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yo Black Prince RAW novel - Chapter 225
225화
59장 호구로(虎口路)
청천강을 다시 넘어 도주하는 몽골군을 보며 사기가 오를 대로 오른 고려군은 이번에야말로 추격해서 끝을 내야 한다고 주장했고, 그중에는 나의 측근이라 할 수 있는 유갑수도 있었다.
“적이 완전히 무너진 지금 끝을 내야 할 것입니다. 부디 완전격멸하여 이 전쟁을 종지부를 찍어주시옵소서!”
그러나 나는 고개를 저었다.
“구태여 추격할 필요는 없다.”
“어째서이옵니까?”
“궁지에 몰린 쥐는 고양이도 무는 법이다. 하물며, 강 너머에는 구육 황자가 버티고 있다. 섣불리 추격하였다가 이쪽도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 첫 번째요. 추격한다 한들 황자들을 반드시 잡을 수 있다고 확신할 수 없는 것이 두 번째요. 마지막으로 어차피 잡을 수 없다면 놔두는 것이 전쟁을 끝내기에 이롭다고 생각한 것이 세 번째 이유다.
혹, 반드시 잡을 수 있고, 잡은 후 몽고의 증원을 확실히 막을 수 있는 비책이라도 있다면 따르도록 하겠다. 있느냐?”
내가 이렇게 말하자 장졸들은 입을 다물었고, 선 조치 후 허락이 되었지만 무인들 중 최고직에 달한 수문하시중 박서에게도 물었다.
“박 시중께서는 어찌 생각하시오? 추격을 해야겠소?”
“태자 전하께서 이미 이유를 다 말씀하셨는데 어찌 소인이 왈가왈부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의 승리도 대승이오니 섣불리 욕심을 품다 신라가 석문에서 당에게 패한 것(석문 전투)과 같은 우는 피하는 것이 상책일 것이옵니다.”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소.”
이후 추격을 그만두고 이번 전투에 얼마나 피해를 입었고 적에겐 피해를 주었는지 확인을 하였는데 아군의 사상자가 500여 명 정도인데 반해 몽골군은 사상자만 6천이었으며 포획한 마필은 3천 필이 넘어갔다.
여기에 적장 땅꾸의 수급까지 얻었으니 대승도 이러한 대승도 없었다. 이렇게까지 큰 차이가 있고 마필을 많이 잡을 수 있었던 것은 역시 김경손의 복병 덕분이라 할 수 있었다.
“김 유수가 참으로 큰 공을 세웠소.”
“아니옵니다. 전하. 전하께서 적의 별동대를 예견하시어 소장을 보내주신 덕분이옵니다. 그렇지 않다면 어찌 소인이 이러한 공을 세울 수 있었겠사옵니까!”
김경손의 말대로 김경손에게 처음부터 수심이 얕은 청천강 상류에 매복하였다가 혹시라도 몽골군이 온다면 처리하라고 지시를 내린 것이다.
청천강의 형세를 보았을 때 몽골군이 막힌다면 우회하여 올지 모른다고 생각하여 그렇게 한 것인데 그게 맞은 것이다.
박서와 김경손, 김방경 같은 명장들보다 내가 먼저 떠올리고 주장하긴 했지만 다만, 이건 병력이 많고, 강이라는 방어적 이점을 발휘할수 있는 상황이라 군대를 쪼개도 부담이 적다는 전제하에서 쉽게 별동대를 나눈 것이며, 만약 병력이 아슬아슬하거나 강이 없었다면 나는 별동대를 나누는데 조금 더 고민했을 것이라 딱히 내가 이들 보다 군재나 전략안이 위라곤 생각지 않는다.
실제 내가 말하자 김경손이나 박서도 놀라지 않고 수긍한 것을 보면 내가 말하지 않아도 주장했을 것 같고 말이다.
특히 박서야 청천강의 지형이 모르니 확답을 못 하겠지만 김경손은 서경 유수로서 서경으로 오는 길의 방어선 중 하나인 청천강에 대해 모르진 않을 테니 말이다.
