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yo Black Prince RAW novel - Chapter 24
24화. 24장 소문
그 일로부터 일주일 후.
개경일대에는 요상한 소문들이 퍼졌고 그 소문들은 기어코 개경의 왕성 안까지 전해져 왔다.
“전하. 저잣거리에 들려오는 소문을 들으셨사옵니까?”
개경에 떠도는 소문은 1232년. 몽골군에 의해 금나라의 황도 개봉이 함락되었을 때 금 황제와 함께 도주하지 못한 금의 여러 황족들은 남자는 죽고 황후나 첩등 여인들은 능욕을 당하고 몽골로 끌려가는 지옥같은 일이 벌어졌다. 그러나 금 황제가 총애하는 황녀는 옷을 바꿔 입고 황성 밖으로 도망을 가고는 황제가 있는 채주로 가려 했으나 몽골군의 경계가 너무 엄중하고 추적이 심해 도망을 치다가 배를 타고 고려로 넘어왔다. 그리고 그녀는 지금도 고려에서 신분을 밝히지 못하고 바다 건너 몽골군에게 불타는 고국을 생각하며 눈물로 적시고 있다. 라는 것이다.
소문 자체는 명확하게 통일되어 있지도 않고 내용도 일부가 제각각 다르다. 금 황녀 혹은 공주, 방계의 여인이 넘어왔다. 라거나 타고 온것도 상인의 배 혹은 금 황실 대장군이 호위하고 있다, 심지어 나라가 위급해지자 금 황제가 고려 왕에게 비밀리에 국혼을 위해 보냈다. -는 등 여러 가지 버전으로 떠돌고 있었다. 단. 한가지 통일 되는게 있다면 금 황실의 여인이 몽골을 피해 고려로 넘어왔다는 정도였고, 그 마저도 확실한 증거도 없다.
즉, 뜬소문 범주에 불과하였다. 그럼에도 이 뜬소문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은채 더욱 퍼져 나간 것이다.
여기서 잠시 여도사 ‘금수유’(金須有)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겠다. 정안연은 그녀가 맹수 한테 덮쳐졌을 뻔 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곧바로 벽란도의 용한 의원들을 수색하는 것은 물론, 개경에서 가장 유명한 의원 댁까지 정안연이 직접 찾아와서 다급히 그녀가 있는 객잔으로 데려가 진맥을 보게 하는 모습이 보였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정안연은 수백명의 상원들과 막대한 물품들을 들고 기착하여 주변에서도 아는 거상이었다. 그런 거상이 고작 여인 한명을 위해 저렇게까지 나서는 모습은 주변 관심과 시선이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흘러내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그 상대인 여도사에게도 집중되었고 의문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그런 상황에서 때마침 그 당사자는 지난 표범 사건 이후로 객잔 별실에서 나오지 않고 있었다.
상처 하나 없어보이던 그녀가 어째서 객잔에서 나오지 않는 것인지는 본인이 스스로 택한 것인지 아니면 강제적인지는 몰라도, 얼굴을 내비치지 않은 것이 ‘가림의 미학’ 작용이라도 되었는지 기대한 이들의 궁금증과 기대를 더욱 증폭 시켰고, 급기야 그녀의 얼굴을 본 이들에게 묻는 자들이 속출했다.
일개 양민층으로는 보이지 않는 도도함과 오만한 언행, 양민들이라면 쉬이 가질수 없는 비단 도복, 그리고 아름다운 외모와 부드러워 보이는 피부. 등 그녀에 대한 정보가 조금씩 나돌기 시작했다.
“자네 들었는가? 저 객잔에 머무는 금상이 사실 상인이 아니라 금국의 장수인데 몽고의 눈을 피해 금 황녀를 호위하기 위해 상인으로 위장하여 왔다는 소문 말이네.”
“그렇다면 저 객잔에 있는 선자가 소문의 금 황녀란 말인가?”
“그렇지 않겠는가? 생각해보게 일개 상인이 성상께 바치는 조공치고는 규모가 너무 크지 않은가? 사실 저게 전부 금국에서 아국에 황녀를 보호해달라고 요청하자고 보낸 물품인 것 아니겠는가!”
