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yo Black Prince RAW novel - Chapter 222
222화
56장 작전
“네가 본 것을 여기서 다시 전부 말해보거라.”
내 지시에 경하사로 갔던 이장용이 몽골군 진영에서 본 그대로를 설명했다.
그 덕택에 압록강 너머 동요국에 왔다는 몽골군이 예상보다 많은 수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회의장의 긴장감은 더욱 진해졌다.
물론, 나도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을 뿐 처음 이장용의 보고를 들었을 때는 많이 놀랐다.
‘구유크, 쿠빌라이, 아라크부케 등 참가한 면면의 이름들을 들었을 때 만해도 순간 이것들이 서정 대신 동정으로 계획을 바꾼 건가 생각했네.’
그렇지만 여러 번 생각해 보아도 남송과 전쟁을 멈추면서 저런 동정을 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아 서정을 준비하고 있음은 명백하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최소 4만 이상의 대군이 강 너머에 있다는 것은 쉽지 않지. 생각해 보니 이거 헛웃음이 나오네. 불과 2년. 아니 작년에 저렇게 쳐들어왔다면 고려가 사라지진 않았겠지만 원 역사급으로 피해를 받고 내부개혁은 시도하는 것조차 최소 5년 이상은 연기되었을 건데….’
물론, 지금은 아니다.
여전히 쉽지 않은 적이긴 하나 무조건 패하거나 초토화될 것이라 걱정하며 수세만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
더군다나 지금은 군을 모집하기 위해 행차를 빌미로 한 것이 더 도움 되었다.
“아우. 아우가 해주어야 할 것이 있다.”
“소제가 무엇을 하면 되는 것입니까?”
내 말에 기다렸다는 듯 눈을 반짝이며 답하는 안경공의 반응에 속으로 쓴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너는 지금 당장 남쪽으로 내려가라.”
“형님! 저도 형님과 함께 나가서 싸우고 싶습니다!”
“아니, 너는 남쪽으로 내려가 군을 모아 올려보내라!”
지원군을 보내달라는 나의 말에 창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알겠습니다. 소제가 교주도와 양광도 모든 군사를 끌고 오겠습니다.”
이녀석 역시 지난번처럼 직접 군대를 끌고 오려는구나. 얘가 진짜 전쟁이 무서운 줄 몰라요.
“아니, 교주도의 병력은 두고 양광도의 병사만 올려보내도록 하라. 그리고 너는 와서는 안 된다.”
“어째서입니까?”
창이는 오지 말라는 나의 말이 어지간히 의외였던지 크게 놀란 표정을 지었다.
“지금 몽고군이 서북면만을 칠 것인지 갈라도를 비롯한 동북면으로도 칠려는지 감히 확단하기 어렵다. 하니 교주도의 병력은 우선 동계와 함께 갈라도를 지키는데 두되, 상황에 따라 황도를 비롯한 경기 지역도 수호할 수 있게 두는 것이 옳다. 또한, 네가 너를 보고 올라오지 말라는 것은 전쟁이 길어질 경우 추가로 식량과 병력을 보급해야 할 것인데 아우가 그 업무를 맡아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하지만….”
“무릇 전쟁은 직접 나가서 싸우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며 공만이 아니다. 후방에서 식량과 지원을 책임지는 것도 전쟁에 큰 공을 세우는 것이라 할수 있다. 그 옛날 한 고조(유방)의 공신 문종후(文終侯:소하)가 전쟁에서 큰공을 세운 것이 어디 직접나가 싸워 용맹을 떨쳐서 였겠느냐. 바로 최전선에서 싸울수 있도록 보급을 해주었기 때문이었다. 창아. 아버지께서 중앙(황도)에서 굳건히 버티시고, 형제인 우리가 위아래로 협력을 한다면 어찌 이 국난을 타파하지 못하겠느냐?”
“알겠습니다. 소제를 보고 전한의 문종후가 되어라는 형님의 뜻을 따르겠습니다.”