어찌 되었든 몽골군의 장수. 땅꾸를 잡고 그 기병대를 전멸시킨 것은 참으로 큰 공이 아닐 수 없었다.
김경손 본인은 쿠추를 잡지 못한 것에 안타까워하고 있지만 사실 쿠추를 잡는다면 당장은 기쁠지 몰라도 실제 이용하긴 애매하다.
쿠추라는 패가 쓸모없다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이번 원정의 최고 지휘관이자 황자라는 패가 너무 커서 자칫 잘못 사용하면 역으로 이쪽도 위험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땅꾸만 잡고 쿠추와 구유크 모두가 살아서 돌아가는 것이 전쟁을 끝맺는 것에는 여러 의미로 편한 것이다.
“이번 전투는 참으로 대승이니 당장 황도에 계신 황상께 이 일을 보고해야 할 것이오. 그리고 이번에 장졸들 모두가 참으로 잘 싸웠소.
하여 내 총사(摠司)로서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았으니 술은 허락할 수 없지만 고기를 먹여 장졸들의 배를 부르게 하려 하니 이번에 포획한 말들 중 상처가 심하다 싶은 말들도 잡아서 병사들에게 주시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 * *
“구유크 님께선 어째서 우리를 구원하러 오지 않으신 것입니까?!”
한편 몽골군에서는 겨우 강을 건너 돌아온 쿠추와 그 군대를 맞이한 구유크를 보고 쿠추의 수하가 따지듯 물었으나, 구유크는 도리어 언짢은 기색으로 그 수하를 노려보았다.
이에 방귀 뀐 놈이 성낸다는 기분을 느껴 화가 난 수하가 한층 더 따지려는 듯 더 가까이 다가갔으나 그때 쿠추는 수하를 말리고는 구유크에게 대신 감사의 인사를 말했다.
“형님이 엄호해 준 덕분에 살았소.”
“쿠추 님!”
“너는 형님이 강을 건너오지 않은 것에 화내서는 안 된다. 형님이 자리를 지키고 계셨기에 고려군은 감히 추격하지 않은 것이니 말이다.”
비록 전투에서는 패했지만 그렇다고 쿠추가 무능한 장수는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이복형 구유크의 행동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만일 구유크가 남은 병력을 이끌고 자신들을 구하기 위해 강을 도하 했다면 고려는 강 너머에 함정이 없을 것이라고 확신하여 끝까지 추격을 하였을 것이고, 자신들은 추격하는 고려군을 강 건너에서든 강 건너에서든 퇴각을 한다고 전열이 흐트러진 상태에서 총력으로 죽기 살기로 싸우는 선택밖에 남지 않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된다면 설령 전투에서 이겨도 막대한 피해로 그 이상 전투를 속행하는 것은 어려워진다는 것을 이해했다.
그 전투에서 세자를 붙잡는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저런 전투에서 고려 세자가 제 몸을 빼내는 것 어렵지 않으니 결국 구유크의 선택이 맞은 것이다.
“피해를 확인하고 재정비를 해라.”
“알겠소.”
이윽고 2만의 기병들 중 절반 가까이 피해를 입었다는 사실에 구유크와 쿠추는 얼굴이 굳어졌다.
“피해가 예상보다 크다.”
“면목 없소.”
땅꾸가 인솔한 별동대에는 작전을 성공하기 위해 지난번 고려 원정에 참가한 전사들도 상당수 있었다. 그들이 죽었다는 것은 단순한 숫자의 손실만이 아니었다.
거기다 이제는 병력의 차가 배나 되었고, 양군 사이에는 여전히 급류가 세고 넓은 청천강이 야속하게도 흘러 기동력이 장기인 몽골군의 근심거리로 만들었으니 양측 중 누가 불리하고 유리한지는 일목요연하였다.
“아니 솔직히 나도 이렇게 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패전을 곱씹으며 후회하고 있기보다는 이후 어떻게 이길지를 생각해야 한다.”