금나라의 미녀와 그런 미녀를 상전 모시듯 대접하는 금나라의 거상. 그 둘의 조합은 앞서 뜨고 있는 황녀의 소문과 연루하여 보는 자들은 당연하게도 나왔다. 물론 금에서 넘어왔다는 일말의 진실 외에는 전부 사람들의 추측이며 덧붙인 ‘살’ 들이다. 그러나 신문도, TV도 없는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이 소문은 재밌는 오락거리이자 흥미 거리였고, 한가지 그럴 듯 한 것이 잡힌 순간 스스로 추리와 지식으로 짜집어 보는 것도 사람들의 심리이기도 했다.
선동은 한 문장으로도 가능하지만 그것을 반박하려면 수십장의 문서와 증거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을 반박하려고 할 때에는 사람들은 이미 선동되어있다. 고 인터넷에서 괴벨스의 명언이라고 떠도는데 이 말이 사실은 거짓이라는 것은 둘째 치더라도 정말로 그럴싸한 말이지 않은가?
여기까지 오면 알것이다. 이 소문을 퍼트린 건 정안연이다. 그리고 정안연 한테 이런 소문을 유포 시키도록 만든 것은 ‘나’다. 정확히는 대충 설명하니 정안연이 찰떡 처럼 알아듣고 이렇게 소문을 퍼트린 거지만… 자작극인 만큼 당연히 거짓말이다.
영화나 소설처럼 우연히 만난 여도사가 알고 보니 금의 황녀!
-라거나 하는 일은 당연히 없었다. 그러니까 진실을 숨겨서 이용한다. 이 거짓말투성이인 헛소문이 거짓말인게 판단되기까지 얼마나 걸릴까?
이 뜬 소문이 풀릴 때 까지는 금 수유는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금 황녀로 의심을 받고, 금 황녀는 고려로 도피했다는 소문이 사라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 소문이 거짓이라고 정확히 판명되기 전까지는 누군가 정안연에게 물어도 그는 애매하게 부정할 것이다. 동의를 하지 않기 때문에 소문은 얼마나 시끄럽든 명확한 증거를 가지지 못할 것이고 결국 뜬 소문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 뜬 소문이라는 수준이 가장 적당하다.
만약 후일 이 소문을 듣고 몽골이나 금나라에서 공식적으로 따질 경우 근거 없는 뜬 소문에 불과하다고 둘러대거나, 금수유가 자칭한 것이나 혹은 은폐했다고 몰면 되니 말이다.
물론, 그런 일이 벌어질 경우 화제의 중심이 되는 금수유를 내놓거나 처단하라는 요청이 나올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그리고 그렇게 된다면 금수유는…
내가 이런 소문을 만든 것은 당연히 금의 유민들을 포섭 내지는 끌어들이기 위해서다. 이 소문이 널리 퍼진다면 금의 유민들 중에는 분명 자발적으로 고려에 오려는 자들도 나올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온 금(&여진)의 유민들은 이후 있을 몽골 전쟁에 도움이 될 것이다.
‘자신도 모르게 공주로 오해받고 이용된 끝에 최악에는…. 무량수불. 최소한 이 연극이 끝날때 까지는 진짜 공주님도 부럽지 않게 살게 해주는게 마지막 배려겠지.’
“크흠. 과인도 들었다. 허나 너무나 허무맹랑한 소문이로다. 크게 개의치 말도록 하라.”
“전하. 중요한 것은 그 소문이 아닙니다. 다른 것 이지요.”
“크흠. 흠.”
김인경이 매서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하자 내심 찔리는게 있어서 시선을 피했다. 그렇게 나를 주시하는 눈빛은 김인경만이 아니였다. 그 자리에 있는 대부분이 나에게 답을 요구하는 듯이 시선을 보내고 있다.
근래 들어 벽란도와 개경에는 떠도는 소문들이 있다고 했다. 그렇다. 소문‘들’이다. 금 황녀 소문 외에 떠도는 다른 하나의 소문.
그것은 ‘벽란도에 출물한 흑호(黑虎)와 그 흑호를 퇴치한 태자’ 라는 소문이다. 이름만 봐도 알겠지만 이 소문에선 내가 나온다. 그것도 단순히 나온다 정도를 넘어서 아예 주역이다.
소문에서 나오는 내용들은 과장을 넘어 아예 격변되어 있었다.
