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yo Black Prince RAW novel - Chapter 220
220화
54장 몽골의 명분
3차 여몽 전쟁(물론, 양국 모두 그렇게 부르고 있진 않는다)이 동요국과 동하국 잔당들을 옷치긴 왕가가 뒤에서 일으킨 전쟁이라는 것은 삼국의 입장상 대외적으로 알려지지 않았고, 실제 테무케 본군마저 넘어가지 못하고 끝난 지금 몽골 조정에선 고려와 벌인 전쟁은 1, 2차 전쟁이 전부였다.
그렇다 보니 몽골이 고려와 다시 전쟁을 한다면 고려 영토 내에 들어갔던 경험자들도 다시 참가하는 것은 필연이었는데 그중에는 1, 2차 전쟁에 참전하였으며 쿠추를 비롯한 제실왕족들이 참전하지만 않았다면 응당 이번 원정의 원수직으로 올랐을지 모르는 장수들도 있었다.
“우리 군은 모두 4군으로 나눌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장수 중 하나인 땅꾸는 당연히 이번 전쟁에 요직을 차지하여 젊은 장수들에게 전략을 설명하는 입장이었다.
“제1군은 2만 명으로 쿠추 님과 구유크 님. 그리고 제가 함께하여 고려의 의주를 통해 최단기간으로 고려의 왕이 있는 곳 혹은 수도 개경으로 향할 것입니다. 1군이 얼마나 빨리 고려 왕에게 당도하는가, 그리고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개경을 함락하는 것이 이번 전쟁의 핵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제2군은 쿠투투 님과 쿠빌라이 님 그리고 야율설도 전하가 1만 5천 명의 군대로 1군의 후방 호위 및 퇴로를 확보하여 주십시오.”
5만 명을 넘는 몽고군이 동요에 집결한다는 사실을 동요국에도 비밀로 하면서 고려에 숨길 수 있을 리 없었다. 당연히 동요국의 야율 형제들은 알고 있었고 전쟁 경험도 있는 그들은 참전도 하고 있는 중이었다. 고려보다 몽골에 가까운 동요국의 주인인 그들로서는 몽골의 비밀과 참전 요구를 거절할 수 있는 선택지는 애당초 없었으니 말이다.
“잠깐! 지금 고려왕이나 수도 개경에 당도해야 한다 하였는데 전자야 이해가 된다만 후자는 무슨 이유가 있는 것이오? 왕도 없는 곳을 친들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이오?”
쿠투투와 함께 온 아라크 부케의 질문은 땅꾸가 아닌 지난 2차 전쟁에서 부원수였으나 불만족스러운 화약을 체결한 탓에 그 후 쓴소리를 들었던 태케가 대신 답하였다.
“고려왕을 놓칠 경우 개경을 함락하는 것은, 개경이 함락되면 고려의 동북면은 사실상 고립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전쟁에서 서경의 백성들이 우군에게 창칼을 들이댄 것은 개경에서 오는 지원군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일 개경이 함락되거나 포위된다면 고려 북방은 물론, 전국에도 영향을 줄 것입니다.”
“그런가.”
아리크부케가 이해를 한 모습을 보자 땅꾸는 설명을 계속했다.
“다음 제3군은 아라크부케 님과 무가 님께서는 8천 명으로 이끌고 창성(昌城 오늘날 평안북도 창성군. 작중 왕검이 명명.)을 비롯한 고려장성(천리장성) 이북 지역을 쳐서 장성 인근에 대기 중인 고려군을 자극시켜야 할 것입니다. 물론 야율선가 당신도 참가해야 할 것이오.”
“그리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제4군 태케 장군은 5천명의 기병과 함께 이대로 이곳 동경에 주둔하였다가 지시가 내려오면 고려의 서북면을 통해 남하를 하시오. 그렇게 되면 고려는 동시다발적으로 공격을 받게 되어 정신을 차릴 수가 없을 것입니다.”
본군에 참전되지 않은 것에 태케는 불만 어린 표정을 숨기지 않았지만 거절은 하지 않았다. 어차피 이번 전쟁의 주역은 쿠추였으니 말이다.
* * *
“우리가 칠 곳이 생각보다 넓군.”
명령을 받고 군을 나누어 창성 부근으로 가던 아라크부케는 받은 지도를 보고는 그리 말했다.
실제 갑오화약 이후 고려가 동요국으로 받은 영토는 천리장성 이북으로 압록강 이남이었는데 이때 압록강 이남 한정 백두산 이서 지역도 전부에 해당했으니 그 크기는 서해도(西海道=오늘날 황해도)보다도 컸으니 크다고 할 만했다.
그렇지만 야율선가는 고개는 끄덕이되 걱정할 것 없다는 듯 말했다.
“땅이 넓긴 하지만 실제 칠 곳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이곳은 땅이 척박하고 사람 살기가 힘들어 요, 금 시절부터 사는 이가 적었고, 제대로 된 마을도 적었습니다. 그것이 아조가 건국되고 나서야 그나마 사람이 가서 살게 되었는데 그 주민들도 여러 병란(대요수국의 난, 설무아지의 난)으로 사라져 지금은 고려에서 둔전과 개간을 위해 사람을 올려보낸 곳이 사람이 사는 곳 전부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마저도 얼마 되지 않습니다.”
