말대답이나 말꼬리 잡고, 끈질기게 따라붙으며, 일일히 반항하는 아이는 너무나 싫다.
그렇게 생각하면 어제 만난 고려인 소년은 아주 싫다고 할수 있었다. 정말로 싫은 것 투성이다. 자기가 만난 상대중 가장 짜증나고 싫은 상대라고 할수 있다. 정말 싫어서 헤어진 이후 그날 밤 내내 그 짜증 나는 얼굴이 떠올라 기분을 더럽혔으니 말이다.
“하아. 하아.”
자신의 몸 위에 눈에 화살에 맞아 절명한 맹수 위로 엣 된 목소리가 들린다.
“괜찮으시오?”
익숙한 목소리다. 하룻밤 내내 짜증을 나게 만든 목소리와 잊혀지지 않는 애늙은이 같은 말투. 상황을 보면 자신을 덮친 맹수를 죽인 것은 그 소년인 듯 하다. 싫은 인간에게 목숨을 구원받다니 자존심 상한다. 역시 아이가 싫다. 자신의 문제에 끼어든게 싫다. 믿고 있던 검술로 제압 못한게 싫다. 자존심을 연달아 부수고도 모르는 척 대범한 척 어른 인척 하는게 싫다. 목숨을 구해준게 싫다. 맹수를 치우고 쓰러진 나를 진심을 걱정하며 내려다보는 모습도 싫다. 내가 무사한 것에 해맑게 웃는 것도 싫다. 정말로 싫은 것 투성인 것이다. 분명 또 잘난듯이 시끄럽게 하겠지. 정말 싫은 상대다.
“크게 다치지 않은 것 같아 다행이오. 혹시 모르니 의원에게 진찰을 받는 것이 어떻겠소? 더럽혀진 옷은…”
예상대로 중얼 중얼, 제잘. 제잘. 시끄럽다. 역시 짜증나고 싫은 것 밖에 없는 아이다.
두근.
그러니까 이 귓가에 울리는 가슴의 두근 거림과 얼굴의 화끈 거림은 자신의 착각이 분명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