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yo Black Prince RAW novel - Chapter 221
221화
55장 명분 제거
시간을 잠시 과거로 돌려 이장용이 왕검의 명령에 따라 몽골의 동태도 파악할 겸 구유크의 생일을 축하하러 카라콜룸으로 향했을 때, 고려의 강화도는 개경에서 강화도로 몽진하였을 때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시끄러웠다.
그 원인은, 문하시중 최종준이 올린 한 장의 상소에서 비롯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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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문하시중 최종준 아뢰옵니다.
신은 엎드려 생각하옵건대, 순(舜)임금은 유묘(有苗)를 치면서 덕을 닦아 마침내 항복을 받았고, 탕(湯)임금은 갈(葛)에서부터 치기 시작하여 은혜를 베풀매, 모두 다투어 와서 살아났다 하였사오니, 이는 모두 고금의 아름다운 이야기요, 실상 제왕의 거룩한 처사이옵기로 감히 조심하는 책임을 지고 태양을 향하는 정성을 다하며, 우러러 이해(利害)의 단서를 아뢰어 치국(治國), 성세(盛世)의 소망에 부응되기를 바라옵니다.
(…중략)
엎드려 생각하옵건대, 폐하께서 신의 충심을 살피시고 신의 직언(直言)을 받아들이시와 잠깐 출륙하여 북행(北幸)의 거둥을 돌리시고, 이후 다시 남순(南巡)의 예를 거행하여 나라의 경(京) 곳마다 행차하시어 백성과 관리들을 독려하신다면 감히 어느 누가 황상께서 나라와 백성을 버리고 무관심하다고 입에 담겠으며 원망을 하겠사옵니까?
또, 폐하께서 출륙하시어 나라를 순행하였으니 몽고에서도 어찌 아조가 그들의 요구를 무시하고 있다고만 주장할 수 있겠습니까. 하여 순행의 행차는 아조의 다행이요 또 천하의 다행입니다.
신은 비록 변통(變通)의 식견은 몽매하오나, 광제(匡濟)의 뜻만은 부지런하옵기로, 감히 글을 지어 작은 소견을 올리오며, 성인(聖人)을 그리고 은혜를 느껴 지극히 황송함을 이기지 못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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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준은 최치원이 당 황제에게 올렸던 글을 흉내내어 일명 청 순행경표[請巡幸京表]를 올렸는데 이 상소가 올라오자 대전은 단번에 뜨거운 감자처럼 열이 올랐는데 듣자마자 출륙은 대왕을 몽고에 파는 것이라 주장하는 이가 있었다면 반대로 이대로 강화도에 있는 것이야말로 나라를 몽골에 팔고, 백성들을 버리는 것이라 주장하는 신하들도 있었다.
결국 양자의 주장은 ‘전란이 가라앉았으니 나가자!’ 와 ‘아직은 위험하니 나가지 말자!’ 라는 주장으로 나뉘었다 볼 수 있었는데 각자 아주 틀린 말들도 아니라 갑론을박은 시간이 흐를수록 심해져만 갔다.
이 논란 속에서 왕의 마음이 출륙을 연기하고자 하는 것에 마음이 기울이려 하던 찰나, 세자가 나서니 종지부가 찍혔다.
“신이 듣기에 문하시중의 의견은 썩 틀리지 않았습니다. 전란이 지나가고 여러 나라가 본국을 방문하고 있는 상황에서 황상께서 심도에 계속 거하시는 것은 안으로는 백성들이, 밖으로는 여러 나라들이 기이하게 보거나 미심쩍게 볼 것입니다.
하오니 나가야 하는 것은 필연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변란과 반란의 소란이 완전히 가라앉지 않았고, 그 문제도 전부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하오니 황상께서는 문하시중의 말대로 전국을 순행하시고 심도의 문제를 해결하신 뒤 완전히 황도로 환도하시는 것이 어떻겠사옵니까?”
최 시중의 청표(請表)가 누군가의 주선이라는 것을 파악한 왕과 신하들은 더 이상 강하게 반대하지 않았다.
말을 들어보아도 어디까지나 민심 안정을 목적으로 순행을 할 뿐, 순행이 끝나면 정리를 한다는 핑계로 강화도로 돌아온다는 말이 분명했으니 말이다.