베트남에서 구했다는 돌연변이 흑표범은 검은 호랑이로 왜곡되다 못해 바다 건너에서 수백년 동안 도술을 닦은 요사스럽고 무서운 검은 괴물 호랑이라는 걸로 진화되어 있었고, 우리에서 탈출하여 벽란도를 달린 내용은, 북조의 사람들을 잡아먹다가 질려서 이번엔 고려인들을 먹어보고 싶어서 바다 위로 날아왔다는 것으로 되었다. 마지막으로 내가 쏘아 죽인 내용은 마침 백성들의 민심을 둘러보기 위해 잠행 중이던 태자가 이를 발견 하고는 화살을 쏘아죽였다는 식으로 그나마 별 차이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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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흑표범을 잡을때 사용한 애깃살이 고려 왕실에서 계승자에게만 대대로 내려오는 고려 의조(懿祖) 작제건께서 용왕을 구하기 위해 요호를 향해 사용하던 화살로 둔갑된 것만 빼면 말이다.
‘아이고 두통이야.’
“전하.”
“…도대체 무엇이냐. 그 소문은? 어느 사이에 과인이 요괴를 잡은 사냥꾼이 된 것이냐?”
“전하.”
“어허! 설마 그대들은 그 허무맹랑한 소문을 믿고 있단 말인가!?”
“물론 저희들도 요괴니 바다를 건너왔느니 하는 허무맹랑한 소문은 믿지 않사옵니다. 그러나 저 범이 출몰했다는 날 전하께서는 어디에 계셨느니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전하. 며칠 전 견룡군 척 별장이 황도의 거리에서 흑범의 사체를 짊어지고 걷고 있었다는 목격담과 그가 향한 방향이 황궁의 여정궁으로 향했다는 말이 들려오는데 무슨 일이 있었는지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
일단 흑표범을 쓰러트린 것이 나인 이상 무슨 말을 할수 있겠는가. 내가 아무런 말도 못하자 김인경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말하였다.
“전하. 소인들이 어찌 전하의 무용을 의심하거나 얕잡아 보겠나이까. 하오나 전하께선 대고려국의 태묘사직[太廟社稷]과 억조창생을 짊어질 분이시옵니다. 제발 옥체를 아껴주시옵소서!”
“옥체를 중히 여겨주시옵소서!!”
“……이번에는 과인이 염두한 것이 아니었도다. 허나 그대들의 우국충정 어린 걱정을 어찌 모르겠는가. 그대들의 충언과 걱정을 깊이 고려하겠노라.”
이번엔 나도 뭐라 반박을 못하고 조심하겠다고 답할 수밖에 없었다. 맹수는 조심해야 하고 말고, 이번에는 운이 좋아 한번에 맞추긴 했지만 만약 빗맞았거나 즉사 하지 않아 덤벼들었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내가 종종 견룡군들을 데리고 사냥을 나서긴 하지만 그것과 이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덧붙여 당연하지만 이 소문은 내가 만든게 아니다. 내가 암만 프로파 간다를 원해도 저렇게까지 하기엔 내 멘탈이 못견딘다. 당장에 저 소문을 들은 직후 속으로 격하게 이불킥을 날렸다.
‘맙소사. 거기서 작제건 설화라니… 성제에 이어서 이젠 야수 사냥꾼이냐.’
소문을 들었을 때 함께 있던 김방경의 눈이 반짝이고 있던 것 같은데 설마 저놈이 퍼트린 건 아니겠지?
* * *
“그것이 무슨 소리이십니까?”
“방금 말하지 않았느냐.”
“이해가 안간다 이 말입니다!”
“만수. 진정하게.”
주변에서 동료들이 만수를 말렸지만 만수는 목숨을 걸고 나서며 따졌다. 심해도 너무 심하다. 전쟁이 끝나고 왕께서 곧바로 섬에서 나올 것이라는 기대도 태조 황제의 어전들을 강화로 끌고가는 것을 보며 무너졌다. 그래도 참았다. 쥐꼬리만큼이라도 포를 감면받기 위해 매일 같이 새벽 일찍 강음현[江陰縣 :개성부 속현. 개경성 밖 서북쪽에 위치.]을 떠나 벽란도로 가서 강화로 가는 세금과 공물들을 나르는 역[役]을 받았지만 참았다. 지금 같은 고통도 왕께서 강화에서 돌아오고 이 국난만 진정되면 끝날 것이라고 마지막 기대를 하며 참고 참았다. 이보다 더 힘들어지진 않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째서 갑자기 이렇게 찾아와서 다 끌고 가겠다는 말씀이십니까?”