야율선가가 그렇게 조언을 하자 아라크 부케는 고개를 끄덕이며 되물었다.
“그렇다면 장군이 보기엔 장성이북의 요새들은 고려군이 적거나 함락하기 쉬워 보이는가?”
“장성 이북에서 우리가 갈 곳에 있는 고려의 요새들은 목책이 세워져 있더라도 군대를 방비한다기보다는 맹수들을 막고자 한 것입니다. 또한, 영토가 영토다 보니 다 모인다면 병력이 다소 되겠으나 영토가 넓어 병력도 넓게 분산되어 있으며, 지형이 험하여 군대가 빠르게 오고 갈 수 없습니다. 하여 우리가 경계해야 할 주요 병력은 장성 이남에 있을 것이 분명합니다. 우군의 병력이면 능히 칠 수 있습니다.”
야율선가의 말은 맞았다.
실제 지난 전쟁에서 고려군이 적은 수로 동요국의 주민들과 마을을 쉽게 약탈하고 많은 주민들을 끌고 올 수 있었던 것도 그러한 이유였다.
그리고 그 문제는 고려도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렇단 말이지?”
“그렇습니다. 그러니 약탈은 언제든지 하여도 큰 어려움은 없을 것입니다.”
“언제든지 말인가.”
야율선가에게 대답 한 아리크부케의 눈은 어째선지 마음에 드는 장난감을 본 어린아이와 같은 눈을 하고 있었다.
* * *
이 시기 몽골군은 물론, 몽골 조정에서도 이번 전쟁에 대해서는 자신들 측이 확고한 명분이 있다고 생각했고 실제 구유크가 왕검의 목에 채운 멍에. 금 황녀 고려 세자비 명분을 시작으로 6사 실행, 출륙 요구 무시 등 몽골이 치려고자 한다면 고려를 칠 명분은 충분히 있었다.
그렇기에 이번 오고타이가 선택한 명분과 마지막 권고 시도는 예케 몽골 울루스 내부에서도 자신들을 도운 고려에게 내리는 대칸의 넓은 자비라고 보는 이들도 많았다.
그러나 협박에도 종류가 있고, 그 종류에 따라 의미가 있었는데 협박거리, 원인이 무엇인가에 따라 단순한 겁박, 농담, 질 나쁜 장난으로 넘어간다.
이것은 상대의 명줄을 쥐고 있어도 변함이 없는데, 특히 협박하는 대상이 피해자의 협박거리가 생긴 원인에 관련이 있다고 한다면 그 소재를 상대에게 사용한다는 것은 다른 협박보다 더욱 민감하고 의미가 다르다.
그리고 구유크가 왕검의 씌운 금 황족 프로파간다 멍에 또한 그만큼의 무거운 문제였다.
구유크가 권유한 문제로 친다는 것은 고려에선 토사구팽이나 다를 바 없었고, 하물며, 금나라의 문제는 몽골에서도 쉬이 넘길 수 없었으니 섣불리 터트리고 쉽사리 수습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었으니 빼도 박도 못하는 결별 통보에 준하는 주제였다.
고려와 결별한다고 몽골이 멸망한다거나 큰 피해를 입는다고 생각하는 자는 몽골 내에 그 어디에도 없었지만, 서정을 앞둔 상황에서는 사력을 다한 전쟁터를 만드는 것은 악수 중 악수임은 분명했다.
요약하면 구유크가 만든 멍에는 지금 터뜨리기엔 아깝고 귀찮기도 한 명분이라는 것이다.
6사와 출륙 또한 지금까지 얼렁뚱땅이라곤 해도 고려가 변명을 한 것에 크게 반발하지 않고 넘어갔는데 원 역사와 다르게 몽골에 그럭저럭 도움을 준 고려였다.
여기서 그 문제를 무 통보로 친다는 것은 몽골 내부에서 오르고 있는 고려 평판과 몽골에 귀의하고 따르는 한족 군벌들에 대한 토사구팽의 모습으로 보일 수 있어 앞선 명분보다는 위험도가 적어도 최선의 수는 아니었고, 이것 또한 서정에 앞둔 상황을 생각하면 역시 좋은 문제는 아니었다.
즉, 예케 몽골 울루스라는 대제국을 부드럽게 운용하며 자비로운 오고타이칸으로서는 명성을 지키며 산하의 반대와 의심도 적게 하는 선택지가 바로 6사와 출륙의 재요구였던 것이다.
자비로운 대칸은 고려에 기존의 요구를 그대로 요구하며 심지어 한 가지만 하여도 지금은 넘어갈 것이라는 선택을 내려주었으나 오만방자한 고려가 따르지 않았다, 라는 상황이 전개된다면 고려가 몽골에 공격을 받아도 몽골 내부에서 고려를 옹호하거나 동정을 하는 자가 나올 수가 없었다.