나의 설득에 안경공도 순순히 물러났다. 사실 처음에는 왕과 함께 보내려고 했지만 왕과 함께 몽진을 시켰다가 나를 흉내 내어 몰래 빠져나오기라도 한다면 여간 골치 아픈 사태가 아닐수 없어. 그냥 적당히 임무 하나를 쥐어 떠나보내는 것으로 했다.
물론 양광도에서 병력이 오면 도움이 된다는 것은 사실이다. 양광도는 경상도와 더불어 고려에서 제일 많은 주현군이 있는 곳. 그런 만큼 그곳에서 오는 군대는 대군이 될 것이며 그 사실만 전달되어도 백성들과 병사들은 사기를 지킬 수 있을 것이다.
이로써 대략적인 대책은 다 마련했다. 남은 것은 몽골이 어떻게 움직이는가, 라고 할 수 있다.
* * *
“저들은 지금 우리를 겁박하면서 치려는 속내를 내비쳐 보였습니다. 이번에는 운이 따라 황상께서는 남하하시고, 사자는 돌려보냈으나 이 사정을 전한다 하더라도 몽고군은 우리를 칠 공산이 크옵니다. 이를 대비해야 할 것이옵니다.”
“소장도 그리 생각하옵니다. 지금이라도 의주를 비롯한 서북면 경계에 병사들을 보내는 것이 어떻겠사옵니까?”
“그렇사옵니다. 우리도 충분히 쉬었습니다. 이제 우리도 대병을 준비하여 저들을 격퇴하여야 할 것입니다!”
왕창이 급히 떠나고 군의를 계속하는데 사기가 충만한 서경의 장수들과 양강도의 장수들 몇의 호전적인 대답에 왕검은 고개를 끄덕였다.
“경들의 생각이 틀린 것은 아니나, 과인의 생각은 조금 다르오. 몽고군은 이미 동요국에 있을 것이고, 어쩌면 사자를 보냄과 동시에 아조를 치고자 강을 넘었거나 척후군을 보냈을 것이라 생각하오. 서경 유수에게 묻겠소. 적들은 어떻게 올 것이라 생각하오?”
“몽고군은 예전부터 신속하게 군을 움직여 전쟁을 끝내려는 것을 즐겨왔습니다. 하옵고 이전 전쟁(1차 여몽전쟁)으로 북방의 성들을 쉬이 점령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았을 터이니 개전이 된다면 십중팔구 다른 성들을 제치고 단숨에 이곳으로 진군할 것입니다.”
서경 유수 김경손의 대답에 왕검은 고개를 끄덕이곤 생각해둔 전략을 내놓았다.
“나도 그 의견에 동의하는 바이오. 하여 이번 적침에 대해서는 우리는 청천강(淸川江) 이북으로 당장 대군을 보내는 것이 아니라 우선 병마사 이자성 장군을 올려보내되 소수의 병사로 적의 동태를 감시하는 것에 집중시킬 것이오. 그리고 우리 본군은 적의 본군이 강을 넘었을 때를 기다렸다가 이곳에서 결판을 내고자 하오.”
“전하? 적의 본군이 ‘안주(安州= 평안도 안주시)’에 당도할 때까지라는 것은 북계를 포기하시겠다는 말씀이시옵니까?”
왕검은 그렇게 말하며 탁자에 펼쳐진 지도의 한 곳을 가리켰다.
그곳은 고구려 시기 살수(薩水)라고 불렸던 청천강 밑에 위치한 ‘안북대도호부(安北大都護府=평안남도 안주)’였다.
안북대도호부는 청천강을 건넌 이후 남쪽으로 가는 요충지였는데 서경으로 신속히 가기 위해선 거쳐야 하는 지역이었다.
그러나 몽골군들이 청천강에 올 때까지 관망하겠다는 왕검의 말에 서경부유수 민희가 깜짝 놀라 반문하였고, 장수들도 웅성거리기 시작하자 왕검은 고개를 저었다.
“포기하자는 말이 아니오. 독사가 우리가 잡을 수 있는 거리까지 머리를 들이밀 때까지 북방의 성은 수성에 전념시키자는 말이오. 만일 적의 군대가 남하하지 않는다면 그때 양광도에서 오는 원군과 합류하여 대군을 이끌고 가는 수가 있지 않소?”