“물론이오.”
하지만 둘 다 전의를 잃지는 않았다. 그들은 아직도 전쟁을 지속할 생각이었고 구유크는 쿠추에게 설명했다.
“아직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고려왕이 환도하였다면 태자가 있는 여기가 분수령(分水嶺)이자 마지막 기회다.”
포가의 말이 사실이라면 고려왕은 사신을 보내자마자 바로 개경으로 환도한다고 하였다.
섬이 아닌 개경으로 가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긴 하나 역으로 말하자면 개경에서도 수비할 자신이 있다는 뜻이 된다.
아마도 고려 남쪽에서 군대를 모집하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세자가 이곳에 있는 것은 그 시간 벌기일 터였다.
그렇다면 자신들에게 남은 것은 2개였는데, 하나가 이번의 패배로 사라진 이상 남은 것은 하나뿐이다.
“세자를 잡아라. 그렇다면 이 전쟁은 우리의 승리가 된다.”
세자가 잡히면 고려는 함부로 움직이지 못한다.
세자를 잡는다면 대칸의 명을 따른 고려를 친 것이 아니라, 예전부터 요구한 세자를 인질로 한다는 문제를 다소 강하게 이행한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즉, 세자를 잡기만 한다면 시작부터 어긋난 전쟁을 어떻게든 체면을 세우고 무마할 수 있었다.
“이번에 입은 피해가 크니 이대로 강을 건너지 않고 대기하였다가 쿠투투가 이끄는 2군이 합류하면 그때 다시 노리면 된다. 2군이 비록 한인 놈들을 끌어모아 보병들이 많아 느리고 약하다곤 하나 그 수는 적지 않고, 화살받이로는 충분하니 합류한다면 마땅히 다시 승부를 노려볼 만하다.”
구유크의 말에 쿠추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전투에서 병력이 줄어들었으나 2군이 합류할 때까지 버틸 자신은 있었고, 만에 하나라도 고려군이 강을 건너와 주기라도 한다면 이번에는 여기서 격퇴해 줄 자신도 있었다.
이제 전쟁의 결판은 개경이 아닌 안북부로 바뀐 것이다. 하지만 이때 구유크는 생각했다.
‘다만 걱정이 되는 것은 이번 전투를 끝으로 고려 세자가 서경으로 가거나 개경으로 가는 경우인데….’
만일 그렇게 된다면 자신들은 안북부에서 승리하더라도 어떻게든 세자나 왕이 있는 곳까지 내려가야 하니 전쟁이 귀찮아질 것이 분명했다.
‘아니, 고려 아들(왕검을 말함) 녀석의 문제는 쿠투투가 합류 후 그때 고려군의 동태를 보고 판단해도 늦지는 않다. 지금은 눈앞의 일은 먼저 신경 쓰자.’
* * *
한편 쿠투투 형제들이 이끄는 2군은 이제야 철주에 당도한 상황이었는데, 구유크가 말한 대로 2군은 한인들로 이루어진 보병들이 많아 다른 3군들에 비하면 기동력이 떨어지는 탓이었다.
“젠장. 조짐이 나쁘다는 생각은 했지만 결국 일이 났군.”
“무슨 일입니까? 형님.”
바람도 쐴 겸 순찰을 마치고 온 쿠빌라이는 이복형의 난감한 표정을 보고는 무슨 이유인가 물었는데, 쿠투투는 입을 꾹 다문 채 야율설도에게 대신 답해달라며 눈짓을 보냈다.
“쿠빌라이 공. 지금 1군에서 청천강에서 고려군과 부딪혔으나 거센 저항에 밀려 땅꾸 장군은 전사하였고 장졸들의 피해도 적지가 않으니 서둘러 군을 이끌고 합류하라는 전갈이 올라왔소.”
“땅꾸 장군이 전사?! 형님. 이게 무슨 소리입니까? 하면 1군이 패했다는 말입니까?”