“황명이라고 하지 않았느냐! 그리고 너희 들만이 아니다. 인근 지역 전부 세를 조금씩 거두고 있으니 괜한 엄살 부리지마라!”
“엄살? 엄살이라고 하였습니까?”
안그래도 가혹한 세금을 내며 허덕이고 있는데 갑자기 강화에서 징세를 하러 사람이 내려온 것이다. 듣자하니 고려의 왕과 중신들이 나라의 안위를 걱정하고 기원한다하여 3만의 스님들을 불러모아 연등회(燃燈會)를 열려고 하니 특별 징세를 거둔다는 것이다. 안그래도 힘든 만수로서는 갑자기 병사들을 이끌고 거덜 내려는 그들에게 피 토하는 심정으로 따질 수밖에 없었다.
“저 쌀은 우리 집에 있는 곡식 전부고, 저 소는 우리 고을 사람들이 전부 공용으로 쓰고 있는 소입니다! 저걸 들고 가면 우리들은 뭘 먹고 살란 말입니까?”
만수는 울화통을 터지는 것을 겨우 겨우 참으며 말했지만 조정에서 내려온 징수관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으며 되려 비웃었다.
“그렇게 식량이 부족하면 산에 올라가서 나무 껍질을 먹든, 풀뿌리를 캐서 먹으면 되지 않느냐. 게을러서 산에 오르기 싫어 굶는다면 전부 너희 사정이지. 네놈이 정녕 황명을 못듣겠다면 이쪽에서 도와주마. 뭐하느냐. 거둬라.”
그리고는 정말로 병사들을 시켜 강제로 취하기 시작했다. 집은 물론 부엌대기 마저 뒤지기 시작하자 만수는 결국 울화를 참지 못하고 동료들의 제지도 뿌리치고 관리에게 달려들었다.
“야 이 새끼들아-!”
“만수. 만수. 당장 멈추게! 조정의 관리란 말일세! 젠장. 심이 그 친구는 아직이란 말인가?!”
세금을 거두려고 조정에서 사람이 만수의 집에 가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만수의 동료는 만수를 만류하면서도 만수의 성격상 문제가 생길 것을 예견하고는 만수의 친구인 ‘그’에게도 사람을 보냈다. 그 덕분에 여태껏 만수가 얼마나 사고와 위기를 피했던가?
만수의 친구이자 유일하게 만수를 설득할수 있는 그라면 이번에도 어떻게든 만수를 말려서 사고를 막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운이 없었다. 그가 당도하기 전에 만수는 결국 사고를 터트린 것이다.
“당장 안 놓아!!”
뿔 난채 달려드는 만수를 보며 관리는 이런게 익숙하다는 듯 비웃음을 흘리며 병사들에게 손짓을 했다.
* * *
야심한 밤. 어둠 속에 정체를 숨기려는 듯 새까만 흑단[黑緞:검은 비단]을 입고 벽란도 거리를 걷는 이가 있었으니 그게 바로 나다. 개경을 떠나기 전날 마지막으로 맹수 사건 이후 아직도 방에서 두문불출한다는 금수유의 상태를 보기 위해 다시 벽란객잔으로 왔다. 흑단을 입긴 했으나 나 외엔 김방경이나 척인사 등은 평범하게 옷을 입고 있었다. 즉, 눈썰미가 좋다면 그가 호종하는 이가 있다는 것을 눈치채는 이들이 나올 것이다. 그렇게 거리를 지나 객잔을 가니 정안연이 기다렸다는 듯이 맞이 해주었다.
“그녀를 만나러 왔네. 만나볼수 있겠는가?”
“기다리고 있었사옵니다. 어서 들어오시지요.”