그리 대답한 직후 왕검은 왕과 함께 몽진에 나서지 않고 남아 군의에 듣고 있던 수문하시중 박문성(박서)에게 물었다.
“여기서 잠시 설명을 멈추고 과인의 계획에 대해 수문하시중의 고견을 듣고자 하오.”
세자의 질문에 입을 굳게 다물었던 박서의 입이 열렸다.
“태자 전하의 계획은 참으로 훌륭하시옵니다. 하오나 몇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없잖아 있사옵니다.”
“무엇이오?”
그리 되묻는 왕검이었지만 눈앞의 명장이 무엇을 말하려는지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어 나온 질문에 그 짐작은 맞았음을 확인하곤 왕검은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
“전하께선 혹 별동대 운용에 대해 생각하고 계시고 있는 것이 아니신지요?”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시오?”
“몽고군이 안북대도호부까지 온다는 것은 아조의 5분지(之:의) 1을 주파했다 할 수 있습니다. 하물며 몽고군의 흉폭함은 소장이 구태여 언급할 필요 없이 전하께서도 아실 것이옵니다. 한데, 적의 본군이 올 때까지 관망한다 하시니 혹여나 적의 허리를 자르려는 것이 계책이 아니한가 생각 드옵니다.”
“과연 수문하시중이오. 그 말이 맞소. 과인은 별동대를 이용하여 적들의 허리를 끊으려고 하오. 만일 성공만 한다면 이 전쟁은 곧바로 끝이 날 것이오.”
과연 무관 제일에 속한 명장다운 통찰력이었다. 박서의 의견대로 왕검은 별동대를 이용할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박서는 어린 세자의 소수의 병력으로 몽골군의 동태만을 집중적으로 확인하고, 북계에 서북면병마사를 보내 유사시 원할하게 대응하게 하려는 지시에 감탄을 느꼈지만 동시에 이 작전은 완벽히 성사되는 것은 어렵다고 생각했다.
별동대의 유무가 전쟁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되고, 적의 허리를 끊는 것이 전쟁의 승률을 얼마나 높이는지는 고래부터 증명된 사실이고 모르는 장수들은 없다.
그런데 어째서 별동대로 인한 습격이 실패하는 일도 잦은가? 그건 별동대의 존재를 적도 파악하려고 애쓰기 때문이다. 하물며, 저 몽고군들에게 허리를 끊을 별동대가 청천강을 지나 자신들에게 오려는 것을 들키지 않을 확률이 얼마나 될 것인가.
그런 생각을 하다가 박서는 문득 방금 전 세자의 말에서 위화감을 느꼈다.
‘별동대의 작전이 성공하는 것만으로 전쟁이 끝날 것이라고?’
그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왕검은 말을 이었다.
“하여, 이번 별동대 보기(步騎) 8천을 지휘할 이는 송문주 장군과 과인의 장인어른이신 용강후 두 사람이 맡아주었으면 하오.”
““명을 받들겠습니다.””
서경 행차라는 큰 행사다 보니 왕실의 인척인 정안연도 당연히 참여한 상황이었고, 군의에도 참가해 있었다. 차대장군 송문주는 신장(神將)이라 불리고, 용강후 정안연은 들리는 말로는 금나라의 장수라고 하니 병대를 지휘하는 것은 불만을 가질 자는 없었다.
그러나 박서를 비롯한 이자성, 김경손 같은 명장들도 크게 놀라게 한 것은 그다음 나온 세자와 용강후의 대화에서였다.
“장인. 용강현에는 병사들을 채울 배가 마련되어 있습니까?”
“물론이옵니다. 전하. 지금 용강현의 포구에는 1만 명도 능히 태울 수 있을 배들이 정박되어 있사옵니다. 또한 서해의 제도(諸島)들을 아는 이들과 해도도 준비하였으니 언제든지 명령만 내려주시옵소서.”
““!!!””
이미 준비를 마쳤다는 사실과 별동대가 땅이 아닌 바다를 통해 간다는 사실에 순간 장내는 침묵했다.