그런 짜고 치는 고스톱이었지만 왕의 출륙과 순행은 백성들의 열광적인 호응과 환대로 돌아왔다.
이 시기 왕에 대한 백성들의 여론은 여지껏 일들로 대체적으로 호의적이었다.
“아이고! 만세. 만세! 만만세!”
“황상께서 드디어 출륙하시는구나!”
“그거 참말인가. 그거 참으로 다행이구만! 참으로 다행이야. 이제야 안심하고 두 발 쭉 펴고 잘 수 있겠어!”
물이 들어올 때 노를 저어야 한단 말처럼 근래 들어 나타난 호재들에 이어 왕의 전국순행은 그토록 바라던 전란의 끝을 상징하는 듯했다. 실제론 아직 전란의 위험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지만 말이다.
그런 찰나의 평화기 속에서 열렬한 환대를 받으며 왕이 서경에 행차하곤 세자의 생일까지 지내려고 하였는데 그때 몽골의 사신이 방문한 것이다.
* * *
도주한 고려국의 왕을 준열하게 따질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며 내려온 포가는 소문과 달리 서경에서 왕을 만난 것에 울고 싶었다.
차라리 출륙 자체가 완전히 거짓이었다면 대칸이 엄중히 따지는 몽골에게 항거하는 마음이 있다고 우길 수라도 있었는데 말이다.
“칸의 칙서는 잘 보았소. 칸께서 하신 요구 또한 이 순행이 끝나고 해결할 계획이오. 과인이 여기 와서 경과 말하고 있는 것이 지금 당장의 증거로는 될 것이라 생각하는데 이의가 있소?”
“그… 아닙니다. 충분합니다.”
일단 칙서도 건네고 출륙과 6사의 요구를 해보았지만 이미 섬을 나와 서경에 있는 왕이 순행을 하며 준비에 들어가고 있다고 하니 할 말이 없었다.
단순한 변명이라기엔 그토록 나오지 않았던 왕이 이미 북쪽에 가까운 서경에 나오면서 대칸의 최소한의 요구를 이미 따른 상황이라 무작정 의심하는 것도 어려웠다.
몽골과 적대를 하려는데 개경이 아닌 보다 전장에 가까운 서경으로 도주한다?
이걸로 고려가 저항한다고 주장했다간 단박에 미친놈 취급을 받고 목이 날라갈 것이 분명했다.
특히 지금의 자신의 처지에선 더더욱 그러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런 소문을 낸 자가 누군지 몰라도 참으로 어이가 없소. 과인이 섬을 나와 순행을 하는 것이 무슨 이유인데 그런 소문이 나와 경을 오해하게 만들다니 말이오.”
“…저도 듣고 보니 참으로 기가 찰 노릇이고 안타까울 노릇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오해라는 말 한마디로 끝내기엔 사태가 너무 심각하오!”
진노 어린 왕의 말에 포가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다.
이대로 돌아갔다가 전쟁이라도 터진다면 고려가 어찌 되든 간에 자신의 목이 위험해진다.
그렇다고 자신 홀로 입을 닫는다고 무마될 문제도 아니다. 고려에서 사람을 보내 사실을 알린다면 끝이다.
대칸이 자비를 베풀어 만든 자리를 대칸이 믿고 보낸 사신이 파토 냈다는 사실만이 남게 되는 것이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에 처했는데, 그때 잠자코 있던 세자가 끼어들었다.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지금 상국의 사신이 가져온 칙서에 의하면 대칸께서는 속히 경으로 환도를 할 것을 권하고 있습니다. 하오니 우선 순행과 현 문제는 중단하고 뒤로 미루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세자의 말에 왕은 잠시 입을 다물고 고민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듣고 보니 태자의 말이 맞다. 경(京)들의 행차는 우선 멈추고 상국에서 말한 대로 우선 개경으로 가 그 허무맹랑한 소문이 다 끝날 때까지 있어야겠구나. 그리고 민심이 다 가라앉으면 그 후 다루가치와 호구의 문제를 다시 해야 할 것이로다.”
“어. 어?”