물론 상태를 보기 위해 간다는 건 형식상의 이유고 실제론 소문을 더 크게 만들기 위해서다. 세자인 내가 안그래도 의심되는 인간이 있는 장소에 갔다. 그리고 하루가 지나서 궁에 돌아갔다. 그것도 개경에서 출발하기 하루 전에 말이다. 이게 거리에 퍼지게 된다면 어찌 되겠는가? 분명 소문은 더 커질 것이다. 물론 누군가 혹은 조정에서 이것에 대해 묻는다면 그저 걱정이 되어서 갔다가 시간이 늦어 묵고 갔다고 할 것이다.
즉, 가장 소문이 심한 곳에서 하루 외박하고 간다. 그것이 내 목적이다. 참고로 여도사와 불타는 하룻밤 같은 건 생각없다? 애초에 그녀 성격을 생각하면 재수없는 꼬맹이인 나한테 축객령을 내릴 것이 뻔하지 않은가? 그게 아니더라도 그걸 할 인간이 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나저나 그녀가 그 후로 방 밖을 나가지 않았다 들었는데 사실이냐?”
“예. 선자께선 그 날 이후 줄곧 방에 계시며 간혹 밖으로 나와도 객잔 밖으로는 나가지 않고 있었습니다.”
정안연이 아니라 그녀 스스로 방에 머물고 있다니, 혹시 정말로 무슨 일이라도 난건 아니겠지.
“크흠. 소저. 들어가겠소!”
드르륵 하며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들어갔다. 아무것도 모르는 모형 정원속의 공주인채로 오래 오래 건강해야 하는데. 어디 안색을 확인 해볼까?
* * *
“만수! 이 친구야. 정신 차리게. 이렇게 가면 어떻하란 말인가.”
벽란도에서 일을 하던 그는 만수가 위험하다는 말에 하던 일도 내팽겨치고 만수의 집으로 달렸다. 그러나 그가 도착 했을 쯤에는 이미 거덜이 난 만수의 집과 온몸에 울고 있는 아내의 간호를 받은채 피멍이 들어 골골대며 있는 만수였다. 얼마나 심하게 맞았는지 온몸이 부어올라 원래의 모습도 알아보기 힘들었고, 의식도 차리지 못하였다. 그는 만수의 아내와 함께 만수를 간호하였으나 그런 그들의 정성도 무색하게 만수는 3일후 새벽 닭이 우는 소리와 함께 결국 의식 한번 되찾지 못한채 세상을 떠났다.
“흐흐흑. 어째서 가는 것이오. 이제 우리들은 어쩌고 당신만 모두 버리고 가는 것이오. 흑흑흑.”
“응애! 응애!”
상을 치루려고 해도 가진 게 없어서 제대로 된 장례식도 치루지 못하자 하루 아침에 과부가 된 만수의 아내와 아직 젖도 때지 못한채 고아가 된 자식은 무덤 앞에서 구슬프게 흐느꼈고, 그 뒤에서 서있는 만수의 동료들도 그 광경에 눈물을 훔치며 한탄하였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만수와 저들이 무슨 죄를 지었다고… 이제 뭘 먹고 사나.”
“우리도 마찬가지 일세. 쌀 한톨도 안거르고 다 들고가는데 저래선 몽고군들과 뭐가 다르단 말인가!”
“에잇! 우리만이 아닐세. 인근 지역 대부분에서 과하게 세금을 거둬가고 있네. 그러면서도 부역은 부릴대로 다 부리고 있으니 우리 같은 자들은 어떻게 살란 말인가. 천자께선 정말 섬에서 나올 생각은 있으시단 말인가?”
“…모두 잠시만 나의 말을 들어주겠는가?”
만수의 죽음과 어려운 처지에 한탄하는 그들의 잡담 속에서 여태껏 만수의 무덤 앞에 조용히 앉아있던 친구는 갑자기 일어섰다.
그리고는 조용한 목소리로 그들을 불러 모았다. 잡답을 나누던 그들이었지만 그의 진지한 표정에 잡담을 멈추고 경청하였고, 그의 말이 전부 끝나자 전부 침통한 표정을 짓다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 나의 말을 따라주겠나?”
“해보세. 이러든 저러든 죽는건 매한가지 아닌가. 나는 동참하겠네. ‘왕심’.”
왕심이라 불린 자는 서쪽을 바라보며 슬픈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천자시여. 천자께서 정녕 저희들을 버리신다면 저희들도 어쩔수가 없습니다.”