오고타이칸은 자신이 꾸민 구도가 무너질 것이라는 걱정은 하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어차피 고려가 요구를 수용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이것은 비단 오고타이만의 생각이 아니라 나름 고려에 대해 알고 있다 자부하는 야율형제와 구우크도 같은 생각이었고, 심지어 이장용을 비롯한 세자의 측근들도 똑같이 생각하고 있는 문제였다.
언제나 넘어가 준 요구에, 도움을 준 상황. 화를 내더라도 곧바로 대군을 보내 치지는 않을 것이다. 혹은 답장을 보고 나서 준비를 할 것이다. 그것이 아니더라도 6사 같은 굴욕적인 요구와 위험한 출륙을 하는 것은 따를 수 없다.
그렇기에 이장용은 왕의 파천 이야기에 처음에는 당혹하면서도 이내 어차피 거절하여 전쟁을 한다면 고려가 몽골과 전쟁을 대비하고 있었다는 것에 안도하였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 * *
그렇게 모든 몽골인들이 전쟁을 확신하고 명분도 쥔 것에 기뻐한 고려 원정에 대한 생각은 몽골 사신 포가도 별다를 바 없었다.
‘금주(金主)가 그런 짓을 하였다가 나라가 무너졌는데 그것이 얼마나 지났다고 이런 짓을 하다니 고려왕은 참으로 어리석구나.’
금나라가 어떻게 멸망한 것인지 떠올린 포가는 고려의 실태에 입을 씰룩거렸다.
‘고려가 작은 승리 몇 번으로 기고만장해지고 예케 몽골 울루스가 아량을 베풀어주니 우습게 본다 하였는데 사실이구나. 그러나 이번에는 그 번지르르한 말도 하지 못할 거다! 오냐. 내 이번에 고려란 나라와 왕이 우리 예케 몽골 울루스에게 약소하고 형편없는 것인지 주제를 알려주마!’
그렇게 해석하며 포가는 당도하는 성마다 고려왕이 얼마나 멀리 도주하였고 만나면 어떻게 변명할 것인지 궁금하다며 공공연하게 말하며 횡포를 멈추지 않은 채 남행하였다.
“너희 왕이 너희를 버렸는데 너희는 어째서 싸우려는 것이냐. 우리 군이 온다면 바로 문을 열어 항복해라. 그것이 너와 너의 가족이 살길이다. 끌끌끌.”
* * *
그랬던 포가는 지금 얼굴에 난처함을 숨기지 못하고 쩔쩔매며 연신 고려왕에게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지금 그게 무슨 말이오! 대국의 사신은 어서 말해보시오!”
고려왕이 언성을 높이는 일이 얼마나 보기 드문지 아는 이들은 고려의 신하도 아닌 몽골의 사신에게 언성을 높이는 왕의 모습에 눈을 의심할지 몰랐으나 그런 이들도, 아니, 고려와 몽골 양국의 사람들도 지금의 상황을 듣는다면 왕의 저 언성에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동조만 할 것이 분명했다.
“아, 아니. 그것이… 아마 오해가 있었던 듯합니다.”
“암, 그럴 것이오. 과인이 미치지 않고서야 어찌 상국과 맞서고자 그런 짓을 한단 말이오. 북방에 그런 허무맹랑한 소리가 떠돌고 있었다니 참으로 어이가 없소! 다행히 대국에서는 이 사실을 알고자 사신을 보내 확인하였으니 참으로 순리가 맞고 대칸께서 명리(命理)가 밝으시니 그야말로 대국을 통치하는 분답다 할 수 있소이다.”
“…그러게 말입니다.”
대답을 하면 할수록 포가를 비롯한 몽골 사신 일행들의 등은 식은땀이 쉴새 없이 나와 등을 적셨다.
아무리 중화권의 외교에 익숙지 않고 무례하다고 소문난 몽골 사신들이라도 금을 침략한 지도 벌써 20년이 넘었고 어설프게나 중화의 문화와 제도를 수용하려는 시기였다.
지금 자신들의 생각 없는 행동은 자칫 대칸의 자비를, 대칸이 보낸 사신인 자신들이 뭉개 버리는 행위가 일어날지 모른다는 것은 이해하고 있었다.
반대로 그들은 눈앞에 일어난 광경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고려왕이 섬에 나왔다는 것도 개경에 가지 않았다는 소문은 맞았지만 절대 따질 수는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왕이 지금 있는 곳은 세 살배기 코흘리개 어린애에게 물어도 왕이 몽골과 전쟁을 하기 위해 피신 온 곳이라는 말을 믿지 않을 곳이었기 때문이다.
‘어째서 몽진을 하였다는 고려왕이 서경에 있단 말인가!’
#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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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역사 3차 전쟁에서 몽골군 원수는 땅꾸입니다.
**설명할 소재는 이번 원고까지 하여 대부분 했으니 이후 전개는 눈썰미 좋으신 분은 바로 이해할 것입니다. 그러니 다음 편부터는 설명보단 스토리 전개 중점으로 빠르게 전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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