“과연 태자 전하이십니다!”
장수들은 감탄을 숨기지 않았다. 군재와 병법에 깊지 않은 사람이라도 지금의 대화에서 이 별동대가 몽골의 허를 찌르는 데에 성공하리라는 생각은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었다.
박서와 이자성 같은 명장들마저 세자가 말한 별동대는 지상을 통해 이동할 것이라 생각하였다가 지금의 대화에서 비로소 세자가 수군으로 별동대를 움직이려 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몽고적들은 말을 재빨리 움직이고 흔적 발견에 능하고 이미 몇 번 우리 국경을 침탈한 적이 있으니 지상으로 별동대를 보낸다면 들킬 확률이 크다고 할 수 있소. 하나 바다를 통해 올라가 인근 섬에 정박을 한다면 몽고군을 우리의 별동대를 눈치채기 힘들 것이오.”
“그럴 것입니다. 새삼 이 작전은 참으로 기대되고 흥분됩니다!”
그렇게 말한 것은 이자성이였는데 명장이라 불린 이자성이였기에 다른 이들보다 작전의 뛰어남을 이해하곤 더욱 얼굴을 상기 되어 있었다.
그런 이자성과 반대로 박서는 속으로 쓴웃음을 삼켰다.
세자는 아직 허술한 점이 있다고 생각하기가 무섭게, 보기 좋게 한 방 먹은 느낌이었다.
바다를 통한 별동대 기동 작전은 박서 자신도 전혀 생각하지 못한 것이다.
물론, 그것이 박서는 물론 이자성이나 김경손 등의 군재나 군략이 왕검보다 모자란다고 할 수는 없었다.
서경 행차 때문이라곤 하나 인근 지역 대다수의 배들이 때마침 용강현에 정박되어 있다는 것은 정박되기 전부터 알고 있던 왕검과 김경손, 김방경 같은 극히 일부뿐이었으니 말이다.
아무리 뛰어난 전략가도 패가 없으면 구상하는 전략은 제한되는 법이었다. 그렇기에 박서가 쓴웃음을 삼킨 것은 분함 따위가 아니었다.
분함 따위를 느낄 바에는 지금 상황을 이해하고 세자의 작전을 재차 돌이켜 보는데 우선하는 것이 박서였고, 그렇기에 놓치고 있던 것을 알게 되며 쓴웃음을 지은 것이다.
‘서경성에서 수성이 아니라 안북대도호부를 나간 것이 그런 뜻인가. 그리고 아까 전 그것을 생각한다면… 하핫. 분명 이자성이 말하길 태자 전하께서는 평소에도 전쟁을 대비하여야 한다 하셨다지?’
비교적 왕검과 대화할 기회가 적었던 박서는 이제야 세자가 어떤 유형의 지휘관인지, 그리고 절대 도박으로 패가망신을 당할 분은 아니라고 확신할수 있었다.
* * *
“…불과 30여 리(약 12㎞) 앞에서 저렇게 당당히 진을 치고 있는 것을 이대로 관망해야 한단 말입니까?”
“성의 병력은 저들을 막기엔 턱없이 부족하고 조정에서도 따로 지시가 내려오지 않았으니 섣불리 나가서 싸울수는 없네.”
“하지만 이대로 가다간….”
“알고 있네. 하지만 한잔의 물로 불타는 수레를 어찌 소화한단 말인가. 하물며 이미 적의 군대가 강을 넘은 상황이지 않은가. 이제와서 병력을 뺀다한들, 성마저 빼앗기는 사태만 부를 뿐이야.”
장졸들을 진정시키는 유준공이었지만 그 또한 현 상황이 답답하고 초조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하물며 이미 압록강을 도하한 몽골군들을 생각하면 벌써 몇 번을 남쪽을 바라보고 있는지 모를 지경이었다.
한편 유준공의 걱정거리였던 강을 도하한 쿠추와 구유크는 승전의 소식을 받게 되었는데 그것은….
# 작가의 말
다음 편 부터는 4차 여몽전쟁 에피소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