“고려군이 강 너머에서 진형을 차려 정면에서 돌파가 힘들어지자 땅꾸 장군이 상류로 우회하여 쳤으나 상류에 매복한 고려군에게 당했다고 하오.”
이후로 쿠빌라이가 쿠투투에게 물으나 정작 대답과 설명은 야율설도가 대신하였는데, 이 기묘한 형국은 쿠투투의 고뇌가 끝나고서 나서야 깨질 수 있었다.
“군을 정비해라. 지금 당장 요동에 있는 3군과 4군에 전령을 보내고 우리는 남하한다.”
“쿠투투 형님. 하지만….”
쿠투투나 쿠빌라이나 둘 다 일군(一軍)을 지휘해본 적 있었고 특히 쿠빌라이는 원 역사에서도 정복 군주로 큰 명성을 떨친 자였다. 비록 아직 완전히 개화되지는 않았지만 졸장이라고 부를 수준은 아니었다.
당연, 현 상황에서 쿠추군의 전략적 최고 목표가 고려 세자를 잡는 것으로 바뀌었다는 것을 이해했고, 동시에 여기서 세자가 서경이나 개경 등 남방으로 간다면 몽골군은 청천강을 돌파하고도 더 전투를 치러야 할 위험성도 간파한 것이다.
하물며, 청천강에서 일어난 전투를 본다면 자신들이 합류한다고 쉬이 돌파할 대책이 나오지 않을 테니 정공법이 될 확률이 높았는데, 여기서 병력이 적잖은 피해를 받을 것일 생각하니 그것 또한 거부감이 들었다. 이에 쿠빌라이는 넌지시 말을 흐리면서 반대의 뜻을 내비쳤지만 쿠투투는 고개를 저었다.
“만약 여기 있는 것이 우리가 아니라면 나는 증원을 반대했겠지만 공교롭게도 지금 여기 있는 것은 우리다. 그렇다면 우린 반드시 1군과 합류해야 한다. 너는 지금 우리 형제가 어떠한 처지인지 잊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인상을 찌푸리며 힘들게 말하는 쿠투투의 말에 쿠빌라이는 입을 바로 다물었다. 전쟁의 명분이 사라진 것이 생각도 못한 고려왕의 서경 행차라고 한다면 명분적으로 불리해진 것은 자신들의 동생 아라크부케의 섣부른 습격 때문이었다. 쿠추와 구유크가 무리하게 청천강을 넘은 것도, 고려 세자를 잡으려는 것도 이 불리한 명분과 이미 군대를 끌고 왔고 동정의 목적을 달성해야 한다는 사실 속에서 전쟁에서 어떻게든 동정을 한 목적(쿠추의 공적)의 일부를 달성하기 위해서였으니 말이다.
“알겠습니다.”
‘결국 우리 형제가 면죄 받으려면 남하하는 수 밖에 없다는 거군.’
큰 문책을 피하기 위해서는 고려 세자를 잡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쿠추가 공적을 세우는데 도움을 주는 것 밖에 없다는 사실에 쿠빌라이를 비롯한 2군은 급히 청천강으로 서둘러 진군을 시작했다.
* * *
“어제부터 철주에 있던 몽고군이 갑자기 속도를 올려 남하하기 시작했다하는 송 장군은 이에 대해 어찌 생각하시는지요?”
“천천히 움직이던 적들이 갑자기 속도를 올려 남하하고 있다는 것은 예상과 다른 일이 생겼다는 것이니 십중팔구 안북부에 있는 우리 군이 크게 승리하였을 것입니다.”
“그 말씀은….”
“예. 슬슬 우리도 움직일 차례인 것 같습니다.”
쿠빌라이의 군대가 남하하였다는 소식은 그들의 동태를 살피고 있던 금상(金商) 출신 척후병에 의해 빠르게 전해졌고, 이 소식에 서해 제도(諸島)에 정박한 채 숨어 있던 송문주와 정안연의 함대도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