역관을 통해 실시간으로 부자의 대화를 전해들은 포가는 상황이 요상하게 흘러가는 것을 깨닫고는 당황하며 말리려 하였으나, 그보다 빠르게 왕이 되물었다.
“과인이 환도를 하는 것이 문제가 있소?”
“…그, 그 기왕 오신 것. 이대로 계시는 것이 더 낫지 않겠습니까? 이곳 서경에 계신 것만으로 대왕의 성심은 증명된 것입니다.”
포가는 어떻게 말할지 찰나 동안 여러 생각을 했으나 결국 내뱉은 말은 그것뿐이었다.
개경 환도를 다그치려고 온 자신이 졸지에 개경 환도를 만류하는 꼴이 부끄럽기까지 했지만 그렇다고 말리지 않을 수도 없었다.
“지금 북방에 퍼진 헛소문으로 상국은 물론 아조마저 오해를 하고 있는 이가 있다고 하지 않았소? 여기서 대칸의 뜻마저 거절한다면 진정 그 오해가 진실이 되는 것이 아니오? 하물며 칸께서 보내주신 이 칙서에도 ‘고려왕은 받는 즉시 개경으로 환도하라!’ 고 적혀있으니 이를 어기는 것은 제후의 도리가 아닐 터, 지금 당장 칸의 명령에 따라 채비를 할것이오.”
“그, 그것은….”
“혹, 경은 지금 대칸께서 명하신 것을 과인 보고 어기라고 종용(慫慂)하는 것이오?”
“…아닙니다!”
만일 전쟁이 터진다면 왕이 지척에 있는 것이 몽골군에게 이롭다는 사실은 지나가는 개도 알 사실이었다.
그런 관점에서는 전쟁이 터진다는 전제하에 고려왕은 이대로 서경에 있는 것은 몽골군에게 유리하면 유리하지 손해는 없었다.
그런데 지금 고려왕은 본래 압박하려고 가져온 칸의 요구와 칙서를 이용하여 전장에서 멀어지려는 것이었다.
그 의도를 뻔히 아는데도 불구하고 포가는 막을 수가 없었다. 여기에 더해 세자가 다시 입을 열었다.
“크흠. 이런 말을 하기는 안타깝지만 사신 보가는 이만 돌아가 주시오. 이런 허무맹랑한 소문으로 전란의 불꽃에 휩싸인다면 양국 전부가 곤란하지가 않겠소?”
“…….”
“이 일에 대해선 우리 측에서도 사람을 보내 헛소문을 바로잡을 것이니 경도 서둘러 돌아가서 전해주었으면 좋겠소. 기실 지금부터 일어날 북방의 소란에 경의 문제도 없다고는 못 할 것이오. 그러나 북방의 일은 그것으로 넘어가겠소.”
“…전 이만 돌아가도록 하겠습니다.”
사실상 축객령을 보내는데도 포가는 순순히 고개를 숙이며 떠났다.
축객령이 기분 나쁜 것은 사실이었으나 포가는 세자가 오해를 바로잡는 것에 넘어가겠다는 것을 유의했다.
고려 왕의 서경행차가 전해진 뒤 자신의 작태가 전해지고 거기서 고려가 따진다면 자신은 무조건 죽는다. 하지만 고려에서 옹호를 해준다면 명줄은 보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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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안동성각장한림태수(安東城榷場翰林太守) 유준공이 급히 장계를 올리옵니다.
근래 요동을 오가던 장사치들과 각장의 백성들의 말에 의하면 몽고의 군대가 동요국 동경까지 당도한 것 같다 하는데 혹, 저들이 고려를 침구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러하던 중 태자 전하가 보냈다는 동궁 중사인(이장용)의 일행이 몽고사신과 돌아와 주의를 하니 민심은 더욱 불안한 상황입니다.
신이 무지하여 어찌하여야 백성과 성을 지킬수 있는지 몰라 우선 사신을 통과한 후 백성들을 성으로 들이고, 성문을 굳게 닫고 있사옵니다. 바라건대 부디 묘책을 내려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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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통주방어사 감마(瑊麻) 장계를 올리옵니다.
이번 몽고의 침략에 대해선 처음은 동궁(태자궁) 중사인 이장용이 전하였고, 이어서 당도한 몽고 사신의 겁박을 하였을 때부터 낱낱이 꼽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몽고가 이제 이미 마음대로 침략하였습니다.
앞의 사정과 견주어보면 딱 들어맞는 것과 같으니, 어떻게 방어하는 계책을 세우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목마른 뒤에야 우물을 팔까 진실로 두려우니, 지금이라도 시급히 대책을 내려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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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의 사신을 돌려보내고 대칸의 칙서대로 아버지가 개경으로 환도(라고 쓰고 몽진이라 읽는다.) 준비로 한창인 상황에서 대몽골전쟁 대책은 이번에도 세자인 내가 전담하게 되었다.
안동성을 시작으로 몽골 사신이 거쳐온 성들에서 올라온 장계들을 읽고 난 후 몽골의 반응에 대한 소감을 솔직히 말하면 제대로 낚았다는 생각과 동시에 얼마나 동원되었는지는 몰라도 나름 도움도 주었는데 다짜고짜 군대까지 동원했다는 사실에 미끼를 문 대어가 너무나 크고 흉폭한 월척이라는 사실에 이를 악물었다.
‘일단 칙서가 왔다는 것은 이번에는 몽골 조정의 본군이 분명하다. 하면 지난번 옷치긴 왕가가 벌인 것과는 비교도 안 되겠지.’
“지금 서경의 상황은?”
서경 유수가 대답했다.
“다행히 황상 폐하께서 행차하시는 일로 대동한 병력과 경기(수도에 속한 지역. 이 경우 서경의 경기를 말함.) 병력이 주둔하여 있으며 인근 주현에도 유사시에 대응할 수 있게 준비를 마친 상태입니다.”
몽골군이 이대로 돌아가면 좋겠지만, 군대까지 동원했으니 돌아갈 수 없다 한다면 어떤 식으로건 격퇴는 할 수밖에 없다. 다행히 적이 과거와 수준이 다른 긴 하여도 이쪽도 나름 준비를 마친 상태라는 거다.
내실도, 민심도 불안한 상태였던 옷치긴 때와는 다른 거다.
지금은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지만 많이 진정되고 개략적인 대응과 준비도 세운 상태란 말이다.
무엇보다 아직은 내가 보이는 판과 틀에서 벗어난 것은 아닌 것 같다는 점이다.
아무튼, 여태까지의 겪은 상황에 비하면 침략한 군대는 이전보다 많을 것으로 유추되지만 그 암울함은 여러모로 낫다.
어찌 되었든 지금 이쪽에는 박서와 송문주 등 북방에 여러 명장들과 군대가 밀집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그 수는?”
“현재 서경만 하여도 2만 명이고 주현의 병력과 서해도의 병력까지 더해진다면 빠르게 1만 1, 2천 정도는 추가로 모일 것입니다.”
그 대답에 조금은 마음이 편해졌다. 급히 운용할수 있는 병력이 3만 이상이면 얼추 고려가 정상적일 때 ‘2군 6위에서 차출할 수 있는 병력’과 비슷하다. 이 정도면 어지간한 전투는 해볼 만하다.
“몽고군이 도리와 염치를 알고 돌아간다면 그것이야말로 최고라 할수 있으나 만일 그러지 않다한다면 맞서 싸우는 수밖에 없으니 제장들은 모두 각오를 굳히도록 하라. 그리고 상황이 이렇게 되었으니 송에도 급히 사람을 보내 알려야 할 것이다.”
송에 사람을 보낸다는 말에 장내 얼굴에 근심을 숨기지 못한 몇몇의 얼굴이 작게나마 밝아지는 것이 보였다.
그런 자들은 송나라와의 재수교, 여-송 동맹은 지금 같은 상황을 위해서였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사실 아주 틀리지는 않다.
단지, 지금 내가 할 건 그게 아니라는 점이지만 말이다.
“지금 송에 사람을 보내 상황을 알리는 것은 결코 원군을 청하려는 것이 아니다. 혹여라도 송이 착각하여 아조에 원군을 보내거나 지난해처럼 몽고와 전쟁을 하려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이런 나의 말은 당연히 소란을 불러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